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증기기관차
순도 100% 픽션입니다
“밀주. 밀주를 불러와라.”
광해는 말을 마치고 지도를 다시 봤다.
요동반도의 해안가를 제외한 산악지형 전체.
길림성 전체와 흑룡강성 대부분.
이곳이 만주족의 영역이다.
한반도보다도 크다.
“30만. 최대 30만이야.”
모현성이 예전에 말했었다.
누르하치는 1616년 후금건국을 선포하고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1619년 사르후 전투가 일어났는데 이때 명나라군 17만과 조선, 예허부 병력을 합쳐 20만 대군이 전멸했다.
모현성은 전투 내용 대신 직전 상황에 주목했다.
“명나라는 47만이 진군한다 했고, 조선, 예허부가 함께 싸운다고 광고했지. 고스란히 믿진 못해도 절반 가까이는 동원 된다 봐야겠지. 그렇다면 누르하치는 일부 정예병만 갖고 나와 싸워야 할까? 아니면 싸울 수 있는 병력 전부를 동원해야 할까?”
“상식적으로 최대한 끌어 모아야겠지.”
“그래. 그런데 누르하치가 동원한 부대는 기병 사만이었어. 명을 아무리 우습게 봤어도 이 숫자는 너무 적어. 즉, 만주족 영역의 사내가 최대 사만이라는 뜻이야. 나중에 요령성과 몽골을 먹은 후에도 청나라가 북경을 정복할 때까지 병력은 10만 명을 넘지 못했어.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3년 전 무산에서 오천 기를 잃었고, 두만강 북쪽 야인 여진 땅도 잃었어. 즉, 사르후 전투 때보다 인구가 적어. 현재 만주족에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최대 삼만오천이야.”
“거기다 이번에 오천기 정도 소모되었지.”
“어. 그리고 무산으로 오는 만오천기를 빼면 만오천 남네.”
“싸울 수 있는 성인남자 4만. 노인과 아이까지 최대한 잡아도 30만. 고작 그 인구로 이 넓은 영토를 다스릴 수 있나?”
“인구가 적은 게 아니야. 땅이 똥땅이라서 그래. 명나라가 왜 요하 중류까지만 차지했는데. 중류까지는 날씨가 따뜻하고 비가 많아서 농사가 잘돼. 하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드넓은 평야가 있는데도 워낙 추워서 농사가 거의 불가능해. 애초에 식량 한계가 30만이라 생각하면 돼.”
“그래.”
이렇게 보니 누르하치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똥땅에서 서로 죽고 죽이던 부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고작 4만으로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해 다섯 배의 적을 몰살 시키고.
얼굴이 터져 죽은 누르하치에게 명복을... rip...
“광해님. 부르셨습니까?”
“어. 밀주. 아니 게다 우디치.”
광해가 본명을 부르자 밀주는 눈을 크게 뜨며 굳었다.
방금 여진족과 싸웠는데 자신이 여진족임을 밝히다니.
숙청인가.
주위 장수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진다.
광해는 분위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만주족이 감히 조선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지도에서 만주족을 없애도록 하겠다. 게다 우디치. 조선의 동맹으로서 만주족을 없애고 여진족을 통일시켜라.”
“동맹... 이옵니까?”
“그래. 몇 년 간은 조선의 원조를 받는 여진국이 생기겠지. 그 후 네게 선택을 맡기겠다. 조선의 백성으로 편입할건지 여진국으로 남게 될 건지.”
게다 우디치는 즉시 대답했다.
“조선에 편입하겠습니다.”
혹독한 여진의 환경은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조선에 자리 잡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자신의 부족을 여진땅에 살게 하다니.
왕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거기 왕 이래봤자 식량 구걸하러 다니거나 식량 훔치러 다녀야 한다.
“어... 음... 그래. 뭐 일단은 만주족부터 무너뜨려. 식량은 팍팍 지원해주마.”
왕 자리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네.
“예. 전하.”
애초에 식량이 부족해 싸우러 다닌 민족이다.
밥 준다고 오라고 하면 쉽게 오겠지.
“자 그럼... 곽재우. 초원기사단 빼도 되나?”
상황은 읽은 곽재우가 응낙했다.
“예. 전하. 수송선의 지원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신중한 곽재우가 된다고 하면 되는 거지.
“그래. 그럼 보병은 해안선을 따라 한족을 몰아내고 요양까지 점령해라. 기병은 게다를 도와 여진을 점령하라. 보급은 최명길이 알아서 할 것이다.”
본래계획은 요동 점령 후 여진족 공격이었는데 창춘이 빈집인 걸 알았으니 빈집털이 하려 한다.
적의 대비가 약할 때, 패전의 혼란을 수습하기 전에 무너뜨려야지 괜히 시간 줬다가 청나라를 건국한 세력의 저력을 맞볼 수도 있다.
최명길은 요즘 동남 보급로 때문에 머리가 터지려는 것 같지만, 뭐, 천재니까. 믿어주자.
“나는 무산 방어하러 간다.”
“예. 전하.”
회의가 끝나고 장수들이 각자 흩어졌다.
광해는 막사에서 그대로 마법진을 그렸다.
곁에서 간삼과 임경업이 눈을 빛냈다.
기관총 수만 발을 발사하며 최대살상자를 만든 둘, 아니 모현성까지 셋.
이들 셋이 현재까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놈들이 아닐까.
“살인마들.”
“예? 앗 송구하옵니다.”
“시끄러. 집이나 잘 봐.”
“소신 임경업 목숨 바쳐 광해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사옵니다. 지옥까지 따르겠나이다.”
간삼도 같은 표정이다.
광해도 이들이 있으면 알아서 수발을 드니 편하긴 하다.
“그래. 왕의 수신호위인데 따라야지. 그런데 이동은 같이 못한다. 말 타고 쫒아 와라.”
“예?”
“설마 왕보다 늦는 건 아니겠지? 나보다 먼저 무산에 가서 대기하고 있거라.”
“예?”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광해는 모현성의 손을 잡고 마법진에 들어갔다.
무산에 도착했다.
떨궈진 떨거지들이 얼굴을 마주봤다.
“달려라. 무산까지 직진이다!”
“광해님보다 늦어선 안 된다. 말을 준비해라.”
왕은 이미 도착했는데.
왕의 호위병들이 바빠졌다.
해미댁은 물건을 만든다.
아줌마들이 물건을 가져다 판다.
이제 태안에서 해미댁의 손거울을 들지 않은 아낙이 없다.
하지만 이제 슬슬 손거울이 잘 팔리지 않는다.
다들 들고 있기도 하고, 희소성이 없어서인지 굳이 비싸게 사려하지 않는다.
해미댁은 다른 수익을 찾아야 했다.
“결국은 거리야. 멀리 갈수록 이득이 많이 남는데. 오가는 시간과 먹고 자는 거 생각하면...... 음 어쩌면 좋을까?”
“여편네가 돈 맛 들어가지고. 에잉 밥 줘!”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온 찬희 아범이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누구 덕에 잘 먹고 사는데 그래유! 조금만 더 모으면 우리도 온돌집에서 살 수 있다구!”
아내의 치맛바람에 아범은 혀를 찼다.
“에잉. 전처럼 실이나 뽑고 포목이나 짤 것이지. 그렇게 바람 들었다가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사람이 분수를 지켜 살아야제. 하여튼 포목 짤 일이 없으니까 이런 망조가......”
“그거다! 그거여! 당신 말 잘했슈!”
해미댁이 눈을 반짝이며 뛰어나갔다.
“저저저. 갑자기 또 왜? 어디가? 밥 줘!”
이양법의 발명은 농사짓는 수고를 삼분의 일로 줄였고 생산량을 늘렸다.
방직, 방적 기계는 인류 절반이 평생 매달려 천을 짜던 노동력을 아예 없애 버렸다.
현재 조선은 총인구의 절반이 평생 수고를 바치던 면포를 거의 공짜로 뽑아내게 되었다.
즉, 조선의 여인들이 할 일이 줄었다.
“요즘 좀 한가하지? 심심하자녀. 근께 품이나 팔지 않으려?”
“품? 어떻게?”
“내가 물건을 갖다 줄게. 그 물건을 옆 마을에 옮겨 주는 거여. 어차피 낮에 집안일 하고 나면 시간이 남잖어. 물건 옮기면 쌀 한 줌을 받는 거야.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옮기고 돌아오는 겨.”
“오오. 괜찮네.”
시간이 남게 된 여인들.
대부분 남편 따라 밭에 가서 밭일을 하지만, 매일 지겹게 보는 남편과 시간을 보내봤자 싸움만 늘어난다.
“산책하고 쌀 한 줌. 좋네. 지긋지긋한 면상도 안 보고.”
부부싸움도 줄고.
해미댁은 태안에서부터 당진, 서산까지 길을 완성했다.
태안의 저렴한 유리물건을 마을 마을 거쳐서 당진 서산으로 옮기고, 서산 당진의 싼 물건을 다른 고을로 옮긴다.
시간이 남게 된 여인들은 쌀 한줌에도 기뻐하며 물건을 옮겼고, 한번 경로가 완성되자 해미댁에게 어마어마한 수익이 들어왔다.
조선의 여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직 방적 기술개발로 절약된 노동력이 다른 생산적인 일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생각은 해미댁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해미댁과 비슷한 생각을 한 이가 조선 곳곳에서 나타났고, 여인들의 노동력이 각종 수제품 제작 기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흐음. 마차나... 뭐 그런 거 없을까? 한 번에 청주나 증평까지 옮기면 엄청나게 많이 남을 텐데...... 배로 옮기면...... 권첨지네 배가 정말 대단한 거구나. 부럽다.”
해미댁은 아직 배고프다.
“짜잔. 그래서 증기기관차야.”
무산에 도착한 모현성은 기관차부터 보러갔다.
광해는 시큰둥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형. 현대의 역덕들이 가장 많이 간과하는 게 수송이야. 어... 쉽게 예를 들어볼게. 도로에서 쉽게 보는 덤프트럭 한대가 모래를 옮긴다고 쳐봐. 한 시간 거리에 모래를 붓고 돌아와. 이 일을 하루 네 번 반복해. 이걸 지금 시대에 순수 인력으로 옮기려면 얼마나 들까?”
“답만 말해라 답만.”
“...... 단순 계산으로 833명이 16일 동안 일해야 해. 이정도면 지방 관아에서 일 년 예산을 다 써야 할 수 있는 일이야.”
“...... 그건 좀 대단하군. 고작 트럭 한대가.”
“그래서 수운이 중요한 거고 대도시는 전부 큰 강을 끼고 발전했지. 물에 띄워 옮기면 수고가 백분의 일로 줄거든. 어쨌든 유럽의 식민지시대는 증기기관차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기관차와 기관선 이전에는 항구만을 빼앗고, 토착민을 죽여 보물만 빼앗았거든.
그런데 기관차 발명 이후 내륙으로 진출하게 돼. 내륙에서 뽑아낸 산물을 기관차가 해안까지 쉽게 옮길 수 있게 되지. 즉, 식민지의 넓이가 증기기관차 덕에 열배로 늘어난 거야. 어... 유럽개새끼.”
“그럼 뭐하냐? 아직 운용도 못하는데.”
광해의 시큰둥한 말에 옆에 서있던 철구가 고개를 숙였다.
증기기관차 책임자 철구.
김춘석의 제자로 한성철방에 있을 때부터 광해를 봐 왔다.
수리에 재능을 보여 모현성이 설명하는 수치를 정확히 구현했고, 그에 따라 증기기관차를 만들게 되었다.
단군력 2년 8월 철구는 모현성의 설계대로 정확히 증기기관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바퀴축이 주저앉아서 한 달. 짐을 싣고 나니 바퀴축이 주저앉아서 한 달. 멈춤 장치 고장으로 돌진해서 공장 네 개 완파. 겨울에 선로가 깨져서 탈선. 옆으로 쓰러져서 공장 두개 반파. 여름에 선로가 눌려 앉아 탈선. 그 외 수십건의 자잘한 사고.
최근엔 자신만만하게 만든 두만강 철교가 무너져서 증기기관차 수장. 물속의 증기기관차는 아직 꺼내지도 못하고 흉물로 남아있고. 그러고 보니 직접 시운전한 네가 안 죽은 건 대단하군.”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증기기관차가 사고 쳤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때마다 예산을 관리하는 허균과 예서가 입에 거품을 물었지.
수송능력 향상을 눈 빠지게 기대하는 최명길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광해의 말에 철구의 고개가 땅속 깊이 들어갔다.
모현성이 그런 철구의 어깨를 잡았다.
“원래 상용화가 어려운거야. 신기술의 99퍼가 그대로 사라지잖아. 보고 만드는 건 쉽지만 적용하는 건 어려워. 그래도 덕분에 합금 기술도 늘었잖아. 이제는 하중을 다 받아야 하는 바퀴축도 휘지 않고, 멈춤장치도 안정되었고, 철교는... 이건 원래 기관차 제작보다 어렵고. 그래서 철구야. 이제 무산에서는 쓸 수 있다며?”
“예. 스승님. 1구역과 철광산 주위에 선로를 깔았고, 1구역 내의 무거운 철제품은 전부 기관차로 수송하고 있습니다.”
발명한 지 2년이 지난 현재 무산 내에서만 증기기관차가 사용되고 있다.
철광석을 퍼내 기차에 실어 용광로로 옮기고, 뽑혀진 쇠를 기차에 실어 각 공장에 분배한다.
무산 주위에 선로를 깔아 무거운 물건은 전부 기관차로 수송하고 있다.
새로운 선로를 청진으로 깔고 있는데, 무산-청진 노선만 완성되면 조선 전체의 수송력이 열배 증가한다.
“열배씩이나?”
“어. 진짜니까 의심 하지 마. 지금 조선 전체의 육로수송량이 무산에서 청진까지 열차가 한번 수송할 양이야. 육로 수송은 거의 손 놓고 있다고 보면 돼. 현재 무산에서 만든 쇳덩이를 옮기지 못해 살짝 정체기인데 이걸 옮기기만 하면 조선이 확 달라져.”
“그래. 어쨌든 말이야. 지금 만주족이 쳐들어오고 있는데 여길 먼저 온 이유가 뭐지?”
“뭐긴. 이번 전투의 주인공을 만나러 온 거지.”
탕탕탕.
모현성은 증기기관차를 두들기며 웃었다.
“이 새끼 또 만화전술 상상하고 있군.”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네.
- 작가의말
사르후 전투를 자세히 보면 개연성따위 개나준 말도 안되는 승리입니다.
이 글을 그따위로 쓰면 작가놈 미쳤네 하면서 다 떠날 수준의 승리
누르하치가 고작 이정도 전력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명나라의 7대죄를 말한게 진짜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진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기보단
여진족이 해낼 수 있는 최대 전력을 만들었으니 지든 이기든 한번 붙어보자는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여진족에 5배의 숫자로 밟힌 명나라가 더 경악스럽긴 하지만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