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마카오 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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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볼.”
어둠속에 불덩이가 생겨나더니 바다 위를 날았다.
돛.
회칠하고 물까지 뿌려둔 돛에 불이 붙었다.
선원들이 서둘러 꺼보려고 하지만 금세 돛대까지 옮겨 붙었다.
노가 없는 상선은 돛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조선군을 뚫어낸 상선들이 발을 잃고 멈춰섰다.
“판옥선은 뒷정리하고 해적들은 상륙하라.”
개떡이의 명령에 판옥선이 무장상선과 적 갤리온에 달라붙었다.
그 사이를 정크선이 북진해 마카오 섬에 내렸다.
쿵. 쿵.
저 멀리 섬에서 둔중한 폭음이 들려왔다.
“우리도 가자. 큰 피해 볼 필요는 없지.”
“형. 쟤들 되게 약해. 음.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테지만, 가보자.”
조각배를 타고 마카오 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나있었다.
요새에 오르니 백칠이 군례를 올린다.
“경과는?”
“적 이백사십 명 중 포로를 백여 명 얻었습니다. 나머지는 사살했습니다.”
“그것밖에 안 돼?”
“그 중 전투요원은 오십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포도 소형포 두문밖에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요새랍시고 있는 건 바위산의 돌담길이었다.
키 높이의 돌담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서양에 대한 부풀려진 인식을 나조차 갖고 있었구나.
광해는 스스로의 상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형. 아직 유럽은 약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마카오에서 다섯 차례 붙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병력을 동원한 전투가 고작 천명이었어. 그조차 앞으로 십년 후고. 포르투갈의 아시아 총독부인 고아에도 천명 이하밖에 없을 거야.”
“일단 전투는 문제없겠군.”
“어. 삼키지 못하는 게 문제지.”
“......”
광해는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팔뚝을 툭툭 치며 고민했다.
“형. 그냥 응징만 하고 후퇴하는 건?”
“싫다. 결국 문제는 함선인거지?”
“그렇지. 당장 자급자족도 안 되니까.”
“음. 해적들을 받아들여야 하나. 선박은 동남아에서 나포하고. 동남아 전력은 어때?”
“인도차이나 반도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고. 섬 위주로 보면 수백 개 나라가 있어. 대부분 부족 국가지. 언어도 다 다르고. 그래서 힘들어. 나라라 부를 정도는 십여 개 있는데 그리 강하진 않아.”
“......”
수백 개의 언어라.
말이 안 통하면 호의적으로 다가가기 힘들다.
수백 개의 나라에 일일이 선물을 주고 동맹을 맺는 것도 한 세월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포르투갈처럼 거점정복 해야지. 몇 군데 거점만 먹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들도 그게 그나마 효율적이니까 그 방법을 쓴 거고.”
“유럽 쪽 거점은 얼마나 있지?”
“십여 군데만 정복하면 돼. 문제는 보급선을 유지하기 어려워. 수백 개 나라 어디에서 해적이 나올지 모르니 대규모 선단을 유지해야 해. 게다가 태풍도 많지. 언제 어디서 태풍을 맞을지 모르니 소형 선박을 가져오기도 힘들고 섬에 붙어서 다녀야 해.”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겠냐?”
“무제한 나포. 일정규모 이상 선박은 모조리 뺏고 보는 거야. 그러다보면 힘에 눌려 복종하는 부족이 나올 테고 걔들한테 한국어 배우라고 시켜야지. 동맹 부족을 늘리다보면 광해소망교로 통제가 가능할 거야. 10년만 버티면 장악할 수 있어.”
“즉 10년 동안.”
“돈을 쏟아 붓는 거지. 쌀이며 상단이며 군인이며 아주 국가 재산을 들이부어야 안정될 거야. 계획에 없던 지출.”
“버틸 수 있겠냐?”
“인도차이나 반도에 페니실린 팔아서 쌀을 박박 긁어야지. 여기도 매독이 퍼졌을 테니 비싸게 팔릴 거야. 귀족 중에 안 걸린 이가 없을 테니.”
거기까지 말했는데 백칠이 달려왔다.
“포로를 구했습니다. 유구에 있던 상회 점원입니다.”
“데려와라.”
“예.”
잠시 후 초췌한 사람이 들것에 실려 왔다.
“광해님을 뵙.”
“됐다. 기다려봐라.”
광해는 점원의 배에 손을 대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고문으로 인해 기혈이 흐트러지고 두 다리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치료마법으로 하나하나 균형을 잡아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래. 어찌 된 건지 말해봐라.”
“예. 전하. 소인은 나하에서 곧 도착할 상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구에는 평소와 달리 두 척의 영길리 상선만 있었죠. 그런데 바다위에서 광해함만큼 큰 배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유구국 병사들이 상점과 공장을 포위했습니다. 교전이 벌어지고 조선의 병사들은 용맹히 싸웠으나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큰 배에서 코큰 놈들이 내렸습니다. 저를 비롯해 설탕 공장의 일꾼들까지 백여 명 잡혔는데 저처럼 교육받은 십여 명을 제외하면 다 불타죽었습니다.”
“화형?”
“예. 통역의 말로는 개종하면 교수형이고 거부하면 화형이니 선택하라 했습니다. 나하에서 고용한 놈들은 개종하고 목이 메어 죽었지만, 충성스런 조선의 백성들은 광해님을 저버리지 않고 고통스럽게 화형 당했습니다.”
어쨌든 죽는 건 똑같네.
왜 이런 미친 선택을 강요하는 걸까.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광해상단 직원들은 고문당하다가 각 배로 흩어졌습니다.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쳤는지 각자 포로를 나누는 걸로도 한참 싸웠습니다. 결국 유구국에 몇 명 남고, 전 포도아 선박에 끌려왔습니다. 아. 조선의 상단이 공격받는 것도 봤습니다.”
“그래. 들었다.”
“포로가 수백 명 잡혔는데 선장 급을 제외하고 모두 물의 심판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물의 심판? 그게 뭐지?”
광해의 의문에 모현성이 끼어들었다.
“바다에 던져서 주님의 뜻을 묻는 거지. 가라앉으면 주님이 죄를 사하여 준 거니 봐주고 가라앉지 않으면 주님이 거부한 거기 때문에 건져서 죽이는 거야.”
“똑같잖아. 미친놈들 아냐? 무조건 죽이겠다는 거잖아.”
“죽은 후가 달라져. 가라앉으면 주님의 용서를 받았으니 기독교로 남기고, 떠오르면 기독교에서 파문시키고 집안까지 조져버리지.”
얘들 문화는 진짜 말이 안 나온다.
“...... 됐고, 서양갑은 어찌 됐지?”
“목사는 다행히도 구름표범섬에 있었사옵니다.”
광해가 MSG에 대한 보호를 해제했기에 그 병사들은 구름표범섬에서 원주민 안정에 동원되었다.
그 병력이 있어도 힘든 전투였겠지만, 이렇게 쉽게 녹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군. 고생했다. 다른 포로들은?”
“전투가 시작되자 코큰놈들이 전부 죽였습니다. 저는 마침 용변을 보던 와중이라......”
“그래. 고생했다. 고국으로 보내 줄 테니까 쉬어라.”
“저... 전하.”
“만배의 복수를 해주마. 그러니 우선 자둬라.”
“감사합니다. 전하. 감사합니다.”
점원을 보내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다 죽여야겠군.”
“형. 딱히 기독교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문명도 다 그래. 잔인한일은 어느 종교나 다 했어.”
“알아. 그래도 시비를 걸어왔으니 죽여야지.”
“저들 포로에 애들과 여자도 있는데?”
“...... 저들을 풀어주면 조선의 전력이 알려지지 않을까?”
“어차피 동남아 점령하면 알려져. 막을 수 없어.”
“그래. 알았다. 내안의 선을 지켜야지. 후우. 시발. 조선에 데려가 언어교육에 이용한다.”
서서히 동이 터 올랐다.
밝아지는 바다 위에 적선을 끌고 오는 판옥선이 보였다.
반파된 갤리온 두 척과 무장상선 일곱 척.
배 가격만 생각하면 조선이 쓴 모든 비용보다 이득이다.
물론 생명의 가격은 가름할 수 없다.
“백칠아. 하루 쉬고 내일 모든 해적 다 모아라.”
“예. 전하. 혹시 술상이라도......”
“당연하지. 서양술 있지? 가져와봐라.”
술을 마셔야겠다.
다음날 마카오 섬에는 삼만여 해적들이 전부 모였다.
광해는 늘 하던대로 마법쇼부터 시작했다.
“내가 조선의 왕 광해다. 너희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마. 나의 병사가 되어 바다를 지배할 자 왼쪽으로 빠져라.”
중국해적으로 남겨 명나라 해안을 약탈하게 하려 했는데 당장 수군이 부족하다. 써먹어야 한다.
“눈치 보지 말고 왼쪽으로 나와라. 나의 병사가 되려 하는데 감히 가로막는 자는 누구라도 죽이겠다.”
평소 해적선 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그 후 억지로 해적질을 하는 자들이 왼쪽으로 달려갔다.
자리를 지킨 것은 해적선의 선장이나 갑판병 등 평소에 갑으로 군림하는 이들 뿐이다.
“대충 오천명 남았군. 너희는 돌려보내 주마.”
광해는 일곱명의 해적두목을 보다가 가장 원한이 많은 이의 어깨를 툭툭 쳐 줬다.
“내 능력을 봤으면 헛된 생각 품지 않을 거라 믿는다. 혹시나 헛된 생각을 품으면 머리가 터져나간다. 그러니 조심하고. 너희가 조선을 적대하지 않는다면 건드리지 않겠다. 알아서 잘 살아라.”
죽이면 마력을 약간 얻겠지만, 그보단 우호적인 해적단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
괜히 엉뚱한 해적단이 생겨서 또 싸우게 되긴 싫다.
오천명의 해적에게 백척의 정크선을 줬다.
그걸로 알아서 해적질하고 살라지.
퍼엉!
해적들이 뭐라 상의하며 각자 흩어지려 할 때 광해가 어깨를 건드린 두목이 폭발했다.
살점이 흩어지고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말하던 표정 그대로 굳었다.
“저런. 딴 마음 품었나보네. 감히 광해님께 적대하려 했나. 몸이 터진걸 보니.”
지켜보던 병사가 복건어로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해적들은 공포에 질려버렸다.
시키는 대로 잘 했네.
저들은 감히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다.
이후 장수들을 이끌고 건물로 들어갔다.
“입부.”
“예. 전하.”
“갤리온 세척은 내가 가져간다. 넌 저 큰 배 하나를 수리해서 대장선으로 써라.”
“알겠습니다. 전하.”
“수리한 배와 판옥선 이백 척을 네가 이끈다. 이리와 봐라.”
광해가 커다란 지도를 손으로 짚었다.
서쪽으로 쭉 가서 베트남을 따라 쭉 내려간 후 인도차이나 반도 끝까지 내려가면 말라카가 나온다.
“태풍이 잦은 곳이니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마라.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다가 바람이 강하면 만에 숨고.”
“명심하겠습니다.”
“말라카. 팔렘방. 반탐. 네가 점령해야 하는 곳이다. 곧 백관도 하나 보내줄 테니 점령하고 있어라. 말라카 서쪽에서 적이 올 거야. 모든 서양 선박은 나포해라. 판옥선으로 만에 숨어 있다가 기습하면 될 거야. 무풍지대라 배의 속력도 안 나올 테니. 되도록 원주민과 협력해라. 괜히 미쳐서 학살하면 네 구족을 죽이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조선의 서쪽영역 끝은 인도차이나 반도 끝에 있는 말라카로 정해졌다.
“개떡아.”
“예. 광해님.”
개떡이를 부른 후 지도에 선 다섯 개를 그렸다.
대만 북쪽에서 마닐라 말라카 브루나이 암본 등을 따로 잇는 선이다.
“네가 유지해야 하는 보급선과 정복해야 하는 도시다. 나포한 선박들과 정크선 오백척으로 가능하겠어?”
“동남아의 적을 모르기에 답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배웠군.
“적 해적은 최대 백 척이라 생각해라.”
“그렇다면 지휘관이 부족합니다. 항해사를 선장으로 임명해도 백척을 지휘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왜국 원정군에서 몇 명 보내주마.”
“적선을 수리하고 새로 편입한 병사들을 편성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릴 듯합니다.”
“두 달이면 명에서 대규모 군대를 꾸리진 못하겠지. 명나라 조심하고 브루나이에 동남아 사령부를 꾸려라. 해상의 선박을 무제한 나포해 세력을 늘리고 동맹부족을 만들어라. 부족별로 탄압받는 부족이 있을 테니 그들을 도우면 동맹을 만들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입부의 부대와의 연계를 유의하라.”
개떡이가 다섯 개의 함대를 지휘해 동남아를 장악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너희가 위기에 빠지면 칼로 배를 찔러라. 그럼 내가 방문하마.”
이덕형에게 했듯이 개떡이와 입부에게 마킹을 새겼다.
매일 마력을 조금씩 소모하는 대신 생명에 위기가 닥치면 광해에게 신호가 간다.
“음... 꼭 배를 찔러야 합니까?”
입부는 이제야 신뢰 받는다 느낀 듯이 허허 웃었지만, 개떡이는 겁먹은 표정이었다.
“어. 대신 즉사하면 안 되니 적당히 찔러. 난 간다.”
“광해님께선 어딜 가십니까?”
“마닐라. 거기까지 정복하고 돌아가마.”
광해는 이천톤급 갤리온 세척을 끌고 마카오를 떠났다.
- 작가의말
어... 사실 저 성리학 빠돌이에요
100화동안 주구장창 성리학을 까내렸지만 그럼에도 이 시대 성리학과 가톨릭을 비교하라 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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