137. 독자외교권
순도 100% 픽션입니다
오사카 전투가 끝나고 에도군은 물러났지만, 오사카 번은 도저히 추격할 수 없었다.
성내 전투병력 7할 이상이 죽었고 민간인도 대부분 죽었다.
오사카 인근과 교토 인근의 백성들마저 토산 쌓는데 동원되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추격은커녕 존망을 걱정해야 한다.
추격이든 재건이든 어쨌든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기인데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넋을 놓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흑흑. 죄송해요.”
마지막 순간 유일한 안식처인 센히메가 곁에서 울었다.
이에야스의 장손녀이자 히데타다의 장녀인 센히메는 적의 죽음에 울었다.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적이 내성에 침입하고 바로 아래층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오노 하루나가는 어머니 요도도노를 방패로 써 제 목숨을 부지했다.
어머니가 죽었다.
반쯤 미쳐있을 때 내편이어야 할 센히메는 적을 걱정하며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센히메에게 소리 질렀다.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며 윽박질렀다.
“저놈들은 날 죽이러 왔어! 내가 죽는 게 낫다는 거야?”
그 말에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울었다.
“그랬다면... 상황이 반대였다면... 그래도 똑같았을 거예요. 미안해요.”
뭐가 똑같다는 거지? 할 때 센히메가 창밖으로 몸으로 던졌다.
“아앗! 센!”
손을 뻗어 보지만 닿지 않았다.
센히메는 천수각 5층에서 추락해 자욱한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센히메가 죽었다.
유일한 안식처가 사라졌다.
오사카 전투는 승리했지만 어머니와 약혼녀를 잃은 히데요리는 폐인이 되었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윤성준을 만나서도 히데요리는 건성으로 손만 휘휘 저을 뿐이었다.
“이상은 오사카 전투에 참여한 조선이 소모한 전비이옵니다.”
일본 원정에 소모된 모든 비용을 지불하라 하는데도 히데요리는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오사카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린 영주들입니다. 이들에게 도쿠가와 계열 영지를 전리품으로 주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윤성준은 조선에 협력한 항왜 영주들의 리스트를 꺼냈다.
히데요리가 보니 모두 도쿠가와에게 몰락한 영주들이고 적의 땅을 주는 거라면 손해 볼 일도 없다.
도쿠가와와 싸울 자신의 수족이 늘어나는 것이다.
끄덕 끄덕.
“그리고 이들이 도쿠가와 군과 전투할 생각인데 태백으로써 지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날 위한 전투니까 지원해야지.
끄덕 끄덕.
“또한 지방의 영주들이 도쿠가와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에게 지원을 했습니다. 따로 비용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끄덕 끄덕.
“알겠습니다. 지방 영주와 따로 문서를 작성하겠습니다. 각 지역의 영주가 조선과 조약을 맺어도 됨을 공식화 해 주십시오.”
끄덕 끄덕.
“서류는 작성해왔습니다.”
바로 결제되었다.
히데요리는 그저 귀찮았다.
이런 형식적인 것 따위 집어치우고 당장 히데타다의 목을 잘라 분을 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지방 영주의 독자적 외교권이 무슨 의미인지 히데요리는 전혀 몰랐다.
“아마토 전역에 야마토 은행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돈을 보관해주고 필요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으로 야마토 영주들의 재산을 지켜주며 불려주는 곳입니다. 야마토 은행의 주인은 도요토미 공이며 일은 저희가 하지만 수익의 일부는 태백께 갈 것입니다. 허가해 주십시오. 아. 이건 거부하셔도 됩니다. 조선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조선의 상인 하나가 맡아서 하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는데 돈을 주겠단다.
끄덕 끄덕.
윤성준은 며칠간 밀고 당기기를 하며 지리한 협상을 할 각오를 하고 왔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기분이 좋아진 윤성준이 선물을 줬다.
“감사합니다. 태백.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해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선물을 준다고 해도 시큰둥한 히데요리.
그는 사신들이 빨리 나가줬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이에야스의 목입니다.”
소금에 절여진 이에야스의 목이 잘 포장되어 전달되었다.
히데요리가 눈을 빛내며 분풀이할 생각에 가득 찼을 때 윤성준이 선물을 하나 더 주었다.
“그리고 오노 하루나가가 센다이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벌떡!
“뭐! 내 어머니를 죽인 반역자놈이?”
“그리고 오노가 센히메를 붙잡아 끌고 간다 합니다.”
“뭣!”
조선은 일본의 끝나가는 내전에 다시 불을 질렀다.
조선은 친절하게도 우편서비스까지 해 주었다.
오사카 전투의 대승 소식과 히데요리의 총 동원령과 오사카에 바칠 세폐 등을 적은 서신을 일본 전역의 영주들에게 전달해줬다.
에도번 대패.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망. 도쿠가와 히데타다 중상.
그간 체면이 많이 상한 도쿠가와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졌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국 영주의 절반이 도요토미에 충성을 맹세해왔다.
물론 공짜 충성은 아니다.
그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 죗값으로 전 재산을 탈탈 털어야 했다.
거기에 도쿠가와 원정에 또다시 전 병력을 동원해야 했다.
추수철이 끝났다.
영주들은 반 징집병인 아사가루 전원과 군량수송 용 농민을 최대한 뽑아 오사카로 달려갔다.
혼잡한 와중에 히데요리의 서신을 전달한 배달부는 새로운 서신을 꺼냈다.
“이게 뭔가?”
“야마토 천황의 허가를 받은 문서요. 야마토의 모든 영주는 독자적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선포요.”
아직 영주들이 모를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 지난 사백년간 조선의 양민이 학살당하고 양곡을 약탈당한 배상금입니다. 귀 영지에서 지불해 준다면 무제한 약탈을 멈추겠습니다.”
“이... 이건 영지를 팔아도 지불할 수 없네. 천년이 가도 갚지 못할 거야.”
사백년간 약탈된 쌀과 목숨 값에 10% 복리 이자를 적용했다.
전 지구의 쌀을 다 모아와도 갚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도 금광을 주십시오.”
“그... 그건.”
“영지의 전 재산이죠. 허나 지금 캐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혼슈 북서쪽에 튀어나온 사도 섬에 일본 최대의 금광이 있다.
현재는 바다가 봉쇄되어 캐지 못하고 있다.
“조약에 합의한다면 다이묘의 체면이 손상당할 것입니다. 어쩌면 내부의 반발로 쫓겨날 수도 있겠지요.”
“그... 그렇지.”
“그러니 영주의 이름을 남겨 두도록 하죠. 쪽배를 보내 사도금광을 운영하십시오. 영주의 백성들이 직접 캐고 영주가 관리한다면 권위에 손상이 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조선의 약탈이 중지되었으니 민심이 좋아질 것입니다. 물론 조선이 모든 생산물을 먹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량의 9할만 주십시오.”
나머지 1할만으로 광산을 운영하고 광부들 먹여 살리면 남는 것도 없다.
그래도 이건 받아들어야 한다.
어차피 해상봉쇄로 캐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상봉쇄가 풀어지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다.
“알겠네. 합의 하지.”
“감사합니다. 양국의 우호적 조약이 체결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본성 앞에 건물 하나를 주십시오. 특별히 귀 영지에 야마토 은행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위엄 넘치는 도요토미 가문의 깃발을 달고 있는 야마토 은행.
조선과 히데요리의 협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영지에 알려지기론 히데요리가 주인이다.
일본의 모든 광산을 합의하에 얻어냈다.
일은 일본인이 하지만 생산물의 대부분을 조선이 가져간다.
조선이 할 일은 감시할 사람 한두 명만 투입하면 끝이다.
유황광산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지금, 일본의 광산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광산이 없는 영지는 쌀을 배상으로 받는다.
거부는 없다.
그리고 야마토 은행.
모현성의 일본공략이 최종장에 접어들었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나하 원정에 삼개국이 동원되었는데 얻은 게 없다.
물건이 너무 잘 팔리니 광해상회엔 남은 물건이 없었고, 설탕농장에서 약간의 설탕과 약간의 고기맛가루를 얻었을 뿐이다.
때마침 다가오던 조선의 상단을 공격해 정크선 두 척 분량의 상품을 약탈하지 못했다면 사형당할 뻔 했다.
조선의 상품은 위대하다.
노획한 상품을 나눠가진 것 만으로 삼국의 원정비용을 배 이상 뽑아냈다.
각국은 희희낙락하며 회군했지만, 루이스 페르난도는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갤리온 선장들은 이들을 멍청한 원숭이라 생각하지만 마카오-나가사키 항로를 타던 루이스는 동양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당장 지팡구(일본)만 하더라도 십만 이십만 대군을 순식간에 모을 수 있다.
십만 대군이라니.
고국 포르투갈은 단 한 번도 모으지 못한 병력인데.
그런 지팡구가 코레아란 나라에 박살이 났다.
신비한 상품이 쏟아지고 엄청난 전력을 보유한 나라 코레아.
포로를 심문해봤자 신의 사자니 뭐니 하는 소리나 해 대고, 상품의 제조법은 알지 못한다.
사탕수수에서 고기맛가루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얻긴 했지만, 코레아를 적으로 돌린 비용치고는 너무 하잘것없다.
손톱을 깨물며 복귀한 마카오.
거기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900척?”
“예. 강 동쪽 어귀에 모여 있습니다. 그놈들이 명국 해안가를 약탈하고 주강을 따라 올라가 광주까지 약탈하려 합니다.”
조선해군에게서 도망쳐온 밀수해적의 말에 아뜩함을 느꼈다.
“빨리.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대 포르투갈 인도사령부 중일항로방위군 제독은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구백척이라니... 보급을 서둘러라. 떠나야 한다.”
“예.”
마카오 주변은 수심이 얉아 거대한 갤리온이 접근할 수 없다.
작은 쪽배가 멀리 오가며 물과 식량을 실어야 한다.
반탐까지 버틸 물과 식량만 싣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걸렸다.
“출발. 출발해야 합니다.”
“해가 졌는데 지금 출발하면 쓰나. 밤새 보급해서 내일 아침에 출항하세. 적은 홍콩 옆에서 멈춰있다지 않나.”
조선선박의 움직임이 없자 느긋해진 제독은 출항을 살짝 늦췄다.
그 선택은 독이 되었다.
쾅 콰콰쾅.
어둠속에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멀리 보이는 적선은 포르투갈 최강 함정보다도 커 보였다.
저런 배가 구백척이라니.
“도... 도망가야 해.”
루이스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광해상회 물품을 모조리 챙겨 쪽배에 실었다.
노를 저어 향한 곳은 북쪽. 광주다.
전 재산과 다름없는 무장상선은 강을 오를 수 없다.
루이스는 선장에게 부디 무사히 탈출하라며 주의 은총을 기원하고 헤어졌다.
주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곳곳에 정크선이 보인다.
평소 밀수에 협력해주는 해적선들이다.
관군을 무서워하는 그들이 조선군이 두려워 강에 올랐다.
벌집을 건드린 기분이 이럴까.
벌떼같은 조선을 피해 하루 동안 강을 오르니 호수같이 넓은 강이 급격히 좁아진다.
이곳에 명나라의 남부 최대도시 광주가 있다.
명나라 부호들에게 보물취급을 받는 광해님의 은혜를 뇌물로 뿌렸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광동성 도지휘사사를 만날 수 있었다.
“뭣이! 조선이 감히 천국에 쳐들어와?”
“그렇습니다. 지금 주강 하구에서 무제한 약탈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찰병을 보내 보시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고자질에 성공했다.
이이제이.
조선 오랑캐는 지나 오랑캐로 쳐부순다.
다음날 돌아온 첨병은 도지휘사에게 사실을 전했다.
“주강 하구에 정체불명의 함선 팔백척이 있습니다. 각 함이 정렬한 기세가 엄정하니 결코 해적이나 민간 무리는 아닙니다. 모두 동일한 깃발을 달고 있는데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첨병은 감히 교섭은 시도조차 못하고 멀리서 조선의 함선만 세고 돌아왔다.
이 때 삼족오기가 처음으로 중국에 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해안 쪽에 정체불명의 함대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조선군에 토벌 당하던 해적들은 협력하거나 도망쳤는데 도망친 자들은 자신들의 뇌물을 받아먹던 관리들에게 조선의 패악질을 알리고 토벌해 달라 요청해왔다.
수개월간 무시했지만, 주강 하구를 막은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군을 준비하고, 포정사와 안찰사에게 연통을 넣어라.”
“예. 도사 나리.”
MSG가 불러일으킨 오해는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작가의말
19. 20세기 유럽이 동양을 미개하고 학살해도 된다 보는 시각과
16, 17세기 유럽이 동양을 보는 시각이 달랐습니다
군대를 보내려 해도 1년이나 걸리는 거리의 문제도 있었지만
객관적으로도 동양은 서양보다 강했습니다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점령하려 몇차례 패악질을 부리다가 개발리고
이후론 매년 세금과 뇌물을 바쳐 땅을 임대해 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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