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피와 약탈
순도 100% 픽션입니다
청진은 현재 부령군에 속하며 백성 천명 이하가 사는 공백지지만 훗날 일제 강점기가 끝날 때는 전국 5번째 대도시로 발전한다.
부령군에서 해안지역을 빼 청진이라 이름 붙였고, 거대한 항구와 광해조선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이 들어왔다.
무산에서 만들어진 강철을 해안가로 옮길 최적의 지역이다.
현재 무산에서 청진까지 철로를 까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청진에서 오랜만에 모현성과 조우했다.
“에엑. 그 귀두컷은 뭐야? 안 쪽팔려?”
“닥쳐.”
“넵. 머리 누가 자른 거야? 칼로? 아. 형이 직접 잘랐겠네. 머리 자르는 기술도 얻었나? 형 나도 머리 잘라줘. 이젠 갓 벗어버리고 잘라도 되는 거지? 탈모 올 거 같아 좀 잘라야겠어.”
감히 황제에게 머리카락을 잘라달라고 하는 건가?
미친 모현성의 부탁을 거절하려던 광해는 아공간에서 가위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잘라야 웃길까?
배를 만들 땐 도크부터 만들어야 한다.
해안가를 막고, 그 뒷편의 땅을 파내 깊은 웅덩이를 만든다.
그 웅덩이 안에서 배를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배가 완성되었을 때 수백 톤 무게의 덩어리를 바다로 옮길 수가 없다.
청진 앞바다에 도크를 파는 데만 4개월. 그리고 배를 만드는데 200일이 걸렸다.
무산에서 만든 얇은 철판을 뗏목에 실어 두만강에 흘려보내고 판옥선이 해안가를 따라 끌어 청진 앞바다로 수송한다.
모양을 잡고 철판끼리 용접해 붙인다.
아크방전 현상으로 순간 3000도의 온도를 발생시켜 쇠를 녹여 붙인다.
이곳은 기술 보호구역이 아니기에 따로 마법진을 그린 마법 용접기를 사용해야 한다.
용골과 철판을 쇠로 만들고, 내부 프레임과 기둥도 쇠기둥으로 만든다.
그 후 겉면에 나무판자를 붙여 목재선박처럼 꾸민다.
선체 깊숙한 곳엔 철의 산화를 막을 마그네슘 덩어리까지 넣었다.
그 결과 길이 70m, 폭 14m, 바닥에서 돛대 최대 높이까지 50m인 괴물이 탄생했다.
“짜잔. 이천톤급 전열함 광해함입니다. 멋지지? 멋지지?”
“생각보다 크지 않네. 판옥선보다 고작 두 배 큰 건가.”
“음. 실망적인 반응이야. 형이 상상하는 그런 배는 현대에나 있지 지금은 불가능해. 현 상태로는 전 세계 최고 스펙이야. 여기서 무게를 추가하면 바람의 힘으로도 못 움직여. 내연기관을 만들기 전엔 이게 한계야.”
“그래. 내가 할 일이 뭐지?”
광해의 질문에 모현성이 설계도를 보였다.
“지금 상태론 너무 느리거든. 평시엔 바람의 힘으로 가더라도 전투시나 비상시엔 속도를 낼 수 있는 마법이 필요해.”
“결국 마력을 쓰는 거네. 차라리 증기기관선을 만드는 건 어떠냐? 두 척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렸다며.”
“철선이 검은 굴뚝에 연기를 뿜으며 다니면 강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기술을 뺏겨. 수십 척이 달려들어 배를 나포하면 즉시 증기선 기술을 빼앗기는 거야.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을 잃는 거고. 그게 무서워서 외부로 돌리지 않게 되면 만드는 의미가 없잖아. 이 배는 형 전용이니까 뺏길 일이 없고, 뺏겨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원리를 알 수 없잖아.”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 그래. 알았다. 설계도 줘봐.”
배의 네 면에 바람 분사 마법진을 그린다. 비상시 조종석의 레버를 통해 바람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목선보다 무거운 철선이기에 동력은 필수다.
도크에 들어가 마법진을 그리고 미리 만든 레버와 연결하고 오니 선장이 인사한다.
“충. 광해함을 맡게 된 선장 이준형입니다.”
“충. 광해함의 일등 항해사 함영석입니다.”
“오. 전에 그놈들이구나. 건방지게 개기던 놈들.”
일본 원정 때 광해를 모셨던 둘은 이후 딱 중간만 했음에도 다시 뽑혔다.
이천톤급 현재 세계 최강 전함을 받았지만 심정은 복잡미묘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조작법은 익혔지?”
“예. 전하.”
“그럼 뭐하냐? 출발 준비해라.”
도크에 물이 차고 광해함이 서서히 떠올랐다.
진수식이니 고사니 필요 없다.
광해조선을 이끄는 백관과 광해함 곁으로 스무 개의 도크를 만들고 갤리온을 건조중인 기술자들에게 칭찬을 하는 사이 도크에 물이 가득 찼다.
배의 바닥 층에 물을 가득 채워 배가 적당히 가라앉게 만들고 물자를 실었다.
“모현성. 화학연구소 챙기고 한성으로 갈 거지?”
“어. 중국 쪽 계속 봐야하니까.”
“그래. 일 생기면 깝치지 말고 나한테 연락하고.”
“옙. 아. 이번 원정에서 내가 활약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깝칠 생각하지 말라고. 죽지 마라.”
“옙. 그런데 전쟁터에 소유키를 데려갈 거야?”
모현성이 배에 탑승하는 소유키를 보며 말했다.
“일본이잖아. 가는 김에 고향 구경 좀 시켜주고, 고향 친구들에게 금의환향했다고 뽐내게도 해주고.”
“그래도 병사들의 사기도 생각해야지. 지들은 고생하는데 왕은 여자 데리고 다니면서 전쟁한다고 생각하면 사기가 뚝뚝 떨어지지 않겠어?”
“지랄. 신의 힘이 있다는데 사기가 떨어지겠냐? 어차피 내가 선두에서 싸울 테니 그럴 일은 없다. 너야말로 왜 여자 안 만나냐? 니가 못생겼지만, 니 정도면 제안도 많이 올 텐데.”
“후우. 어쩔 수 없는 주인공의 숙명인거지.”
모현성의 대답에 광해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네. 참신한 개소리 잘 들었고요. 너 혹시 게이냐?”
“형. 소설 속 고자 주인공을 생각해봐. 할 듯 될 듯 하다가 ‘지켜줄게.’ 하며 멈추는 주인공들 짜증나지 않아?”
“어. 꼴릿하게 읽다가 다시 수그러들면 그것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지.”
“그게 다 독자를 배려해서 그러는 거야.”
“네. 심오한 고견을 우매한 저는 이해하지 못했으니 뭔 개소리냐?”
“형. 책을 읽으면 독자는 주인공에 빙의해서 주인공처럼 생각하며 소설을 따라가거든.”
“이해.”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이 떡치면 독자가 혼란을 느껴. 저게 무슨 기분인지 몰라서. 그 순간 빙의가 깨져. 주인공과 자신의 차이를 돈오 각성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고자주인공이 득세하는 거야. 불쌍한 독자들이 몰입감을 놓치지 않도록.”
갑자기 독자디스 뭔데.
“어... 음...... 즉 니가 주인공이라는 거네.”
“그렇지. 훗날 나의 위인전을 읽게 될 소년 소녀들이 끝까지 몰입감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꾹 참고 있어.”
“...... 여자가 싫은 건 아니고?”
“지금도 막 옷 벗고 달려들고 유혹하고 그러지만 눈물을 머금고 꾹 참고 있어. 난 세계 최고의 여인. 우크라이나 공주 정도 되는 여자와 순결결혼 해야 할 운명이야. 결혼하는 순간이 이소설의 끝이고.”
“...... 미친놈.”
광해는 모현성을 남겨두고 배에 올랐다.
“형은 사랑을 몰라.”
미친놈은 마지막까지 헛소리를 했다.
일본 전역을 훑던 모든 함선이 대마도로 복귀했다.
판옥선 350척과 수리하고 보강한 관선 300척이 주력이다.
그리고 광해함이 도착했다.
“와아아.”
판옥선보다 두 배 길고 열 배 큰, 최소 승무원 300명인 괴물이다.
배의 옆면에 얇은 철판을 붙여 단단한 위엄마저 느껴진다.
“보이느냐? 이것이 조선의 대장함이다.”
“와아아.”
상부의 명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병사의 제 1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다.
그래서 든든하다.
저 배가 함께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다.
저런 괴물을 조선이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이 차올랐다.
배에서 내린 광해는 준비된 단상에 올랐다.
병사들은 출신별로 모여 있었다.
예서납치 사건 때 문제를 일으켜 단체로 참전하게 된 갑사 오천 명.
말을 빼앗기고 보병으로 참여해 충성도를 증명해야 한다.
임란부터 지난 해전사이 조선에 항복한 항왜병 사천 명.
예전부터 조선의 병사였다가 모병제로 바뀐 이후에도 남은 정예병 만 명.
왜구에 원한을 갖고 자원한 신병 삼만 명.
그리고 수군 삼만 명.
어차피 해전은 일어날 수 없다.
수군의 포병과 갑판병을 줄이고 대신 수송 위주로 편성했고, 보병 오만 명이 빠르게 이동하도록 편제했다.
총합 팔만 명.
2차원정군의 숫자다.
광해는 병사들과 그 앞에 도열한 장수들을 보며 연설을 시작했다.
“올해 봄 조선은 왜구의 모든 함선을 격멸했다. 왜구의 함선 사천여 척을 수장시키거나 나포했으며 십만 명 이상이 고기밥이 되었다. 또한 얼마 전 아와지 섬에서 군사 개떡이의 지휘하에 오만명 이상이 고기밥이 되었다. 이제 왜구에게 배는 없고 육지에 고립되었다.”
와아아아아~
“이제 육상에서 싸우게 된다. 추정하기로 왜구는 삼십만 명의 정규병을 가지고 있으며 징집병을 뽑으면 이백만 명 이상을 긁어모을 수 있다.”
그렇게나 많아?
너무 많지 않나?
광해의 솔직한 전력보고에 병사들의 눈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난 적에게 같은 역사를 겪게 할 것이다. 우리가 왜구에게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
준비된 개떡이가 소리쳤다.
“약탈당하고 양민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렇지. 먼 옛날 고려시대부터 수천 번에 걸쳐 해적질을 당했다. 병사가 없는 마을로 들어와 싹 죽이고 재물을 훔쳐갔으며 때로는 전주를 점령당하기도 했고, 임란 때는 칠년에 걸쳐 조선 전역이 불타올랐다. 이 원한을 어찌 갚을 것인가.”
광해의 말에 신병들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일본에 대한 원한으로 입대를 자원한 자들.
그럼에도 적이 너무 많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적의 전술로 적을 치겠다. 적의 부대가 없는 곳에 상륙해 마을과 들판을 불태우고 약탈할 것이며 적의 부대가 진치고 있으면 싸우지 않는다. 적병보다 빠른 함선을 이용해 적병을 피해 약탈하고 수백 년간 쌓인 피의 원한을 갚겠다. 이를 반복하면 너희 가슴에 서린 한이 녹고 왜구는 식량이 없어 결국 굶어죽을 것이다. 모든 전투에 내가 앞장설 것이며 가장 위험한 곳에 항상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 믿겠느냐?”
“믿습니다!”
와아아아.
비겁하게 약탈 위주로 싸운다 하여 반대하는 이는 없다.
전쟁에 정정당당이란 쓸모없는 가치관을 들고 오는 자는 선두에 세워 화랑 관창처럼 홀로 돌진시켜야 한다.
병사들의 표정을 본 광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아닌 징벌을 하러 간다. 출항하라.”
“옙. 출항하라.”
“줄 맞춰. 각함 별로 뭉쳐라!”
11월 12일 조선군은 2차 공격에 나섰다.
전라우수사 권준에게 판옥선 100척과 상륙용 관선 100척을 맡겼다.
이들은 혼슈 북쪽 해안을 훑으며 북상할 것이다.
광해의 본군은 이운룡이 지휘하며 전체 병력은 대략 6만 명이다.
대마도를 출발한 함대는 빠르게 세토 내해로 진입했다.
“캬. 공기 좋다. 역시 사람은 높은 곳에서 살아야 해.”
“처남. 기분 좋은 거 알겠는데, 우리 함이 좀 뒤쳐지는데?”
“그야 배가 뚱뚱하니까 그렇죠. 이 큰 배로 어찌 저 작은 배를 따라갑니까. 제 배가 대장선이니 저놈들이 속도를 줄여야죠. 어디 감히 왕보다 빨리 가려고. 캭. 건방진 놈들.”
초대 광해함 선장과 항해사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이준형과 함영석.
특히 함영석은 많이 들떠있었다.
“이게 내 배지 왜 니놈 배냐?”
“커헉. 저 전하. 그게 아니옵고.”
“배가 느린 건 뚱뚱해서가 아니고 네놈이 못해서다. 지금 바람에 돛을 어떻게 조정해야 최대속도가 나오지?”
“그.... 그게. 사각 돛 세 개다 펴서....”
“틀렸어. 사각돛이 서로의 바람을 막아서 느려 진거다. 이럴 땐 2번 돛을 사선으로 꺾어줘야 빨라지지. 대체 그런 것 하나 기억 못하고 뭘 한 거냐? 당장 2번 돛 안 꺾어?”
“꺾겠습니다!”
‘그런 거 배운 적 없단 말입니다.’
함영석은 억울했지만 감히 왕에게 말대꾸 할 수 없었다.
“바람만 잘 타면 이 배가 판옥선보다 빠르다. 지금 뭐해야 해? 삼각돛 어떻게 해야 해? 어쭈 대답 안 하지? 하기 싫으냐? 하기 싫어?”
광해는 심심했다.
함영석이 고생하는 걸 보며 웃고 있던 소유키는 광해가 돌아보자 동정의 시선으로 바꿨다.
“즈나. 시나를 너무 괴롭히지 마소서.”
“어쭈. 감히 왕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혼나야겠어.”
광해함의 넓고 화려한 왕의 침실.
너울에 울렁이는 침대는 마치 물침대 같았다.
소유키는 많이 혼났다.
함대는 세토내해 초입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작전대로 시작해.”
“예! 전군 상륙하라!”
이운룡의 명령에 대장기가 올라가고 함대가 일제히 접안했다.
히로시마 인근 항구는 비어 있었고, 거기 순서대로 접안해 병력을 내렸다.
항구가 부족했기에 소형선과 배에 실린 소선이 분주하게 병력을 실어 날랐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사만에 달하는 병력이 전부 상륙했다.
마지막으로 광해가 내렸을 땐 사만 병력이 천인대별로 도열해 있었다.
이런저런 출신의 병력이 섞인 편제.
지난 몇 달간 섬 소거작전을 시행하며 제식훈련만 줄창 받아왔다.
전투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머릿수는 자신 있다.
“전군. 진격하라!”
해군은 이운룡이 맡지만 육군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이시언이 맡는다.
이시언의 명령에 각 천인대별로 주어진 지도를 보며 진격했다.
- 작가의말
모현성의 뜬금 독자능룍
이거 플레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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