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해미댁2
순도 100% 픽션입니다
찬희 아범이 땔감에서 적당한 나무를 주워왔다.
해미댁은 거울조각을 이리저리 보더니 나무에 맞춰보곤 명령한다.
“이거, 여기 여기 잘라줘유. 그리고 불로 살짝 구워줘유.”
“예 마님~”
불로 구워 잔가시를 없앴더니 작은 칼로 여기저기 자르고 홈을 판다.
홈에 불쏘시개로 쓰는 먼지를 채우고 거울을 끼우니 딱 들어맞는다.
한참 공들여 테두리를 만들고 나니 손바닥만한 작은 거울이 만들어졌다.
해미댁은 골똘히 보다가 휙 던졌다.
“허억! 뭔 짓이여!”
덜그덕.
바닥에 떨어진 거울이 딩딩딩 하더니 멈춰 선다.
“깨지는지 보려 그랬쥬. 일부러 나무 테를 크게 하고 먼지를 채웠으니 뾰족한 돌에 거울면이 먼저 떨어지지만 않으면 깨지지 않을 거유.”
“아니 그래도. 말을 해주고 던져야지. 간 떨어질 뻔 했네.”
“난 이미 간이 떨어져서 상관 없어야.”
간이 떨어진 게 아니라 부은 거 같은디?
하나를 완성하더니 해미댁은 다른 거울조각을 들어올리고 이리저리 재본다.
골똘히 연구하는 모습을 보니 찬희 아범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찬히 어미는 힘이 없었다.
예전에는 언제나 활동적으로 열심히 움직이며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손재주가 좋은 해미댁은 면포를 빠르게 잘 짰다.
소작으로 버는 품보다 해미댁이 면포 짜서 판 품이 더 많았다.
애 엄마가 가족을 먹여 살린 것이다.
그런데 광해면포의 품질이 너무 좋으니 집에서 면포 짤 이유가 없어졌다.
광해포목에서 목화솜을 쓸어가자 목화 솜 값이 오르면서 면포를 짜 봤자 남는 품도 없고, 힘들게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는다.
물레와 베틀에서 손을 놓자 천성이 부지런한 해미댁은 예전에 찬희를 낳았을 때처럼 우울하게 앉아 있는 나날이 많았다.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넋 놓고 있느니 손거울이라도 만들면 좀 나아지겠지.
어떻게든 반이라도 건지면 다행일 테고.
“쌀 네 말.”
“에구머니나. 그렇게 비싸?”
“그제. 대신 이렇게 떨어뜨려도 안 깨지고.”
덜그덕.
“큰 거울은 들고 다니기도 힘들 자녀. 솔직히 쌀 네 말이면 남는 것도 없어.”
“에구. 그래도.”
“싫으면 사지마. 보령댁에 가봐야지.”
“잠깐. 언제 사기 싫댔어. 은전 하나면 되지? 기다려봐.”
영란 엄마가 집으로 뛰어가더니 안방에 꼬불쳐둔 은전을 들고 왔다.
은전을 받아 들면서 해미댁은 심장이 쿵덕쿵덕 뛰었다.
팔았다.
깎아달라고 할 걸 생각해서 두 배 비싸게 불렀는데 팔려버렸다.
조각 거울마다 다른 모양의 테두리를 붙이고, 손잡이도 오목볼록하게 만들고, 뒷면에 조개껍데기도 붙여 예쁘게 만들었지만, 진짜 팔릴 줄 몰랐다.
다른 거울도 팔렸다.
또 팔리고, 또 팔리고.
결국 가장 작은 엄지손가락 만한 조각도 쌀 한 말에 팔렸다.
쌀 다섯 석 아홉 말.
쌀 네 석 짜리 거울 깨진 게 쌀 다섯 섯 아홉 말이 되었다.
인생......
“찬희 아빠. 내 뺨 좀 쳐봐유.”
짝!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치고 있어. 왜 이래 사람이.”
“치라메. 이 여편네가 미쳤나.”
“됐고. 우리 거울 하나 더 삽시다.”
“응?”
“거울 하나 더 사서 깹시다.”
“이 여편네가 진짜 미쳤나. 안 돼. 들어가서 밥이나 혀.”
화는 함께 오고 복도 함께 온다.
“춘수 사장님. 권창조 사장님. ...... 해미댁 사장님. 나와주세요.”
다음 종교활동 날 태안단주가 열 명의 사람을 단 위로 불렀다.
어어 하며 단 위에 서자 수천명의 사람들이 빤히 바라본다.
태안 단주가 말했다.
“이상 열 분의 사장님은 광해상회 태안점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매입하신 분입니다. 광해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광해상회를 열심히 이용해주시고, 그 제품을 널리 알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셨으니 상을 드립니다. 이후로도 계절마다 광해상회를 많이 이용하시는 분들께 상을 드릴 생각이오니 많이 이용해 주십시오.”
상은 무려 은화 하나씩이다.
해미댁은 어어 하다보니 상을 받았고, 박수를 받았고, 시기와 질투, 부러움을 받았다.
왜 주는 거지?
또 많이 이용하면 또 받을 수 있나?
의아하지만 일단 받는다.
“찬희 엄마 축하해.”
“아유.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니까.”
“해미댁은 무슨 돈으로 그랬대.”
마을 아지매들이 모여 질투어린 축하를 건넨다.
그들 손엔 저마다 예쁜 손거울이 들려 있었다.
“축하혀. 잘 됐네. 그 은화로 가을까지 날 쌀을 살 수 있겠어.”
남편도 딸의 손을 잡고 와서 축하를 건넨다.
남편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던 해미댁은 광해상회로 갔다.
“어어? 어디가? 집에 안가?”
남편 말이 안 들린다.
광해상회에 들어가서 거울 두개를 사서 나오니 보기 싫은 권첨지댁이 기다리고 있다.
“해미댁! 그 은화 내가 받아야 하는 거잖아. 내가 심부름 시켜서 산 걸로 상 받았으니 내꺼지.”
이 돼지년만 만나면 위축된다.
소작 살던 시절 하도 당한 게 많아서 어깨가 움추려 든다.
“그... 그... 상으로 받은 은화를 이 거울로 바꿨는데...”
“잘 됐네. 이리 내. 내가 거울 열 개 사오라고 했지? 하나 덜 사왔잖아. 내놔.”
“안 돼요. 이건. 꺄아.”
권첨지댁이 투실투실한 팔을 우악스럽게 뻗자 놀란 해미댁이 팔을 뒤로... 뻗지 않고 앞으로 뻗었다.
해미댁의 손에 들린 거울이 권첨지 댁의 손에 맞아 땅에 떨어졌다.
쨍그랑.
“꺄아아. 어떡해. 쌀 네 석 짜리 거울이 권첨지댁 때문에 깨졌다아.”
“에구. 세상에.”
“이를 어쩐댜. 저 비싼 걸.”
“권첨지 집엔 돈이 많아서 별 문제 안 되겠지.”
추임새 좋고.
“아니 이건. 내가 깨려던 게 아니고. 해미댁이 놓쳐서 떨어진 거여.”
“내가 봤어! 권첨지 댁이 쳐서 날아가는 거 봤어.”
“저런 썩을 년이. 지금도 지주인줄 아나.”
“관아로 갑시다. 송사 도와줌세.”
태안의 넓은 밭을 갖고 있던 지주에게 쌓인 게 많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도와줬다.
증언을 해줄 사람들과 함께 관아로 가는 길.
해미댁의 품엔 주워 모은 거울 조각이 들려 있었다.
거울 조각이 해미댁의 손재주와 만나 불티나게 팔렸고, 송사로 권첨지댁에게 보상을 받게 되자 해미댁은 재산을 순식간에 모았다.
남편이 이년 뼈 빠지게 농사지어야 벌 재물을 단 두 달 만에 모은 것이다.
해미댁은 돈에 눈을 떠버렸다.
그런데 이제 손거울이 잘 안 팔린다.
인근 고을에 손거울을 살만한 이들은 거의 다 샀고, 해미댁을 따라한 이들이 많이 생겼다.
해미댁은 고향 해미까지 가서 거울을 팔았다.
작은 손거울 여러 개를 만들어 방문했고, 아름다운 거울에 여인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요즘 이거 안 들고 다니는 여자가 어딨어?”
“얼굴도 안보고 어떻게 살아유.”
“이렇게 얼굴 보면서 분칠을 하면 따단!”
더 비싸게 팔렸다.
지주들만 쓰는 은거울을 만날 일이 없던 아낙들은 거울이란 신문물에 감동해 더 큰 돈을 거리낌 없이 지불했다.
더 많은 재물을 얻었지만, 해미댁은 불만이 생겼다.
자신의 손재주는 다른 이들이 쉽게 못 따라온다.
그런데 만드는 건 하룬데 파는 건 사흘이 걸린다.
해미댁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지매. 이거 팔아볼래?”
주위엔 자신처럼 성격 좋고, 인간관계 넓은 아줌마들이 널려 있다.
근 석 달 동안 배멀미로 고생한 이괄은 고성으로 돌아와 보름 넘게 앓아누웠다.
그 보름 사이에 소문이 퍼져 이괄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국가에서 일을 시켰는데 생각지 못한 외적의 공격을 받았으나 열심히 싸운 걸로 포장되었다.
나라에서는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해줬다.
죽은 선원 각자의 집에 재물을 보내고, 이가상단에는 서른 척의 수송선을 보내줬다.
게다가 무려 1000톤급 상선을 고성으로 보내줬다.
청진의 광해조선에서 갓 건조한 따끈따끈한 신상이다.
이괄함.
배에 이름까지 붙어서 왔다.
“세상에나.”
“역대 어느 권신이 저리 귀한 하사품을 받아봤겠어?”
“고성 이가 가주가 스물 갓 넘긴 나이라던데 벌써 이리 임금님의 신임을 받다니.”
칭송은 언제나 옳다.
이가 상단에 투자했던 양반들의 신뢰가 올라간 것은 둘째 치고, 아직 보상이 남은 양반들이 이괄에게 달려와 재산을 맡기려 한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인 이괄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들과 어울렸고 유구국에서의 도주가 멋들어진 영웅담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게 꿈결 같은 나날을 보내는 중 생사를 오가며 친해진 선장이 왔다.
“상단주. 이가 상단 재편성 끝났어. 명령서대로 출항하면 돼. 이가상단은 대마도로 가서 물자를 싣고 팔렘방에 내려준 후 구름표범섬에서 물자를 싣고 의주로 가야 해.”
“그렇군. 출항 하시게.”
다시는 배 안 탄다. 배는 나와 맞지 않는다.
고향에서 사람들에게 추앙받으며 술 마시며 놀고먹을 셈이다.
몇 달 동안 멀미로 고생한 이괄의 굳은 다짐이다.
“뭔 헛소리고? 상단주가 타야 출항할 수 있어.”
“응? 내가 왜? 상단주가 꼭 탈 이유는 없잖아. 솔직히 아는 것도 없고. 그냥 선장이 지휘해.”
“아하하. 잘 못 이해했나본데. 이괄함 받을 때 같이 온 서신을 살펴봐. 이괄함은 국가주요자산이며, 타국에 뺏기면 절대 안 되는 전략자산이므로 상단주 이괄이 탔을 때만 항해 가능하다, 라고 적혀 있었어.”
“뭐? 그게 뭔 개소리야?”
“개소리라니. 상단주의 무력을 믿고 귀한 배를 맡긴다는 소린데. 상단주가 배에 타지 않으면 이괄함은 움직일 수 없고, 배가 한 달 넘게 묶여 있으면 몰수돼. 그러니 열심히 항해하자고. 자 출항하자. 날짜 맞추려면 빠듯해.”
“아니. 아니. 그럼 이괄함 빼고 출항하면 안 될까?”
“하하하. 농담도 잘하셔. 이괄함 혼자 다른 수송선 열네 척 분량을 수송하는데 빼자고? 하하하. 갑시다. 상단주.”
“아아. 제발. 아아 안 돼.”
이괄은 울면서 바다로 끌려 나갔다.
멀미로 고생한 이괄을 본 광해가 이괄이 받을 보상을 소상하게 정해준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
“역사의 복수닷! 최소 5개월은 바다 위에서 고생하겠지.”
모현성의 말에 광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괴롭히느니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게 낫다니까. 그보다 넌 이괄 죽이는 거 막았잖아.”
“아직 죄 짓지 않았으니 죽이면 안 되지. 하지만 역사가 입은 피해를 소소하게 골탕 먹이는 것쯤은 괜찮잖아?”
이괄은 영영 모를 것이다.
“우웨에에엑.”
- 작가의말
살려줘웨웨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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