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기관차 전투
순도 100% 픽션입니다
누르하치는 이번 명-조 전쟁을 민족의 승부수로 봤다.
만주족은 점령할 수 있는 모든 땅을 점령했다.
이제 북쪽의 예허부를 건드리면 명과 전쟁하게 된다.
동쪽으로 진출하면 조선과 전쟁하게 된다.
그렇다고 가만있으면?
현재도 식량이 부족해 명에 울며 빌어 식량을 얻어먹는데 이러다 흉년이라도 들면 다 굶어죽는다.
굶다가 살기위해 억지로 싸우느니 힘이 있을 때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의주 전투에 참전하기 전 미리 준비를 해 뒀다.
직접 참가한 본인은 만이천 기마를 이끌었고, 본거지인 창춘에는 다이샨이 만오천 기를 모아 대기하도록 했다.
누르하치의 선택에 따라 명나라 심양을 기습하거나 조선 무산을 기습하게 될 것이다.
누르하치가 조선을 치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 곧장 파발마가 달렸다.
준비하고 있던 다이샨은 즉시 기마를 움직였다.
목적지는 조선 무산이다.
지린을 넘자 곧장 조선의 정찰병에게 들켰다.
일부가 다가와 용무를 물었지만, 그대로 포박했다.
전체가 다가왔어야 하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적이 도주했다.
기습은 실패했지만 만 오천 기라면 어디가도 패하지 않는다.
다이샨의 부대가 진격했고 저항은 없었다.
조선이 조성한 마을들은 이미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산으로 도주해 기마의 이동을 구경했다.
연변에서 전투가 있을 줄 알았지만, 수많은 집들이 비어져 있고 연변의 백성들은 어디론가 숨었다.
‘아국에 삼만 명이 있다면 기마병 일만은 뽑아낼 수 있는데.’
풍요롭고 게으른 돼지들.
다이샨은 부러움에 욕설을 하며 전진했다.
창춘을 출발한 지 사흘 만에 무산 건너 두만강에 도착했다.
저 멀리 검은 연기를 내뿜는 거대도시 무산이 보였다.
“엄청나군.”
“굉장합니다. 인구가 오만 명은 넘을 것 같습니다.”
“저 언덕은 인위적인 것입니다. 흙을 쌓아 저렇게 거대한 언덕을 만들다니.”
“흙벽이 다섯 겹입니다. 가장 안쪽이 핵심지역이겠지요.”
“핵심지역을 치려한다면 동쪽엔 한 겹뿐입니다.”
무산 동쪽엔 거대한 흙산이 있다.
곳곳에 땅이 파이고 뭉쳐있다.
무산의 노천철광이다.
맞닿은 곳에 공장지대와 1구역이 있다.
그 외부의 서남북 방향을 감싼 2구역이 있고, 다시 서남북 방향을 감싼 3구역, 영역을 확장한 3구역, 추가로 노비나 방문자를 위한 구역이 있다.
마치 삶은 계란의 노른자가 한쪽에 쏠린 것과 비슷한 형태다.
즉 1구역으로 가려면 서쪽에선 여러 구역을 지나야 하지만, 동쪽은 담 하나만 넘으면 된다.
다이샨은 매의 눈으로 무산을 관찰하다가 말했다.
“야습은 의미 없겠군. 푹 먹이고 재운 후 내일 새벽에 공격한다. 전원 주위를 돌면서 궁시를 하다가 빈틈을 발견하면 그곳을 넘어가 문을 연다.”
딱히 공격 위치를 정하지 않았다.
적병이 적은 곳을 공격하면 된다.
보병보다 빠른 기병.
이것이 기병의 장점이다.
조선군도 만주족도 저마다 전투준비를 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만주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천 명씩 두부대가 무산의 흙벽을 빙글빙글 돌며 활을 쐈다.
슈슈슝. 슈슝.
적의 피해는 알 수 없다.
흙벽 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말을 달리며 그저 계속 쏠 뿐이다.
다이샨은 두만강 북쪽 야트마한 산 위에 올라 무산을 바라봤다.
내부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뭉쳐서 이동을 거듭한다.
저마다 활을 들고 대기 중이며 기마 수천기도 보인다.
“쉽지 않겠는데.”
내부에 사람이 수만 명 보이는데 그들 전부 싸울 수 있다면 적의 수가 너무 많다.
“그래도 싸워야 해. 지금쯤 아버지는 의주에서 조선군을 물리쳤을 거야. 시간을 맞춰 내려가야 해.”
다이샨은 누르하치가 사망한 사실을 아직 몰랐다.
계속 무산을 지켜보니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성쪽에선 외성쪽으로 사람이 나가는데 외성쪽 사람은 내성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내성에서 나왔던 사람만 다시 내성으로 들어갈 뿐이다.
“계층구분인가. 아니면 특수 신분만 들어갈 수 있는 궁 같은 개념인가.”
이유야 어쨌든 공격할 곳이 보인다.
“동쪽 중앙. 적 중심부를 친다. 동쪽에 힘을 집중하라.”
보통 궁은 내성 주위를 외성이 감싸는데 무산은 내성 동측이 외부와 바로 맞닿아 있다.
어떤 멍청이가 설계한 건지.
“공격.”
“달려라.”
뿌우우~
다이샨의 신호에 외성을 돌던 기마가 동쪽으로 달렸고, 후방에서 기다리던 오천기도 투입되었다.
기존 궁기병이 계속 화살을 쏠 때 새로 투입된 부대는 성벽 앞까지 달려가 말에서 내렸다.
흙벽의 높이는 이장 가량이고 흙벽위에 병사도 없다.
갈고리를 걸고 줄을 잡고 올라가면 된다.
그그그그극.
갈고리를 던지려는데 철문이 열렸다.
거대한 성문이 소음을 내며 좌우로 벌어졌다.
뒤이어 검은 뭉게구름이 하늘로 올라갔다.
가까이 온 다이샨은 변화에 빠르게 반응했다.
“보병은 그대로 성벽을 넘어라. 기병들은 열린 문으로 들어가라.”
뿌우우우.
칙. 칙. 칙. 칙. 치칙. 치치치칙.
기관차 조종실에 앉은 철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면의 성문이 열리면서 점차 시야가 밝아진다.
적의 말다리가 보이고 말이 보이고 활을 든 궁사가 보인다.
그 뒤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게 보인다.
뿌우우!
“달려라. 달려. 고장 나면 안 된다. 철마야. 고장 나면 우리 다 죽어.”
츠그덕. 측. 츠그덕. 츠그덕.
수천 톤 무게의 철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는 속도, 걷는 속도, 빨리 걷는 속도.
성문이 완전히 열리자 기차가 세상 밖으로 나갔다.
“뭐야. 저게.”
“전체가 쇳덩이인가.”
“저 큰 게 어떻게 움직이지?”
달려들던 기마들은 활을 쏠 생각조차 못하고 멈춰 섰다.
그나마 다이샨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활을 쏴라. 열린 성문으로 돌격해라.”
기차가 절반 정도 나오자 기마들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일부는 기차와 성벽 사이 틈으로 달렸다.
투다다다.
이제껏 숨 참고 있던 화약이 터졌다.
기관실 뒤에 달린 화물실에 탄 병사들이 일제히 사격을 했다.
화물실 좌우에 뚫은 작은 구멍으로 총구가 나와 있고, 거기서 발사가 이어진다.
중간 중간 광해이포가 섞여 화력을 보충했다.
적을 보는 시야는 막혀있다.
그저 장전하고 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으아아악.”
기차 틈으로 진입하려던 기병들은 억울할 것이다.
쏜 쪽은 자신을 조준하지도 않았으니.
성벽 백보까지 나온 기차는 선로를 따라 부드러운 곡면을 그리며 꺾였다.
기관실 뒤에 달린 화물실이 열다섯 개. 끝에는 또 다른 기관실.
길이 이백보의 괴물이 성문을 통과하자 성문이 다시 닫혔다.
성문 안으로 수백기가 돌입했지만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타타타타.
기차가 전부 나오자 본격적인 사격이 시작되었다.
화물실 좌우를 향해 무작위로 갈기는 사격.
기차는 시속 십오큰보(15km) 속도로 북쪽으로 달렸다.
다이샨은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앞부분은 전체가 쇳덩이고 중간의 화물실은 마차 짐칸 같긴 한데 나무벽이 올라가 있다.
나무벽 틈으로 끊임없이 번쩍번쩍하며 총을 쏘는데 주위 기마가 하나 둘 쓰러진다.
거대한 괴물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북쪽으로 서서히 떠나갔다.
저쪽에 아군은 없다.
“괴물은 떠나갔다. 성내로 들어가라. 복잡한 내부에선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다 달라붙어라.”
끼이이익.
북쪽으로 떠났던 철괴물이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다이샨은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렸다.
걷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떠나던 괴물이 서서히 멈춘다.
그리고 꽁무니에 달린 쇳덩이에서 검은 연기가 맹렬히 피어올랐다.
“설마? 아닐 거야.”
치. 치. 치칙. 칙칙. 철컥. 철컹.
괴물이 다가온다.
“안돼! 후퇴! 돌아가! 퇴각!”
다이샨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타다다다닥.
투타타타.
돌아온 철마가 총탄을 뿌린다.
이번엔 꺾이지 않고 남쪽으로 쭉 내려오며 양쪽으로 무한 사격을 했다.
기마에 탄 이들이 무의미한 화살을 날리다 쓰러지고 말에서 내려 성벽으로 오르던 병사가 벌집이 되어 떨어진다.
투투투투.
다이샨과 함께 빈 말 오천 기를 잡고 있던 예비대가 쓰러지고, 고삐 풀린 말이 사방으로 달려간다.
기차는 전투지점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끼이이!
다시 멈춘다.
“도망쳐! 후퇴!”
다이샨은 힘껏 소리 지르며 달렸다.
병사들을 최대한 수습해야 한다.
칙치칙. 치칙. 칙.
괴물이 다가온다.
살아남은 기마가 달리며 부상자를 하나씩 태웠고, 말에서 내렸던 병사들을 태운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괴물이 달려온다.
“후퇴! 강 너머로 달려라.”
“아아아. 나도!”
“내 말 어디 갔어! 내 말!”
“살려줘.”
타타타타타.
구원받지 못한 병력이 맨발로 달리다가 쓰러진다.
흙벽을 건너간 소수의 병사들은 용맹히 싸우다가 추가병력이 오지 않자 하나 둘 죽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안타까움을 뒤에 남기고 북쪽으로 달렸다.
강을 건너고 보니 모인 병력은 육천 정도다.
북쪽 말고 다른 방향으로 도주한 이도 있겠지만, 피해가 너무 크다.
말에서 내려 성벽 공략에 참여했던 병력 대부분이 죽었다.
다이샨은 몸을 떨면서 괴물을 봤다.
동쪽 성벽을 따라 앞뒤로 움직이던 괴물은 성벽 북쪽에 나와 긴 몸체를 옆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저건 못 이겨. 절대 못 뚫어.”
다행히 강을 건너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생존자를 수습하고 급한 부상을 치료하다보니 낙오되었던 기마가 하나 둘 합류한다.
‘이럴 경우 무시하고 다른 곳을 습격하겠지만.’
조선은 강하다.
저들 말고도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깊게 들어갔다가 전멸당할 수도 있다.
“퇴각한다. 부상병을 실은 기마는 뒤쪽으로 가고, 다치지 않은 자는 선두에 선다.”
만주족은 단 한 번의 접전으로 절반의 병사를 잃고 후퇴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별로네.”
땀에 젖은 모현성이 화물칸 뚜껑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쐬며 말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광해는 동의하지 않았다.
“아군 피해가 적으면 됐지. 적이 놀라서 제대로 대응 못한 덕에 생각보다 큰 피해를 줬네.”
“에이. 그래도. 신세계의 시작점인데, 좀 더 충격적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십만 대군을 다 죽이고, 뭐 그래야 하는데.”
“쯧. 앞으로 기차에 대해 알려질수록 활용은 어려워질 거야. 선로 주위만 피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끝이지. 바위를 굴려 선로에 올린다던가 하는 것도 배울 테고. 마침 무산은 철로가 여기저기 깔려 있어서 가능했지. 그러니 이 전술 또 쓸 생각 하지 마라.”
“알아. 그래서 아깝다고. 좀 더 충격적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적이 철마를 죽이겠다고 당랑거철해서 기차에 돌진해 피떡이 되어 주고. 막 좀 그래주지. 쟤들은 돈키호테도 안 읽어봤나. 이래서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해 책을.”
“됐다. 들어가자.”
무산에서의 전투는 끝났다.
하지만 진짜 전과는 지금부터다.
다이샨이 수습한 기마 팔천을 이끌고 길을 따라 가니 좁은 길에 모여 있는 백성들이 보였다.
“숨었던 연변 놈들인가.”
복장부터가 군인이 아니다.
남자들은 활을 메고 있지만 여자들도 있고 아이들도 있었다.
수는 수천 명 정도.
“밟고 지나간다. 후퇴가 우선이다.”
기마는 속도를 올려 달렸다.
남자들은 등 뒤의 활을 쏠 생각도 못했고, 여자들은 주저앉아 꼼지락 거리고 있다.
그냥 밟기만 하면.
콰아아!
쾅 콰앙!
파타탓.
광해 이포 백문이 불을 뿜었다.
선두의 기마 오십여기가 전신에 피보라를 뿜으며 쓰러졌다.
분홍색 안개가 공중에 퍼졌다.
“뭐? 뭐야?”
콰아앙!
파타탓.
피안개가 늘었다.
“뭐냐고! 대체!”
사거리가 짧고 기마의 특성상 똘똘 뭉치지 않아 피해는 크지 않지만, 저 화포는 근거리에서 가공할 화력을 갖고 있다.
“대장 후퇴합시다. 차라리 무산 서쪽 산길로.”
“여기 이렇게 준비했으면 뒤쪽도 막혔을 거다. 차라리 일점 돌파 하는 게 나아!”
그 와중에 냉정한 판단을 한 다이샨이 소리쳤다.
“뭉쳐라. 일제히 돌격한다!”
기마 팔천기가 돌격한다.
광해이포가 불을 뿜는다.
콰아앙!
푸타탓.
수십발의 쇠구슬을 몸에 꽂은 기마가 쓰러진다.
콰아아! 푸타탓.
재장전이 너무 빠르다.
오십문씩 교대로 쏘는데 거의 매초마다 총알이 다발로 쏟아진다.
죽고, 죽고, 죽고.
그래도 조금씩 적과 가까워진다.
적의 코앞까지 가자 놀고 있던 사내들이 움직인다.
“으이샤아아!”
뾰족한 나무 말뚝이 들린다.
기마돌격을 막는 가장 간단하지만 무서운 무기.
“정지! 후퇴!”
퍼버버벅.
미처 멈추지 못한 수십 기의 말이 나무에 꽂혀 죽었다.
이제 저기를 지나려면 말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
내려서 돌격하면?
다이샨은 고개를 흔들었다.
“후퇴... 맙소사.”
뒤에서 기마 사천여기가 나타났다.
멀리서 보병들도 오겠지.
“산으로 올라라. 말을 버린다.”
이제는 갈 곳이 산밖에 없다.
“아악!”
“살려줘!”
“나도 데려가.”
말에 실려 있던 부상병들이 버려지고, 말도 버려졌다.
안장에 묶어둔 무기와 식량만 챙긴 만주기마는 사천 명의 만주산악병이 되었다.
- 작가의말
모현성은 만화 전술
그래서 얘가 지휘하는 전투가 제일 쓰기 힘들어요
제 상상력이 부족해서......
...... 죽일까
강아지똥떡님 후원금지! 주시려면 완결후에 부탁해요
언제 싫어질지 모를 글이라서......
얼마 안남았어요
낙장불입이라서 받은건 호로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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