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식량 식량 그리고 식량
순도 100% 픽션입니다
모현성과 넘쳐나는 말고기에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는데 한성에서 통신이 왔다.
-광해님~
예서가 이럴 땐 괜찮았는데 허균이 이러니 별로네.
“예서는 떠났나?”
-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옵고 방화이옵니다.
“방화?”
-예. 한성과 충주, 나주, 전주 등 대도시 열 군데에서 조직적으로 불을 질렀습니다. 방화범 몇을 잡고 보니 명나라의 개방이라는 조직이었습니다. 지금 잔당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개방을 최대한 박멸했는데도 결국 침투했구나.
CCTV 수백만 개를 설치해도 실종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조선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방법은 없다.
“최대한 수색해서 쓸어버려. 피해는?”
-최소 삼천 채 이상 전소되었습니다. 사망자도 수백 명에 달합니다.
이 거지새끼들이.
온돌에 기와올린 집은 굉장히 비싸다.
대부분은 나무와 짚을 올린 초가집에 산다.
인구가 3~5만씩 집중되어 있는 대도시들은 특히나 가난한 이들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에 피해가 더 크다.
광해건설에서 도시계획에 따라 하나씩 온돌집으로 짓고 있지만, 아직 빈민가까지 손보지 못한 상태다.
“우선 알겠다. 정인홍에게 구호계획 세우라고 해.”
그리고 다음날.
-광해님~
“용건만.”
-홍수이옵니다. 만경강과 금강이 넘쳤습니다. 한성에 내리는 비도 심상치 않습니다. 자칫하면 한강도 넘칠 것 같습니다.
복은 함께 오고 화도 함께 온다.
수해대책은 매년 세운다.
저지대 둑을 보강하고, 작은 하천의 물길이 바뀐 걸 바로잡는다.
그래도 완벽하지 않다.
수십 개 댐으로 수량을 조절하는 현대에도 걸핏하면 넘치는 데 중장비 없는 이 시대에 완전히 막을 순 없다.
조선의 전 인구가 10년 이상 치수에만 매달리면 효과를 보려나.
현실적으론 그저 저지대 마을을 고지대로 옮겨 죽지 않게 버티는 게 한계다.
옆에서 모현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빨리 돌아가야겠네. 형 혼자는 돌아갈 마력 있지?”
마력은 있지만.
“돌아가서 뭐하라고?”
“뭐하긴. 구조하고 전염병 잡고, 살릴 사람 살리고. 화재로 집 잃은 사람들 온돌 집도 만들어주고. 마법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안하는 것보다 나을 거 아냐.”
“낳긴 뭘 낳아.”
“어? 방금 개그 한 거야?”
“......”
잠시 대화가 끊겼다.
두만강에선 철공들과 광해건축 인부들이 오늘도 노동을 하고 있었다.
교각 자리에 흙을 가져다 부어 자리 잡는 일.
“남쪽에 큰 비가 왔으면 여기도 큰 비가 올 수 있겠군.”
“어. 맞다. 큰일이네. 가서 중지하라 해야겠어. 수해대비부터 하라고 하고 음... 형의 힘으로 만들면 어떨까?”
“1차시도 때도 내가 직접 만들었으면 무너지지 않았겠지. 마법으로 간단히 만들었을 테고.”
모현성은 광해가 무언가 진지한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직접 만들지 않은 이유가 뭐지?”
“형 혼자 다 할 수 없으니까. 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하니까. 실패가 쌓이면서 앞으로 만들 교각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되겠지.”
“그렇지.”
“그런데 이건 좀 다르잖아. 개방의 수작이고 명백한 자연재해잖아.”
“자연재해로 입은 피해를 국가에서 모두 보상해주면 좋아할까? 개방의 분탕질을 막지 못한 책임을 국가가 짊어지면 백성들이 안도할까?”
“어... 당연한 거 아냐?”
“다른 백성들 입장을 생각해봐. 국가는 평등해야 해. 누구는 보상해주고, 누구는 그만큼 받지 못하면 반드시 불만이 생겨. 수해로 잃은 재산과 집을 국가가 만들어준다? 그럼 어부들은? 소선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어부가 수백이야. 국가에서 해금령을 풀어줬으니 국가 책임인가? 그들에게도 똑같이 목숨값을 보상해줘야 하나?
초가집에서 집안에 불 피우고 자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몰살된 집이 수백가구야. 그들은? 호랑이에 물려죽은 집은?”
광해의 말에 모현성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기다린 광해가 입을 열었다.
“넌 현대에 살며 역사를 공부하고 과거로 왔어. 이 시대에 현대를 접목시키려 하고 있고. 반면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계에 끌려갔어. 거긴 여기보다 더한 야만의 시대였고, 귀족의 세계였지. 나는 현대와 이계, 그리고 조선 세 차원을 경험했지.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야.”
“뭐?”
“누구도 남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 한다. 거기서 난 마법으로 현대적 복지를 시도해봤거든. 그 결과 마법전력이 복지로 들어가니 군사력은 약해지고 극빈민층이 식량을 얻게 되자 빈곤층이 일을 멈춰 복지를 받는 극빈민으로 바뀌더라. 나라 전체가 약해져서 한차례 수도를 빼앗겼었지.”
“음... 공산주의 단점인가. 영국병이네.”
“거기까진 모르겠고, 나라는 행복을 책임질 수 없어. 현대 노르웨이마냥 석유가 많으면 몰라도 지금은 불가능해. 현재로썬 굶어죽지 않게 생명까지만 보장해주고 나머진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쟁취하도록 해줘야 해.”
“작은 정부론인가. 지금으로썬 그게 한계일 수도.”
“몰라 그런 거. 어쨌든 내가 느낀 건 그래. 지금 가서 온돌집 만들어주고 내년 가을까지 먹을 식량 줘봤자 신의 힘을 받은 내가 미리 구해주지 않았다고 분개하겠지. 개방의 방화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진작 살려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고. 고생해서 농사짓고 있는 이들은 왜 저들은 놀면서 쌀을 받냐고 불만을 품게 될 거야. 초가집에 사는 빈민들이 일부러 자기 집에 방화해서 개방 소행이라 할 수도 있어. 평등하게 온돌집을 만들어 주길 요구하고 내년 가을까지 놀면서 쌀을 배급받길 원할 거야. 모두가 그러진 않아도 분명 누군가는 그럴 거야.”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무슨 말인지...... 일단 종교활동에는 형이 외적과 싸우고 있다 소문내게 만들어야겠네. 종교활동에서 공표하는 거야. 명나라군 20만이 쳐들어왔고 지금 한창 싸우고 있다. 10만 이상 죽였다. 이렇게 말이야. 이러면 형이 구해주지 못했다고 불만 갖는 게 줄겠지. 모든 불만을 명나라와 개방에게 돌리는 거야. 그리고 개방척결 활동을 백성 스스로에게 시키고.”
“그래.”
모현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지도를 펼쳤다.
평안도 북서쪽 요동반도.
곽재우가 이끄는 관서군이 그곳 백성들을 요서지방으로 쫓아내고 있다.
“수해로 농사 망친 이들을 여기로 이동시키자. 해안 평야가 넓으니까 일인당 3결씩 줄 수 있을 거야. 국가의 은혜로 집과 땅을 주고, 중국 놈들이 농사짓던 거 걷어서 먹으라 하자. 거부하면 아무 혜택도 주지 말고.”
인구의 이동은 강제로 해선 안 된다.
스스로 선택해서 해야 한다.
새 부부가 탄생해도 근처에 나눠줄 농지가 없으니 먼 곳을 선택하게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일부는 부모의 집에 얹혀살며 새 땅을 받길 거부하고 있다.
그건 강제할 수 없다.
가난하지만 화목하게 모여 사는 걸 스스로 선택했으니까.
“방화 피해자들도 요동으로 보내자. 집을 잃었을 뿐 농지는 그대로일 테니까 가을걷이까지 마치고 옮기면 되겠네. 여름이니 얼어 죽진 않겠지.”
“그래라.”
요동지역을 새 영토로 얻었으니 어차피 백성을 이주시켜야 했다.
고향과 가족, 이웃사촌을 떠나 머나먼 타지로 이주하는 것은 인생일대의 모험이다.
억지로 할 수 없는데 차라리 잘 됐다.
화재와 홍수에 대한 대책은 일단 일단락되었다.
그때 관료 하나가 불안한 눈을 흔들며 다가왔다.
불길하다.
“...... 광해님을 뵙습니다.”
“쫄지 말고. 왜?”
“그게... 감자꽃이 피지 않습니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꽃 피워줄까?
그게 왕에게 보고할 일이냐?
“그게 무슨 말인데?”
“그...... 모든 감자가 죽었다는 뜻이옵니다. 확인하기로 무산과 청진, 연변의 모든 감자가 다 죽었습니다. 어쩌면...”
헐.
보고할만하네.
“형.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옆에서 모현성이 끼어들어 설명했다.
감자는 식물이니 당연히 꽃이 피고 씨앗을 만든다.
그런데 감자가 씨앗을 만들게 되면 영양분이 거기에 집중되기에 땅속 감자의 크기가 작아진다.
그래서 감자농사에서 꽃따기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감자에 꽃이 피면 그걸 전부 꺾어서 씨앗이 맺히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크고 튼실한 감자를 수확할 수 있다.
인류는 이 과정을 수백 년 간 반복했다.
감자를 수확하고 그 감자를 다시 심어 증식시키길 반복하니 유전자클론 감자가 생겨난다.
모든 감자가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거다.
인류 최초의 유전자복제식품, 감자, 고구마.
모두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으니 병충해에 매우 취약해진다.
유전자가 다양하면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남겠지만, 모든 유전자가 동일하니 한 개체가 죽으면 나머지 모든 개체가 함께 죽는다.
“대영제국의 식민지 아일랜드는 모든 밀을 영국에 뺏기고 대신 감자로 먹고 살았는데 감자 역병이 돌았지. 영국에선 아무런 구호조치도 없었고 결국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게 됐어.”
“역시 영국인가.”
“식민지에서 백만 명이 죽어도 밀 수탈을 멈추지 않는 민족이지. 감자의 범위가 어떻게 되지?”
모현성이 묻자 관리가 떨면서 대답했다.
“함흥이북으로 전체 지역과 이남의 산간지역도 감자를 심고 있습니다.”
“양은?”
“조선 전체 식량의 이할 정도가 감자입니다.”
많이도 퍼트렸군.
그 감자가 다 죽는단 말이지?
영국처럼 조치하지 않으면 100만 명 이상 굶어죽는다.
“화재. 홍수. 감자역병. 종합선물세트네. 아주.”
무산에서 놀면서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했는데 세상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모현성은 광해에게 자료를 받아 자기가 현대에서 조사했던 것을 찾았다.
감자 역병은 중요한 것인지 따로 기록되어 있었다.
“여깄네. 한번 병이 돌면 병균이 2~3년 이상 살아남아 재차 발병해. 말라 죽은 감자의 뿌리 끝까지 태워야 해. 일단 모든 감자밭을 뒤집어 잔뿌리까지 캐내 태운다. 마을단위로 작업해서 산불로 번지지 않게 만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3년간 감자농사는 금지다. 해당 지역엔......”
감자만큼 추위에 강한 작물이 없다.
싹트는데 드는 시간도 짧고.
그래서 북방과 산간 지역에 감자를 퍼트린 건데.
“...... 내년부터 조, 피, 콩을 심는다. 옥수수도 시험 삼아 심고. 광해농업에 연락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라 해라.”
티끌만한 좁쌀과 피죽을 주식으로 삼게 되었다.
그거 더럽게 맛없는데.
“알겠습니다. 스승님.”
모현성에게 스승이라 부르는 걸 보니, 얘도 백관인가보다.
감자 역병에 대한 조치는 했다.
“화재 홍수는 문제도 아니었군. 감자라...... 새 영토 쪽에서 식량 나올 건 없냐?”
모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3년은 있어야 해.”
현재까지 곰 섬에 이만 명이 이주했고, 구름표범섬에 오만 명이 이주했다.
집을 짓고, 도로와 창고를 만들고, 평지를 개간해 논을 조성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수확하진 못하고 있다.
자급자족이 안 되니 국가가 이주자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있다.
광해소망교를 믿고 이주한 이들인데 배급이 끊기면 다 죽거나 반란이 일어난다.
작년까진 나하에서 물건 팔고 얻은 쌀로 배급하고 있었는데.
“모든 걸 동원해야겠군. 고난의 행군이야.”
“크크큭. 북한도 아니고. 쯥. 너무 급하게 확장하긴 했지.”
“우선은 허리띠 졸라매고 버텨야지. 식량이 부족하면 나라 망한다.”
형 때문에 일정이 빨라진 건데... 중국한테 좀 참지... 구시렁거리는 모현성은 무시한다.
“종교행사에 식량 문제를 공개한다. 모두 식량 아껴먹으라 하고, 곡류 대신 미꾸라지 메뚜기 해산물 등 대체 식량 우선 먹게 만든다.”
“예이~ 전하.”
“광해상회에서 식량 값 50% 올려서 최대한 수매해. 일단 확보해놓고 분배하든 팔든 해야지.”
“예이~ 전하.”
모현성이 장난처럼 대답하면서 받아 적었다.
“곽재우한테 진군속도 올리라고 해. 요동의 중국놈들 쫒아내면서 몸만 나가도록 만들어.”
“어.”
“일단 수해지역과 방화당한 사람들부터 올려서 농사 마무리 하게 만들어. 일인당 십 결 씩 농사짓게 만들어. 추수철엔 병사들도 추수 거들라 하고.”
“오케이.”
“일본하고 동남아에서도 최대한 걷으라고 해. 상품 값 좀 내리고 식량 위주로 교환하라 명령하고.”
“오케이.”
“이덕형은 명나라 쪽 소수민족에게 쌀 사라고 하고. 음... 지금 명나라 가는 건 위험하니까 차라리 그놈들의 입항을 허가하자. 영종도에 광해상회 만들어서 그놈들이 쌀 싣고 오는 건 받아들이자고. 이 정도면 될까?”
“약간 부족할 걸. 식량 20% 감소면 300만 명이 먹을 양인데.”
“여진족은...... 내가 가야겠군.”
“어. 급하니까 빨리 시작하자.”
“그래. 난 만주로 갈 테니 니가 한성에서 총괄해라.”
“예이. 어차피 최명길이 다 하겠지.”
힘들고 복잡한 일엔 최명길을 갈아 넣으면 된다.
무산에서의 여름휴가가 취소되었다.
허균과 통신으로 복잡한 명령이 하달되었고, 모현성은 곧장 출발했다.
휴가를 떠난 예서 일행은 파발마의 연락을 받고 한성으로 발을 돌렸다.
또 갈리게 된 최명길이 절규를 했다지만, 내 일 아니니 상관없다.
모현성이 출발한 다음날 간삼이 도착했다.
“충.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헉헉.”
간삼과 임경업, 호위 위사 백 명이 기마를 타고 달려왔다.
의주에서 무산까지 험한 산길을 엿새 만에 왔으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지만.
“출발준비하자. 급하다.”
곧장 출발해야 한다.
고난의 행군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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