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에도만대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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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부탁드립니다.”
“그래.”
대장선의 옥좌에 앉은 광해가 눈을 감고 마법을 일으켰다.
광범위한 윈드마법이 남풍을 불러 일으켰다.
전 함대가 북상했다. 이대로 일본군에 접근해 포격을 하면 된다.
“이봐 군사. 지금 비가 멈추면 아군의 피해가 큰가?”
광해의 질문에 곽재우가 팔을 뻗었다.
손바닥에 내려앉는 빗방울이 아까보다 줄어들었다.
“약간의 피해가 추가됩니다. 허나 아주 약간 뿐입니다. 땅도 충분히 젖었고, 화약무기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할 것입니다. 왜구의 화포와 조총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알겠네.”
조용히 비를 추가하려다가 관뒀다. 마력은 소중하니까.
둥. 둥. 둥. 두둥. 두둥.
선봉의 배에서 둔중하게 울리는 북소리가 바뀌었다.
“장군 작전거리에 도달했습니다.”
“전열하고 포격하라. 정찰선은 동쪽에 퍼트려라.”
“옛.”
둥둥둥둥둥둥둥.
밤이다 보니 모든 명령은 소리로 전달해야 한다.
대장선의 사람 키만 한 전고가 가슴을 치는 묵직한 울림을 퍼트렸다.
콰콰콰쾅.
에도만 해전이 시작되었다.
선봉을 맡은 이운룡은 전방에서 돌아오는 소형 정찰선을 만났다.
“천보입니다. 적진과의 거리가 천보가 되었습니다.”
“그래. 전원 돛을 걷어라.”
노병의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바람의 힘으로 느릿하게 전진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싸울 시간이다.
둥. 둥. 둥. 둥.
이운룡의 배에서 전고의 박자가 바뀌자 전대별로 배치된 전고가 북소리로 화답했다.
곧 모든 함선이 돛을 말아 눕히고 노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오백 보 앞입니다. 장군! 적진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대장선 앞에 소형 정찰선이 나타나 소리쳤다.
이운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봄비와 바다안개를 뚫고 저 멀리에 희미한 빛이 어른거렸다.
“전열을 갖추고 신호를 보내라.”
두둥. 두둥. 두둥.
전고의 박자가 바뀌었다.
곧 뒤쪽의 총군사가 화답했다.
둥둥둥둥둥둥.
“좌현 전방. 방포하라. 좌현만 꾸준히 방포하라.”
“옛.”
둥둥둥둥둥둥.
고수가 자기 키 만 한 북을 열심히 쳤다.
콰콰콰쾅!
곧 300척의 판옥선이 자유로이 화포를 쏘기 시작했다.
전열전술이란 이동식 성채를 구축하는 것이다.
화포를 잔뜩 올린 가공할만한 화력을 갖춘 성채.
해전의 기초이며, 이 전열전술은 바다위에서 앞으로도 수백 년간 가장 효율적인 전술로 남는다.
300척의 판옥선이 옆면을 늘어뜨려 길이 2천보의 성채를 만들었다.
성채에는 무려 이천사백문의 화포가 배치되어 있다.
돛을 걷은 후에도 남풍은 멈추지 않았다.
옆면에 바람을 받은 판옥선은 천천히 북쪽으로 밀려갔다.
성벽이 움직인다.
화포 2400문을 나열한 성벽이 전진하며 포를 쏜다.
일본군 진영으로 다가서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성벽.
이것이 함선의 무서움이다.
이 시대는 수송능력의 한계로 인해 화포는 육상에서 사용하기 힘들다.
포병이 들기 힘든 무거운 화포와 포알과 화약을 끌고 적 400보 앞까지 가서 방열하다보면 적 기병에게 짓밟히기 일쑤다.
화포 앞에 적 기병을 막아설 병력을 잔뜩 깔아야 하는데, 이러면 적의 화살 공격에 녹는다.
적의 화살도 막을 수 있는 압도적인 병력이 있다면?
화포가 필요 없다.
계륵인 것이다.
송나라 때 발명된 화포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병종은 기병이다.
화포는 그저 주요 성채 방어용으로만 쓰였고, 이마저도 모든 성채에 화포를 까느니 기병을 키우는 게 효율적이다.
제련술이 발전해 화포의 사거리가 화살의 사거리를 충분히 넘어서고, 수송이 쉬운 가볍고 강한 화포를 제작할 야금술이 충분히 개발된 후에야 주전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해전에서는 다르다.
무거운 화포를 미리 설치해 두기만 하면 함선은 최강의 화력을 가진 기동력 좋은 병기가 된다.
모현성의 평가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유럽의 전투력은 압도적이지 않다.
하지만 화포를 잔뜩 실은 함선은 무적이다.
화포를 실은 함대가 적의 함대를 무너뜨리고, 해안가를 폭격한다.
그 후 협상하거나 내분을 이용해 정복한다.
이것이 대항해 시대다.
만약 최무선이 화포를 배에 실었을 때 세계로 눈을 돌렸다면 한반도가 세계를 지배했을 텐데.
한민족은 큰 기회를 놓쳤다.
콰콰콰콰쾅.
두두둥. 두두둥.
화포소리를 뚫고 새로운 신호가 들려왔다.
저 신호는 적과 충분히 근접했다는 신호다.
“전하.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광해가 눈을 감고 마력을 일으켰다.
조선군 함대가 가벼운 북풍을 만났다.
전진하던 성벽이 멈춰 섰다.
곽재우가 광해에게 원한 건 성벽이 정지한 채로 제자리 포격을 하는 것이다.
해류 약한 만이다 보니, 바닷물은 조류에 따라 움직인다.
지금은 썰물 시간. 바닷물은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광해는 가볍게 서풍을 일으켜 배가 서쪽으로 떠가지 않게 조종했다.
쿠쿵. 쿠쿵. 쿠쿠쿵.
제자리에 정선한 함대가 꾸준히 포격을 가했다.
한 시진 정도 지나자 서서히 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여명을 뚫고 정찰선이 달려왔다.
“돌격입니다. 적 전군이 돌격해옵니다.”
한 시진동안 무방비로 얻어맞은 일본군이 결국 최악의 선택을 했다.
곽재우가 광해를 바라봤다.
“돌격을 준비하라. 전군 돌격해 적선 위로 올라 백병전을 벌인다. 조총병은 남고 궁병을 최대한 태워라.
나오에 카네츠구는 조선군이 북상할 때 이미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늦었다.
관선이 백병전을 할 때 최대 승선인원은 180명.
갑판에 빽빽하게 타야 180명을 채운다.
이 숫자를 평소에 배에 실어놓을 수 없다.
전투 전에 태우더라도 잠은 육지에서 재워야 한다.
에도만엔 제대로 된 접안 시설도 없다.
안택선이나 관선을 해안에 붙였다가는 썰물 때 배가 누워버린다.
쪽배가 왔다 갔다 하며 태워야 한다.
이게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다.
쪽배가 정신없이 오가며 병력을 싣는 사이 포격이 시작되었다.
홀수가 깊어 좀 더 멀리 정선해둔 안택선과 관선은 무방비로 얻어맞았다.
“칙쇼. 졌어. 이길 수 없다고.”
조선군이 진군한 순간 이미 패배가 확정되었다.
배에는 당연히 전투병 일부가 타고 있다.
갑자기 조선군이 달려들어도 조총과 궁사로 버티고 육지에서 화포를 쏘며 버틸 수 있었다.
저 비만 아니라면 말이다.
카네츠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개다.
모든 배의 병력을 육지로 옮기고 함대를 포기하는 것.
혹은, 모든 병력을 배에 태우고 적에게 돌격하는 것.
그 무엇을 택하더라도 패배는 확정되어 있다.
패배의 댓가는 할복이다.
이 빌어먹을 병력들은 모두 도쿠가와를 지지하는 병사들이다.
죽어도 된다.
죽는 게 낫다.
죽어라.
“전군! 돌격!”
한 시진 동안 무방비로 얻어맞아 관선의 절반가량이 기능을 잃은 후에야 채비를 마쳤다.
안택선 열 척과 관선 130척, 50명 이상 태울 수 있는 중형선 천여척이 돌격을 시작했다.
“적이 돌진하는 건 선봉군도 알고 있겠지?”
“예.”
“그럽 됐다. 알아서 조란탄으로 바꿀 것이다. 전하. 딱 한식경만 부탁드립니다.”
곽재우가 광해를 돌아보며 조아렸다. 광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전열한 조선군 전방 30보 거리에 강한 남풍을 만들었다.
노를 저어 달려오던 일본 선박들은 어느 순간 바람벽을 만났다.
강한 바람에 배가 나아가지 않는다.
열심히 화살을 쏴도 적선에 닿지 않는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직사로 쏴도 화살이 꺾여 바다에 쳐박혀 버린다.
신기하게도 뒤에서 오는 배는 바람을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선두와 엉켰고, 강한 바람에 멈춰버렸다.
덕분에 조선군의 얼굴이 확연히 보이는 거리에 일본군 선박이 뭉쳤다.
일본군 코앞에 전열한 화포들이 불을 뿜는다.
주먹 만한 쇠구슬이 갑판을 쓸거나 배에 구멍을 내고 지나갔다.
여덟발 중 한 두발만 갑판을 쓸 뿐 나머지는 바다에 떨어진다.
사실 큰 피해는 없다.
정작 무서운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좁쌀이다.
쇠구슬 뒤에 좁쌀만한 납탄과 쇠탄이 수백 개 섞여 날아온다.
판옥선 한 척당 이천발의 좁쌀이 날아온다.
티끌 같은 좁쌀이 피보라를 일으킨다.
조란탄의 살상거리는 50보 이내.
딱 그거리에 일본군이 뭉쳐있다.
“선회하라. 최대속도로 공격하라.”
“예. 장군.”
이 순간을 위해 노병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좌현이 불을 뿜자, 신호를 받은 노병이 배를 돌렸다.
전원 좌현에 붙어 있던 포병들이 반씩 나뉘었다.
우현 방포. 그 사이 좌현 장약. 선회. 좌현 방포.
판옥선이 뱅글뱅글 돌며 화포를 쏟아냈다.
간혹 바람을 뚫고 접근하는 관선이 있다.
접근해도 뱅글뱅글 선회하는 판옥선에 붙기 힘들다.
붙어도 문제다. 판옥선은 관선보다 키 이상 높다.
갈고리를 단 밧줄을 걸고 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갑판엔 적 창병이 대기하고 있다.
벽채에 세운 방패 뒤에 숨어 있다가 넘어오는 무사를 찌른다.
창병의 견제를 뚫고 갑판을 장악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차 한잔 마실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콰콰쾅!
바싹 붙은 화포가 수천발의 좁쌀을 쏟아낸다.
화포 여덟 발에 관선 위의 병사 150명이 몰살당한다.
광해는 조용히 곽재우의 지휘를 지켜보았다.
화약 소모가 많긴 하지만, 안전하게 운용하는 게 마음에 든다.
왕에게 자기 어필을 하려는 공명심도 없다.
그저 최소한의 피해를 통한 승리만 생각한다.
전쟁은 어려워서는 안 된다.
팔면포위나 십면매복 같은 화려한 전술은 애초에 생각도 해선 안 된다.
그런 건 모현성 같은 관종이 짜내는 전술이다.
곽재우가 내세운 전략은 최대한 단순했다.
비를 기다려 적의 화약무기를 침묵시키고, 돌격해 전열한 후 포격한다.
광해의 능력을 이용해 백병전을 막고, 화포로 전투를 끝낸다.
단순한 전략 덕에 각 함선의 선장은 지시를 완벽히 이행하고 있다.
모든 것은 곽재우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
자유포격 두 시간. 적의 돌격이 시작된 후 집중포격 30분.
딱 두 시간 반 만에 전투가 끝났다.
전투는 화려하지 않아야 하고 재미없어야 한다.
단순해야 하고, 이야깃거리가 없어야 한다.
월등한 숫자와 강한 화력으로 안전하게 승리를 거두는 것.
이것이 최고의 전투다.
광해는 곽재우의 지휘력을 인정했다.
“재미없네. 남자답지 못해. 호쾌한 액션이 없어. 영웅이 없어. 소설로 못 써.”
모현성의 생각은 달랐지만 무시한다.
“우군 권준에게 전해라. 에도강 하구로 진출하라.”
곽재우는 전투가 끝났음을 깨닫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아직 저항하는 몇몇 함선은 이운룡이 침묵시키면 된다. 조직적인 저항을 못하는 적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우군을 맡은 권준은 판옥선 70척을 끌고 동진했다.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에도강 하구가 있다.
강을 오를 수 있는 소형 선박들이 강을 따라 도주하고 있었다.
이미 놓친 고기는 버리고 달려드는 고기만 잡는다.
에도강 쪽으로 퇴로가 막힌 소형선들은 무의미한 저항을 하다가 침몰당하거나 후퇴하다가 이운룡의 부대에 침묵했다.
포격 시작 세시진 만에 전투가 끝났다.
“포격중지.”
정오 즈음에 곽재우가 보슬비를 맞으며 선언했다.
에도만에 일본 함선은 한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와아아! 이겼다!”
“승리다! 대승이다!”
“죽였다! 왜구들을 죽였다! 주상전하 천세!”
“광해님 천세! 천세! 천천세!”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저마다 제각각 기뻐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넓은 에도만이 작은 배에 최대한 꽉꽉 채워 돌격한 일본군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곽재우는 곧장 전장 정리를 한 후, 포로와 침몰하지 않는 선박을 수습해 에도만 남쪽으로 이동했다.
재정비의 시간이다.
2년 5월 9일 에도만 대첩
조선군 침몰 정찰선 2척. 사망 287명.
일본군 전력. 안택선 10척 관선 276척. 중형선 1300척. 소형선 1000척
나포 안택선 6척, 관선 141척, 중형선 611척.
퇴각 중형선 200여척, 소형선 600여척. 그 외 침몰.
사망 5만 여명 포로 2만 여명
완벽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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