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후나이 해전
순도 100% 픽션입니다
어느 날 모현성이 물어봤다.
“형.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어디일까?”
“음...... 미국?”
모현성은 광해를 매우 한심한 듯 쳐다봤다.
“형. 진짜 상식 제로구나. 아직 미국엔 아무것도 없어.”
“야 임마. 내가 정상이지. 광해 아비가 선조라는 거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 길가는 20대 30대 잡고 물어봐라. 반도 모를걸.”
“풋. 똥 싼 놈이 성낸다더니. 알았어 알았어. 어쨌든 현재 세계 최강국은?”
“음. 미국이 없으면...... 영국이나 프랑스?”
“땡.”
“어. 콜롬버스는 지금보다 과거랬지? 그럼 스페인.”
“틀렸어. 현재 지구 최강국은 중국이야. 명나라.”
“뭐? 중국이 뭐가 쎄다고. 내가 역사지식은 부족해도 영국의 배 두 척에 항복한 건 안다.”
“그건 나중의 일. 어쨌든 지금 최강국은 명나라야. 형도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이야기해 줄게. 현재 명나라의 추정인구는 1~2억이야. 그런데 유럽의 인구 총합이 대략 1~2억이야. 무슨 뜻인지 이해돼?”
“대가리 존나 많다? 하여튼 중국은 현대나 지금이나 머릿수만 많네.”
“어. 특히 무기의 기술력과 질이 중요한 현대전과 달리 지금은 머릿수가 전쟁의 전부야. 만약 중국과 유럽이 바로 옆에 딱 붙어 있고 서로 총력전을 한다면 중국이 이겨.”
“에이. 그건 좀 오바다.”
“가정이니까 의미는 없지. 자 그럼 두 번째 강국은 어디일까?”
“두 번째라...... 영국? 프랑스?”
“에휴. 형. 만약 조선과 영국이 바로 옆에 딱 붙......”
“조선이 이긴다고?”
“어. 일단 인구부터 조선이 영국의 두 배야.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지? 프랑스는 좀 힘들겠다. 프랑스 인구는 조선의 두 배거든. 그래도 전쟁이 3년 이내로 끝난다면 조선이 이기고 3년 이상 끌게 되면 프랑스가 이겨.”
“그건 니 상상이지?”
“내 정교한 계산. 이 차이는 정치체제 때문이야. 조선은 중앙집권, 프랑스는 지방 영주의 봉건주의. 조선군은 큰 전략에 따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격할 수 있지만, 프랑스는 각 영주의 사정에 따라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항복하는 등 분열돼.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면이 많이 보였고. 대신 전쟁이 장기전이 되면 각 영주가 힘을 합쳐서 조선이 힘들어지지.”
“그럼 조선이 세계 2위야?”
“아니. 내 계산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나라는 오스만제국 아니면 일본이야. 세 번째는 프랑스 스페인 조선 등등등.”
광해는 일본의 이름이 나오자 경멸의 시선으로 모현성을 쳐다봤다.
“너 이 새끼. 친일파냐? 노노재팬 몰라? 더러운 건 다하네.”
“역사를 보려면 직시해야지. 조선 만세. 단군 5000천년. 일본 등신~ 중국 떼놈들~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 형. 게다가 우리에겐 과거가 아니라 현재잖아. 역사를 제대로 봐야 해. 무작정 쪽바리 등신. 일본 개놈들. 다 죽여 버리겠다. 이러지 말자.”
“음...... 젠장. 알았다. 그냥 거부감이 들어서 그랬어. 그래서 일본이 2위인 이유는?”
“전쟁은 삶을 힘들게 하고 수많은 비극을 불러일으키지만, 많은 발전을 이뤄내기도 해. 일단 일본은 200년간의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어.
일본이 화약무기를 제대로 사용한 지 50년이 채 되지 않았어. 헌데 50년 만에 3열 조총술이나 조총 창병 혼합 편제 등 수많은 전술을 발전시켰어. 왜냐. 영주단위로 전쟁이 끊이지 않기에 살아남기 위해 강해질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거든.”
“그래도 전쟁술만 그렇지 나머진 다 박살났잖아. 미개한 배신이나 학살, 민란 같은 이야기는 들어본 거 같은데.”
이 몸은 일본을 강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다는 것은 군사만 뽑는 걸로 되는 게 아니야. 내정에도 신경을 써야 해. 간단히 설명해줄게. 한반도는 산지가 70%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30%밖에 안 돼. 그래서 추정 농지는 140만 결이고.
일본은 산지가 80%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20%밖에 안 돼. 일본이 한반도보다 크지만 추정 농지는 150만결 정도야. 조선과 얼마 차이 안 나지? 그럼 일본의 인구는 얼마정도일까?”
“음. 전에 설명했던 거지? 맬서스 트랩. 인구는 식량 한계까지 증가한다. 그럼 조선하고 비슷하겠네.”
“그런데 조선의 인구는 추정 1100만. 일본은 2000만이야. 차이가 크지?”
“내정을 잘했다는 거야?”
“그렇지. 간단히 이양법만 보자. 조선 초기에 모내기 농법, 이양법이 들어왔어. 벼를 따로 싹 틔웠다가 논에 물을 가둬 모를 꽂아 기르는 이양법을 하면 잡초가 쉽게 자라지 못해 김메기의 노력이 줄어들어서 농부 하나가 더 많은 면적을 농사지을 수 있고, 잡초가 줄어드니까 땅의 영양분이 쌀에 집중되어 같은 면적에서 쌀이 80% 더 많이 생산되지. 벼와 보리의 이모작도 가능해지고.
그런데 조선의 성리학자는 가뭄에 위험하다, 자영농이 무너진다, 등의 핑계로 금지시켰지. 사실 이건 그냥 핑계야. 잘된다고 해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건 없는데 흉년이라도 나면 뒤집어쓰니까 보수적인 선택을 한 거지. 쉽게 말해 책임지기 싫어하는 복지부동한 관료주의가 발전을 막은 거야.
반면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이양법이 도입되었고, 현재 일본 대부분의 농경지는 이양법을 하고 있어.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영주가 군사를 동원해 힘들게 논을 만든 거야. 덕분에 생산력이 늘어서 인구가 순식간에 조선의 두 배가 된 거지. 농경에 필요한 농민의 숫자는 줄었으니 그만큼 병사나 상인 등으로 쓸 수 있게 되었고.”
인구에 대한 설명을 듣자 그제야 광해가 진지해졌다.
일본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수탈이 심하긴 했어. 생산량의 80~90%까지 빼앗았지. 그야말로 농민은 죽지 못해 사는 정도였어. 덕분에 전국시대 200년간 평민계층의 단체반란이 700여회 일어났어. 평민이 살기 힘든 나라였지.
대신 생존을 위해 평민 단체가 성장해서 마을 단위, 상인, 장인 등 많은 단체가 발전해.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를 발전시켰어. 형. 만약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인구가 2000만 명이라면 누가 제일 강할까?”
“문맥상 일본?”
“어. 그러니 일본은 조심해야 해. 오스만 제국은 중국처럼 땅덩이가 커서 쎌 뿐이지 전투력의 밀도는 일본이 가장 강해.”
“그래. 이해했다. 적을 무시하는 건 안 좋은 일이지. 그런데 나중에 서양에 잡아먹히잖아.”
“사회가 안정되면 군사력을 줄이게 되지. 후삼국시대 한반도의 군사력은 강했지만, 고려가 통일하고 공신들의 사병을 없애면서 서서히 약해졌지. 일본도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막부가 들어서면서 군사력이 서서히 약해져. 당장 현재 일본은 대형선박의 건조를 금지시켰고 화약 무기를 통제하기 시작했어. 막부의 위협이 될 싹을 미리 없애는 거지. 앞으로 해금령을 하면서 기술 습득도 단절되고. 가장 역동적인 대항해시대 100년을 버리면서 서양보다 약해진 거야.”
“그래. 어쨌든 현재의 일본은 세계 2위 강국이라는 거지?”
“어. 그러니 조심해야 해.”
“알았다.”
모현성의 추정 군사력 2위 국가인 일본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운룡이 이끄는 판옥선 100척은 먼저 출발해 규슈 남단에서 광해와 합류했다.
이후 약속한 날짜에 나머지가 출발했다.
권준이 이끄는 우군은 규수 서쪽 복잡한 만을 정리하고 입부 이순신이 이끄는 좌군은 규슈 동쪽을 훑으며 내려온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운룡과 총군사 곽재우가 광해의 대장선으로 옮겨왔다.
암묵적 동맹을 받아들인 시마즈 요시히사는 두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직접 대장선에 올랐다.
참 대담한 사내다.
“출항하라.”
광해의 지시에 이운룡이 복잡한 명령을 내리고 함대를 출발시켰다.
광해가 탄 판옥선은 규슈 동쪽을 훑으며 올라갔다.
만나는 항구마다 어선들이 떠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대선단에 항구는 난리가 났다.
이운룡은 선단을 일자로 정렬하고 항구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고깃배들은 죽어라 노를 저어 항구로 들어가 배에서 내려 성으로 뛰어갔고, 일하러 나와 있던 농민들도 성으로 달려갔다.
항구인근까지 갔지만 저항은 없었다.
바다로부터 최대한 도망갈 뿐이었다.
함대는 모든 선박을 노획했다.
미리 준비된 조가 각 함선에 올랐다.
조선의 군사력이 조금 더 강해졌다.
항구가 보일 때마다 접근해 나포한다.
광해의 부대는 후나이, 현대의 오이타 시에 도착할 때까지 포탄 한번 쏘지 않고 이백척 이상의 배를 노획했다.
후나이의 넓은 항구에는 백여 척이 열을 맞춰 서 있고, 육지에는 만여 명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다.
소식이 퍼진 것이다.
적의 포진을 본 대장선에서 작전회의가 열렸다.
“전하. 고견이 있으십니까?”
곽재우가 대담하게 물었다.
“빠르게. 화약소모는 적게. 애초 계획대로 함대만 무력화 시킨다. 세세한 것은 알아서 짜봐.”
광해는 방향만 잡고 물러났다.
곽재우의 능력을 모르니 시험해 봐야 한다.
광해가 회의실을 떠나자 이운룡과 곽재우가 열심히 작전을 짰고 최종 보고를 올렸다.
“그대로 시행해.”
“충.”
이운룡은 함장들에게 자세한 지시를 한 후 전투를 시작했다.
“어이야~”
“으이야~”
“어으야~”
“으이야~”
배 밑창에서 노군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전력을 다해 노를 저을 땐 노래를 불러 박자를 맞춘다.
모든 포병은 각자 포를 장전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
300m.
200m.
100m.
판옥선이 최대속도로 돌진을 했다.
타당. 타앙.
적과의 거리가 100m까지 다다르자 열을 갖추고 있던 적진에서 화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봤자 조총.
날아오지 않는다.
조선군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슈슈슝.
콰쾅.
“왜. 왜 선회하라는 명령이 안내려오지?”
“발포명령은? 아직이야?”
선체 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총과 화살이 난무한다.
조선병 중 임란은 겪은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새로 뽑힌 병사들이다.
병사들의 두려움이 연기처럼 전장 전체에 피어오른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충돌에 주의하라. 화로를 보호하라!”
쿵.
쿠쿠쿵.
여기저기에서 함선과 함선이 부딪친다.
끼이이.
그오오.
강한 충격.
그리고 너울에 의한 2차 흔들림.
그 속에서 조선 병사들은 느꼈다.
‘낮다.’
강한 충격에 흔들린 일본수군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높다.’
판옥선 3층 포실은 사방이 막혀있고, 포구 주위로 약간의 틈만 보인다.
그 틈으로 적선이 보인다.
적선의 갑판은 판옥선보다 한참 낮은 곳에 있다.
적병이 창을 내밀지만, 닿지 않는다.
그 모습이 병사들의 마음을 호수처럼 고요히 안정시켰다.
‘나는 안전하다.’
“적선 곁에 붙어 있는 포구만 조란탄을 발사하라.”
발 아래 적선이 보인다.
단단히 고정한 화로의 뚜껑을 열고 나뭇가지에 불을 옮겨 붙인다.
미리 장전한 천자총통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하나. 둘. 셋. 넷.
콰아앙.
어두운 포실에 순간 밝아졌다.
쇠구슬이 날아간다.
포탄은 적선의 삼나무 선체를 뚫고 바다로 들어간다.
그 뒤를 좁쌀만 한 쇳조각과 굵은 모래 수백 개가 따라간다.
파바바바박.
적선 갑판에 몰려있던 백여 명 중 스물 가량이 피보라를 뿜으며 쓰러졌다.
파바박.
파바바박.
전선 여기저기서 피보라가 올라온다.
뒤편에 정선해 있던 대장선에서 보일 정도다.
“산탄총과 같은 원리인가.”
“응. 조란탄이라고 해.”
광해의 혼잣말에 모현성이 대답했다.
“솔직히 대포에 실망했는데.”
대포라 하기에 머리통만한 줄 알았다.
포탄 한발에 배가 침몰하는 거대한 쇠구슬이 날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탄환이 4.5~12cm다.
사정거리도 100~300m가 한계고.
정말 바싹 붙어서 쏴야 벌집을 만들어 침몰시킬 수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기술이 부족한 것뿐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 나름 가진 자원을 최대한 이용한 거지.”
“그래. 대단하네.”
부족한 파괴력을 산탄 원리로 극복해 보병살상에 주력한다.
거기다 곽재우의 전술도 마음에 든다.
일본의 주력함선인 관선은 1층이고 조선의 판옥선은 3층이다.
두 선박이 바싹 붙으니 체급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높이 차이가 3m다.
다급한 전투 중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상대 선박으로 넘어가려면 바싹 붙인 채 사다리나 갈고리가 필요하다.
그 시간동안 기다려줄 리 없고.
곽재우는 대담하게 바싹 붙여 일거에 소멸시키는 작전을 택했다.
“명랑해전에서 충무공의 대장선은 홀로 물길을 막고 네 시간을 버텼어. 수백 척의 적함을 상대로 네 시간 동안 전투를 이어나갔지. 물론 그 상황에서 병사들이 무너지지 않은 건 충무공의 지휘력도 있지만, 배의 스펙차이도 도움이 되었어. 일본군은 주로 상대 선박으로 넘어와 갑판위에서 육박전을 벌이는데 판옥선에는 넘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거든.”
“하긴. 적선과 동급이었으면 네 시간을 버티는 건 무리였겠지. 나였어도 마력이 부족해서 힘들었겠다.”
“어. 이순신이 위대한 건 맞지만, 그 위대함을 부각시키려고 선박의 차이는 일부러 서술하지 않는 게 역사학자니까. 솔직히 배의 스펙차이를 생각하면 원균이 등신이었지. 동래로 왜구 선발 300척이 넘어오자 원균은 70척의 판옥선을 불태우고 도망쳤거든. 만약 원균이 본래 해야 했던 대로 70척의 판옥선을 모아 동래로 진군했다면......”
“이순신은 그때 전라도에 있었나.”
“어. 이순신이 경상우수사였다면 임란은 1주일 만에 끝났을 거야.”
모현성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전투가 끝났다.
단 한발씩의 포격.
전투는 그걸로 끝났다.
나머지는 정리의 시간이다.
“네 말대로군. 일본군은 강하지만.”
“일본 수군은 약하다.”
모현성이 말을 받았다.
- 작가의말
네 알아요 하고픈 말씀이 많겠죠
국가 전투력 순위는 제 상상입니다
칼레해전부터 임진왜란, 세키가하라와 오사카전투 30년전쟁 등에서 동원한 병력을 기준으로 제 나름대로 평가했습니다
유럽을 너무 약하게 잡았다고 생각하실것 같지만 18세기 유럽과 17세기초 유럽은 레벨이 많이 달라요
30년 전쟁때도 국가의 명운을 건 전투에서 2만 vs 3만으로 싸우던 수준이었죠
꽃단장하고 미화하는 유럽의 의도와 달리 의외로 전쟁수행능력도 부족해서 싸우라고 보낸 부대가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그냥 ‘소멸’하던 시기였죠
일본을 높게 잡았다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이때의 일본은 전투력 포화상태였어요
마치 고려건국당시 지방호족이 병사를 최대한 운용하던 시기와 비슷하죠
이후 에도막부가 해금령과 선박제조금지 사병축소 등을 하면서 급격히 약해지죠
반론은 댓글로 받겠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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