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보복
순도 100% 픽션입니다
공중에 뜬 표범.
그 위에 앉은 적장.
광해는 공중을 걷듯 염동력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성벽을 넘었다.
성벽위의 궁병들과 곳곳에 부대별로 집합한 몽골기병이 활을 쏴야 하나 고민했다.
표적이 성 내로 들어왔으니 공중으로 화살을 날리면 같은 편이 피해를 본다.
광해는 자기 집 찾듯 공중을 걸어 차하르 황궁으로 갔다.
황궁 입구부터 갑옷을 차려입은 기병들과 위사들이 열을 맞춰 서 있다.
황궁 내부 곳곳에도 이런 저런 부대가 대기하고 있다.
“황제는 어디 있을까나......”
광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법진을 그렸다.
“지진.”
쿠르르르릉.
황궁이 지면 째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광해의 마법은 황궁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마력이 빠져나간다.
염동력과 지진마법에 소비된 마력보다 큰 마력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한가한 날이 계속되며 천오백 만까지 모인 마력이 삽시간에 천백 만까지 떨어졌다.
무너진 황궁에 깔려죽은 병사와 시종들.
그들 중 악인보다 선인이 더 많은가보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보다 많은 법이니까.
황궁이 완전히 무너졌지만 북원의 칸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광해는 구름이 등짝에 마법진을 그린 후 입을 열었다.
“말했듯이 차하르 부족의 부족장과 그 일족만 죽인다. 그 외 저항하는 자만 죽는다. 복속하면 식량을 주고 내 백성으로 차별 없이 살게 해준다. 그러니 내가 나의 백성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라.”
말을 마친 광해는 염동력으로 왔던 길을 돌아 귀환했다.
표범에 탄 채 하늘을 걸어와 황궁을 무너뜨리고 몽골말로 호의를 표하는 적의 황제.
몽골병사들 사이에서 기적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지휘관들이 입을 막으려 해도 너무 많은 이가 봤기에 막을 수 없었다.
그날 밤.
광해는 은신마법을 써서 몰래 숨어들었다.
무너진 황궁 근처에 경계병이 몰려있는 건물이 있었다.
그 안에서 찰과상으로 끝난 북원의 대칸이 거지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개방이 저기 붙었군. 두 세력이 힘을 합친 게 개방 덕이었어.’
정보를 관리하는 개방에게 기술이 넘어갔다는 것은 매우 안 좋은 소식이다.
명나라 전국적인 조직인 개방이라면 벌써 기술을 전국 곳곳에 뿌렸을 것이다.
회수할 수 없다.
광해는 장갑을 껴 아다만티움 철사를 꺼냈다.
염동력에 의해 철사가 춤을 준다.
뾱.
뾱.
뾱.
“어? 윽.”
“으으윽.”
방안에 있던 십여 명은 모두 사이좋게 이마 한가운데가 뚫렸다.
의식할 새도 없이 이마가 뚫린 이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멈췄다.
아직 심장은 뛰지만 존재를 증명할 의식이 죽었다.
치익. 치익. 치익.
이마 한가운데에 난 구멍에서 피가 분출된다.
심장박동에 맞춰 가루 같은 피가 뿌려지고 멈춰지고 뿌려지길 반복한다.
다시 은신마법을 그린 광해는 황궁 주위를 돌며 경계병이 많은 건물들에 들어갔다.
고위급일수록 은혜보다 원한이 많은 자가 더 많다.
모든 귀족이 나쁜 건 아니지만, 착한 귀족보다 나쁜 귀족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그날 밤 차하르 부의 귀족 이백 명이 암살당했고 다음날 성벽에 백기가 올라왔다.
“정충신. 들어가서 마무리하되 학살하지 마. 어차피 귀족들 대부분은 내가 죽였어.”
“명심하겠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주상께 충성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기관차 탈취에 가담했더라도 죄를 묻지 마. 대신 기관차에서 탈취한 부속 하나하나 전부 찾아서 회수해. 작은 쇳조각이라도 전부 회수하고 가져오는 자에게 상을 줘.”
막을 수 없지만 최대한 막아봐야지.
수만 발의 총탄이 실려 있었으니 병사 하나당 탄피 하나씩은 챙겼을 양이다.
“주상 전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믿는다.”
광해는 정충신에게 뒤를 맡기고 차하르를 떠났다.
현재 몽골지역엔 크게 아홉개의 세력이 있다.
가장 강력한 것은 북원의 황위를 계승하는 차하르 부이며 두번째로 강력한 것은 서쪽을 지배하는 오이라트 부다.
호위병을 남겨두고 홀로 떠난 광해는 굳이 순서를 따지지 않고 가까운 세력부터 방문했다.
가서 칸국의 대칸임을 알리고 차하르부가 복속했음을 알린다.
항복 조건을 알려주고 거부하면 부족장과 귀족들을 죽인다.
구름표범에 타고 공중에 뜬 채로.
오이라트를 비롯한 세 개의 부족장이 거부하고 활을 쏘다가 죽었고, 두 개의 부족장은 결혼동맹을 제의했다가 거부당한 후 죽었다.
세 개의 부족은 비교적 나중에 제안 받았는데 다른 부들이 죽거나 항복했음을 알고 공중에 떠 있던 광해에게 복속했다.
두 달에 걸쳐 몽골 초원을 달리며 부족장을 찾아 복속시켰다.
철로가 몽골지역을 관통해 카자흐스탄까지 연결되려면 최소 8년은 걸린다.
그 시간동안 이항복과 백관들이 식량을 지원하고 조선의 문화와 법을 교육시키면 몽골 정복이 끝난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동등한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할 것이다.
부족장과 귀족들이 죽은 걸 제외하면 몽골은 손해 본 게 없다.
아마 저항하지 않겠지.
구름이와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복귀한 광해는 호위병들만 데리고 요서로 복귀했다.
이성량의 군부는 거점이 되는 성 곳곳에 병력을 분산시켜 서로 유기적으로 돕게 만들었고, 조선과 명을 동시에 대비했다.
모국에 버림받았음에도 지휘력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준비태세를 갖췄으니 곽재우가 공략을 포기했지.
숲에 호위병과 구름이를 숨긴 광해는 홀로 성에 잠입했다.
요서군 20만이 마구잡이로 징집한 일반병사라 해도 지휘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위협적이다.
곽재우는 전투를 포기했고 광해가 나서서 싸우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이겨도 얻을 게 얼마 없다.
요서지역 획득해봤자 방어만 어렵지 쓸 데도 없고.
전쟁이란 승리로 얻는 이득이 클 때 하는 거다.
그래서 내버려둔 채 위충헌에게 뇌물을 바쳐 실각시킨 거고.
광해는 이성량의 침실까지 거침없이 들어갔다.
병석에 누워있는 아흔살에 가까운 노인.
원한과 소망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성량 덕에 여진으로부터 살아남은 이의 감사.
무병장수해서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길 바라는 소망.
죽은 이의 원한.
소망들 속에 이성량의 화려한 인생이 보이는데.
“끅.”
허무하게 끝났다.
이성량과 침실 근처의 아들들, 장수들을 죽이고 한 바퀴 둘러봤다.
호위 병력이 많은 순으로 들어가 죽이고 성을 떠났다.
요서 군부의 근거지 몇 군데를 방문해 정리했다.
보복은 이게 끝. 기관차에서 뺏긴 물품을 전부 회수하려면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투입할 수 없다.
광해 혼자 일일이 들추긴 싫고.
개방 놈들이 본국으로도 빼돌렸을 텐데 회수하는 의미가 없겠지.
광해가 떠난 후 요서군부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군부의 지주 이성량이 암살당했고, 그 아들들도 죽었다.
원응태, 웅정필 등 이성량 휘하 장수들이 어찌어찌 혼란을 수습했지만 상황은 암담했다.
“조선군의 짓이오. 쇠마차 기습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자가 온 거요.”
“성주의 소환을 거부해서 조정과 척을 졌는데 이제 화해해도 되는 거 아니오?”
“어차피 우리에겐 버틸 식량이 없소. 북경에 서신을 보내 화해합시다.”
“조선에 한방 먹였으니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오.”
명에 다시 귀이하는 걸로 회의가 일단락될 때.
와아아아~
“죽여라!”
“뭐냐?”
“반란이다~”
밖이 요란해졌다.
잠시 후 휘하 부장인 모문룡이 피를 뒤집어쓴 채 들어왔다.
“감히!”
“우릴 죽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
“어차피 조정으로 돌아갈 건데.”
장수들의 만류에도 모문룡은 개의치 않고 손을 뻗었다.
곧 부하들이 들이닥쳐 장수들을 전부 죽였다.
“흐흐흐. 내 땅이다. 조선의 진짜 공포도 모르는 놈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여긴 내 땅이야.”
위화도 전투에 참여했다가 죽다 살아난 모문룡은 조선에 대한 공포가 뼛속까지 새겨져 있었다.
조선과 적대하기 싫은 공포와 기회를 잡아 성공하고 싶은 욕심에 모문룡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구름이를 타고 느긋하게 돌아오니 9월이 되었다.
세 달에 걸친 원정.
“형. 이 방법 좋은데? 그냥 전진할 때마다 형이 참전해서 모가지만 따면.”
“명나라는 안 됐잖아.”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그런 거고. 망해가는 명이지만 명 정도로 통제력을 발휘할 나라는 거의 없어. 국왕 모가지만 따면 나머진 와르르 하게 되지.”
“진로에 강한 나라 있냐?”
“어...... 러시아? 유럽?”
“멀었네.”
“그러게. 나중에 부대 접군하게 되면 그때 목 따줘.”
최소 10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래. 준비는?”
“끝났어. 10월에 시작할 거야.”
모현성과 앞으로의 일을 말할 때 반가운 손님이 왔다.
“전하. 요서국의 사신이 왔습니다.”
“요서국? 그건 어디 개족보국가냐.”
하며 나가보니 장수가 선물을 들고 왔다.
“...... 이리하여 명의 앞잡이들을 처단했으며 향후 요서국은 칸국의 굳건한 제후로써 열과 성을 다해 봉사하겠습니다.”
신종을 자처하는 모문룡의 서신.
몇 가지 보물과 기관차에서 탈취한 전리품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개방 거지 몇 명과 이귀가 왔다.
“저 놈 그 놈인가.”
“예. 과거 예조판서였다가 배신한 이귀입니다.”
정인홍이 대답해줬다.
모문룡의 배신으로 잡혀 돌아온 이귀.
광해는 모현성과 잠시 대화한 후 말했다.
“신종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서로간의 신의가 부족하다. 두 달 후 산해관을 치고 연경을 점령하라. 너흴 죽이려 한다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두 달이 지나면 칸국의 요구가 쉬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군을 준비했다가 시간이 되면 서진하라.”
선물은 받겠지만, 니들의 신종 따위 필요 없다.
싸워라.
모문룡의 사신 모유견은 선물만 바치고 아무성과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
모문룡은 전전긍긍했다.
기회다 싶어 장수들을 쓸어버리고 군부를 차지했지만 장악력은 약하다.
요서군의 정신적 기둥 이성량을 죽인 게 조선측임이 확실한데 조선과 신종하려 했으니 부하들의 불만도 크다.
그런데 신종을 거부당했다.
자칫 반란이라도 나면 죽는다.
모문룡은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일단 병사들을 한데 모아 통제했지만, 보물만 챙겨 어디로든 도망갈 생각뿐이었다.
“대장. 형님! 서신이 왔슈.”
“어디? 조선?”
“아니오. 명 조정이오.”
명에서 모든 죄를 사해주겠다 한다.
대신 전군을 이끌고 하남으로 가 반란을 토벌하라는 명이 내려왔다.
“하남에서 반란?”
“하남 뿐 아니오. 관중, 사천, 안휘, 장사 등 구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하오.”
광해가 즉위한 순간부터 계획하고 이덕형이 7년 가까이 맡아오던 일이 시행되었다.
11개의 군벌과 30개의 소수민족이 일제히 명에 반기를 들었다.
“참 다행 아니우? 식량도 이제 한곈데. 돌아가서 하남 토벌하면 우리도 대장군이 될 거유.”
멍청한 사촌동생놈이 헛소리를 내뱉는다.
“조선... 칸국의 짓이다.”
“예?”
“전에 네가 사신으로 갔을 때 두 달 후 산해관을 치라하지 않았냐? 상황이 좋아질 거라며. 그들은 두 달 전에 이 반란을 이미 알고 있었어. 어쩌면...... 그들이 반란의 배후다.”
머리는 나쁘지만 나쁜 짓엔 머리가 잘 도는 모문룡이 빠르게 정답을 말했다.
“헉. 그러네유. 그럼 어쩌쥬?”
“사신을 잘 대접하고 군대를 모아라. 천하를 먹는다.”
산해관 먹고 북경 먹은 후 힘을 키워 지방 반란을 하나씩 제압하면?
천자가 된다.
모문룡은 행복한 꿈을 꾸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