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산업진흥책2
순도 100% 픽션입니다
“공개하겠습니다. 전하.”
“그래. 고맙네. 그대들의 큰 뜻이 이 나라를 잘 살게 만들 것이야. 자 그럼 그대들의 손해를 메워줘야겠지. 다들 차 한 잔씩 들게.”
광해가 말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기녀들이 다가와 차를 한잔씩 따라줬다.
양반들은 거무튀튀한 액체를 사약마시는 기분으로 마셨다.
씁쓸하다. 매우. 꽤.
향이 단단하다?
“홍차라는 거야. 참고로 난 이 제품을 서양 상선에 한 근에 쌀 한 석으로 판매할거야.”
차 한 근을 쌀 한 석과?
양반들의 눈이 커졌다.
“신이 마시는 차지. 현재 명나라의 차가 서양 교역선에 한 근 당 쌀 네 석 가격에 밀거래되고 있어. 그런데 이 홍차는 명나라의 차보다 맛이 뛰어나. 그리고 명나라는 해금령 때문에 마카오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밀수출되고 있어. 나는 이것을 정식 교역품으로 만들 생각이고. 난 재산에 손해 본 양반에게 이 홍차 만드는 비법을 알려줄 거야. 물론 광해홍차라는 기업을 만들어서 직접 만들고 있지만, 이건 내가 만드나 자네들이 만드나 맛의 차이는 없을 거야. 그러니 선물을 받아 잘 이용해보도록 해.”
왕의 선물.
무려 신이 마시는 차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 한다.
“그리고 찻잔을 잘 봐봐. 투명하지?”
양반들의 시선은 차를 담은 잔으로 향했다.
투명하다.
더없이 맑고 투명하다.
왕에게 휘둘리느라 이렇게 아름다운 잔을 이제야 눈치 챈데 충격을 받았다.
“유리라는 물체야. 흙으로 만든 자기처럼 모래로 만든 자기야. 난 이거 만드는 법도 알려줄 거야. 그리고 내가 왜구에 끌려간 포로를 구한 거 알지? 그 중 도자기 만드는 도공이 900명이나 있어. 그들 중 200명은 내가 고용했지. 광해자기에서 이 유리잔과 도자기를 만들고 있어. 헌데 남은 인원이 꽤 있네. 자네들이 집안의 재산으로 기술자들과 유리, 도자기 사업을 벌이는 건 어떨까. 참고로 내겐 자기를 좀 더 발전시킬 기술이 있어. 그걸 우선 자네들에게 알려줄 거야. 재산을 잃은데 대한 보상이지.”
“가 감사합니다. 전하.”
양반과 상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모든 사업을 독점하지 못한다.
유리 기술들은 타국에서도 갖고 있는 기술이다.
양으로 승부해야 한다.
양반과 상단이 서로 경쟁한다면 가격은 내려가고 질을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상선. 현재까지 광해조선에서 2~5인 탈법한 소형 어선을 천오백 척 팔았어. 이제 5~50인 탈수 있는 중형 선박 사백 척과 50~200인 탈수 있는 대형 선박 이백 척을 팔 생각이야. 귀관들에겐 빼앗긴 재산만큼 선박으로 보존해주겠네. 큰 배로 무얼 하느냐? 당연히 교역이지.
앞으로 조선은 해양으로 나간다. 해외와 교역할 일이 많아질게야. 그대들이 상단을 꾸린다면 내 최소 10년간 일거리를 보장해주도록 하지.”
바다로 나가야 한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바다로 내보내야 하며 전 세계 바다에 조선의 배를 깔아야 한다.
적어도 네덜란드 상선의 숫자는 따라잡아야 한다.
많이 늦었다.
양반들에게 가격표를 던져주었다.
몰수하는 땅과 노비의 가치에 맞춰 유리와 자기, 홍차 덖는 기술, 상선 만드는 조선업 기술은 낙찰 받은 몇 가문에게만 판매했다.
몰수량이 부족한 이들은 배를 얻는다.
모두 일본에서 노획한 배다.
광해는 기술 몇 개와 전쟁으로 얻은 배로 양반의 재산을 무료로 얻었다.
“알고 있겠지만, 공납업자 대부분이 역모로 죽었다. 앞으로 조정에서 쓸 물건 대부분은 공개입찰로 구매하게 될 테고. 거기서 나는 산물만 해도 엄청나지. 그리고 세운도 상단에 맡길 거야. 공개입찰로 낙찰된 상단이 세운업을 담당하지. 도로가 정비되면 상업 수익도 늘어날 테고. 그 외 돈 벌 구석은 무궁무진해. 그러니 불만을 갖지 말고 새 시대에 잘 적응해봐. 난 너희가 부자가 되는 걸 막지 않아. 세금만 잘 내면 돼. 알겠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저들이 잘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
똑똑한 이는 변화에 앞서 적응해 거부가 될 것이고, 늙은 지식인들은 불만만 내비치다가 도태되어 사라지겠지.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광해는 좌우에 모현성과 허균을 앉혔다.
둘은 광해의 핵심인재이며 광해산업의 중추다.
할 말이 무궁무진했다.
광해산업의 전반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오랜만에 허균의 소망을 봤다.
이매창과 함께 살고 싶다 - 70229
예전에 봤을 때 저 소망은 백단위였던것 같은데.
엄청 늘었다.
“허균. 매창과 잘 안 돼?”
“예? 아닙니다. 전하.”
허균은 민망해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에휴. 한심하기는. 너 한성판윤이야. 광해산업의 중추고. 그런데도 그래?”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어쭈. 너 말이 건방지다.”
“광해님이 민감한 데를 후벼 파니까 그렇죠.”
“저기 교산아. 그거 왕에게 할 예의가 아닌 거 같다.”
“남녀상열지사에는 관여하는 거 아닙니다.”
허균은 단단히 삐진 듯 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모현성이 끼어들었다.
“매창이면 부안의 관기? 부안에서 한성까지 서신으로 연락하는건가?”
역사에 박식한 모현성의 물음에 허균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광해는 미소지었다.
“그렇군. 부안의 관기가 왜 한성에 있지?”
“그...... 아프다고 해서 제가 한성으로 불렀습니다.”
“허어. 한성판윤이면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월권 아닌가. 초란아! 한성판윤이 월권하면 어떻게 되지?”
멀리서 이초란이 대답했다.
“정도에 따라 최대 노역형 20년입니다.”
광해가 미소지었다.
“그렇다는데?”
“아. 쫌. 아프다고 하니까 불렀습죠. 뭐 대단한 거라고. 안 해. 소신은 잠도 못자고 일하는 게 이거 가지고 진짜.”
허균은 진짜 화난 듯 했다.
삼국지에서 법정이 성도의 성주가 된 후 유비는 법정의 비리를 어느 정도 눈감아 줬다고 한다.
광해도 그럴 생각이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광해가 아니다.
자신의 곁에 앉아있는 기녀에게 말했다.
“이매창 여기 소속되어 있지? 불러오라.”
부안의 관기였던 이매창은 한성으로 오면서 자연스레 흥청의 기녀로 소속되었다.
“아. 하지 마십시오. 경고입니다. 하면 안 됩니다.”
허균의 능멸죄에 양반과 상단주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광해도 허균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곧 이매창이 나왔다.
“부르셨다 들었사옵니다.”
이 시대엔 할머니가 되었을 나이인 30대 중반에 용모도 펑퍼짐하다.
이런 여자에게 빠진 허균의 영적 감수성이 놀랍다.
성공했으니 사치와 향락에 빠질 법도 한데 그녀의 시에 반한 허균은 오히려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이매창의 소망을 확인했다.
유희경과 탄금대에서 시를 읊고 싶다 - 20956
......
‘허균은 이매창을 좋아하고, 이매창은 유희경을 좋아하는구나.’
허균을 딱한 눈으로 보다가 이매창에게 말했다.
“네가 시문에 있어 일절이라 들었다. 어디 한번 낭송해 보거라.”
“분부에 따르겠사옵니다. 전하.”
이매창은 공손히 절을 하고 사뿐히 일어섰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어?”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문장 같기도 한데.
아마도 고3때였던가.
쌍욕을 하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매창의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은은히 울리고 고아했다.
선비들이 딱 좋아할 목소리.
가볍게 운율을 넣어 노래하듯 부르는데 절로 운치가 난다.
그래도 역시 힙합이......
이매창은 연달아 한시를 읊었다.
다들 이매창의 시에 빠졌는지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
왕의 앞에서 온갖 새로운 정책을 듣고 머리가 터질 뻔 했던 양반들은 이매창이 연이어 부르는 시를 들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래도 7글자 끝을 맞춘 한시 따위 힙합의 현란한 라임 앞에선......
광해는 노래 같은 시에 푹 빠진 허균에게 물었다.
“유희경은 누구냐?”
허균은 광해를 확 째려봤다가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
“천민입니다. 아비는 양반이지만 어미가 관기이기에 천민이 되었죠. 나이는 환갑을 넘었죠. 천민이지만 존경스런 문인입니다. 그의 시와 문장은 조선에 따를 자가 없고, 고아한 성품은 누구보다도 훌륭합니다.”
60넘은 나이의 천민이 자신의 연적이라는 말을 할 때 허균은 참으로 허탈해보였다.
그러면서도 연적을 까 내리지 않는다.
그런 허균이 불쌍해서 광해는 포상을 내렸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좀 쉬거라. 이매창 데리고 탄금대에 가서 한달 쉬다 오거라.”
“예? 갑자기? 그? 그...... 혹시 매창의 소망이옵니까?”
“어쭈 갑자기 말을 높이네? 그래 이매창의 소망이다. 그러니 소망 좀 풀어주거라.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 달 푹 쉬며 좋아하는 시 쓰고, 글 좀 쓰다 오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주상 즈언하.”
허균이 갑자기 극존칭을 썼다.
“어. 갈 때 유희경도 데려가라.”
“에에에?”
“이매창 소망이니까.”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르던 왕에 대한 충성심이 비 맞은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삼각관계.
당사자는 힘들어도 지켜보는 이는 더없이 즐겁다.
광해는 적당히 마시다가 자리를 떴다.
윗사람이 비켜줘야 연회가 즐거워 지는 법.
이제 양반들끼리, 상단주끼리 할 말이 터질 것이다.
광해와 모현성이 흥청의 다른 객청에 자리 잡자 사내 하나가 뒤따라 들어왔다.
“광해님을 뵙습니다.”
얼마 전 경주 최가 가주가 된 최기석이다.
“그래 오랜만이다.”
“예. 전하. 무탈하심이 만천하의 복이옵니다.”
최기석은 모현성에게 서신으로 지시를 받아왔다.
그 결과 유황광산을 여섯 개 개발했고, 주안은광과 운산금광까지 개발 중이다.
광산업에서 가장 힘든 점은 땅 팔 곳을 정확히 지정하는 것이다.
땅 파면 광물이 나오는 곳을 정확히 가리켜주니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다.
양반세력이 일소되면서 이제 비밀을 유지할 필요도 없어졌고 최씨상단의 광산 개발은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이득은 왕에게 바치고 있지만 콩고물도 엄청나다.
최기석을 보며 광해가 운을 떴다.
“돈 많이 벌었는데 소망은 그대로군.”
“예. 최씨 일가가 최고의 가문이 되는 것. 그 마음은 전혀 변치 않았습니다.”
“선역이든 악역이든 유명하면 된다는 마음도?”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유명해지는 게 좋겠죠. 허나 무신정권의 최우나 권문세족 최영처럼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출나다는 것이겠지요.”
딱 좋구나.
광해는 술잔을 들며 모현성을 바라봤다.
길고 귀찮은 설명은 모현성이 한다.
모현성이 툴툴대며 입을 열었다.
“최기석. 상업에는 하얀 상단과 검은 상단 두 종류가 있어. 하얀 상단은 모두를 이롭게 하지. 물건을 사는 이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물건을 상단을 통해 사고, 파는 이는 물건을 팔아 이득을 보지. 검은 상단도 비슷해. 사는 이나 파는 이나 이득을 보는 건 똑같아. 다만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운 것을 파는 상단이야.”
“제가 검은 상단을 조직하란 말입니까? 예를 들면 춘화 같은 것을 팔라는 뜻이지요?”
최기석은 다행히 곧장 알아들었다.
“그래. 팔아야 할 물건이 있는데 광해님의 이름을 앞에 두고는 팔 수 없는 물건이 있어. 자네가 그런 물건을 팔아주게. 후에 문제될 게 분명하지만, 그 문제를 자네 선에서 막아야하네. 아마 엄청 손가락질 받을 거야. 그래도 좋다면 받아들이게. 물론 거절해도 아무 불이익은 없어.”
“받아들이겠습니다.”
최기석은 시원스레 대답했다.
지금껏 왕의 말을 들어 손해 본 일이 없다.
유황 광산을 시작한 이래, 일 년 반 만에 일꾼은 열배가 되었고, 버는 돈은 백배나 늘었다.
“그래. 우선 왜구에게 물건을 팔아주게.”
“무슨 물건입니까?”
“화포. 천자총통하고, 불랑기포일세.”
모현성의 말에 최기석의 입이 딱 벌어졌다.
춘화 따위를 파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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