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트레킹
순도 100% 픽션입니다
-그래서 구하겠다고?
“어. 철로보단 의술 쪽 기틀을 먼저 잡아야겠어.”
-형 치료로는 다 잡을 수 없을 텐데. 천연두가 대표적이지만 천연두 말고도 그 외 유라시아의 모든 세균이 끔찍한 전염병이 되어 휩쓸 거야. 면역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니까. 진짜 매년 전염병이 돌 걸?
“그래도 해야지.”
-어. 형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
모현성이 웬일로 칭찬한다.
보통 이러면 일거리가 생기는데.
“안 해.”
-어. 형하고 같이 간 다른 철선에 소를 실었잖아. 그 소들 우두 걸린 소들이야.
“뭐?”
-이전까지는 주사기나 기반 시설이 불가능해서 아직 개발 안했지만, 이제 천연두는 잡아야 할 거 아니야? 거기서 우두 종기 모아서 천연두나 잡아.
“주사기는?”
-이번에 플라스틱 성형으로 만들었고 배에 실었어. 고무마개도 만들었고. 끓는 물로 소독해서 재활용 해. 주사바늘은 철구가 만들 수 있을 거야. 화이팅!
“......”
기분이 나쁘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착한 일을 하려 했더니 모현성이 미리 알고 준비해 놨다 한다.
부처님 손 위의 손오공이 된 기분.
차갑고 냉철한 도시남자인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배에서 심심하니까 후궁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고, 예서 소유키랑 대화하다보니 닫아놨던 인간의 마음이 조금 열렸고, 그러하니 불쌍한 인디언을 구하고픈 마음이 생겼는데.
이걸 모현성이 미리 알았다고?
그럴리가.
광해가 침묵했으면 통신으로 징징대며 해달라고 했겠지.
“에휴.”
기분 나쁘다.
봉사는 스스로 해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려고 했는데도 남이 시키면 짜증부터 난다.
천연두를 예방하는 우두법은 꽤나 간단하다.
우두에 걸린 소의 고름을 증식, 희석시켜 사람의 몸에 심으면 된다.
증식 기계도 광해의 마법진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
다만 만백성에게 접종하는 게 문제다.
주사기나 주사바늘 등 기타 도구도 없었고, 소독할 알콜도 너무 비쌌고, 보관에도 마력이 너무 많이 든다.
알약으로 완성되는 페니실린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기에 다른 일 우선으로 제쳐놨다.
하지만 이곳에선 퍼트려야 한다.
조선에도 치명적이었던 천연두는 인디언에겐 더욱 끔찍한 효과를 내니까.
첫발마을로 돌아가 최명길에게 말하니까 ‘역시스승님’ 하는 표정으로 소축사로 안내한다.
그 모습이 기분 나빠서 한대 때려줬다.
“아고고. 우두 걸린 소가 열 세 마리고, 나머지는 전부 나았습니다.”
소는 천연두에 죽지 않는다. 가볍게 앓다가 스스로 이겨낸다.
광해는 우두에 걸린 소를 자세히 살핀 후 모현성에 들은 배양원리를 바탕으로 기구를 만들었다.
강철을 녹여 가마솥을 만들고 그 안에 각종 마법진을 그렸다.
물과 소금 등을 섞어 넣고 우두에서 짜낸 고름을 넣어 적정 온도를 유지시킨다.
그 안에서 배양한 액체를 꺼내 주사기로 사람 몸 속에 넣는다.
가벼운 열병을 겪은 후 평생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
만드는 건 금방이다.
보름에 거쳐 만든 후 제대로 배양이 되지 않아 마법진을 서른 번 정도 고치니 완성되었다.
이제 신석만 꾸준히 갈아주면 하루에 천 명씩 천연두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9년 4월 7일 첫발 마을에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정착지가 건설된 이후에도 7일마다 종교행사가 열렸지만, 오늘은 모든 작업을 멈추고 첫발, 두발 마을과 인근의 인디언을 모두 모았다.
“이로써 칸국은 천연두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포한다.”
광해가 직접 종두법의 자세한 효과를 설명해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조선어로 한번, 인디언 언어로 한번.
부족마다 단어가 다르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통했다.
그 공포를 잘 모르는 인디언들은 좋은 건가보다 하고 말지만 조선출신들은 감격해 소리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천연두는 꾸준히 번지고, 세대가 바뀔 때마다 퍼진다.
광해가 인근에 있으면 출동해 병을 잡았지만, 외부로 나가거나 소식을 늦게 들으면 이미 사망자가 수없이 발생한 후다.
잠복기가 짧고 순식간에 죽어버리니까 광해가 도착하기 전에 죽어나가는 거다.
감격하는 조선인을 지켜보다가 면역이 없는 인디언을 위해 인디언 말을 했다.
“그렇지만 너희에게 치명적인 병들이 많다. 모기가 옮기는 황열병, 벼룩이 옮기는 흑사병 등은 이미 넘어와 있고, 남쪽 아즈텍에 널리 퍼졌다. 그 외 수많은 질병이 너희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그 모든 병을 다 잡을 수 없고, 내가 치료하기 전에 죽는 환자가 생길 것이다.”
인디언들은 광해의 말에 내심 분노했다.
동칸국은 모든 질병을 스페인과 영국이 가져왔다고 선동하고 있지만 인디언들이 보기에 함께 생활하는 칸국인은 가볍게 앓고 마는 질병에 자신들이 우수수 죽어나가니 칸국인을 원망하고 있다.
사실 칸국에서 옮겨온 병균이 그들을 죽이는 게 맞기도 하고.
“그 모든 병을 잡을 수 없기에 너희에게 예방약품을 주겠다.”
광해의 말에 준비하고 있던 병사들이 백성의 대열로 들어갔다.
커다란 상자를 끌고 이동한 병사들은 종교행사장에서 초코파이 나눠주는 것 마냥 백성 모두에게 초코파이 크기의 돌맹이를 나눠줬다.
“그것의 이름은 비누다. 사용법만 제대로 익히면 너희가 겪을 질병 열개 중 일곱 개는 피해갈 것이다.”
물을 묻혀 거품을 내 손과 얼굴을 문지르고 물로 깨끗이 씻어내라.
무언가 먹기 전 반드시 손과 얼굴을 비눗물로 닦아라.
똥을 싼 후 반드시 손과 똥구멍을 비눗물로 닦아라.
성교 전 후 반드시 생식기와 손과 얼굴을 비눗물로 닦아라.
“그리하면 병이 피해갈 것이다. 일 년에 일곱 번 앓던 사람이 일 년에 두 번 가볍게 앓고 말 것이다. 일 년에 두개씩 모두에게 지급할 터이니 꼭 쓰도록 하라.”
대체역사의 필수품 비누.
비누는 순우리말로 고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지방산, 동식물성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부족한데 기름을 짜낼 수도 없어서 이제껏 미뤄왔는데 새로운 문명과 문명이 만난 이곳 동칸에는 꼭 보급해야 한다.
원주민이 새로운 세균에 대한 면역이 부족한 것처럼 동칸에 온 일꾼들도 이 지역의 병균에 대한 면역이 없다.
서로 조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보급하는 것이다.
기름을 짜낸 수만 톤의 콩 비지는 광해축산에서 사료로 쓰지만 식량을 소모하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거 하나 만드는 데 콩 한석이 들어간다. 그러니 아껴 써라. 그렇다고 안 씻으면 안 되고. 팔면 죽인다. 난 너희가 병에 걸리는 걸 보기 싫다. 그러니 꼭 씻어라.”
콩 한석 정도는 아니지만 공짜로 주는 거 생색 정도는 낼 수 있잖아.
비누와 종두법을 보급했고, 인근 열개 인디언부족을 돌며 환자를 치료했다.
그제서야 두발마을로 갈 수 있었다.
“마을 이름이 이게 뭐야? 머리카락 마을 갔잖아.”
첫발 마을이야 처음으로 발 디딘 마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두발마을은...... 대머리는 살 수 없는 마을인가.
대머리 혐오를 멈춰주...
두발 마을은 평야를 지나 약간의 고지대에 만들어졌다.
철광산 바로 곁으로 무산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다.
노천 광산이 아니기에 땅을 파야 했지만 파낸 철광석을 곧장 용광로에 넣을 수 있는 구조다.
“생각보다 잘 했네.”
광해의 마력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비를 지어 놨다.
내화벽돌로 첨성대를 만들고, 산소를 주입할 콤프레셔를 잔뜩 설치했다.
무산에서 제작해 가져온 발전기가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 콤프레셔가 산소를 죽어라 공급한다.
불순물이 많이 생겨 자주 설비를 멈추고 파내야 하지만, 이만하면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광해님.”
책임자 철구가 고개를 숙였다.
김춘석과 철구는 이쪽 지식으로는 이제 광해보다 낫다.
“수정 좀 해 줄까? 생산량이 부족하지는 않아?”
“아닙니다. 어차피 철광석 파내는 게 한계가 있어서 현재 상태로도 강철 생산은 충분합니다. 차라리 철광산을 더 파내는 게 낫습니다.”
책임자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용광로에서 생산된 선철은 근처의 다른 고로로 이동한다.
구리, 텅스텐, 주석 등 다양한 주괴가 쌓여서 합금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텅스텐을 녹이기 위해 판진에서 제작해 가져온 가솔린 고로도 있다.
용도에 맞게 합금을 만들어 기차의 부속품을 만들어낸다.
2년 전에 도착한 철구는 이미 기관실의 절반 정도를 만들었다.
“철로가 문제라는 거지?”
“예. 기관차를 만드는 건 문제없으나 철로를 중부까지 뚫기가 힘듭니다. 거의 천 큰보 거리의 산맥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모현성이 전해준 건 미국의 대륙횡단철도 위치다.
그 시절 사람들이 그 당시 기술로 만들기 위해 험한 지형을 최대한 피하며 만들었을 테니 최적의 노선이겠지만, 그조차도 현재 칸국의 기술로는 못 따라간다.
“첫 절벽 부근에 화약을 심고 폭약을 터트렸다가 열다섯 명이 죽었습니다. 이후로도 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바위는 뚫리지가 않습니다.”
“그래.”
툴툴대며 왔지만 엄청 고생하는 게 보이니 놀기 힘들다.
광해는 철구에게 지도를 넘겨받고 노선 책임자를 만나 자세히 물은 후 마을로 돌아왔다.
“나들이 갈까?”
“예. 광해님!”
“나들이 가고 싶습니다.”
아공간에 먹을 것과 텐트 등을 챙기고 호위들의 짐도 일부 넣었다.
그 후 구름이를 타고 길을 나섰다.
노선이 그려진 지도를 보고 하늘로 떠올라 실제 지형을 확인하고 마력으로 땅을 두드려 단단한 정도를 확인한다.
이동하다가 식사 때가 되면 멈춰 밥을 먹고 밤이 되면 텐트를 치고 잔다.
철로가 이동할 최적의 노선을 그리며 지나다보면 호수를 만나고 험한 산을 만나고 눈 덮인 봉우리에 감탄한다.
경치 좋은 타호 호수를 떠나지 못하고 돌아보는 예서를 위해 호수 앞에 선 예서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주고 앙탈부리는 소유키의 그림도 그려줬다.
미국곰이 크어엉 하고 달려들기에 구름이를 출동시켰는데 구름이는 놀자는 줄 알고 뛰어가 강아지처럼 깡총대다가 싸대기를 한대 얻어맞고 왔다.
마법으로 곰에게 겁을 줘 쫓아내고 고자질하듯 우는 구름이를 치료해줬다.
여유 없는 인생은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지만, 여유 있는 인생은 측량 일마저도 여행이다.
최적의 기차경로를 그리기 위해 천 큰보를 왕복하는 측량이지만, 한 번씩 날아오르면서 지형을 확인하고 나면 나머지 이동 시간은 여행이다.
거대한 표범과 호랑이, 말을 타고 오는 광해 일행에 인디언들은 대부분 숨어서 지켜봤고 일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몸으로 대화했다.
감히 공격해오는 이는 없었다.
인디언에게 선물을 주고, 말이 안 통하니 술을 마셔서 친해지고 나면 인디언들은 거대한 호랑이에 탄 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몸과 술로 대화해서 미녀에 감탄한 건지 호랑이에 감탄한 건지는 모르겠다.
깎아지는 절벽과 병풍 같은 산맥을 지나 고원 사막과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고, 8000톤급 철선보다 긴 나무숲을 만나고 고드름 조각 같은 소금광산과 소금물로 이루어진 소금호수를 지나니 고원이 낮아지고 목초지가 나오고 평원이 펼쳐진다.
“난 여기까지 깔면 되겠구나.”
지도에 철로 노선은 다 그렸다.
터널 서른 개와 다리 스물 몇 개만 만들면 된다.
깎아지는 산에 철교용 쇳덩이를 끌고 갈 방법이 없으니 선로를 깔며 기관차가 이동해 자제를 운반해야겠지.
그러면 다리 만드는 데만 이십년 넘게 걸린다.
광해가 오는 게 맞았다.
“돌아가자.”
다들 만족한 표정이다.
호위병 일부는 자신이 광해의 호위병인 덕에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경치를 봤다고 감동하고 있다.
“갈 땐 다른 길로 가자.”
이왕 관광 왔으니 안 본 경치를 보자.
돌아가는 길에 모현성과 통신을 했다.
-어디야?
“측량하고 돌아가는 중. 여기가.... 솔트레이크 근처네.”
-어. 형이 언제오지?
“마력석 다 떨어졌을 때. 12월. 왜? 문제 있냐?”
-음. 큰 문제랄까. 모르겠네. 형 채유진 기억나지?
......
기억 안 나네.
-백관. 형이 구해주고 백관에 넣어준 애.
“아. 기억난다.”
-죽었어.
“...... 심각한 일이냐?”
-아니. 범인은 얼마 전 결혼한 몽골족 남편이고. 그건 확실해 보여. 그래도 형 능력으로 확실히 알고 싶어서. 경상우도 도지사까지 오르고 일도 잘하고 착한 앤데 불쌍해서 말이야.
“유골에도 소망이 묻어있으니 화장해서 보관해놔. 돌아가면 볼게.”
-어. 남편 놈도 그때까지 처벌하지 않고 잡아만 두지.
“그래라.”
광해와 모현성 둘 다 안타까워할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 작가의말
수채화 느낌의 여행을 3편정도 구상했다가 글이 늘어지는 거 같아서 편집편집...
집단지성께 질문드리오니 비누용 지방산 쉽게 얻을 방법 있나요?
식물에서 짜내는 것 말고 화학적으로 톤 단위로 얻을 수 있나요......
대체역사에서 비누가 필수품이 된데는 이유가 있을텐데...
검색으로는 못찾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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