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유구국 원정2
순도 100% 픽션입니다
광해가 돌진하며 왜구들만 골라 죽이자 유구국 승려와 병사들의 사기가 올랐다.
“와아~ 지원군이다.”
“살았다. 살 수 있어!”
광해가 흐트러뜨린 진형을 덮치는 창병들.
화약을 재는데 시간이 걸리는 조총은 집단사격이 아니면 단검보다 약한 무기다.
어쩌다 재 놓은 조총은 대부분 광해를 향했다.
피를 뒤집어쓴 괴수가 병사들을 짚단처럼 쓰러뜨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데 그 뒤의 창병들에게 쏘는 건 본능적으로 불가능했다.
탕. 타타탕.
촤라라락.
왼손의 철사가 회리릭 돌며 총알을 튕겨냈다.
게임 속 탱커의 역할 그대로 적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는 광해.
200여 남짓한 일본군은 여기저기 뭉쳐있었는데 광해가 한차례 덮치고 지나가면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그 뒤를 창병이 덮치면 순식간에 끝났다.
도주하는 적을 죽이기 위해 멀리 포위망을 형성한 조총병과 방패병의 눈이 초롱초롱 해졌다.
“저분이 왕이라고?”
“대단하다. 대마도 때도 봤지만, 지금 보니 더 대단하신 것 같아.”
“왕께서 저렇게 앞장서 싸우시다니. 우린 절대 죽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버티던 일본군은 지휘관인 나카자토 니야가 죽자 사방으로 달아났다.
탕. 타타탕.
숲 곳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적이 모두 달아나자 절의 승려와 군인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 이겼다!”
“조선국왕이라고? 최고다 조선왕.”
“그게 어딘데?”
“몰라. 아무튼 최고다!”
너희를 위해 구해준 것이 아니거든.
“시끄럽고 당장 불을 꺼라. 어서!”
광해의 명령에 모든 인원이 불끄기에 동참했다.
사찰 곳곳에 번지던 불은 순식간에 잡혔다.
“주지! 이 절의 최고책임자는 누구지?”
“접니다.”
피에 절은 중이 달려와서 대답했다.
“팔만대장경은 잘 있나?”
“예? 아. 확인해보겠습니다.”
이곳 슈리 엔카쿠지에는 팔만대장경 인본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번 전투 때 불타 소실된다고 들었다.
팔만대장경을 구하기 위해 이 절에 먼저 들렸다.
“무사합니다.”
그러면서 책자를 내미는데 그걸 본 광해는 실망했다.
모현성의 말에 따르면 이날 팔만대장경이 불탄다고 해서 먼저 달려온 건데 단순히 팔만대장경을 인쇄한 책자였다.
인본이 인쇄본이란 거구나.
모현성 이 자식 때문에 쓸데없이 힘 뺐네.
“이제부터 슈리성으로 갈 건데 함께 할 건가?”
“당연한 말씀을. 꼭 저희도 동참시켜주십시오.”
절에 있던 승려 60명과 병사 20명이 합류했다.
숲을 막던 방패병과 조총병이 돌아왔다.
잠깐의 교전으로 적 열 명 남짓을 죽였고, 아군 서른 명이 죽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적을 압도적인 숫자로 기습했음에도 이런 교환비가 나온 것이다.
평생 전투만 해온 전국시대 무사는 생각보다 강했다.
전신 철갑옷을 입은 광해가 선두에서 나아가자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시선이 끈적해졌다.
‘뒤를 따라야 해. 살려면 바싹 따라 다녀야 해.’
‘적이 너무 강해. 왕만 믿고 붙어 다녀야 해.’
광해를 잘 모르던 조총병과 노군의 믿음이 강해졌다.
우치나 슈리 성.
야트마한 언덕위에 세워진 작은 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키 높이보다 살짝 높고, 제대로 된 화포도 없다.
유구국 병사들은 집결해 저항해보지만 조총의 밀집사격엔 이겨낼 방도가 없다.
한두 명이 화살을 날려보지만, 조총 밀집사격에 벌집이 된다.
우라소에 구스쿠부터 이곳까지 끊임없이 패배하며 후퇴했다.
일제 돌격. 사망. 와해. 후퇴 후 재집결. 일제 돌격. 사망. 와해.
왕을 지키기 위해 나하의 주력 병들이 뒤늦게 달려왔지만, 돌격하다가 후퇴하기만을 반복했다.
성벽을 의지해 버텨보려 했다.
하지만 사쓰마 번은 강했다.
차분하게 성벽 앞에 도열해 조총을 겨누고 창병과 겸병이 사다리를 걸었다.
활과 돌팔매로 기어오르는 적을 죽이려 해도 성벽아래에서 쏘는 조총에 바로 죽는다.
느긋하지만 막을 수 없는 공격.
결국 성벽까지 점령당하고 성문이 열렸다.
고작 2000명의 일본군에게 1만 명 가까운 병사가 패배하고, 성벽마저 돌파 당했다.
병사들을 이끄는 장수이자 재상인 쟈나 리잔은 결국 병사들을 성 안으로 들였다.
건물을 끼고 소규모로 최대한 버텨서 왕이 탈출할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카바야마 히사타카는 적이 항복 하지 않고 성내로 들어가자 짜증이 났다.
충무공 이순신과 세 차례나 마주해 세 차례나 살아남은 위대한 장군 카바야마 히사타카는 병법에 능했다.
건물 안에서 싸우는 적에게 조총과 창병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조총과 창은 남아라. 검병만 각 건물로 진입해라.”
일본도를 세 자루씩 둘러맨 낭인무사들이 나설 차례다.
문제는 이들이 통제가 잘 안 된다는 것.
역시나 얼마 안가 성 곳곳에서 비명과 여자의 신음이 들리고. 불길이 치솟았다.
“빌어먹을 거지새끼들. 건물을 써먹어야지 왜 불 지르는 거야. 나머지 다 따라와라. 왕의 거처로 가자.”
카바야마 히사타카는 대열을 유지하며 진입했다.
광해의 병력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이미 외성 건물 곳곳에 불이 크게 피어오르고 있다.
“건물을 하나씩 수색하며 자나가라. 적이면 죽이고 유구인들은 살려라. 절대 유구인을 죽이지 마라.”
감히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가 있을까.
병사들은 조별로 흩어져 건물을 하나씩 확인하며 지나쳤다.
챙챙챙.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거친 화염이 기다란 그림자를 춤추게 만드는 절반만 어두운 세상에서 창과 칼이 만나 춤을 췄다.
그리고 적은 생각보다 강했다.
광해에게 배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창술.
수호군은 이 창술을 1년 가까이 연마했다.
하지만 실전경험은 거의 없다.
적병들은 수십 년 인생 내내 일본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전장을 찾아다니던 낭인이다.
수많은 전투경험을 갖고 있다.
임기응변.
안정적으로 긴 창으로 적을 제압하다가도 어둠속에서 날리는 단검 등에 목숨을 잃곤 한다.
건물 하나씩 수색하면서 숫적 우위를 앞세워 사냥하지만, 곳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총병과 방패병이 딱 1인분만 해주면 사망자가 없겠지만, 전쟁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이런 밤의 난전은 무리였다.
그저 도망가지 않고 따라다니는 것만 해도 용하다.
물론 왕을 버리고 도망가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더 빨리.’
전부를 살릴 수 없다. 그저 빨리 끝내는 게 도움이 된다.
은장식을 품에 쑤셔 넣던 낭인을 찌르고, 여자를 강간하던 낭인을 자른다.
켈켈 웃으며 불을 지르는 낭인을 베고, 조선군을 찌르려는 낭인을 쪼갠다.
강간, 방화, 약탈, 살인의 현장이 된 외성은 금방 정리되었다.
100여명의 사망자와 100여명의 부상자를 확인한 광해는 인상을 썼다.
생각보다 적이 강하다.
이제 마지막 적만 남았다.
카바야마 히사타카가 이끄는 사쓰마군 1500명이 내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유구국 쇼네이 왕은 외성이 불타오르자 눈물을 흘렸다.
곁에 달려온 재상 쟈나 리잔은 뒷문을 넘어 도망가라고 권했다.
산 속으로 두어 달 도망 다니면 식량이 떨어진 왜놈들이 돌아갈 거란 설명.
하지만 쇼네이 왕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도망가면 전부 죽을 걸세. 나하도 약탈당해 죽고, 슈리도 약탈당하며 죽었는데, 내가 산으로 도망가면 나라 전체의 백성이 전부 죽지 않겠나.”
이 말에 곁에 있던 왕의 동생 쇼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기 있으면 내성에 있는 왕비님, 여관, 신녀들에게 멸망의 비극을 보여줄 수 잇으니 성을 나가 항복합시다.”
유구국의 토속 신앙인 유구 신토 중 오나리가미 신앙은 여자의 영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풍습이 있다.
여성의 영적감수성을 지키기 위해 성문을 열고 나가기로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병사들의 격한 저항에 부딪히던 사쓰마 군은 성문이 열리자 조용해졌다.
화려한 복장의 대신들이 나오자 전투가 끝났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대는 류큐의 대신인가?”
카바야마 히사타카가 앞으로 나서 질문했다.
“내가 유구국을 다스리는 중산왕 쇼네이다. 항복하겠다. 살육을 멈춰 달라.”
“모두 전투를 멈춰라.”
히사타카가 소리치기 전부터 성벽의 전투는 멈춰있었다.
그들 등 뒤에서 분탕질 치던 검병들은 아까부터 침묵했지만, 왕의 등장에 시선을 뺏긴 사쓰마 군은 돌아보지 않았다.
“항복했으니 이제 일전에 요구했던 조공을 바치면 되는 건가?”
간섭받지 않고 살던 유구국은 일본 전국시대가 통일된 20여 년 전부터 일본의 압박을 받아왔다.
조공으로 조선 침략을 위한 군량미나 성의 축조에 자금을 내라 하는 등 무례한 요구가 이어져왔고, 당시 이 사실을 명나라에 알려 임진왜란을 미리 알리기도 했다.
임진왜란 후 일본의 탐욕은 점점 강해져 끝내는 전쟁까지 벌어진 것이다.
쇼네이왕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히사타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주군으로부터 받은 친서가 있다.”
히사타카가 품에서 첩지를 꺼냈다.
쇼네이 왕은 슬쩍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야마토 말을 할 순 있지만, 읽진 못한다. 읽어다오.”
“그러지. 우선 왕과 대신들은 본토로 와서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고 책봉을 받는다. 그리고 왕의 후계자는 에도에 살아야 하며 왕이 죽었을 때 책봉을 받고 돌아올 수 있다. 또한 류큐는 사쓰마 번의 속국이 되어 매년......”
매우 굴욕적인 요구조건에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하면 다 죽일 기세다. 이놈들은 그런 놈이다.
쇼네이 왕은 카바야마 히사타카를 노려보며 대답하려 입을 열었다.
퍼억!
히사타카의 얼굴이 터지며 핏물이 왕의 얼굴에 쏟아졌다.
“왜구를 전부 죽여라!”
광해가 등장했다.
마지막 적.
눈앞의 적은 지금까지의 적과 차원이 다르다.
자고 있는 놈들을 야습하거나 광해가 흩뜨려 놓은 적과 싸우는 게 아니다.
제대로 진형을 갖추고 있는 적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가문 중 하나였던 사쓰마 번.
그들이 소수정예로 쳐들어왔으니 골라 뽑은 정예병일 것이다.
광해의 병사 중 창병만이 어느 정도 정예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낭인 검병과의 전투에서 그들보다 못하다는 게 드러났다.
수많은 사선을 해쳐온 적에 비하면 조선군의 전투경험은 너무 부족했다.
외성의 검병을 정리한 조선군을 모았다. 그리고 둘로 나눴다.
“양쪽 끝으로 가라. 내가 공격을 시작하고 조총들이 날 쏜 후에 돌진하라.”
“전하. 그러하시면 위험합니다.”
“괜찮다. 믿어라. 당장 가라.”
두덩이의 병사를 적의 양쪽으로 보내 포위시켰다.
거리가 매우 가까웠는데도 적은 조선군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광해가 광범위한 인식방해 마법을 썼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력을 아낄 상황이 아니다.
병사들이 준비하는 동안 상황을 살폈다.
전투가 멈추고 왕과 지휘관이 만나 대략적 항복조건을 교섭하고 있다.
조건을 듣다가 왕이 승낙하려 할 때 공격을 시작했다.
유구국 군이 적이 되면 골치 아파진다.
아공간에서 새로 제작한 라이플을 꺼냈다.
장전된 그대로 발사.
적장의 머리가 터졌다.
흑색화약이나 무연화약이나 기체의 팽창력을 이용하는 원리는 똑같다.
차이라면 완전연소와 불완전 연소, 그로인해 남는 찌꺼기의 양이 다르다.
총열의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다음 사격이 총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히 높아진다.
그래서 흑색화약은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 한발만 쏜 광해는 그대로 돌진했다.
머리카락처럼 얇은 아다만티움 철사를 20m 길이로 뽑아 사방으로 날렸다.
뾱뾱뾱뾱.
워낙 가늘어서 피도 거의 나지 않는다.
다만 심장이나 눈이 꿰뚫린 적은 격통에 몸이 마비되며 쓰러진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사쓰마의 조총병이 일제히 사격을 했다.
타다다당!
지휘관이 없는데도 대응이 빠르다.
순간 광해가 멈춰 섰다.
왼손의 방어막을 늦게 돌려서 수십 발이 몸을 타격했다.
망치에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마법방어진이 자동으로 발동되었다가 깨졌다.
5초.
재발동 될 때까진 조심해야 한다.
광해는 왼손의 철사를 맹렬히 돌려 몸을 보호했다.
물론 가만히 서있지는 않았다.
철사를 맹렬히 돌리며 적에게 돌진했다.
철사가 믹서기 칼날처럼 적을 갈아버렸다.
마력 효율은 매우 안 좋지만, 빨리 끝내야 피해가 적다.
광해는 달려들며 소리쳤다.
“공격! 전원 사격! 유구인들은 함께 싸워라! 적을 물리쳐라!”
타다다다당!
성벽을 따라 늘어선 적진 양편에서 조선군의 조총 500정이 일제히 총을 쐈다. 그 후 돌격하는 창병과 방패병들.
그들에게 시선이 돌아간 사이 광해는 적의 중심을 헤집어 왕의 앞에 다다랐다.
“난 조선의 왕 광해다! 함께 싸우자!”
막장 드라마 급 반전에 놀란 쇼네이 왕이 눈물을 흘렸다.
“오오. 형님의 나라에서 구원을 와 주었군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싸워라. 형제의 나라 왕이 오셨다.”
너무도 기뻐하는 쇼네이 왕 때문에 광해는 민망해졌다.
‘아니. 나도 정복하러 온 건데. 너무 좋아하네......’
괜스레 미안해지게 시리......
광해는 가까이에 있는 적을 왼손의 짧은 철사로 갈다가 먼거리의 지휘관은 오른손의 철사로 찔렀다.
적 창병과 조총병은 잘 버티지만 점점 그들을 지휘할 장수가 없어지고 있다.
붕괴된 중앙.
양 옆에서 대열을 갖춘 정체불명의 조총병과 창병들.
내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구군들.
사방에서 들리는 함성과 총성 소리.
두려움을 참으며 대열을 지키고 있는 적에게 광해가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 소리쳤다.
“배로 도망쳐라!”
일본어로.
겨우겨우 버티던 사쓰마군은 이 한마디에 무너졌다.
어두운 밤 혼란스런 전쟁 통에 누구의 명령인지 알게 뭐람.
평소 배우던 대로 열 맞춰 퇴각하고 싶어도 지휘할 지휘관이 없다.
점차 후퇴속도가 빨라지더니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적을 보며 광해는 안도했다.
적이 끝까지 저항했으면 위험할 뻔 했다.
데려온 병력 절반 이상을 잃을 뻔 했다.
어두운 밤 지휘관부터 저격한 게 큰 힘이 되었다.
“와아아. 이겼다!”
“적을 물리쳤다.”
“고맙습니다. 형님. 조선 천세! 조선 천세!”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쇼네이 왕과 유구군.
광해는 그들의 기쁨에 산통을 깼다.
“뭐하나? 추격해야지. 저놈들이 흩어지면 우치나 민간인들이 죽을 텐데.”
“예? 예. 알겠습니다. 전원 추격하라.”
조선군 1300명과 유구국 1000명이 추격을 시작했다.
- 작가의말
이 당시 사쓰마군의 조총은 200~500정이었습니다
임란이나 이 시기 일본군이 전원 조총으로 무장한 묘사들이 많은데
실제로 조총은 특수병과가 사용하는 귀한 무기였고, 일본군 대다수는 징집창병이었습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