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곰섬
순도 100% 픽션입니다
일본 본섬 북쪽에 홋카이도라는 섬이 있다.
남한만한 거대한 섬에 아이누족 몇 만 명이 부족사회 형태로 살고 있다.
곰을 모시는 고대신앙을 유지해 집에서 곰을 기르고 다 자란 곰을 의식에 맞춰 죽여 제사지낸다.
일본은 아직 진입하지 않았고 상인 한두 명만 들러 아이누들과 모피 위주의 교역만 가끔 할 뿐이다.
조선인은 6월에 발을 들였다.
일본열도를 돌며 해안봉쇄를 한 함대는 홋카이도 남서쪽에 예정된 인원을 내렸다.
일본방면 총 책임자 윤성준은 900명의 일꾼들과 함께 훗날 삿포르 시가 되는 사리포르펫 해안가에 항구를 만들고, 집과 거대한 창고를 건설했다.
광해는 모든 함대를 끌고 사리포르펫 항구로 들어갔다.
일본 서북부를 약탈한 권준의 함대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짜잔.”
모현성이 있었다.
“무산에서 왔냐?”
“어. 두만강 하구에서 판옥선으로 딱 나흘 걸리네.”
짝!
광해는 다짜고짜 싸대기를 날렸다.
“커컥. 왜? 한성의 일은 허균이 알아서 할 거야.”
“배 뒤집어지면 죽어. 죽으면 살려줄 수 없다.”
“그래도 갑자기 때리는 건.”
“닥치고. 대양을 건너는 건 금지다. 갤리온 급 아니면 혼자 타지 마.”
“크흠.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에휴. 이 츤데레.”
짝!
한대 더 때렸다.
“악. 왜?”
“기분 나빠서. 보너스.”
“...... 퉷.”
짝!
홋카이도엔 벌써 눈이 50센치 정도 쌓여 있었다.
“와아아아~”
주로 배에만 갇혀있던 소유키가 눈을 보더니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수고가 많다.”
항구가 건설된 모습을 보니 윤성준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마도와 오사카, 함흥과 홋카이도를 오가며 물자를 나르고 항구 건설을 하는 동시에 오사카번 공작까지 하느라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최근 일꾼을 많이 보내주신 덕에 작업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노역형에 처해진 양반 3천명을 사리포르펫에 보냈다.
“겨울날 준비는 끝났고?”
“천 명 정도 겨울나기 할 수 있습니다.”
“추위는 걱정 없겠지만 눈을 무시하지 마. 이곳은 겨울이 되면 키의 두 배만큼 눈이 쌓일 수도 있어.”
삿포르의 겨울 평균 기온은 춘천과 비슷하다.
위도는 두만강 무산과 비슷한데 온도는 훨씬 따뜻하다.
바다의 영향으로 건조한 한성의 칼바람보다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눈이다.
홋카이도는 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섬이다.
일본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다.
눈을 무시해선 안 된다.
“예. 모현성 공의 설계대로 지붕을 지었습니다. 눈의 무게에 무너지지 않게 기둥을 강하게 세우고, 지붕을 뾰족하게 짓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여긴 장차 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어. 집짓고, 논을 조성하는 것만으로 가능해. 향후 30만 명 이상 사는 대도시가 만들어 질 거야.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해.”
“알겠습니다. 전체 설계에서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섬의 이름은 곰섬으로 하자. 섬에 사는 아이누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대신 이도시의 이름은 네가 지어라. 파평부, 혹은 성준부, 파평윤부 다 돼. 네 마음대로 해도 돼.”
“헉. 정말이십니까?”
“고생했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여기 도시가 완성되면 몇 군데 더 건설해야 하니까 이름 미리 생각해 둬. 다른 백관들에게 양보하려면 네가 말하고.”
“영광입니다.”
“당연하지. 겨울이니까 작업을 중단하고 내년 4월에 다시 시작해. 원주민과 마찰은 없었나?”
“통역을 통해 모두 설명했습니다. 식량을 후하게 나눠준 터라 아직까지는 큰 불만이 없어 보입니다.”
“범죄자는?”
“묶어두었습니다.”
여름에 도착한 윤성준은 아이누 중 일본어를 아는 몇 명을 통역으로 구했다.
그 후 조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아이누들 대부분은 반발했지만, 조총의 번개소리와 창으로 무장한 모습에 아직 전투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매달 꾸준히 쌀을 선물로 준 덕에 이제는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른다.
물론 모두가 조선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침략자라며 적대하는 이들도 있고, 거대한 창고에 쌓여있는 쌀을 탐내 훔치러 오는 이들도 있다.
윤성준은 그들 중 조선병과 전투까지 치른 범죄자를 묶어뒀다.
광해는 그들을 살폈다.
동양계에 약간 서양계가 섞인 듯한 모습.
눈과 머리는 검지만 러시아계처럼 몸에 잔털이 많다.
추운지방에 적응한 부족의 모습이겠지.
살고 싶다 - 2302
침략자를 죽인다 - 722
별 볼일 없는 소망이다.
광해는 창을 꺼내 둘을 찔렀다.
아이누족 언어를 익혔다.
“5일 후 종교집회를 열겠다. 모든 아이누에게 참석하라 전하라. 직접 온 이들 모두에게 쌀 한 석 씩 주겠다고 전하거라.”
광해는 윤성준에게 지시를 내리고 돌아섰다.
병사들이 화려한 왕의 막사를 설치하고 있다.
눈을 치우고 융단을 깔고 두꺼운 천막을 설치한다.
소유키가 주섬주섬 돕는 게 귀엽다.
예쁘면 뭘 해도 예쁘지.
주위에 오와 열을 맞춘 8만 명 용 천막이 줄지어 지어지고 있다.
약탈한 물건은 쌀만 있는 게 아니다.
에도에서 약탈한 군마만 2천 필이다.
전부 실을 수 없기에 대부분 도축해 고기만 챙겼다.
그 외 개나 닭 등 약탈한 고기가 넘쳐난다.
“축제다! 축제를 준비하라!”
와아아~
육군과 수군이 전원 육지로 올라와 칠일 간 휴가를 즐길 거다.
여기저기 모닥불이 피워지고, 반쯤 언 죽은 동물의 고기가 나무에 꿰어 구워지고, 삶아진다.
먹고 마시다보니 멀리서 원주민이 기웃거린다.
특히 아이들이.
미리 명을 내렸기에 적대하는 병사는 없다.
왕이 있는데 명령을 어기면 그건 미친놈이지.
쭈뼛거리는 아이가 소금 쳐 구운 개고기에 감탄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사들은 그게 귀여워서 고기를 더 주고.
“동화시킬 수 있을까?”
홋카이도 전체에 이만 명.
가장 살기 편한 남부 평야 지대에 대부분 몰려있다.
저들을 조선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힘들지. 가장 편한 방법은 영국식인데 말이야.”
“영국식?”
“어. 다 죽이는 거. 다 죽이고 조선인만 남기는 게 문제도 없고.”
“야.”
따귀가 부족했나.
“알아. 안 해. 그래도 그게 효과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집 지어주고, 땅을 주고, 농작물 가져와서 경작법 알려주고. 빠르게 문명화되면 고마움을 알지 않을까?”
“원주민 수준으로 생활한다 해서 반드시 고마워 할 거라는 생각 버려. 그거 백인 우월주의랑 똑같아. 일제 강점기가 조선을 산업화 시켜쥐서 고마워?”
“......”
“어떻게 포장해도 우리는 침략이야. 차라리 신사의 나라처럼 노골적인 신사 짓을 하는 게 뒷말도 적게 나와. 다 죽이면 말할 사람이 없거든.”
“......”
말문이 막히네.
제국의 황제 시절엔 쉽게 쉽게 점령했는데.
물론 반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포클랜드 봐봐. 아르헨티나가 반납하라니까 영국은 배짱 좋게 지역민이 찬반투표해서 정하자고 하잖아. 원주민을 모두 죽이고 영국계만 남았으니 반납될 리가 없지.”
“너 자꾸 영국 찬양한다?”
“아니. 그게 편할 뿐 국가가 할 짓은 아니지. 영국 쓰레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쓰레기 국가. 선조는 학살자였고 후손들은 ‘원래 원주민이 없었고, 천연두로 99퍼가 죽었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쓰레기 영국인.”
“진심을 담아서.”
“교화해야지. 교육하고 한글 가르치고 법을 가르치고. 약간의 차별을 둬서 스스로 국민이 되고 싶게 만들어야지. 그리고 피를 섞고. 에휴. 복잡하지만,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인데 영국 같을 순 없잖아.”
“그래.”
광해는 술잔을 들었다.
윤성준이 열심히 술을 빚어 놨지만, 8만 대군이 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다들 한 모금씩 입만 댔을 뿐,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건 광해뿐이다.
꼬우면 지들이 왕을 하든가.
먹을게 쌓여있어서 열심히 먹고는 있는데 심심해 보인다.
“종교활동이 오 일 후지. 좋아. 무술대회를 열자. 어이 개떡아! 무술대회를 열어라. 병사들에게 전파해 지원자를 모아라. 상은 후하게 주마. 앞으로 사흘간 결승까지 올라오도록 대진을 짜 봐라.”
“옛! 그러면 주상께서 특별전으로도 참여하십니까?”
“너 이 새끼. 또 내 뒤통수 때리고 싶냐?”
“에헤헤. 꼭 그런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반쯤 즉흥적으로 무술대회가 열렸다.
어차피 아이누가 집합할 동안 놀고먹을 생각이었다.
새로 징집한 팔도의 병사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도 만들어줘야지.
말고기는 충분하고, 쌀이 넘쳐난다.
“와아아아~~”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자체 예선전을 치르랬더니 곳곳에서 저마다 일어나서 싸우고 부상 입는다.
서로 서먹한 병사들이 싸우고 응원하다가 친해진다.
광해는 실려 오는 병사들을 치료하느라 바쁘고.
32강 대부분은 처음부터 함께한 조선수호군 출신들이다.
대부분 백인장까지 승급한 이들은 부하들 앞에서 면을 세우게 되었다.
결승에 오른 건 지난 대회 2위인 우진춘과 백칠.
굉장히 의외로 백칠이 우승을 차지했다.
백칠.
일반 징집병 출신으로 백관을 모시며 전국조사를 할 때 무술을 배웠고, 고성에서 실수로 백관을 죽여 노역형을 받았다.
평생 군인의 신세가 되었지만, 오히려 죗값을 갚겠다며 이 악물고 노력해 성과를 거두었다.
개떡이의 호위병으로 종사하다가 우승까지 이른 것이다.
“수고했다. 상금은 집에 보내주마.”
“고맙습니다. 광해님. 성은이 망극합니다.”
백칠의 눈물엔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다음날 이어진 1:8 특별전에선 개떡이가 복날 개 맞듯 맞았다.
사흘간 대회를 하며 병사들을 봤다.
자원병이며 일본에 원한이 깊던 이들.
일부는 소망이 해소되었다.
지난 한 달간 일본을 약탈하며 원한이 해소된 것이다.
일부는 소망이 그대로다.
한이 너무 깊어서 풀리지 않았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못 찾은 이들.
일부는 변질되었다.
강간하고 싶다 - 109
살인하고 싶다 - 344
“저것들을 그냥 풀어주면 안될 것 같은데.”
“예? 저한테 말씀하셨습니까?”
옆에서 임경업이 헤롱거리며 말했다.
왕 곁에서 술을 마음껏 처먹더니 취해서 정신줄을 놨다.
예선통과도 못한 놈이.
비슷하게 우승에 실패한 간삼은 고개 숙이고 반성하고 있는데.
“개떡아.”
몇몇 장수를 불러 병사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위험한 취향에 눈뜬 놈들.
모아보니 3천여 명에 달한다.
그들 중 일부는 검계 출신으로 예전부터 살인을 즐기던 위험한 놈들.
“너희는 살인 강간 약탈이 재밌나보구나.”
“아닙니다. 전하.”
말은 아니라고 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죄를 물을 생각은 없다. 내가 시킨 일이었으니. 대신 한 가지 묻겠다. 너희는 조선으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얌전히 생활할 수 있겠느냐?”
“예에. 뭐.”
대답이 시원찮다. 당연히 그러겠지.
“너희는 특별약탈대로 조직해 꾸준히 약탈하게 만들어주마. 받아들이겠느냐? 왕의 특별군이 되는 것이다.”
“예? 옛.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화색이 된 병사들.
그들도 자신들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느낀 것 같다.
“흠. 이놈들을 누구에게 맡긴다. 개떡아. 누가 지휘해야 할까?”
“예... 글쎄요.”
“잘 모르겠으면 잘 싸우는 놈 하나 골라봐. 거친 놈들 제압하려면 강한 놈이 대장 해야지.”
“그렇다면.”
개떡이의 시선이 자기 등 뒤로 향했다.
이번 대회 우승자 백칠.
“예?”
“그래. 네가 해라. 어차피 평생 군인인데 출세하는 게 낫지. 네가 이놈들 대장이다.”
“예에에에?”
소심하고 착한 성격의 평민 백칠이 삽시간에 장군급인 3천인장이 되었다.
훗날 광인해적단이라 이름 붙는 미친놈들의 대장.
8만 병사를 모아놓고 종교활동을 했다.
하지만 광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이누어다.
아이누 언어에 없는 개념이 많아 한참 설명하며 말을 해야 했다.
아이누족 1만 명 정도만이 소집에 응했다.
일부는 수만 병력이 무서워 도망쳤고, 일부는 눈이 너무 쌓여 오지 못했다.
사르포르펫 인근의 아이누 중 일부만 왔다.
“나는 이런 능력이 있다.”
불을 보여주고 하늘도 날고 눈보라도 일으키고.
이 짓을 자주 하다 보니 서커스단 원숭이가 된 것 같다.
“지금은 조선의 왕이지만, 내게 민족은 별 의미가 없다. 신을 믿는 자는 모두 나의 백성이다.”
종교는 국경을 초월하지.
“나를 믿는 자 모두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년 후에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겠다.”
억지로 백성이 되라 하면 반항이 나온다.
특별히 받아주겠다고 해야 조선이 갑이 된다.
갑의 위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아이누들은 광해의 능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엎드려 절하며 찬양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원주민 마을에 떨어진 콜라병이 된 기분이다.
“난 아무나 받지 않을 것이다. 3년간 신앙을 갈고 닦아야 하며 조선어를 통달해야 한다. 조선어를 익히고 신앙이 하늘에 닿아야만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이어 아이누족의 질병 몇 개를 고쳐주고 간단한 소망 몇 개를 해소해주었다.
훈련 삼아 함대의 일제포격으로 조선의 힘도 보여주고 일만 정의 조총으로 사격하는 모습도 보여주어 헛생각을 품지 못하게 했다.
나머지는 윤성준이 할 일이다.
3년에 걸쳐 2만 명을 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뒤가 어렵지.
곰섬에서 휴식을 취한 부대는 다시 동서로 흩어져 떠났다.
앞으로 무제한 약탈을 이어가며 열도를 혼란에 빠트릴 것이다.
광해함은 곧장 대마도로 복귀했다.
곰섬에는 오백여명만 남겼다.
겨울이라 무엇도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수비인원만 남기고 다 데려왔다.
대마도에서 예정된 물자를 실은 함대는 남서쪽으로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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