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주산도 점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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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여있는 해적.
그들을 보자 눈이 뒤집혀진다.
“내 아내가...... 임신한 상태였는데......네 놈들 때문에 내 아들이 죽은 채로 나왔다.”
“내 전 재산이었던 배를 빼앗아가고......”
하나 둘 해적들에게 다가간다.
묶인 해적들 주위엔 친절하게 해적의 무기가 꽂혀 있었다.
해적들은 공포에 질려 몸부림치지만 손과 발을 단단히 묶어놨기에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게 고작이다.
“죽어!”
“네놈들 때문에! 네놈들이!”
특히 정크선의 노병으로 살던 노예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멀쩡한 양민이었다가 해적에게 납치되어 발이 묶인 채 선체 바닥에서 노를 저어야 했던 노예.
그들의 등에는 지워지지 않는 채찍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아아악!”
“살려줘!”
“난 아니야. 난!”
칠천 명의 해적과 가족들이 살육을 당했다.
해적들이 먼저 죽고, 양민의 피를 빨아먹던 가족이 죽었다.
개 중엔 죄 없는, 아무 원한이 달려있지 않은 어린 아이들도 죽고 있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여아들이 비명을 지르며 강간당했다.
광해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가 끓어올랐다.
원한이 있는 자가 원한을 갚고 있지만, 원한 없는 이도 분위기에 휩싸여 나서고 있다.
저들이나 해적이나 똑같다.
자신보다 약자들을 괴롭힌다.
살인 강간이 죄가 되지 않는다면 살인을 즐길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처음 포로에 대한 처분을 기획한 모현성마저도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려는데 광해가 막았다.
“애초에 이리 될 줄 알았다. 알면서 네 계획에 동의했다. 그러니 지켜봐라.”
“형......”
아아악!
제발.
그만. 제발 내 딸은.
비명이 울려 퍼지는 대지.
“그만하시오. 아이들은 아니오!”
“죄 없는 아이는 건드리지 마시오.”
“아가씨는 우리를 돕고 식량을 나눠주지 않았소?”
“주위를 보시오? 조선군이 보이지 않소?”
몇 몇 사내가 정신을 차렸는지 소리쳤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 중 달려가 말리는 이도 등장했다.
앞의 말은 별 효과가 없었지만, 마지막 말이 광기에 휩싸인 백성들의 이성을 서서히 되찾게 해 주었다.
학살의 대지.
해적이었던 사내들은 전부 죽었고, 해적의 아내로 호가호위하며 양민을 괴롭히던 아내 대부분이 죽었다.
그 부모와 아이들 일부가 죽었고, 일부는 강간당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눈 앞에서 부모가 죽은 해적의 아이들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참상을 본 백성들이 찬물을 맞은 듯 주춤주춤 물러났다.
광해가 천천히 나섰다.
그나마 저들이 끝까지 가지 않았으니 재활용 할 여지는 있다.
“너희의 원한이 풀렸구나. 이제 더 죽일 자는 없나?”
광해의 말에 백성들이 주위를 둘러봤다.
죽을 자는 다 죽었다.
피비린내 나는 대지가 침묵에 빠지자 광해가 마무리했다.
“우리와 협력할 자를 찾고 있다. 협력할 자는 협력하라.”
이단의 해적단과 피의 원한을 맺었다.
저들은 원한을 갚은 것이지만, 훗날 이단이 대선단을 몰고 와 복수를 할 것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조선에 협력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모현성이 기획했지만, 스스로도 참상이 이리 더러울 줄 몰랐는지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들어가자. 술이나 마시자.”
광해는 모현성을 데리고 숙영지로 돌아갔다.
빈자리를 백칠이 채웠다.
일본 원정과정에서 솎아낸 피에 미친자들.
백칠이 이끄는 삼천명의 병사에 이곳 주민 중 자발적 지원자를 합쳐 정크선 백 척을 보유한 해적단을 만들 것이다.
이단의 해적단이 사라진 자리는 앞으로 백칠이 차지한다.
이제 두 달간 기다려야 한다.
큰 바다를 건넜으니 배를 수리해야 한다.
배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해도 수리가 필요하다.
목조선박은 나무를 이어 붙여 아교 등 방수제를 발라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한다.
그런데 배가 충돌하거나 대포를 쏘거나 강한 파도에 맞으면 나무가 흔들리면서 방수제에 틈이 생긴다.
이 틈으로 물이 샌다.
그래서 전투 한번 할 때마다 또는 항해 한번 할 때마다 새어 들어오는 물을 막는 보수를 해야 한다.
판옥선과 새로 건조한 갤리온마저도 침수가 있다.
나포한 정크선 백여 척도 백칠이 쓰기 위해선 수리를 해야 한다.
여기엔 주산도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대부분 어선을 몰아본 이들이기에 함선 수리에도 도움이 된다.
백칠의 부대는 죽일 줄만 알지 배에 대해선 거의 알지 못한다.
주민들이 돛과 노를 맡아 항해해줘야 한다.
해적의 배에서 노를 젓던 노예들과 자기 배를 몰던 주민들 일부가 자원해 백칠의 함대에 합류했다.
“나도! 나도 태워주시오! 내가 도움이 될 게요.”
정리하지 못한 건 몸값을 기다리던 포로 천 명.
명나라 고관의 가족과 양반가문, 상단가문의 자제, 해전에서 포박된 장수 등이 있다.
모현성은 이들을 다 죽이자고 했고, 광해는 기다려보라고 했다.
“죽여야 해. 조선의 힘이 알려지면 전쟁이 벌어질 수 있어.”
명나라 관료체계가 거의 무너져 아직 전쟁이 벌어지진 않고 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모현성은 최대한 조선의 힘을 감추고 싶어 했다.
“어차피 소선 수십 척을 놓쳤어. 만취도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기저기서 판옥선 함대를 봤고, 그 눈을 다 막지 못했지.”
“그래도 최대한 막아야지. 단순 어민이 보고하는 것과 저 자들이 직접 말하는 건 달라.”
“됐어. 알려지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보다 니가 과잉반응 하는 것 같은데. 조선 상황이 알려진지 1년이 다 되는데 아무 반응 없잖아. 오히려 이덕형의 구호활동을 허가하고. 지금 명나라는 시스템이 완전 죽은 채 숨만 몰아쉬는 거인일 뿐이야.”
“그건 알지만...... 난 이미 대만에서 다 죽였는걸.”
“이미 죽인 건 어쩔 수 없지. 저놈들은 몸값 받고 풀어주자.”
광해가 인본주의로 풀어주자는 건 아니었다.
몸값을 내놓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는다.
적절한 몸값이 올 때까지 그들은 노동에 동원된다.
광해와 모현성이 나무를 베어 판자를 만들고 있는 포로들을 보며 대화할 때 포로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나도! 나도 태워주시오! 내가 도움이 될 게요.”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광해는 감시중인 병사에게 눈짓했다.
병사가 채찍을 들고 다가오자 청년은 급하게 소리쳤다.
“본인은 광동 출신 거인, 스물여섯 원숭환이오. 나를 껴주시오! 시키는 대로 하겠소. 쓸모 있을 것이오.”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고 있네.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며 가던 길 가려는데 옆에서 모현성이 반응했다.
“어? 원숭환? 저놈 원숭환 어쩌고 한거 같은데.”
광동어를 모르는 모현성은 이름만 겨우 알아들었다.
“자기가 원숭환이래. 왜? 알어?”
“어. 명장. 중국 최고의 명장. 소설로 과장된 녀석들 빼면 중국 역사 통틀어서 최고의 명장일걸.”
“그래? 저놈이?”
광해는 모현성의 설명에 추레한 포로를 돌아봤다.
찰싹. 찰싹. 찰싹.
아악. 악. 그만. 알았어 일할게. 그만 악.
병사의 채찍을 맞으며 오징어처럼 배배꼬는 저 놈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고?
“어. 충무공처럼 불우하게 죽어서 버프 받은 것도 있지만, 알려진 공적만큼은 진짜야. 제갈량이나 악비처럼 소설이 만들어낸 명장 말고 진짜 병법을 이해하고 실제 대승을 올린 명장.”
“그런 놈이 왜 여기 붙잡혀있지?”
“젊을 적 여행을 많이 다니며 신기술과 병법에 눈을 떴다던데. 붙잡혔다가 해방되고 후에 청나라와 싸우나보지. 나줘. 형. 나줘.”
“성향은?”
“충신. 명나라 마지막 충신이고, 저놈이 사형 당한 후 명나라가 무너지지.”
“그럼 못 써먹겠네.”
“아직 어리잖아. 저런 명장은 교육으로 키울 수 없어. 중국 쪽 전장에 보내지만 않으면 되지. 어차피 형의 제국은 민족주의를 지울 거잖아. 차차 동화되게 만들게.”
찰싹.
“음. 그래 알아서 써먹어라.”
찰싹.
“어. 그런데 안전장치 같은 거 달아줄 수 있어? 배신을 마음먹으면 머리가 터진다든가 하는.”
찰싹.
“전에도 말했듯이.”
찰싹.
“어렵다고?”
찰싹.
“어. 대신 마킹 정도는 해두마. 언제든 마음먹으면 죽일 수 있게.”
찰싹.
“어쩔 수 없지. 배신할 빌미를 주지 않도록 다른 나라로 뱅뱅 돌려야지. 아차. 멈춰라.”
찰.
“크허허헉.”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병사 덕분에 원숭환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선의 왕 광해다.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마.”
“호에엥? 상처가 사라진다.”
“난 신의 힘을 받았다. 내게 충성하겠느냐?”
원숭환을 치료해주고 놀란 표정이 사라지기 전에 등용 의사를 전했다.
“예에...... 그것이...... 신기한 기술이 많이 보여서 일하며 호기심을 풀고 싶었을 뿐이오만......”
“즉. 조선의 신기술만 쏙 빼먹고 명나라에 충성하겠다는 말이군. 대놓고 첩자질을 하겠단 말이네. 죽여야겠어.”
“앗. 그게 아니옵고. 아닙니다. 그런 비열한 생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조선이 이곳까지 진출한 것을 보면 분명 명과 마찰이 생길 듯 한데 소관이 조선국에 출사한다면 모국과의 마찰에 이도저도 못 할 테고 결국은 소관을 낳아준 조국을 배신하거나 출사한 조선국에 배신하게 될 터이니 그 또한 죄가 될 터, 이를 어쩔 수 없기에 처음부터 문제될 상황을 줄이고자 합니다.”
출사하라는 말 한마디에 여기까지 생각한 거야?
확실히 똑똑한 놈 맞다.
그보다
“말이 참 많네. 하나만 약속하지. 출사하면 부귀와 영화를 안겨주겠다. 조선과 명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네가 명과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네 모든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겠다. 출사해라.”
“소관이 거절한다면...”
“죽인다.”
광해는 원숭환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잘랐다.
원숭환은 즉각 대답했다.
“출사하겠습니다. 주군으로 모시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간단하군.
똑똑한 놈들에겐 긴 설명이 필요 없어서 편하다.
광동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현성은 분위기를 봐서 잘 풀렸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했다.
“아싸. 좋아. 이놈하고 개떡이랑 둘이 같이 키워야지. 각각 동방원정군. 서방원정군 맡기면 되겠네.”
과거로 이동한 모현성은 인재에 대한 알 수 없는 로망이 있었다.
원숭환 키우는 것은 모현성이 알아서 하겠지.
3년 5월 11일. 광해는 원숭환을 등용했다.
주산군도는 예로부터 왜구와 중국 해적들의 본거지였다.
해안약탈의 요지이며 장강 하구를 통해 강으로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길목이며, 세운선 약탈에도 용의하다.
왜와 장강을 잇는 항로로 약탈할 먹잇감이 넘쳐나는 곳이며 관군의 토벌이 오면 군도의 섬을 이용해 도주와 은신이 용이한 천혜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이단이 점거한 주산도 외에도 중소형 섬을 기반으로 한 해적단이 일곱개 정도 더 있었다.
그들은 주산도를 점령한 조선군의 서찰을 받게 되었다.
하나. 우리는 이단만을 토벌하고 돌아갈 것이다. 해적활동에는 관심이 없다.
둘. 합류하면 이단 토벌 후 빈자리를 분배해 주겠다.
셋. 거부하면 이단 해적단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도망치면 남은 가족과 다스리던 마을 전체를 박살낼 것이다.
서찰을 두고 해적들이 갑론을박할 때 주산도의 상황이 들려왔다.
해적과 그 가족들이 죽고 강간당한 지옥도.
해적들은 일제히 선단을 끌고 와 복종했다.
애초에 이단의 해적단에 강한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힘에 굴복해 돈을 뺏기던 처지.
굳이 그들을 위해 목숨 바칠 필요는 없다.
두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원정단의 조직이 끝났다.
조선 판옥선 이백 척.
백칠 해적단의 정크선 백 척.
군소 해적단의 정크선 백팔십 척.
2000t급 갤리온 세 척.
이단의 모든 해적단이 힘을 합쳐도 조선군의 전력이 앞선다.
단순 힘싸움에선 판옥선보다 강한 함선은 없다.
“형은 돌아갈 거지?”
출항 준비를 마친 대선단을 바라보는데 모현성이 작별인사를 한다.
“그래. 신석 충전하려면 한성에 있어야지.”
신석 400개를 다 썼을 시간이다.
광해는 한성으로 돌아가 그간 쌓인 마력으로 신석을 충전해야 한다.
신석을 이곳으로 수송해 충전해도 되지만, 수송선이 가라앉으면 골치 아파진다.
새로 만들 수도 없고 건져 올릴 수도 없는 신석.
주산도에서 두 달간 펑펑 논 광해는 이제 한성에 돌아가 놀 생각이다.
“괜히 깝치다가 뒤지지 말고. 위험하면 바로 통신하고.”
“날 믿어.”
“믿긴. 개뿔. 지휘는 개떡이에게 맡기고 괜히 미친 짓 하지 마라. 너 죽으면 조선의 발전이고 뭐고 다 멈춘다. 내가 구원 오는데 30분 걸리는 거 기억해라.”
게이트를 열고 달려올 수 있으니 암살이 아니면 모현성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았어. 아. 쫌. 빨리 돌아가. 광해함 먼저 출항해야지.”
왕의 함선부터 복귀하고 모현성의 함대가 남방원정을 떠난다.
광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래. 돌아.... 아. 시발.”
“어?”
“이덕형이 죽어간다. 사람부터 다 모아라.”
광해는 두 손으로 게이트 마법진을 그리며 말했다.
- 작가의말
원숭환이 포로인 것은 픽션입니다
저는 악비와 제갈량의 공적을 과장소설에 의한 왜곡이라 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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