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양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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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의 초원기사단은 만이천 명으로 늘었다.
만주족과의 전투로 생포한 군마가 이천 마리.
두만강 지역 병사들 중 젊은이들로 이천명을 추가했다.
여기에 예전부터 조선에 협력하던 야인여진족이 만여 명 있고, 누르하치와의 포로교환으로 돌아온 야인여진족이 만여 명 있다.
광해는 야인여진족에게 두만강 북안 농경지를 보장해주었고, 그들이 약탈당하지 않도록 방어해주기로 약속했다.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조건은 단 한 가지.
3년 안에 조선어를 익힐 것.
3년 후에도 조선어를 익히지 못하면 쫓겨난다.
그들 중 삼천 명을 뽑았다.
억지로 뽑았다면 반발이 있겠지만, 그들의 집에 봉급으로 매달 쌀을 보내주기로 했기에 오히려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만이 천 기마병은 두 가지 일을 한다.
훈련과 수송.
두만강 북쪽 너른 대지를 보름씩 달리는 게 훈련이다.
육천기의 기마를 막을 존재는 없다.
기병은 자유롭게 달리며 행군 경로에 있는 소규모 여진 부족을 복속시킨다.
습격해 공물을 요구하는 복속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을 보장하며 복속시킨다.
정충신이 만난 모든 부족이 조선의 뜻에 환영하며 기꺼이 응했다.
병사로 뽑히면 댓가로 식량을 주었기에 식량이 필요한 여진족은 앞 다투어 모병에 응했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면 수송에 참여한다.
무산에서 만들어진 강철을 두만강 하류까지 옮기고, 두만강 하류에서 식량과 목화솜을 받아온다.
엄청난 양의 식량이 무산에 쌓이고 있다.
무산은 10월부터 얼음이 언다.
훈련과 수송을 반복하다보니 금세 겨울이 다가온다.
병사들과 함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정춘신은 나날이 변화하는 무산의 경치에 감탄했다.
드넓은 야산이 전부 벗겨져 광산이 되었고, 넓고 넓은 대지에 가옥이 이만 채 지어졌다.
전부 쇠기둥을 세우고 온돌이 설치된 굉장히 고급스런 가옥이다.
그 사이에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공장단지.
담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매일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각자 여장을 풀고 쉬어라. 이틀 후 수송 작전에 참여한다.”
“옛. 장군.”
기병들의 기합이 바싹 들어있다.
소집해놓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과 내내 훈련하는 병사들의 군기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저들은 이제 부단장 박승종이 맡아 한글 교육과 수송을 맡게 된다.
해산하는 병사들을 보며 사령부로 가니 모현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산 공 안녕하시오.”
무산 모현성.
모현성은 스스로 호를 무산이 붙였다.
“예. 장군. 작전에 문제는 없었소?”
“위협은 없었소. 다만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노숙하는데 병사들의 고초가 심하오.”
“누비옷과 침구가 곧 준비될... 아니지. 모든 작전은 중지요. 주상 전하의 새로운 명령이 있소.”
“새로운 명령?”
“예. 기병 칠천 기를 이끌고 한성 인근에 은신 대기할 것. 전투가 벌어지면 크게 포위망을 갖춰 도주하는 적을 잡을 것. 이상이오.”
“알겠소. 내 바로 준비하리다.”
질문도 없이 명을 수행하려는 정충신을 모현성이 막았다.
“잠깐. 작전의 의미를 아시오?”
“예. 양반들이 난을 일으켰고, 그 난을 평정하는 것 아니오.”
“맞소. 조선 전역의 양반이 거의 다 연루될 거요. 헌데 갑사들의 출신이......”
“아. 다들 양반가의 서자나 서얼이지요. 허어. 그들은 제외해야겠군요.”
“예. 일반 병 출신과 항복한 야인여진 위주로 편성해주시오. 야인여진들은 명령을 알아들을 수 있소?”
“중간 중간 조선어를 아는 이들이 통역해주오. 전진, 정지 같은 기본적인 군령은 알아듣고. 그래도 훈련이 부족하긴 하지만 주상의 명령이니 최선을 다해야지요.”
“부탁하오. 남은 병사들은 박 부단장이 통솔할 것이요.”
“예.”
정충신은 곧장 비상을 걸고 마초와 무구를 챙겼다.
“끝났다!”
전라도 부안 해안가 마을에서 허균이 선언했다.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외치며 서로 안고 기뻐했다.
5월에 시작한 전수조사가 12월에 끝이 났다.
장장 7개월간의 대장정.
조선의 인구는 1100만 명.
백관 한 명당 11만 명을 맡아야 했고, 병사 여섯 명 당 천명을 만나야 했다.
말이 천명이지 마을마다 옮겨가며 아침저녁으로 한글교육과 창술훈련을 받고 노숙하며 조선 구석구석 다니며 말을 전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6명의 수호군과 60명의 훈련도감 병사. 700명의 지방군.
이들은 이제 한글과 산수를 모두 익힌 엘리트이며, 광해의 은혜를 반복적으로 체감한 열성 교원이고, 창술실력이 경지에 오른 강한 군대다.
인근 관아에서 겨울을 지낸 후 명년 봄 재편될 국가의 핵심인재가 될 자들이다.
“가자. 관아에 우리가 쉴 자리가 마련되었다.”
“와아아.”
“쉰다! 드디어 쉰다!”
허균은 기뻐하는 병사들을 보다가 그 뒤에 실린 수레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수레 70량에 가득 쌓인 서류들.
비 맞지 않게 가마솥 등으로 덮은 종이들엔 허균의 부대가 조사한 내용이 빼곡히 들어 있다.
각 마을의 실제 인구와 인구별 재산.
조선 전체의 재산을 정리하고 분배해야 한다.
겨울 내내 조사해도 가능할까 싶지만.
“매창아. 기다려라. 오빠가 간다.”
허균의 지음이자 허균이 생각하기에 조선 최고의 시인인 이매창이 부안 관아에 기녀로 있다.
그녀와 대화하고 함께 자료를 정리한다면 겨울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것을 생각해서 마지막 일정을 부안으로 잡았다.
백관의 장이기에 이 정도 조절쯤은 가능했다.
“대감. 교산대감. 파발이 왔습니다.”
윤선도가 달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니야. 넣어둬.”
“급해서 달려오며 읽었습니다.”
“아니야. 말하지 마.”
“당장 한성으로 진격하랍니다. 모든 백관에게 공통된 명령입니다.”
“아아아악. 아니야. 꿈이라고 전해줘.”
“아닐 겁니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허균과 병사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지만, 서신은 변하지 않았다.
서신에는 허균의 부대가 진격할 경로와 날짜, 보급위치와 해야 할 일이 적혀 있었다.
절규하는 허균을 무시하고 윤선도는 병력을 모았다.
“부대. 출발 준비한다. 목적지는 한성. 선두부터 앞으로 갓. 이동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광해님께 영광을. 하나둘셋넷.”
“영광. 영.. 광 광해... 전... 하...”
군가가 축축 늘어진다.
조선에서 가장 발전한 지역은 한성이 있는 경기도다.
두번째로 발전한 지역은 의외로 평안도다.
일 년에 네 차례 이상 명나라의 사신이 오가며 돈을 뿌리는 곳이며, 해금령으로 바다가 막힌 조선에서 해외무역이 유일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북방의 기병이 침략할 경우 가장 먼저 맞닥들이는 곳이기에 조선 최고의 정병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서군 사령부가 있는 안주.
안주에 있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수일에게 서신이 왔다.
- 대명국과 의견차이로 마찰이 있을 수도 있다. 병력을 점검하고 국경방어에 최선을 다하라.
조정에서 온 서신이 하나고 알고 지내던 양반들에게 온 서신이 수십 통이다.
- 한성으로 병력을 끌고 오시오
- 대업에 동참하시오
- 상국에 죄를 짓는 성상을 끌어내려야 하오
- 이미 양반 팔만명이 모였소
- 이대로 가다간 모든 가문이 박살나오. 결단을 내리시오
- 귀공의 가문 또한 멸절할 것이오
협박하듯 날아온 서신에는 한성으로 와서 난에 동참하라는 말로 가득했다.
서신은 이수일만 받은 게 아니다.
그 예하 장군들에게도 수많은 서신이 왔고 다들 흔들렸다.
“대감. 어서 결정을 내리시오.”
“우리가 막아야 할 상대는 상국이 아니라 폭주하는 광해군입니다.”
“재조지은을 잊은 자가 어찌 상좌를 차지하고 있단 말이오.”
“당장 관서군 이만명을 모아 한성으로 가야 합니다.”
부장들이 몰려와서 일제히 반란을 요구했다.
그들을 진정시켜 돌려보낸 후 이수일이 어둠속을 봤다.
“간삼.”
“예. 대감.”
어둠속에 숨어 있던 간삼이 대답했다.
“저들도 죽여야 하나?”
“주상 전하께 반기를 든 자입니다. 죽여야 합니다.”
“후우. 저들의 사정도 딱하지 않은가. 부모형제가 죽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대역죄인입니다. 대역죄를 옹호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닐세. 죽이게.”
“예. 대감.”
이수일은 고개를 흔들고 의자에 앉아 술병을 들어올렸다.
간삼이 손짓하자 안보군 중 암살 성적이 좋았던 몇이 밖으로 나갔다.
“대감마님. 기억해 주십시오. 죄인은 벌을 받고, 착한 자는 보상받는다. 이게 옳지 않겠습니까?”
“그래. 옳지. 그게 옳아. 후우우.”
“몇 개월만 참아주십시오. 소인의 무례는 큰 보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알겠네.”
각도의 장군들에게 호위로 붙은 수호군이 군부의 반란을 막았다.
한성에 올라온 양반들이 한강을 건넜다.
아직 강이 얼지 않았기에 조각배를 모아 건너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
도강을 마치고 집결한 숫자는 팔만 명.
양반이 삼만 명에 그를 따르는 노비와 아전들이 주를 이루었다.
모여든 양반은 숭례문 밖에 도열했고, 그곳에서 제를 올렸다.
“폭군은 겁을 먹고 도주했으며 한시도 종묘사직을 비울 수 없기에 나 능양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제를 올리고 새 왕의 즉위를 선포 한 후 울려 퍼지는 관악을 들으며 한성에 입성했다.
왕이 바뀌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광해는 따분했다.
“밀주야.”
“예. 전하.”
“한성에 니 부하 많지?”
“이백 명 정도 됩니다.”
“괜히 나대다가 죽지 말고, 잘 숨어서 범죄내용이나 기록하라 해.”
“이미 지시했습니다. 제 부하와 염초군이 함께 숨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안보군도 남아있구나. 허균이 올라오려면 며칠 걸리지?”
“보름은 기다려야 합니다.”
“보름이라...... 지루하겠군. 술이나 제대로 구해봐라.”
“예. 전하.”
근 한 달간 광해와 매일같이 술을 마신 밀주는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지 못했다.
새 왕이 된 능양군은 약속을 지켰다.
궁의 재산을 탈탈 털어 거금을 준비한 책봉단을 명나라에 보냈고, 광해가 행한 모든 조치를 취소하는 교지를 전국 관아로 내려 보냈다.
대신들의 의견에도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비변사에서 정한 안건은 모두 통과되었다.
덕분에 비변사 회의가 가열되었다.
여기만 휘어잡으면 정국을 잡는다.
“이원익 대감은 폐주에 저극 동조한 박쥐같은 인물이오. 저런 자가 어찌 영상의 자리에 있단 말이오.”
“적극 동조라니요. 그나마 이대감이 있어서 폭주를 막은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정인홍 대감이야말로 앞장서서 동조한 인물 아니오?”
“어허. 앞장서서 동조하다니.”
권력을 잡기위한 암투.
남인 이원익과 대북 정인홍이 가장먼저 표적이 되었다.
각 당파가 적극 방어한 끝에 사직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완전히 손발이 잘렸다.
이원익은 새 왕이 즉위하고 각종 개혁을 철회하고 양반들의 이권을 강화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삭탈관직 된 이원익은 작은 집에 칩거해 책을 펼쳤다.
두 달 전 광해가 툭 던져준 서적.
광해소망교 교리.
수백번도 넘게 봤다.
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꼭 이래야 하는가.
이원익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이덕형을 불러 함께 집을 나섰다.
“주상전하를 뵙습니다.”
“그래. 갑자기 폭삭 늙었네.”
양반집 사랑채 하나를 차지한 광해는 술을 마시고 있다가 히죽 웃었다.
“전하. 이 교리는 말입니다. 너무 과격합니다.”
“과격하다라...... 그게 과격하면. 에휴 됐다. 이원익. 명을 받들라.”
“예. 전하.”
아직 이원익에겐 광해가 왕이다.
잠시 한성을 차지한 양반들은 왕의 전력이 얼만큼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한성에서 자신들이 미는 왕을 올렸다고 세상 다가진 것처럼 날뛰는 바보들.
“한성을 열 바퀴 둘러보라.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한성의 상황을 지켜보고 다시 돌아오라.”
“...... 예 전하.”
알 수 없는 지시를 받은 이원익은 조용히 물러났다.
그 좌우에 이항복과 이덕형이 섰다.
“수행하겠습니다. 대감.”
“허허. 과분하오. 영상 두분이 수행하시다니.”
“오리 대감은 네번이나 영상 하셨으니 저희 둘을 합친것보다 대단합니다. 전혀 과분하지 않죠.”
이항복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태연한 그 모습에 이원익은 마음이 조금 풀렸다.
“주상의 생각은 무엇일런지요. 어찌하여 한성을 내주었을까요?”
“눈을 뜨라는 뜻이겠지요.”
“눈을 뜨라?”
“욕심에, 혹은 삿된 것에 눈이 감긴 자는 보지 못하는 것을 눈을 뜨고 보길 바라는 뜻이지요. 주상은 양반을 죽이고 싶어 일을 벌인 게 아닙니다. 눈알에 칠해진 먹물을 씻어내 진짜를 볼 시간을 준 것입니다. 눈이 띄어 진짜를 보는 이는 살 것이며 욕심에 눈을 감고 있는 자는 없어질 것이지요.”
이항복의 선문을 듣자 교리가 떠올랐다.
이항복은 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허어. 소관도 눈을 감고 있었구려.”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보시지요. 성리학의 본질을.”
이항복은 한성 구석구석 이원익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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