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조선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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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덕 사건은 조선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고문을 통해 이영덕이 개방과 함께 들어왔음이 밝혀졌고, 김류의 집에 숨어 있었던 게 알려졌다.
병사들이 잡으러 가니 김류와 개방 장로 등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김류가 누구인가.
양반사회 열손가락에 드는 인물로 북서원정을 책임지는 좌의정 겸 외무판서 이항복의 제자이며 서인의 거두다.
그런 자가 역모, 조선을 뒤집어 명나라에 바치려는 음모에 가담한 것이다.
김류의 집에 드나들던 이들이 조사받았고, 거지들이 숨어있단 사실을 알던 양반이나 하인들이 줄줄이 잡혀왔다.
그와 함께 전국적으로 광해소망교 교도들의 자체적 조사가 이어졌고, 김류가 숨었을 법한 양반가의 자체조사도 이어졌다.
덕분에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자발적으로 이어져 수많은 범죄자가 잡혀왔다.
하지만 김류와 개방 장로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이 새끼 거물이었네. 좆밥인 줄 알았는데.”
“그러게. 이귀하고도 얽히고 개방하고도 얽히고. 가평습격도 이놈 짓이라니. 나 아니었으면 가평관아 무너졌을 텐데.”
“야. 니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내가 다 싸웠지. 그보다 니 장인인데 안 살려?”
“죽일거야. 란이도 죽이길 원하고. 그리고 내 장인어른은 형이다.”
어쩌다보니 족보가 꼬여 개족보가 되었다.
조선 공식 나이로 광해군의 나이가 모현성보다 어린데 장인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따지면 모현성이 형이라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개방이라...... 너 호위병 늘려라. 주요인물에 대한 호위도 좀 늘리고.”
광해가 조선 전체를 수색해 잡을 순 없다.
요인암살에 조심해야 한다.
요인암살 말고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어. 그보다 다음 단계로 진입하자. 나 왕 할게.”
모현성이 다시 대역죄를 저질렀다.
“준비됐어?”
“어. 끝났어.”
“그래. 시작해.”
개혁을 개혁한다.
조금씩 바뀌던 조선이 확 바뀐다.
모현성의 발표로 조선이 사라져버렸다.
단군력 8년 1월 1일.
“이상과 같은 이유로 조선은 제국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요동과 만주를 삼킴으로써 조선의 영토가 기존의 세 배가 되었다.
물론 이 정도로 제국이라 칭하긴 힘들겠지만, 국력은 이미 명나라를 넘어섰다.
제국이라 칭해서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면 제국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아유타야, 일본 등지에서 축하사절이 왔고, 놀랍게 번성한 한성과 황금탑 등을 구경했으며 제국임을 인정했다.
명나라 각지에서 조선의 후원을 받는 지도자들이 몰래 참여해 동맹의 힘을 느꼈고, 명을 쪼갤 계획을 다시 정리했다.
“제국의 명칭은 칸이며 제국을 다스리는 자는 대칸이라 칭한다.”
제국이라 칭하는데 문제될 게 없다 해도 이득이 없다면 굳이 제국이라 선포할 이유가 없다.
칸이라는 제국으로 이름을 바꿔 얻을 크나큰 이득을 위해 조선을 버렸다.
모현성이 처음 제국의 필요성을 말하던 날.
“왜 한민족이지?”
“뭐가?”
“왜 우리가 한민족이냐고.”
“그냥 원래 우리를 한민족이라 부르는 거 아냐? 아닌가. 중국이 자기를 한족이라고 해서 우리 유학자들이 우리도 한족 할래~ 이런 건가.”
“크크큭. 역시 역사 고자.”
쿵.
얜 맞는 거 좋아하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모현성이 한참 만에 말했다.
“마한 진한 변한. 백제가 확장되고 신라가 경상도를 통일하기 전 삼남지방에 퍼져 살던 부족국가를 묶어서 이렇게 불렀어. 이 세 개의 한을 삼한이라 불렀고, 신라가 통일하면서 삼한 민족이 반도를 통일했다는 뜻으로 한민족이라 불렸지.”
“어. 맞는 말 아냐?”
“맞지. 대신 우리 민족이 삼남지방 기반의 민족으로 불리는 건 우리한테 불리해. 저 멀리 하얼빈 쪽에 번성했던 부여와 압록강과 요동반도를 기반으로 성장한 고구려, 고구려에서 내려온 백제는 한민족이 아니거든.
즉 한민족이란 단어에는 우리가 고구려와 백제를 버렸다는 뜻이 숨어있어. 중국 사학계는 이런 소리를 하면서 동북공정을 하고 우리의 반쯤 유학자인 사학자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알면서도 선대 유학자들을 핥고 빨다보니 역사를 고치지 못하고, 찍소리도 못 내고 있지.”
“어...... 그니까 졸라 먼 미래에 한민족이란 단어가 문제된다는 거군.”
“그렇지. 심지어 고조선의 영역도 한민족이 자리 잡던 삼남지방이 아니었으니까. 즉 삼남지방의 한민족으로 우릴 대표하면 안 돼. 그저 중국에서 우리를 한족이라 칭하니까 한반도의 병신 유학자들이 아이구 알겠습니다 우리 한민족 할게요, 라며 넘어간 거야. 차라리 부여, 고구려, 백제 계통인 맥족이라 부르던가 맥족과 한족을 합쳐 맥한족이라 불러야 돼. 어? 맥한족? 매칸족 크크크크큭. 이거 입에 착 붙네. 매칸더가 우리 민족의 로봇인건가.”
“그럼 맥한족이라 부르던가.”
“싫어.”
이 새끼 뭐지.
쿵.
한 대 더 때렸다.
“오고고곡. 굳이 바꾸려면 미래를 봐야지. 칸족으로 하자.”
“칸족? 한족의 짝퉁이냐?”
“아니. 몽골어로 왕을 뜻하는 단어야. 몽골에선 왕을 칸이라 부르고 몽골제국이 성립된 이후 황제를 대칸이라 불렀어.”
“무슨 의미가 있는데?”
“몽고반점. 우리가 몽골계인건 알지?”
“어.”
“현재 몽골에 사는 이들만 몽골족이라 부를 필요는 없지. 몽골에서 흩어진 모든 민족을 몽골족으로 봐 보자구. 한반도로 내려온 한민족, 만주에 자리 잡은 여진족, 만만한 남쪽을 침입해 나약한 중국놈들 죽이며 번성한 흉노, 오환, 선비, 거란 등등. 서쪽으로 뻗어나간 투르케이 족까지 모두 근원을 따지자면 몽골 초원에서 성장하다가 식량을 찾아 떠난 이들이야. 이들 모두를 칸족으로 묶자.
“즉, 모두 칸족이니까 칸제국에 합치자고?”
“어. 이제 곧 몽골 정복을 시작할 건데 걔들 입장에선 이민족에게 지배당하기 싫을 거 아냐? 차라리 한민족과 몽골민족이 원래 하나의 민족이라고 선포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합치자는 논리를 세우는 게 나아.”
“하나의 민족이라...... 말장난 같은데.”
“말장난이지만 정치적으로 필요하지. 그냥 합치면 정복당하는 거지만 원래 같은 민족이니 함께 하자고 한다면 이건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니까. 몽골지역을 안정시키려면 필수야.
그리고 몽골을 넘어가 중앙아시아로 간다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지. 몽골제국에서 분리된 킵차크 칸국, 일 칸국, 크림 칸국, 카자흐 칸국 등 칸이라는 단어는 투르크족에게도 매우 익숙해. 심지어 인도의 무굴제국도 지도충은 몽골계 칸이라고 스스로 포장하고 있거든.
즉 칸 제국이란 이름은 그들에게 통합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어. 일단 섞은 후 거주지 이동으로 민족을 섞다보면 결국 다 같이 칸민족이 될 거고. 내가 우즈벡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선 칸민족이 되어야 해.”
“그래. 허한다.”
결혼 전의 대화였다.
“인디언도 칸족으로 부르자. 빙하기 때 건너간 칸민족으로. 빙하타고 건너다가 말이 다 죽었다고 하자구. 인도 계통도 아닌데 인디언이라 부를 필요 없잖아.”
“그래라.”
“아시아를 서칸국이라 부르고 아메리카를 동칸국이라 부를거야. 동칸국이 확장되면 서칸국과 동칸국을 꾸준히 인구교환해서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어.”
“자...... 그럼 서칸국왕은 내가 하겠소이다.”
“이 새끼...... 너 왕 되고 싶어서 그런 거지?”
“에헷. 헤헤헤.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 형의 포지션을 정리 좀 해야지.”
“나?”
“사회발전이 모든 가난을 없앨 순 없어. 아무리 국가가 발전해도 모든 불만을 없앨 수 없지. 모든 사고를 방지할 수 없고, 모든 죽음을 없앨 수도 없지. 그런데 조선은 신정일치 국가잖아. 백성의 불만은 왕을 향하는데 그 왕이 신앙의 기반인 신이야. 이러면 불만이 생길 때마다 종교적 신앙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
“즉, 욕받이 왕을 만든다?”
“어. 정책은 왕의 이름으로 내고 백성은 왕의 뜻에 따라 일해. 한편 정치에서 한발 물러난 황제, 대칸은 신으로써 가끔 등장하며 신앙을 쌓는 존재가 되는 거지.”
“어. 이해했어.”
“어차피 형이 황제 된다고 해서 바뀔 건 없어. 형 뜻대로 국가가 이뤄질 거고 형 뜻대로 만들어질 거야.”
“알아.”
“그럼 내가 왕 인거다. 준비할게.”
그리하여 조선이 없어지게 되었다.
칸반도(...)에 자리 잡은 칸 제국 선포는 주변국의 항의를 받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명나라 조정 내에선 큰 반발이 일어났지만, 추가 뇌물을 받은 위충헌에 의해 오히려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초청을 받아 한성에 방문한 각국의 사절은 한성의 발전과 힘을 느꼈고, 평등한 동맹이라는 데 감사했다.
덕분에 광해상점이 각 국에 더 많이 설립되는 걸 허가받았고, 광해상점을 통해 광해소망교와 조선의 음악, 문학이 퍼져나갔다.
칸 제국이 선포되고 광해가 광해대칸이 되면서 국가의 모든 제도가 개혁되었다.
아전시험이 공무원 시험으로 바뀌었고, 복잡한 관료체계가 현대 한국의 체계와 비슷하게 변했다.
군제도도 개편되어 사단, 군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계급장도 장령위병으로 정리되었다.
그 외 모든 용어가 바뀌었고,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게 개혁되었다.
익숙해지는 데는 일 년 이상 걸릴 것이다.
모현성과 이초란이 계속 만난 이유는 이러한 제도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고자 모현성이 우즈벡 공주가 아니라 이초란과 결혼하게 된 건 의도치 않은 일이었지만.
둘이 좋아하니 됐다.
이초란도 조금씩 웃음을 찾는 것 같고.
제도가 정비되며 이이첨을 비롯한 아첨꾼들의 지위가 하락했다.
아첨하는 간신이 편리해서 붙여놨지만, 나라가 안정된 이상 이제 굳이 높은 자리에 둘 이유가 없다.
국무총리는 상징성 때문에 정인홍이 자리하고 있지만, 실제 업무는 부총리 허균이 다한다.
국왕은 대통령과 같은 역할이지만, 임기가 죽을 때까지이며 대신 세습은 안 된다.
왕이 죽는 순간 국무총리가 다음 왕이 되기에 국무총리는 매우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
“아직 문제가 많겠지. 그래도 형이 대칸을 백년정도 하고 나면 정리될 거야.”
“그래. 그럼 이제 민주주의로 가냐?”
“어...... 글쎄. 100년 후 쯤엔 민주주의를 시작할 수 있겠지. 아직은 불가능해.”
현대 민주주의와 비슷하게 방향을 잡고 있지만 진짜 민주주의가 완성되려면 멀고도 멀었다.
개방 방주 우치호는 조선으로 보낸 삼장로 장우영을 통해 조선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김류의 힘으로 이덕형이 관리하는 명나라 쪽 연락선에 한명을 추가할 수 있었기에 거기 섞인 개방도가 정기적으로 조선의 변화를 소개했다.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자동으로 움직이는 쇠 기계, 쇠 기계로 자동으로 짜는 면포, 성벽만큼 거대한 쇠마차 등 조선의 거대한 힘이 명나라에 전해졌다.
특히 위화도 대첩 이후 수많은 병사들이 조선의 신무기를 봤다.
초당 서너발을 발사하는 기관총과 근거리에서 압도적 힘을 내는 광해이포 등에 대한 소문을 막을 수 없었다.
광해이포의 존재는 조선군과 야지에서 전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하며 기관차전투를 통해 조선군은 성을 움직일 수 있다고 알려졌다.
개방 방주는 조선 내부의 힘을 동창에 알렸고, 동창을 통해 조정에 알려진 조선의 힘은 명나라가 긴장하고 대비하게 만들었다.
긴장한 채 힘을 모으는 명나라.
덕분에 수탈이 심해져 지방의 반발이 더 거세졌지만, 일단 살아야 하기에 북경에 군사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위충현이 집권했다.
명나라는 조선과 화친했고, 위충현은 조선에 적대하던 대신들을 쓸어버렸다.
개방 또한 여기에 휘말렸다.
동창제독이 숙청당한 것을 알게 된 개방은 숨었고, 개방 방주 우치호는 감옥에 갇혀 있던 포르투갈 상인 루이스 페르난도를 구출해 이귀와 함께 북쪽으로 갔다.
최초로 조선의 위험을 설명한 루이스.
조선에서 건너와 조선의 속사정을 전해준 명의 충신 이귀.
개방도 만큼이나 믿을만한 존재다.
둘을 데리고 북쪽으로 간 우치호는 개방도들을 지휘해 정보를 모았다.
요서 북부에서 서쪽으로 진입한 조선의 침략은 몽골과의 마찰을 낳았다.
타타타타타타.
쇠성벽이 움직이며 총을 갈기고, 달려들던 몽골기병이 쓰러진다.
우치호는 꾸준히 인내하며 몽골족에게 조선의 정보를 넘기고 꾸준히 이간질했고 결국엔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 작가의말
스피드퀴즈) 칸반도에서 칸민족을 다스리며 칸제국을 세운 대칸 광해가 신내림을 받은 신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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