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무산2
순도 100% 픽션입니다
처음 만든 것이기에 문제가 없을 수 없었다.
“화력이 너무 강해. 에어펌프를 좀 약하게 해줘.”
광해가 해야 한다.
“레일에서 쇠가 굳어버리네. 저거 녹이고 열선을 깔아서 쇠가 안 녹게 해야 하는데.”
“야. 쇠로 레일을 만들고 쇳물을 흐르게 하면 되겠냐? 쇠가 서로 굳던지 같이 녹던지 하겠지.”
“아하! 그렇구나.”
“으이그. 나와봐.”
결국 광해가 내화벽돌을 압축해 레일을 깔았다.
“내부에 불순물이 끼어서 막히네.”
“에휴.”
불순물이 빠져나올 관을 따로 만들었다.
광해는 결과물을 보고 망치로 톡톡 쳐보고는 말했다.
“이 철 못 쓴다.”
“엉?”
“숯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단단하기만 하고 탄성이 전혀 없어. 이러면 그냥 깨져버려.”
“아. 맞네. 산소를 쇳물에 넣어줘서 일산화탄소로 증발시키라 하던데. 어떡하지?”
“에휴. 나와봐.”
광해가 가진 기술과 마법을 합쳐 에어펌프를 만들었다.
녹은 쇳물이 레일을 지나가다가 자동으로 탄소를 빼내는 과정이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적당한 강철이 나왔다.
용광로가 완성되었다.
재료를 용광로 상층에 가득 채워 놓으면 자동으로 녹으며 강철이 줄줄이 뽑혀 나온다.
계산해 보니 마력석 세 개로 열흘 쓸 수 있다.
단순 마법이라 크게 마력을 잡아먹지 않는다.
산업의 쌀.
21세기에도 생산하는 모든 금속의 80%가 철이다.
뭘 하려든지 무조건 철부터 필요하다.
시험생산하고 수정하는데 육일이나 걸렸다.
“결국 내가 다했네.”
“여윽시. 짱이십니다. 오오 임금님. 나의 임금님.”
“시끄럽고 저기 레일 먼저 깔어. 규격 맞춰서 수레 만들어서 철괴 옮기고.”
“오오. 여읔시.”
“닥쳐.”
“넵. 전하.”
“에휴. 책으로만 익혔으니 구멍이 송송 나 있지. 나 이제 논다.”
“그러세요 형.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는데.”
“야 이!”
무산에 와서 할 일.
다친 병사 고쳐주고 솎아내기.
용광로 만들기.
그리고 전쟁이다.
다음날 모현성과 함께 동쪽으로 이동했다.
무산에서 회령 쪽으로 10km 이동한 지점.
모든 기병이 훈련을 멈추고 모였다.
무산 동쪽 국경 진들의 병사들도 소집했다.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천명.
꽤 많은 숫자다.
하지만 부족하다.
적은 훗날 청나라를 건국하는 만주족이다.
자신의 부족을 스스로 만주족이라 이름붙인 누르하치는 이 시기 명나라를 등에 업고 무섭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압록강 북쪽 지역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거의 다 함락했고, 지금은 두만강 북쪽 야인여진 지역까지 휩쓸기 시작했다.
본래 역사에선 누르하치의 부대에 쫓긴 유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도망쳐오고, 만주족은 두만강을 건너 유민들을 잡아 돌아간다.
조선군과의 큰 충돌 없이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는 사건이다.
그걸 바꿀 생각이다.
날짜를 기억해낸 모현성은 이곳에 함정을 파서 넘어온 적을 전부 잡자는 제안을 했다.
10년 후 후금국을 선포하고, 다음해 명나라 20만 명을 몰살시키는 만주족.
피해 없이 기세를 꺾을 수 있다면 꺾는 게 좋다.
지휘부를 꾸린 모현성은 첩보를 받아 지도위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북방에 뿌려둔 첩보병이 하나씩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첩보대 도착. 울라부 유민 30명 구출. 귀순의사 받아서 함정으로 안내 중.”
“적 기마 2000기 포착. 북쪽 3일거리.”
“울라부 유민 300명 포착.”
“회령 북서쪽 300리. 적 기마 3000기 포착.”
“유인해. 두 부대를 합치게 만들어.”
모현성은 지도에 모형을 이리저리 올리며 적의 이동방향을 조절했다.
유민을 함정 쪽으로 옮기고 일부러 마차를 왔다 갔다 하며 흔적을 잔뜩 만들었다.
통신장비가 없는 시대라 말을 전하는데도 오래 걸린다.
경험이 부족한 모현성을 대신해 광해가 중간중간 조언해줘야 했다.
“야. 그리로 보내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야. 여기로 보내.”
“지금 그쪽 보내면 다 죽을 걸? 벌써 이틀 전에 적을 봤으면 이미 본대가 깔렸을 거야.”
지도를 짚으며 수정해줬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적이 있을만한 위치를 정확히 예측해냈다.
“결국 내가 다 하네.”
“아잉.”
모현성이 가져온 현대 위성지도와 교전 날짜.
광해의 전쟁경험.
두 가지가 합쳐져 전장은 모현성이 계획한 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휘부를 둘러본 후 전장으로 나왔다.
예정된 전장은 컴퓨터 최명길이 관리하고 있었다.
의외로 임기응변에 약한 최명길.
대신 지정된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무산철광과 마을을 건설하는 일도 최명길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아마 이곳 분지 전체의 설계도가 머릿속에 콕 박혀 있을 것이다.
“전하. 오셨습니까.”
“최명길. 준비 상황은?”
“거의 끝났습니다. 헌데 풀이 생각보다 잘 마르지 않습니다.”
“그건 괜찮아. 작전 전날 내가 손보마.”
광해는 최명길과 대화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두만강을 너머 넓은 평야가 이어지다가 야트마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있다.
이곳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붙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 준비란 대열을 맞추거나 훈련을 하는 게 아니다.
“끝났다! 11함정 종료. 우와아아!”
“12함정으로 가. 오늘까지 끝내야 해.”
“살려줘.”
땅을 파는 인부들.
“풀 다 벴는데 다시 자랐어! 이놈의 잡초들!”
“궁시렁 거리지 말고 당장 베라.”
풀을 베는 병사들.
“벌목 끝! 이젠 때려죽여도 못하겠다.”
“이젠 옮긴다. 주상께서 보고 계신다.”
“히익.”
나무 베는 기병들.
땅을 파고, 풀을 베고 나무를 베고.
축구장 열개 크기의 분지에 수천 명이 달라붙어 노동하고 있다.
전쟁 준비는 노동이다.
공병의 활약에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
무려 한 달 전부터 생노가다가 이어졌다.
광해는 언덕 위에 서서 참혹한 노동의 현장을 바라봤다.
가히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듯한 모습.
병사들이 땅 파는 모습을 보며 불현듯 데자뷰를 느꼈다.
자신이 군 생활을 할 때 테니스 병으로 3달간 차출된 적이 있었다.
테니스를 치러 간 것이 아니다. 간부 전용 테니스장 건설에 차출된 것이다.
포크레인이 와서 반나절동안 땅을 다듬고 떠났다. 그 후 광해는 롤러를 굴려 땅을 다지는 일을 했다.
200L 드럼통에 시멘트를 가득 채워 굳히고 리어카 손잡이를 붙인다.
이 500kg 시멘트 덩어리를 굴린다.
굴리다 쉬고 굴리다 쉬고 굴리다 쉬고.
이 짓을 세 달간 반복했다.
훗날 사회에 나와서 이것저것 겪어보면서 알게 되었다.
40만원을 써서 롤러를 불러 2시간 굴리면 광해가 세 달 동안 한 것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초반 군인의 세 달이라는 가치는 40만원보다 못한 것이었다.
열 받는 것은 테니스병으로 일할 때 그 일이 좋았다는 것이다.
내무반에서 고참들의 갈굼도 없었고, 행보관이 가끔 보급창고에서 고기를 훔쳐다가 던져줬기에 몰래 구워먹는 재미도 있었다.
세 달간 롤러를 굴린 게 내무실 병영생활보다 스트레스도 없고 편했다.
군대는 쓰레기다.
“군대 좆같네.”
좆같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그래도 니들은 필요해서 하는 일이잖아. 안 그래?”
광해는 병사들에게 일을 시키지만 개 같은 뻘 짓은 안 시킨다.
이거면 됐지.
지금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우의 피 한 방울과 바뀌는 것이다.
“예 뭐라 하셨습니까?”
광해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이괄이 조심스레 물었다.
모현성과의 의견충돌 후 광해는 이괄을 임시 종사관으로 뽑아 뒤에 붙여 다녔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괄아. 그보다 너 여진족하고 전투한적 있지?”
여진족의 원한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걸 보면 알 수 있지.
“예. 노토부락 토벌전에 7개 군 중 하나로 참전해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광해는 신이다.
용광로를 만드는 내내 뒤에서 광해를 지켜본 이괄은 왕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토벌전?”
“예. 노토족 수급 만 명을 베어낸 대승이었습니다.”
“그래? 전투는 어떻게 승리했는데?”
“마을로 진입해 저항하는 적을 죽이고 부락민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단순히? 적은 몇 명이었는데?”
“기마 500기 정도였습니다.”
“하. 기마 500기를 죽였는데 수급 만 명? 혹시 민간인도 죽였냐?”
광해의 말투가 사나워지자 이괄이 수그러졌다.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다.
이괄은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그... 그것이. 예 명령에 따라 여자와 아이까지 보이는 대로 죽여서 만 명을 베었습니다. 그들을 그냥 놔뒀다면 수만 명의 기마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조정의 판단에 의거 모두 죽이고 부락을 파괴했습니다.”
“시발. 인종청소잖아. 시발조선 하. 시발. 야. 너 지금 스무 살이잖아. 그땐 몇 살이었는데?”
“열세 살이었습니다. 명천현감으로 부임해 병사 500명을 지휘했습니다.”
“열세 살에 지휘관. 하...... 이 병신 찐따 같은 조선. 야. 땅 파.”
“예?”
“땅 파라고. 저기 가서 땅 파.”
광해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이괄은 오히려 점수를 더 잃고 말았다.
“하루거리까지 왔다. 모두 작전은 이해했겠지?”
“예.”
백인장 이상 간부를 전부 모아놓고 모현성이 일장연설을 했다.
모현성은 전군을 모아 연설하고 싶었지만, 광해가 말렸다.
전투 전날 그런 짓을 하는 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된다.
“공격을 받아서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가 준비한 전장으로 적을 끌어들여 우리의 계획대로 싸우는 것이다. 싸우기 전에 이기고, 이긴 후에 싸운다. 내일 전투는 없다. 그저 승리를 확인하는 활동을 할 뿐이다.
함정은 완벽하고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 되었다. 내일 우리는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이 만주족 기병 5000기를 분쇄할 것이다.”
허세 가득한 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모현성.
예전부터 느꼈는데 관종끼가 좀 있다.
하지만 백인장들은 그런 모습이 멋있게 보였나보다.
“와아아아!”
이미 이긴 분위기다. 사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질 수 없는 전투다.
적의 규모. 침공 위치. 침공 시기를 미리 알고 한달 전부터 함정을 팠다.
질 리가 없다.
“저녁식사를 하고 각 부대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라. 지금부터 소음 불빛 전부 통제하겠다.”
“예!”
간부들이 일제히 군례를 취하고 막사를 떠났다.
찌르지르찌르.
츠르르르르릇.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진인사대천명. 할일은 다 했으니 나머진 하늘에 맡긴다.”
모현성이 폼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광해는 그런 모현성이 신기했다.
“야. 안 무섭냐?”
“무섭지.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워. 그러면서도 한발 또 한발...”
“노래가사 하지 말고. 현대에서 왔으면서 긴장되지도 않냐? 잘못하면 너 죽어. 너 아니어도 이 병사들이 다 죽을 수도 있어.”
“그럴리가. 준비는 완벽하잖아.”
“내일 전투 직전에 비가 오면? 그럼 아군 피해 최소 이천명이야.”
“그땐 형이 활약해야겠네.”
“왼손의 봉인을 풀어서라도?”
“그렇지. 크크큭. 음. 크크. 뭐랄까. 살아있는 기분이야.”
“뭔 개소리냐.”
모현성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풀벌레 소리만큼이나 많은 별이 흐트러져 있다.
“현대에 있을 때는 죽어 있었던 것 같아. 그곳은... 뭐랄까. 이런저런 교육으로 세상 전체를 보여줘놓고 정작 시간강사일을 할 때는 골방에 박혀 눈알 붙이기만 하는 느낌이었어. 먹고살고는 있었는데 가라앉는 느낌이었거든. 나의 존재가 의미 없다 느껴지고. 당장 내가 죽어도 아무 문제없이 돌아갈게 보이고.
형. 만약 누가 형에게 연봉 오천 줄 테니 하루 여덟 시간씩 해수욕장의 모래개수를 세라고 시켜. 다 세면 다시 처음부터 세야한대. 55살까지 그 일만 하면 연금도 주겠대. 그럼 할 거야?”
“지금의 나라면 안하겠지. 하지만 현대의 나라면...... 하지 않을까?”
“그렇겠지? 아마 나도 하겠지. 내가 현대에서 느낀 감정이 그거였어.”
“돈을 버니까 무의미한 일을 하긴 하지만, 즐겁지가 않았다?”
“응.”
“그게 가장 효과 좋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네가 만드는 시스템도 결국은 그렇게 될 걸. 효율의 문제니까.”
“알아. 하지만. 그래도. 형의 제국은 조금은 다를 거야.”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끊어진 대화의 공백을 풀벌레가 메꿨다.
츠르르르르르르릇.
하늘엔 구름한 점 없었다.
- 작가의말
조선은 여진에 대한 인종청소를 했습니다
불편한 이야기고 그래서 다른 분들도 언급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역사는 공정해야 합니다
공정히 기록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선택적으로 유리한 역사만 가르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아베질과 같다고 생각해요
모두 공개하고 민낯을 공부한 후에 비교해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꽤 깨끗하니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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