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오사카해전2
순도 100% 픽션입니다
아와지 섬을 통과하자 멀리 오사카 앞바다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수천척의 함선이 있었고, 대형 전투선도 100척이 넘어보였다.
대영주의 상징인 안택선이 아홉척 있고, 주력 전투함인 관선이 100척이다.
안택선은 2층 구조 위에 화려한 누각을 올려놓았고, 보통 화포를 4문 싣는다.
크기는 판옥선과 비슷하다.
대신 가벼운 삼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못으로 연결하기에 소나무를 조립한 판옥선보다 내구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화포도 많이 싣지 못한다.
관선은 1층 구조에 방패를 둘렀고, 전투병을 150명가량 싣는다.
크기는 판옥선의 절반 수준이다.
임란 전까지 화포는 없었고, 임란 이후에야 작은 화포 하나 정도를 겨우 실었다.
모현성의 평가에 따르면 판옥선의 전투력이 100이고, 안택선은 65, 관선은 20이다.
이 시대 최강급인 스페인 갤리온은 600.
해군 전력은 조선이 확연히 앞선다.
함대는 아와지 섬 북쪽 해안에 모여 이틀을 쉬었다.
그럴수록 이순신의 속은 부글부글 끌었다.
“왜 당장 공격 안하는 거요? 지금 하나 둘 도주하는 게 안보이십니까?”
이순신의 고함에 모현성이 느긋하게 파초선을 흔들며 대답했다.
“떠나가라고 그러는 겁니다.”
“떠나게 하다니! 적을 다 죽여야 할 거 아니오. 저들이 조선 땅에서 행한 간악한 짓을 잊었소?”
“그래서 더욱 참아야 합니다. 지금은 정신없어서 세토내해의 모든 함선이 오사카에 모였겠지만, 곧 정신을 차리게 될 겁니다. 덴노가 있는 교토. 그 외항인 오사카. 이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터전이었소. 한편 저 멀리 동쪽에 있는 에도는 새로운 패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터전이오.
아직 도요토미에게 충성하는 이들은 오사카가 불바다가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을 테니 결사항전을 벌여야 할 게요. 하지만 도쿠가와에게 충성하는 이들은 오사카를 버리고 동쪽으로 갈 테요. 즉, 우리는 적 전체를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에 나눠 상대할 수 있소.”
“젠장맞을 문관 같으니. 전쟁이 말처럼 끝나는 건 내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그저 적이 정신 차리기 전에 들이치는 게 최선이오. 애써 기습해놓고 왜 이리 시간을 끄는지 모르겠군.”
“여기엔 한 가지 효과가 더 있소. 도쿠가와는 에도에 막부를 차렸지만, 공식적으론 아직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수하요. 헌데 왕과 주군이 있는 교토를 버렸소. 이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약점이 되오. 앞으로 왜구는 분열될 거요.”
“정치. 정치! 그놈의 정치는 조정안에서나 하시오. 이 계절에 부채질이나 하며 폼 잡는 꼴이라니. 문관께서는 조정안에서 떠들고 원정을 나와 있는 군사작전엔 관여하지 마시오. 통제사. 당장 공격합시다.”
입부는 이운룡에게 제안했지만, 이운룡이 고개를 저었다.
“적이 분열되는 건 좋은 일이오. 적을 잘게 쪼개 하나씩 격파하는 건 군사작전의 기본인데 적 스스로 분열하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건 없소. 큰 틀의 작전은 그대로 이행하겠소.”
입부 이순신은 이를 갈았지만 부대의 운용권은 이운룡에게 있었다.
광해는 모든 과정에서 침묵을 지켰다.
전권을 이운룡에게 주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감히 왕 앞에서 소리치는 모습이 신선하긴 했지만, 모현성의 말에 따르면 왕 앞에서 멱살잡이와 욕설을 하며 서로 언쟁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권준, 이운룡, 이순신.
충무공 이순신이 가장 신뢰했던 부장들.
역사적 인물들이지만 그 능력은 모른다.
충무공과 수많은 해전을 치렀을 테니 믿어볼 생각이다.
혼자 다 할 수 없다.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입부 이순신의 성품이 좀 불안하지만 그는 충무공이 가장 믿던 선봉장.
믿어보려 한다.
함대가 아와지 섬에 정박해 있는 사이 일본군은 큰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각 성주별로 독립 운용되는 봉건주의 사회.
함대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질적 주군인 도쿠가와의 명령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명목상 주군인 도요토미 가에선 결사 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따르고 싶지 않다.
결국 성주들은 각자 판단해야 했다.
도쿠가와를 따르는 이들은 쇼군이 있는 에도로 향했고, 도요토미를 따르는 이들만 남았다.
하나둘 선단이 떠나가고 절반가량인 천여 척만 남았다.
대부분 10~20명 탈 수 있는 소형 전투선이고 100명 이상 탈 수 있는 대형 선박은 70여척에 불과했다.
남겨진 배들은 수백 척의 판옥선을 앞에 두고 전의를 불사르며 편제를 정리했다.
노병이 쉬어야 해서 사흘.
비가 와서 하루.
바람이 거칠어서 또 하루.
총 오일을 쉬고 나자 바람 없고, 하늘이 맑은 날이 되었다.
“전군 전진. 일자진을 형성하고 천천히 전진한다.”
이운룡의 명에 조선군 전체가 출항했다.
판옥선 200척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천천히 동진했다. 배마다 노병을 지휘해 속도를 맞춰 전진했고, 그 뒤로 중형 선들이 따랐다.
오사카 인근까지 접근하자 준비하던 일본 수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형 선박이 중앙에 밀집했고, 그 앞에 소형선들이 섰다. 저마다 배 앞머리에 뾰족한 충각을 달고 있었다.
1000보. 700보. 500보.
“전열하라. 좌현 전방!”
이운룡의 명령에 깃발이 올라갔다.
일제히 뱃머리를 돌리는 판옥선들.
그제야 일본군의 돌진이 시작되었다.
배의 성능은 조선군이 압도적이다.
일본군에 아홉 척 뿐 인 안택선보다 강한 판옥선이 무려 200척이나 있다.
이건 임란 7년 내내 증명되었고, 일본은 뼈에 사무치도록 경험했다.
다만 총과 칼을 사용한 육박전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렇기에 일본으로선 난전으로 몰고 가 개싸움으로 만드는 게 가장 유리하다.
짐을 전혀 싣지 않아 배를 가볍게 하고, 전원 노를 저어 최대속도로 돌진해 뱃머리의 충각으로 적선에 구멍을 낸다.
충각이 박혀 두 배가 연결되면 전투병이 넘어가 갑판위에서 육박전을 펼친다.
동서양 해전의 공통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충각전술이다.
그리고 그 충각전술을 끝장낸 것이 전열전술이다.
“방포하라. 전 함선 방포한 후 우현 방포하라!”
깃발 신호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포성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쾅!
200척의 판옥선이 일제히 좌측면을 정면에 내세우며 각자 8발의 포탄을 쐈다. 쇠구슬이 날아가 돌격해오는 함선에 박혔다.
바다는 넓고, 명중률은 낮다.
사거리 안에 들어온 적선 대부분이 살아남았다. 그 뒤로 끝없이 달려오는 돌격선들.
콰콰쾅!
제자리에서 선회한 배가 우현을 전방에 두고 방포했다.
이번엔 사거리 안에 더 많은 적이 들어와 있었고, 더 많은 돌격선이 쇠구슬에 맞았다.
나무 판자로 만든 목선은 구멍 몇 개쯤 뚫렸다고 해서 가라앉지 않는다.
다만 물이 새고 노잡이 일부가 죽으면서 속도가 느려진다.
“훗. 내가 괜히 이 시간에 전진한 줄 아나. 전원 장애물을 투하하라. 크하하하. 던져. 던져.”
지휘권도 없는 모현성이 소리친다.
그와 상관없이 곽재우의 지시로 장애물 투하가 시작되었다.
“야. 너 또 돌았냐?”
광해는 곁에 있던 모현성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현대에서 온 모현성은 신기하게도 전장을 사랑한다.
그리고 전장에만 나오면 흥분해 미쳐버린다.
병사 하나와 1:1 해도 질 놈이 겁도 없이.
아와지 섬에 대기하면서 며칠간 조류를 관찰했다.
육지로 둘러싸인 세토 내해는 조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 조류는 시간에 따라 바뀐다.
이 시간에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조류가 가장 강해진다.
최대속도를 내야 할 돌격선이 조류와 마주쳐 속도를 내지 못한다.
게다가 배가 박살나면서 바다위에 이물질이 떠다니는 것도 문제다.
반파된 배, 나뭇조각, 살려달라는 병사.
이 모두가 진격을 방해한다.
거기에 200척의 판옥선에서 장애물이 쏟아져 나온다.
앞서 항구를 점령할 때마다 파괴한 선박의 잔해를 버리지 않고 알뜰히 모아 상갑판에 산더미처럼 실었다.
이 나무쪼가리들이 일제히 바다에 쏟아졌다.
돌격선은 더 이상 돌격하지 못했다.
콰콰쾅!
네 번째 방포가 이뤄지자 돌격선은 효용을 잃었다.
300여척의 돌격선이 표류했고, 600여척의 돌격선은 물살과 흩어진 잔해를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왔다.
판옥선에 근접한 것은 고작 50여척.
판옥선에서 쏟아지는 장애물 때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발이 묶여 좋은 표적지가 된다.
콰쾅!
쾅!
콰콰쾅!
판옥선은 한 시간 내내 제자리에서 전열을 갖추고 포격했다.
충각을 꽂아야만 효과를 보는 돌격선 900여척은 판옥선을 한척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뒤이어 다가오던 대형선들은 돌격선의 잔해 때문에 전진 못하고 있다가 멈춰서더니 백기를 올린 쪽배 하나를 보냈다.
“이 전투는 패배랍니다. 바다에 빠진 병력을 구출할 수 있게 부탁합니다.”
통역의 말에 이운룡이 고심했다.
4월의 바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이운룡은 곽재우를 바라봤다. 곽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은혜를 입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구해도 살 수 있는 자는 얼마 없을 겁니다. 적의 전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전투를 끝내도록 합시다. 대신 대형선 열 척을 두고 가라 합시다.”
전부 내놓으라 하면 무시할게 뻔하다.
열 척이면 애매하지만 받아들일만한 숫자다.
곧 사자가 깃발을 들어 협상 결과를 알렸고, 일본군에서 소선들이 튀어나와 바다에 빠진 병사들을 건지기 시작했다.
박살난 뱃조각이나 널판지에 매달려 있는 병사들.
4월 바닷물은 20분 이상 물 속에 있으면 뼛속까지 얼린다.
뱃조각에 매달려 저체온증으로 얼어 죽은 병사들.
그나마 뒤늦게 빠진 이들이 애처롭게 살려 달라 외치고 있었다.
조류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 일본 수군은 가까이 떠내려 오는 생존자부터 구하기 시작했다.
전열 남쪽을 맡고 있던 무의공 이순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왜구들이 쪽배를 보내 표류하는 왜구를 건지는 것을 보자 눈에 불이 났다.
대승!
대승은 마음에 든다.
헌데 어째서 저런 놈들과 협상하고 살려준단 말인가.
조선을 침탈한 철천지원수이자 충무공의 원수를.
“전원 돌격하라. 동진하라.”
“예? 포격중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촤악!
이순신은 검을 뽑아 자꾸 말리는 해운대만호 양첨의 목을 벴다.
“깃발병! 기를 올려라. 전진한다.”
“예 옛!”
입부의 부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전열 남쪽에 있던 100여척이 전열을 풀고 전진했다.
명령체계를 벗어난 일이기에 이운룡이 탄 함선에서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입수자 구조에 합류하려는 게 아닐까요?”
“하긴. 우리도 전열을 풀고 구조할까요?”
“웃기지 마라. 아직 적의 대형선들이 남아있다. 전열을 풀면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가만 저건 입부의 부대잖아! 구조하려고 전진할리 없다!”
얼마 후 입부가 탄 함에서 다섯 개의 깃발이 올라왔다.
멀리서 본 관측병이 빠르게 분석했다.
“북향. 전열. 자유방포. 최대한. 목표 전멸.”
“씨! 빨! 지 마음대로 싸울 거면 혼자 싸우지 여기 왜 있어? 통제사님. 우리도 동진합시다.”
모현성이 소리 질렀다.
부대의 전술은 곽재우가 짰지만, 5년 짜리 대전략은 모현성이 설계했다.
입부가 자신의 설계에 똥물을 퍼붓자 모현성은 분노했다.
“동진? 우수사의 부대를 막아야 하나?”
“아뇨. 공격에 합류해야죠. 좌군만 공격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왕 이리된 거 같이 공격해야 합니다.”
왜군과 약속을 어기는 게 된다.
뒤통수를 맞은 적의 분노가 벌써 느껴진다.
그래도 이미 일은 벌어졌다.
입부 이순신에 대한 처벌은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은 전투를 함께해야 한다.
판옥선 100척과 왜군 대형선박 70척의 전투라면 판옥선에도 약간이나마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아군이 피해 입는 건 막아야 한다.
남쪽에서 판옥선이 전진해도 왜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생존자 구출이 더 급했고 적도 생존자 구조에 합류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한 줄로 늘어서며 전열을 갖추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배신이다!”
“전투준비!”
“후퇴해야 해.”
“뱃머리가 서쪽이잖아. 후퇴하려고 뱃머리 돌리는 사이에 다 죽어. 싸워야 해.”
“이길 수 없어. 몇 대 포기하더라도 후퇴해야 해.”
여러 영주가 수군을 모았기에 지휘부도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덕분에 빠른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다.
영주선마다 저마다 다른 깃발을 올려 혼란이 가중되었다.
안택선은 큰 만큼 선회속도가 더 느리다.
안택선을 보유한 대영주와 그 휘하 세력은 응전을 결정했다.
관선을 보유한 소영주들은 후퇴를 결정했다.
서로 진로가 얽히는 와중에 구조를 위해 나갔던 쪽배들이 죽어라 후퇴하면서 선단은 돛대기 시장처럼 혼란에 휩싸였다.
그 사이 남쪽에서 이순신의 부대가 전열을 끝냈다.
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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