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사법연수원
순도 100% 픽션입니다
한성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간간히 들렀지만, 이제 완전한 복귀다.
유전과 정유시설은 무산에서 옮겨온 화학연구소가 주가 되어 활용할 것이다.
플라스틱 제조법을 넘겼으니 그들이 연구하며 파생상품을 만들겠지.
기본적인 정무보고를 받은 후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허균과 예서, 이초란과 최명길.
조선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재들이다.
그들 앞에서 모현성이 설명을 시작했다.
“...... 이것이 사법고시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오백 명은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그 중 상위권이 판사 검사로 임용된다. 나머지는 변호사 자격증을 얻는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은......”
광해나 모현성이나 현대 시절 법조인이 아니었다.
그저 일반인이 알 법한 기본적인 법만 알 뿐이다.
그러니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있고 많은 토의를 거쳐야 한다.
현대의 법체계 중 기억나는 걸 뽑아오고 부족한 점을 똑똑한 신하들과 대화해 메워간다.
모현성은 광해도 알 법한 사법체계를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이들이 용어에 대해 묻고 별 문제 없을 거라며 동의했다.
이제 사법고시를 시작으로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면 된다.
그때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던 이초란이 손을 들었다.
“스승님. 판사 검사를 뽑는 시험에 변호사를 함께 뽑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위함이야. 복잡한 법체계에 대해 교육받고 실수하지 않도록 2년간 공부해야 하니까. 공인인증이라는 자격을 주기 위해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
“그래도 숫자를 제한하는 건 헌법에 위배됩니다. 광해법전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헌법이 있습니다. 모든 백성은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며 언제든 직업을 바꿀 자유가 있습니다.”
이초란이 뭔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
법의 올바른 집행에 인생 모든 것을 건 이초란은 너무 깊게 파고들었고, 광해나 모현성보다 훨씬 세세히 알았다.
광해가 이해를 못해 눈만 깜빡이자 모현성이 대답했다.
“그게 왜 문제지? 변호사를 하고 싶은 이는 공부하고 도전해 자격증을 얻으면 되잖아.”
“아닙니다. 국가는 자격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자격증을 따려 할 경우 국가는 일정치 이상의 점수를 얻은 모든 이에게 자격증을 줍니다. 돛이 없는 소형선박의 경우 아무런 자격증이 필요 없지만, 돛이 있는 중형 이상 배를 몰기 위해선 항해사자격증이 필요합니다. 그 자격증은 한산도에서 교육받고 시험받아 기준점을 넘긴 모든 이가 얻게 됩니다.
그런데 사법고시를 통해 오백 명만 뽑는다니요. 변호사란 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는 이는 그 인원 안에 들어가야만 직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건 헌법에 위배됩니다. 기준점을 넘은 모든 이가 자격증을 받고 그 직업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판검사는 국가에 필요한 자리만큼 뽑기에 숫자의 제한이 있더라도 직업을 위한 자격은 절대평가로 해야 합니다.”
이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현대를 살며 당연히 그러했다고 넘겼던 일인데 이런 문제가 있네.
그런데 이게 헌법에 위배되는 건가.
광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모현성이 답변했다.
“사법연수원 때문이지. 거기서 배워야 하니 무한정 숫자를 늘릴 수 없어. 아닌 말로 한 번에 만 명이 통과해버리면 어떻게 전부 집어넣겠어?”
“꼭 사법연수원에서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한산도의 항해사 교육은 사설학원이 많이 생겼습니다. 굳이 한산도에서 배우지 않고 목포나 군산의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한산도에서 시험만 봐서 자격증을 획득해 갑니다.
마찬가지로 변호사에 대한 사설 학원을 열게 한다면 변호사 출신인들이 교육을 행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사법연수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법고시는 국가에서 필요한 판검사 수에 따라 통과시키고 변호사자격증은 기준점을 통과한 이 모두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단순히 공부만 잘해서 될 일이 아니야. 지금까지 설명을 들었다면 판검사가 얼마나 중요한 직업인지 알 거 아니야? 사람이 기준점만 통과했다고 해서 미친놈이 아니란 보장이 없지. 2년간 교육을 지켜보며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이를 판검사로 뽑아야 해.”
둘의 설전이 이어졌다.
“그건 본질적으로 다른 말입니다. 누구도 인성을 알지 못합니다. 평생가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저 교육과 법으로 올바르게 살도록 압박할 수밖에 없고 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해야 합니다. 사법연수원은 판검사만 뽑아 2년간 교육시키되 변호사는 기준점 이상 모두에게 줘야합니다. 스승님의 설명은 모두 초라한 변명으로 겉돌고 있습니다. 이건 국가 권력을......”
“그만.”
모현성이 소리쳐 이초란의 입을 막았다.
냉면판관 이초란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모현성을 바라봤다.
표정은 없지만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모현성은 광해를 데리고 자리에서 옮겼다.
“형. 이초란 죽이자.”
“왜?”
“사법연수원은 권력 장악을 위한 핵심장치야. 그런데 이초란이 반대하고 있고 얘는 법조계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이초란이 나가서 떠들게 되면 처음부터 삐걱거리게 될 거야. 이초란이 여론을 만들기 전에 이초란을 죽여 입을 막자.”
“음...... 생각 좀 해보고.”
“빨리. 일단 난 이초란이 딴소리 못하게 들어가서 막을게.”
모현성이 안으로 들어가고 광해는 고민에 잠겼다.
무슨 말인지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모현성의 현대의 법체계를 가져왔고, 이초란이 거기서 허점을 발견해 반대했다.
모현성은 이초란을 죽이자고 했지만.
이게 죽일만한 일인가?
잠시 고민해봤지만 모르겠다.
모를 땐 물어본다.
황제는 돌아가는 게 아니다.
방에 들어가니 모현성과 이초란이 설전을 벌이고 있고, 주위 사람들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었으면 들어보자. 이초란 반대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봐라.”
광해의 말에 모현성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고, 이초란은 왕의 눈을 똑바로 봤다.
“예. 전하. 이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매우 끔찍한 장치입니다.”
“독점이라...... 자세히.”
“모현성 스승님께선 국가체계의 근본을 상호견제로 잡았습니다. 왕이 권력을 독점하되 그 밑에 일하는 신하가 뭉치지 못하게, 국가의 일을 실행하는 행정부와 법을 만드는 입법부,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 세 집단이 서로 견제하여 국가가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합니다. 이래야 동인독점이나, 서인독점, 북인독점 때처럼 한 당파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쥐어 왕마저 무시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사법연수원은 이 기본 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모든 인원을 국가 기관에 넣어놓고 2년간 반드시 교육하다니요. 이건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사법부를 길들이기 위한 감옥입니다.
검사가 죄를 찾고, 변호사가 죄인을 보호하고, 판사가 결론을 내리고. 역할만 보면 이들은 서로 견제하고 싸워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한곳에 몰아놓고 2년간 함께 교육하게 만들다니요. 이건 정말... 정말이지...... 너무 뻔하잖습니까?”
“뭐가?”
“사법연수원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면 사관학교처럼 기수가 생겨날 것입니다. 1기, 2기, 3기 이렇게요. 한곳에 갇혀 2년간 생활한 모두가 서로서로 끈끈한 정이 생겨날 것이며 윗기수에 대한 예의를 배워 저도 모르게 계층이 형성될 것입니다.
여기서 교육의 방향을 권력자의 입맛대로 맞추면 어찌 되겠습니까? 왕에게 충성하는 간신을 뽑는 곳이 될 것입니다. 2년간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왕의 입맛에 맞게 법을 왜곡하는 놈들이 검사, 판사가 될 것이며, 충성이 부족한 자들은 변호사가 되고, 정의를 위해 왕에게조차 반대하는 자는 기수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겠지요.”
“꼭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런 의도로 만드는 게 아닌데?”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처음부터 사법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만든 장치가 사법연수원입니다. 주상께선 그런 의도가 없을 지라도 다음 권력자, 혹은 그 다음 권력자가 사법권력을 독점하여 법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권력자가 차지하지 않으면 사법연수원의 누군가가 권력을 모아 자신이 권력자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장치가 유지되는 한 평등한 법 집행은 불가능 합니다. 한 곳에서 교육받은 선후배는 서로의 죄를 눈감아주고 가볍게 판결해 서로를 살리게 될 것이며, 이는 더 큰 죄도 망설임 없이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윤원형이 어찌 국정을 농단했습니까? 죄를 지어도 벌 줄 이가 없으니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인 것이지요. 사법권이 그리 될 것입니다. 검사가 죄를 지어도 검사는 기소되지 않을 것이며 변호사나 판사가 죄를 지어도 판사가 죄로 판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검사가 죄를 지어도 기소권은 검사에게만 있다.
판검사가 죄를 지어도 겁먹지 않는 이유겠지.
전관예우라는 말만 들어도 법집행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당연히 평등하지 않은 현대에 살다 왔기에 사법연수원의 문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초란은 모현성의 설명을 듣자마자 미래에 일어날 일을 손금 보듯 들여다봤다.
확실히 평민인 광해나, 모현성과 달리 이 시대의 똑똑한 이는 현대의 천재와 다를 바 없다.
“사법부가 법 위에 서고, 그들의 권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장치가 사법연수원이란 말이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또한 사법부와 연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을 행한 이가 법을 가장 잘 알기에 입법부에 많이 뽑히게 되겠죠. 즉, 사법연수원의 교육방침을 정할 수 있는 권력자는 사법권력과 입법권력을 자신의 개로 길들여서 자기 입맛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고, 자기에게 불리한 법 집행을 막고, 자신의 정적을 수사를 통해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선왕대의 당파싸움보다 더 지독합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선종보단 낫지 않냐?”
너무 갔네.
“아닙니다. 선왕 때 뭉뚱그려 동인, 서인이라 불렸지만 그들은 각자 이황이나 조식 등 다양한 스승을 모셨고, 스승에 따라 지역에 따라 교육내용과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달랐기에 서로 합치거나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 세력이 권력을 잡으며 하나로 일치단결하게 됩니다. 하나 된 힘이 큰 사업을 해낼 수도 있겠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한번 부패한 권력은 법 위에서 법을 제멋대로 만들어 연산군보다 끔찍한 독재자를 낳게 될 것입니다.”
맞는 말 같다.
광해는 이마를 지끈지끈 주무르고 있는 모현성을 바라봤다.
“반론할 거 있어?”
“없어. 초란이 말이 다 맞고, 그럴 의도로 만들려 했어.”
뭐여 시벌. 나만 모른겨?
나만 보통 사람이여?
아 존심상해.
예서야 너는 알았냐?
“안 좋은 거 알면서 왜 만들려고 했지?”
광해가 묻자 모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초란을 쏘아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 수십 년간 개혁을 멈출 수 없고 사회는 급격히 변하게 될 거야. 그때그때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것이고, 때로는 누군가 억울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완전 평등한 법은 어느 정도 살만한 때가 온 다음에나 가능하지 지금 시작했다간 개혁이 느려지고 발목이 잡히게 돼.
아닌 말로 사법권을 풀어줬다가 왠 미친놈이 최씨상단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하면 암흑기업이 밝혀지고, 상단이 해체될 걸. 공정한 입찰이 아니라 우리가 밀어준 것도 있으니까 형과 내가 감방 갈 죄를 짓기도 했고. 그래서 사법권력을 독점하려 했어. 우선 독점하고 나중에 때 되면 풀어주려고 했지. 허균과 최명길도 여기까지 봤기에 반대하지 않았을 거야.”
허균과 최명길도?
둘을 슬쩍 보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예서는...... 차마 볼 수 없다. 예서마저 고개를 끄덕이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아 섹스나 하고 싶다.
- 작가의말
아닙니다 판사님~ 이건 고양이가...
아니 이초란이라는 듣보잡 엑스트라가 헛소리를 지껄인 것이옵니다.
소인은(그리고 광해는) 전혀 저런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쇤네는 그저 사법인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참됨을 믿고 또 믿사옵니다
소인이 저 듣보잡 엑스트라를 죽여 사법을 모욕한 죄를 물겠으니 부디 용서해 주옵소서~
섹스~
이번장 쓰는데 대충 열흘 걸렸네요
쓰고보니 너무 쎄 보여서 지우고
약하게 쓰고 나니 넣으려던 메세지가 없어져서 지우고
졸라 쎄게 썼다가 마티즈 올까봐 지우고 또 약하게 쓰다가 에 또...
써놓고 보니 재미없어서 고치고, 너무 개그로 가니까 메세지 전달이 안되서 고치고...
뭐 암튼 그래서 비축분이 여기서 팍 줄어버려서 슬픔
ps. 현대의 사법개혁과 다른 말이애오. 그들과 엮지마새오. 전 둘다 시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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