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위화도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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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장 긴 압록강.
바다와 압록강이 만나는 하구는 당연히 넓고 깊다.
하구에서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30큰보 쯤 되는 곳에 커다란 섬이 압록강 한가운데 등장하는데 이 섬을 기준으로 강폭이 좁아지고 깊이도 낮아져서 갈수기에는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한반도와 요동 사이에 군사작전이 필요하면 언제나 이 섬을 기준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섬의 이름은 회군으로 유명한 그 위화도.
위화도 남쪽에 있는 도시가 바로 의주다.
만력제가 죽고 세달 후 의주 건너편에 명나라의 십칠만 대군이 모여들었다.
총사령관 양호, 요동 총병 이여백, 산해관 총병 두송, 요동군 좌장군 누르하치 등 지휘부가 언덕위에 모여 강 너머를 바라봤다.
위화도가 보이고 의주 시가지가 보인다.
곳곳에 적이 진지를 꾸리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성벽은 없었다.
“땅을 팠군.”
“땅을 파고 그 앞에 퍼낸 흙을 쌓아 올렸습니다.”
“진격을 막기 위함인가. 땅을 판 너머에 도열했다가 진격이 막혔을 때 공격하려는 걸까? 왜 목책을 안 세우고.”
양호의 의문에 총병 두송이 특유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부족했을 게요. 저런 건 그냥 우직하게 몰아붙이면 금세 무너지오. 열을 갖추고 돌격해 앞에 모아놓은 흙더미로 메우면 금방이외다.”
땅을 파둔 진지가 서너줄 겹쳐져 있다.
시선을 동쪽으로 두니 시야가 닿는 끝까지 비슷한 진지가 이어져 있었다.
“그래도 적의 함정으로 들어가긴 싫은데. 상류로 이동해 도강하면 어떻겠소?”
요동의 제왕 이성량의 아들로 요동군세를 지휘하는 이여백이 대답했다.
“건널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세 십칠만이 모일 평원은 몇 곳 안 됩니다. 군세가 한 줄로 이동하는 데만 수일 걸릴 것이며 한 줄로 건너다가는 각개격파 당할 것입니다. 강을 건너고 나서도 부대가 집결할 땅이 없습니다. 즉 소규모로 진격을 반복해야 합니다.”
병법에서 금하는 행위다.
부대가 크면 클수록 행동 할 수 있는 지형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의주군. 기록을 찾아보니 대규모 접전은 항상 이곳에서 일어났더군.”
임진왜란에도 참전한 맹장 유정이 크게 외쳤다.
“병부시랑. 때론 그냥 우직하게 밀고 가는 게 답이오. 딱 봐도 일만이 안 되어 보이는데 십칠만 대군이 차분히 진격하면 적은 막을 수 없소이다.”
적진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 같소. 병참은 어떻소?”
병참을 맞은 개원 총병 마림이 대답했다.
“말로 끌 수 있는 소형포 이백문과 보름치 식량이 준비되어 있소. 수군이 두 달 치 식량과 대형포 삼백문을 가져오고 있고, 늦어도 일주일 내에 도착할거요.”
“일주일이라. 보급을 받은 후 공격하기로 합시다. 그때까지 포격을 하시오. 소형포의 사정거리는 어찌 되오?”
이여백이 답했다.
“강안에 바짝 붙이면 적진지에 닿을 게요. 강을 건너 위화도에 방열하면 그 후방 민가에도 피해를 줄 수 있을 테고.”
“지금 강을 건넜다가 야습을 받으면 먼저 건넌 의미가 없소. 일주일 내내 포격하면 병사들의 사기도 오를 테니 보급을 받자마자 대형포로 엄호하면서 도강합세.”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작전이었다.
총병들은 각자 자신의 부대를 돌보러 흩어졌다.
단군력 4년(1611) 6월 4일.
말이 화포를 끌어 압록강 북안에 방열했고, 쭉 나열한 포가 남측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쾅. 콰쾅. 쾅.
대다수가 진지에 오기 전에 떨어진다.
명군은 바닥을 재정비하고 포각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명중률을 높였다.
종국에는 모든 포가 조선군이 마련한 진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진지에 포가 떨어질 때마다 흙먼지가 비산한다.
명군에게는 그게 포의 위력처럼 보였다.
다만 남쪽에서 관측하는 조선군에겐 다르게 보였다.
“보아라. 참호에 맞은 포는 아무 힘도 못 쓴다. 우린 그저 참호 벽에 붙어 사격하면 된다. 적은 스스로 죽을 것이다.”
곽재우는 진지의 병사를 후퇴시켜서 그 광경을 보여주었다.
적의 위력시위에 병사들의 시선을 가리는 기본 병법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땅을 파고 파낸 흙을 쌀포대에 담아 두 겹 세 겹으로 쌓았다.
거대한 쇠구슬이 날아와 쌀포대에 꽂힌다.
볏집이 터지고 흙먼지가 비산한다.
하지만 먼지가 걷힌 뒤에는 참호가 멀쩡히 살아있다.
“성벽이나 목책은 포탄에 터져나가며 병사들을 해한다. 하지만 모현성공이 발명한 참호는 너희를 안전하게 지킬 것이다. 참호에 앉아 있다가 적이 다가오면 바싹 붙어 쏘기만 하면 된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보여줬다.
교대로 일본전장에 참여하며 실전경험을 쌓은 병사들은 다행히 적의 군세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 알게 될 것이다. 적은 포를 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적의 행동을 보고나면 안심하고 마음껏 싸울 것이다. 지금은 그저 마음속 의심을 떨치는 데 집중하거라.”
“예. 장군.”
오만여 병력이 일제히 대답했다.
평안도 관찰사 이수일이 이끄는 정병 이만과 황해도 관찰사 장만이 이끄는 정명 일만, 그리고 정충신의 초원기사단 이만과 우에스기군 사천명.
이들 전체를 지휘하는 것은 곽재우.
의주 결전을 염두에 두고 2년을 준비했다.
조선이 보유한 전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모였다.
패해선 안 되고, 패하기도 힘든 전투다.
명군의 포격은 5일 내내 지속되었고, 양군은 포격을 보며 작전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정작 전투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압록강 하구.
적의 수송부대는 이곳을 지날 것이다.
조선의 포병대장 기승진은 광해포 300문을 끌고 와 압록강 남안에 방열했다.
미리 방열하고 조준각을 맞춰두고 수풀로 덮어 위장했다.
위화도에서 포격이 시작된 지 5일 째 되는 날, 천진에서 출발한 북경수군 삼백척이 도착했다.
모든 함선의 갑판까지 식량을 쌓아둔 수송선이다.
“호위를 위한 전투선은 열 척도 안 되는 군.”
너무 비싸서 민간에 팔지 못하는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기승진이 중얼거렸다.
“수군에 전하라. 지금 출격하라고. 전원 방포하라.”
콰콰콰쾅.
삼백문의 광해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150mm. 십오티 크기의 쇠구슬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날아가 수송선에 꽂혔다.
“명중 확인하지 말고 곧장 재장전해서 방포하라.”
콰쾅. 쾅. 쾅.
삼백문의 포가 끊임없이 불을 뿜었다.
명중률은 대략 절반.
쇠구슬이 끊임없이 날아와 수송선을 파괴했다.
“으아악.”
“살려줘.”
선두에 있던 전투선이 주 타겟이었다.
각자 십여 발씩 맞은 전투선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피해.”
“물러나”
갑작스런 상황에 수송선이 혼란에 빠졌다.
선두의 전투선에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그 전투선이 포격에 박살나자 지휘능력을 잃은 것이다.
일부는 물러나고 일부는 노를 저어 전진해 피하려 한다.
기승진은 적의 상황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포격중지! 포 각 좌로 15도!”
“좌로 십오도!”
포대 바닥에 만들어둔 각도기를 보며 병사 여섯이 달려들어 포를 밀었다.
선두를 잡았으니 이제 중간부의 수송선이다.
“방포하라!”
“방포!”
콰콰콰쾅!
선두에 달리던 든든한 전투선이 파괴되더니 이제 중간의 자신들을 향해 포가 날아온다.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쇠구슬이 얼굴 옆을 스친다.
“아아아아아.”
“도망쳐~ 살려줘~”
갑판의 병사들이, 노실의 노병들이 비명을 지른다.
피해는 크지 않다.
선체에 가득 실은 쌀포대가 완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갑판에 떨어진 포탄은 쌀포대를 터트려 뻥튀기를 튀긴 후 멈췄고, 배 옆면을 뚫은 포탄도 쌀포대에 가로막힌다.
극히 일부 배 하부가 뚫린 함선만 천천히 가라앉는다.
문제는 공포.
무방비로 얻어맞는 공포와 지휘가 없다는 문제.
병사들의 공포는 성대까지 차올라 비명으로 이어졌다.
전진하거나. 후진하거나.
인간의 본능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적선 두 척의 기습에 만으로 도주한 원균처럼 수송선들은 화포공격을 피하고픈 본능에 사로잡혀 가까운 강기슭을 봤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가면 살 수 있어!”
불과 오십 보 거리에 육지가 있다.
그곳엔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다.
노병들이 으쌰으쌰하며 노를 젓는다.
좌현은 거꾸로 젖고 우현은 정방향으로 저어 배의 방향을 바꾸고는 쭉 나아갔다.
태어나서 우리가 이렇게 단합한적 있나 싶을 정도로 하나 되어 해냈다.
쾅 쾅.
강 위로 떨어지는 포탄에 물보라가 튀고, 노병들이 노 구멍을 통해 물보라 사이로 강을 보다가 소리친다.
“다른 배들은 북쪽으로 간다!”
“북쪽으로 가면 살 수 있어!”
지휘관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갑판에 있던 무관은 소리쳤다.
“저리 가면 계속 얻어맞는다. 전진해서 피해야 해! 잠깐만 버티면 된다.”
일부 현명한 무관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사실을 말했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병사들은 듣지 않았다.
일부 선박에선 선상 반란이 일어났고, 일부에선 노병들이 배를 버리고 강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오십보 거리라면 적당히 헤엄칠 수 있는 병사들은 얼마든지 건널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선택이 죽음의 길이 된다.
강 곳곳에 가라앉는 배와 노병이 탈출한 배가 버려져 진로를 막자 전진하려던 배까지 엉켜서 멈춰버렸다.
콰콰쾅!
그 위로 포탄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비겁하게 도망친 자는 살고 현명하게 옳은 판단을 한 이는 죽는다.
두 시간 넘게 포격이 멈추지 않았다.
용감히 전진해 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수송선은 이십여 척이다.
압록강 하구엔 오십여 척이 포탄에 맞아 가라앉았고, 오십여 척은 반파되어 서서히 떠내려갔다.
백여척은 강변에 붙어 병사들이 탈주했고, 병사들을 수습한 무관들이 수송품을 꺼내려 할 때마다 포격이 날아왔다.
뒤로 후퇴한 팔십여 척이 바다에 모여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 조선 함선이 나타났다.
경기수사로 임명된 이중로가 한반도 서쪽면 수군에 배속된 판옥선 삼십 척을 이끌었다.
해외원정에 거의 다 빠졌기 때문에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의 수군을 전부 모은 게 이 정도다.
여기에 조선 인근을 돌며 수송을 하던 민간 선박도 전부 동원되었다.
판옥선 30척과 새로 진수된 1000톤급 무장상선 네 척. 그리고 수송용 관선 백오십 척.
세 달 동안 모은 것 치곤 부족하지만, 포격에 너덜너덜해진 적을 생각하면 충분하다.
“공격하라! 각 상단은 강을 따라 오르며 나포하라.”
무려 1000톤급 갤리온 네 척을 선두에 세우자 적은 반항을 포기했다.
후방에 배치되었던 호위함 다섯 척이 장렬히 싸우는 사이 팔십 척의 수송선은 서쪽으로 도주했다.
갤리온과 마주보는 사이 노를 저어 달라붙은 판옥선 30척에 둘러싸인 전투선은 금세 갑판병을 전부 잃고 나포되었다.
이중로가 보니 수송선은 이미 멀찍이 후퇴해있다.
굳이 추격하는 대신 강변 쪽을 확실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판옥선은 강을 따라 올라가라. 대형 선박은 대기하라.”
조선의 관선이 강에 진입하면서 포격이 멈췄다.
강 위에 버려진 배들은 관선의 선원들이 넘어가 줄로 묶어 남안으로 끌었지만, 북쪽 강변에 버려진 배들은 근처 명나라 군대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다.
이제 판옥선을 투입했으니 금방 정리될 것이다.
수송선 백오십 척에 가득 찬 물자.
적은 약해지고 그만큼 조선군은 강해진다.
“수고했다. 이괄. 너희 상단은 군 출신이 많은가보구나. 잘 싸우는군.”
의주로 수송을 왔다가 징발되어 함께 싸운 이가상단 상단주 이괄.
격렬한 전투에 지친 이괄은
“우웨에에에엑.”
했다.
- 작가의말
당신은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셨습니다
의사양반 그게 무슨 소리요...
계속 구토를 하여 위산이 목구멍을 녹였단 말입니다
의사양반 그럼 내가 죽는단 우웨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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