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모병제
순도 100% 픽션입니다
사내 이름은 연국. 열아홉 살이다.
3년 전 장가갔고, 지난해 전염병으로 아버지와 아내를 잃었다.
비슷할 때 남편을 잃은 누이가 집으로 돌아왔기에 어머니, 누이와 셋이 살고 있었다.
함께 살던 어머니와 누이가 사라졌다.
“그 집 매일 싸웠어. 어제도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
“남자가 일을 안 하니까. 어미와 누이가 일해서 버는 품으로 먹고 살았지.”
“연국이는 매일 술만 마셨어.”
“어미는 어디 갔지? 참 성실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배도 자기 배 아니야. 연국이 그놈이 일은 무슨 일.”
그리고 집과 배에 남아있는 핏자국.
모든 정황은 연국이 가족을 죽인 걸 가리킨다.
그런데 소망이 없다.
술값 많이 벌고 싶다 - 62
아들이 벌 받지 않았으면 - 82466
아들과 어머니의 소망이고, 누나의 소망은 없다.
애매하다.
보통 살해당하면 죽는 순간 원한이 생기게 마련인데 없다.
자신이 죽는 것도 모르고 죽었나.
간삼이 조사해온 바를 확인한 후 이초란을 불렀다.
“무죄입니다.”
냉면판관 이초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죄?”
“예. 증거가 없습니다. 교리에 따르면 이 경우 무죄입니다.”
“야. 딱 봐도 저놈이 범인 맞잖아. 상황이 이해가 안 돼? 어미의 소망도 아들이 죄 지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 누이는 소망이 하늘에 닿지 않았을 뿐이야.”
“제가 봐도 아들이 범인입니다. 그래도 법에 따르면 무죄입니다. 법에 예외는 없습니다.”
법에 예외가 없다니. 21세기에도 지켜지지 않는 원칙인데?
“니가 봐도 저 놈이 범인이잖아. 그럼 잡아야지. 저 놈을 그냥 풀어주면 죽은 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겠어?”
“고문으로 실토를 받는다면 이 세상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상께 소망이 닿지 않았다면 정황만으로 고문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악용되어 더욱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초란은 과거 매우 억울한 일을 겪었다.
가해자는 벌 받지 않고 피해자가 지속적인 피해를 받는 슬픈 일.
광해에게 구제된 이후 그녀는 법에 파고들었고, 누구보다도 냉정한 판관이 되었다.
악인이 죄업만큼 벌을 받고 피해자가 당한 만큼 구제받는 데 모든 정신을 쏟는다.
훌륭한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강바닥에 잠수해서 시체를 찾아야 하는 건가.
그러기는 귀찮고.
“알았다. 가봐.”
“광해님. 판결 대기 중인 범죄자가 이만 명 있습니다. 남산에 들러 판결을 내려 주시길.”
“알았어. 어차피 이제 시간 날 때마다 처리할 생각이었어.”
이초란을 보내고 돌아서니 찜찜하다.
소망도 없고, 마력을 얻는 것도 아니니 귀찮아서 무시할까 하는데 찝찝하다.
그 새끼가 범인 맞는데.
마음에 걸린다.
“에이. 짜증나. 밀주.”
밀주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연국 사건 알지? 그 놈 납치 해다가 고문해서 실토 받아.”
“예. 전하. 실토 받은 후 판관에게 넘깁니까?”
“아니. 묻어. 이초란에게 걸리지 마라.”
내가 왜 이초란의 눈치를 보는 거지?
정충신 효과인가.
사람이 너무 올곧으면 괜히 눈치 보게 된다.
얘도 치워야겠어.
주위엔 간신만 채워놔야지.
바로 다음날 밀주에게 보고가 왔다.
간밤에 윤국을 납치해 고문한 결과 윤국은 범인이 맞고 어미와 누이를 죽이고 배에 실어 강바닥에 가라앉혔다는 증언까지 들었다 한다.
당연히 윤국은 땅속에 파 묻혔다.
사랑니 사이에 낀 오돌뼈 조각이 빠졌다.
다음날부터 남산에 출근했다.
자잘한 범죄자는 이초란이 처리했지만, 판결이 불분명한 자들은 보류 상태로 한성 근처에서 노역형을 하고 있었다.
이초란이 범죄자를 하나씩 데려오면 광해가 원한을 읽어준다.
죄의 판결은 딱 두 종류다.
사형 혹은 재산몰수와 노역형.
죽을죄를 지은 자는 죽인다.
죽지 않을 죄를 지은 자는 노역을 시킨다.
태형은 없앴다.
때린다고 속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노역형으로 대체한다.
돌구는 안보군의 수장이다.
삼천 명의 병력을 지휘하며 정보수집, 암살, 미행, 전국 역참, 흙가마솥, 염초밭을 관리한다.
염초꾼 출신이 모여 조직되었기에 충성도가 높고 광해가 가장 먼저 만든 조직 중 하나다.
그런데 역할이 검계와 겹친다.
함께 조직된 수호군이 금군을 장악하고, 전국 군영의 중간 지휘관까지 오른 것과 비교하면 많이 처진다.
세력만 놓고 보면 검계에도 밀린다.
마적단 출신 기마를 비롯해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파락호부터 노점에 삥 뜯는 양아치와 기녀의 포주, 앵벌이 조직, 소매치기 등 검계로 분류되는 이가 이만명이다.
양지에서 정보 수집하는 안보군과 음지에서 수집하는 검계 중 누구의 정보력이 더 강하냐 묻는다면 검계가 앞선다.
그랬기에 돌구는 부하들의 눈총을 많이 사고 있다.
자신들도 수호군처럼 출세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돌구는 미소를 지으며 검계의 집회를 바라봤다.
“반갑다. 조선의 왕 광해다.”
석계 마을에 검계 이만 명을 모아놓고 집회를 했다.
분분히 인사하는 온갖 잡것들.
광해는 모여든 숫자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것들 언제 다 구분하지.
오랜만에 한성에 오니 할 일이 쌓여 있다.
다시 함선을 타고 유람이나 하고 싶다.
하지만 광해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광해가 간부들을 이끌고 검계 속으로 들어갔다.
“너 왼쪽. 너 오른쪽. 너 오른쪽. 너 왼쪽......”
무려 이만 명.
하나하나 얽힌 소망을 확인하고 분류해야 했다.
아침에 시작한 일이 저녁에 끝났다.
지루한 일임에도 검계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주위를 둘러싼 흉흉한 기운에 반발한 생각도 못했다.
“돌구야!”
이만명의 분류가 끝난 광해는 돌구를 불렀다.
“예. 전하.”
돌구를 부르자 안보군이 나섰다.
소집에 응하지 않은 이천여명의 검계가 안보군에 잡혀 끌려왔다.
그들 대부분이 여기저기 얻어터져 있었다.
검계가 안보군을 볼 때, 안보군도 검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광해가 검계를 소집했을 때 죄가 많은 이들 일부는 지하로 숨는 것을 택했고, 지켜보고 있던 안보군이 그들을 잡아 왔다.
“이것들은 전부 왼쪽으로.”
“예.”
분류가 끝난 후 광해가 나섰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지.
“왼쪽 열. 대충 칠천명인가. 너흰 범죄자다. 내가 금한 살인, 약탈, 강간 등을 행했다. 허나 밀주를 따라 내게 투항했으니 그 공을 봐서 죄 값을 덜어주겠다. 군에서 3년간 봉사하라. 그럼 모든 죄를 씻어주겠다. 동의하느냐?”
답정너지.
여기서 감히 거부하면 죽일 건데.
살인자도 섞여 있지만, 밀주의 얼굴을 봐서 이걸로 끝내는 거다.
“감사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됐고. 우측 열. 너희는 죄가 많지 않다. 복귀해서 원래 살던 대로 살면 된다. 어차피 너흴 치워도 다른 양아치가 그 자릴 차지할 테니 남겨주마. 단, 선은 넘지 마라. 너희 중에 원한다면 군에 흡수되어 정식 군이 될 기회를 주마. 봉록도 나갈 것이다. 거부하면 검계의 삶을 살아도 된다. 너희 중에 군에 들어올 자 있느냐?”
광해의 말에 잡것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손을 든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손을 든다.
범죄자보단 양지에 나오는 게 좋다는 뜻인가.
“돌구. 밀주. 정리해라.”
검계의 정리.
양반의 난 때 솎아지지 않은 범죄자들.
이들을 정리하기 위해 밀주에게 검계를 장악하게 만들었지.
조선이 약간 청소되었다.
청결도가 1% 정도 올라가려나.
범죄자들 입장에선 검계의 주인에게 뒤통수를 맡은 격이리라.
허나 어쩌겠어.
왕의 뜻인데.
만오천 가량의 포악한 병사를 얻었다.
<병사 모집령>
전국 관아에 모병에 관한 방이 붙었다.
기존 병사 중 절반가량이 아전 시험에 붙어 떠났기에 당장 육군이 줄어들었다.
뽑아야 하는데 방법의 문제가 있다.
“모병제? 징병제?”
“당연히 징병제 아니냐? 21세기에도 징병제를 유지했잖아.”
예전에 모현성과 군제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다.
“형. 징병제라고 해서 꼭 비용이 싼 건 아니야. 징병한 집안의 군역을 없애주는 등 여러 혜택을 주니 그 비용이 모병 비용하고 비슷해. 거기다 애국심 프레임을 세뇌시키는 비용도 들지. 물론 모병제보다야 싸겠지만 형편없는 전투력을 생각하면 싼 것도 아니야. 형도 알잖아. 공짜로 끌려온 인간이 당하는 처지를.”
“...... 알지.”
21세기 징병생활.
20대 초 인생의 황금기에 군 생활을 하면서 상명하복의 더러움을 마음껏 느꼈다.
훈련이랍시고, 차량과 군 장비의 줄을 맞추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다.
방문한 사단장 앞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군기를 보여주기 위해 오와 열을 딱딱 맞추는데 시간을 버린다.
장교가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적과 싸우는데 하등 쓸데없는 짓거리만 시킨다.
전투 준비를 하고 훈련을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훈련은 한 달에 한두 번 있을 뿐 억지로 징집한 병사들의 시간을 버리는데 공을 쏟았다.
행정관 친구의 모내기를 돕고, 보급장교 차 트렁크에 고추장박스를 실어주고 의미 없는 경계근무에 인생 최고의 나이를 소모한다.
선임 병사들의 심심풀이로 극한의 노예생활을 경험한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전쟁 기술은 반년이면 전부 익히고 나머지 시간은 군사 비리에 이용당하기 위해 소멸된다.
“넌 군대도 안 갔잖아! 똥방산 새끼가!”
“에이 꼭 똥을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나. 조선의 요역을 봐도 알잖아. 나라에서 비용 없이 징집하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지는지. 농한기인 겨울에 인간들 불러다가 얼음물에 사금 채취하라고 몰아넣는 짓. 이 시대의 징집이 그래. 일단 징집되면 어디하나 병신 되지 않는 한 전역할 수 없어. 인생이 끝나는 거야. 결혼도 힘들고 재산도 모을 수 없고. 즉, 인생 끝난 거지.
함경도 평안도에 끌려간 병사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 그러니 더 잔인해지지. 기회 되면 강간하고, 약탈하고. 이 시대 전쟁에서 강간, 약탈이 필수인 것도 그것만이 인생의 낙이니 그걸 막으면 반란이 일어나서 그래.”
조선에서 유지하는 상비군은 대략 십 만.
그들의 인생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생각해보니 불쌍하긴 하네.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봉급을 주고 각 집안에 혜택을 줘서 끌어들이자. 전역기간도 정해주고, 남고자 하면 봉록을 올려 승진시켜주고. 그들의 인생도 좀 가치 있게 만들어 주자고.”
“인본주의냐? 그렇게 하든가. 그런데 모병을 해서 비용 유지가 되겠냐?”
“역사를 보면 가끔 아웃스탠딩하는 제국이 있거든. 마케도니아나 로마, 당나라나 몽골.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 ......”
모현성이 말을 끌었다.
광해는 무심히 바라봤다.
“뭐냐고 물어봐야지?”
“니 의도대로 하기 싫어서.”
“쳇. 공통점이 뭐냐면! 제대로 된 군대는 싸울수록 돈을 번다는 것이지. 적과 싸워 죽는 자도 적고, 적을 박살내 얻어내는 게 훨씬 많아지니 전쟁을 치를수록 강해진다는 거야.”
“군대로 돈을 번다?”
“그렇지. 그리고 우린 그런 부대를 조직할 수 있고.”
“하긴.”
광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 모집령 아래 적힌 설명.
병사의 가족은 잉여 토지의 배분에 우선권을 가지고, 세금이 줄어들며, 병사의 녹봉을 가족이 받으며 3년 후 전역할 경우 넓은 토지를 받고......
다양한 혜택이 적혀 있다.
거기에 하나 더.
<왜국의 수군은 전부 박살냈다. 이제 조선은 배를 타고 다니며 왜국에 대한 공세를 이어갈 것이다. 병사들은 적 병사가 적은 곳에 상륙해 안전하게 적을 소탕하고 영토를 넓힐 것이다. 왜국에 원한이 깊은 이들은 자원하라.>
“이 놈들. 아버지의 원수를.”
“어머니가 끌려가셨지. 난 구해와야겠어.”
“역시. 광해님.”
“내 소망이었어. 반드시 복수하리다.”
구름 같은 지원자가 몰렸다.
- 작가의말
연국이 비슷한 사건이 있었죠
봉고차로 실어나른게 분명해 보이던 사건
결과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방면
그 사건을 보면서 고문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폭아저씨가 고문해서 시체찾아서 감옥에 쳐 넣어주면 참 멋있을것 같은데...
그냥 그렇다고요...
댓글폭탄 감사해요
최고! 짜릿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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