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세련된 식민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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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석은 굉장히 흔한 광물이다.
얼마나 흔하냐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지하수가 뿌얘. 땅속에 석회석이 가득해서 지하수에 섞여 나오는 거야. 전 세계 대부분의 지하수가 정수를 했음에도 뿌옇고, 수돗물로 설거지를 한 후에 그릇에 하얀 석회가루가 남아. 이러니 한국사람이 외국가면 물갈이가 심하지.”
한국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한국 지하수의 장점이다. 덤으로 일본도.
흔하디흔한 석회석은 유럽에서도 흔하다.
스페인 지브롤터로 성지순례를 오는 이들이 석회석을 구해 오는 건 아주 쉽다.
쇠 지팡이를 구하려면 돈이 꽤 필요하지만, 붉은 바람 덕에 일시적으로 일반인들이 재산을 얻었다.
그들은 자신의 땅과 재산을 얻게 된 데 감격해 기꺼이 쇠를 녹여 쇠지팡이를 만들었고, 지브롤터로 기나긴 순례를 떠났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가까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농민들이다.
석회석과 쇠지팡이를 짊어지고 온 그들은 바다가 갈라질 현장에 신께 바칠 제물을 놓고 기도를 올렸다.
바닷가에 만들어진 고로에서 유태인 일꾼들이 쇠를 녹여 틀에 부어 철근을 대충 만들었다.
연철이 아닌 저질의 주철이지만, 그거라도 있는 게 낫다.
13년 10월.
북해 원정를 끝낸 광해는 지브롤터로 복귀해 댐을 착공했다.
대서양의 바닷물의 무게를 버티려면 최소 50보두께로 만들어야 할 테지만, 그건 물이 빠진 후의 두께다.
처음엔 둑 양쪽에 바닷물이 차 있을 테니 두께 10보로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두께 10보로 둑을 만들어 양쪽 바다를 막은 후 지중해 바닷물을 빼면서 두께를 늘려 가면 무너지지 않겠지.
이렇게 건설한다면 6년이면 지중해를 막을 수 있다.
지브롤터 해협 서쪽 곶에 도착한 광해는 마법으로 바닷속을 살펴 설계를 했다.
그 후 착공.
“우오오오~”
“오오 주님~”
“신이시여~ 모세시여~”
수많은 갤러리의 환호 속에 철근이 하늘을 날았다.
바닷가 땅속에 철근이 박히고 석회석이 공중에서 가루가 되어 해안 모래와 물과 반죽되어 바다로 투입된다.
시멘트 반죽을 공기로 감싸 바닷속 철근 주위에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반죽이 굳을 때까지 공기층을 잡아두면 댐이 한 걸음 전진한다.
바닥부터 굳히며 올라온 시멘트 덩어리가 육지로 올라오니 바다를 가른 것처럼 보인다.
“바다를 가르는 기적이 한 걸음 완성되었다. 석회와 쇠를 가져온 행자는 모래사장에 이름을 적어라. 그 이름은 천국 명부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쇠막대로 이름을 적는다.
파도 한 번에 스러져갈 이름.
그럼에도 감격해 눈물을 흘린다.
천국의 명부에는 영원히 이름이 적혀있을테니.
광해의 기적을 본 순례객이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감격하고 자신은 죽어서 천국에 갈 거라는 확신을 얻고 돌아가 소문을 퍼트린다.
그들의 목소리가 주위사람을 불러오겠지.
단순계산하기로 50보두께의 댐을 만들려면 석회석이 10억 톤 이상 필요하다.
과연 가능할까 싶은 양이긴 한데 종교의 힘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붉은 바람이 평등하게 키를 깎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평민들이 열심히 석회석을 수송해왔다.
페르난디트에게 성직자 작위를 산 귀족들은 본래 재산을 유지했지만 그들 또한 신실한 주의 종이다.
기적을 목도한 그들은 재산을 풀어 쇠를 구하고 철광석을 캐내 열심히 지브롤터로 가져왔다.
이대로 가면 6년 안에 바다가 갈라진다.
기차나 유로트럭이 없는 세상에서 석회석의 수송속도는 매우 느렸다.
농민들이 한 짐씩 짊어지고 온 석회석은 보름에 하루만 일해도 다 떨어진다.
자재가 부족해서 공사가 느려지는 실정이다.
광해는 굳이 서두르지 않고 보름에 하루씩만 일하면서 펑펑 놀았다.
“대칸을 뵙습니다.”
“대칸이시어.”
간삼과 임경업, 호위병들과 동칸 황궁에 있던 아리따운 시녀들이 도착했다.
8000톤급 철선을 타고 남미를 빙 돌아 대서양을 건너는 대여행이었다.
앞으로 주로 지브롤터에 기거할 계획이니 동칸 황궁의 인원이 절반 이상 줄었다.
“여. 왔냐?”
손을 슬쩍 들어 반기고 해변에서 술을 마셨다.
호위병들과 함께 칸반도의 학자들이 왔다.
화학연구소에서 공부하던 엘리트들과 노량진 어학원의 수석졸업생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모현성이 불렀다.
“서학 서재를 모아 놨다. 우선 번역부터 해라.”
프랑스어 책과 이탈리아어 책 등이 잔뜩 쌓여있다.
붉은 바람 속에 버려진 이런저런 책들이다.
어학원 학생들이 번역하면 칸국의 엘리트, 화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정리한다.
“이것은 수학책, 이것은 음악책, 이것은 화학책......”
모현성은 잠도 안 자고 연구원들과 책을 분류하고 연구했다.
술 마시고 놀다가 하도 열심히 하니 슬쩍 물어봤다.
“르네상스 병신이라며? 조작이라며? 공부할 게 있냐?”
“르네상스 시작 당시는 병신이고 그 방향은 과거 조작이 맞지. 그래도 르네상스 덕에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발전할 건 발전했지. 100년도 더 전에 시작했고 그 사이 순수 관찰만으로 지동설을 증명해냈잖아. 이제 몇 십 년 후면 뉴턴이 태어나고 뉴턴의 바탕이 될 지식은 이미 등장했지.”
“잉글랜드 아작 날 텐데 뉴턴 태어나도 아무것도 못 할 거 아니냐? 만유인력이든 뭐든 그냥 칸국에서 발표하면 될 거 아니냐?”
“뉴턴이 태어나지 않아도 누군가 미적분을 발표하겠지. 서학을 죽이고 우리가 이어받아 발전시켜야지. 형 미적분 할 줄 알아?”
“그야 당연히......”
못한다.
“나도 못해.”
바보 형제는 얼굴을 마주보고 헤헤헤 웃었다.
분명 고등학교 땐 대충이나마 계산할 수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수학책을 모아서 연구시켜서 미적분 발견하라 시키고 만유인력, 3원칙 달방정식 프리즘 등등 연구하라 시켜야지.”
“아하. 그렇구나. 수고.”
얽히지 말자.
읽히지 말자.
“책 들어오는 대로 번역 시키고 연구원들에게 맡기면 돼.”
나만 아니면 돼.
화학연구소에서 온 엘리트들은 지브롤터 해안가 황제의 거처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황제의 눈길 아래 딴짓도 못하고 갈려나가는 거지.
이과생을 갈아 넣으면 똥이 나오든 소세지가 나오든 뭐라도 나온다.
“잠깐 동안 우린 한성에 갔다 오자.”
“한성?”
힘들게 댐 백보 만들었으니 놀려던 참인데.
“석회석 쌓일 동안 할 일 없잖아. 서칸쪽도 챙기고 보고서도 받고 범죄자도 처리해야지. 동칸도 한번 방문해서 전염병 잡고.”
모현성 이놈은 진짜 쉴 틈을 안 주는구나.
황제 알기를 아주 개떡으로 안다.
“......”
하지만 늘상 그랬듯 결국 가게 되었다.
“주상 즈언하~ 제가! 제가 모시겠습니다아~”
대칸을 호위하기 위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지브롤터에 온 임경업이 절규했다.
“호위하려면 알아서 쫓아오든지.”
중2병 환자 달고 다니기엔 마력이 아깝다.
일본의 모든 영주가 일제히 세율을 올렸다.
그 전에도 고통스럽던 농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이상한 공고가 올라왔다.
혼슈 광업.
혼슈 공업.
혼슈 은행.
혼슈 농업.
혼슈 임업.
혼슈란 이름의 온갖 기업에서 사람을 뽑고 일을 시켜 돈을 주겠다 한다.
모든 광산의 주인은 영주다.
강제로 끌려온 일꾼들은 밥만 겨우 챙겨 먹으며 강제로 일했고, 생산량 전부를 영주에게 빼앗겨 왔다.
그런데 광산의 주인이 혼슈란 기업으로 바뀌었다.
광산 노동자는 자원을 받아 뽑히며 일을 해서 급료를 받는다.
그 급료가 일반 농민들보다 많다.
글도 못 배우고 산학도 못 배워도 누가 더 많이 버는 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농민들이 지원했고 그중 젊고 강한 자들이 광산 노동자로 뽑혔다.
모든 사업이 혼슈란 이름으로 넘어갔다.
삼나무를 베어 바닷가로 옮기는 임업.
대형 농장에서 산삼과 약초를 재배한 농업.
항아리나 대나무 공예품을 만드는 수공업까지 모두 혼슈란 이름으로 이뤄진다.
꾸준히 일꾼을 모집하자 너도나도 달려들었고, 젊은이들이 주로 뽑혔다.
그러다 보니 늘어난 세금에 대한 저항이 수그러들었다.
하나된 목소리로 저항하려던 힘이 여기저기 갈린 것이다.
“들고 일어납시다.”
“댁이나 하슈.”
“이대론 다 굶어죽는다!”
“난 내 자식이 더 소중해.”
목소리가 갈리니 가끔 일어나는 봉기는 규모가 작아졌고, 영주의 친위병에게 잔혹하게 박살났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혼슈 기업에 뽑혔고, 그들은 평민들보다 많은 급료를 받았다.
배불리 먹진 못해도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되자 평민들의 분노가 혼슈 기업으로 향했다.
“저놈들이 우릴 수탈한다.”
아니지만 그렇게 보인다.
영주는 멀고 무서우며 혼슈 기업은 가까이에 있고 좀 더 만만하니.
여기저기서 혼슈 기업에 대한 약탈이 일어났고, 젊은 일꾼들은 살기 위해 맞서 싸웠다.
나오에가 예측한대로 바닥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영주들은 분위기를 보며 혼슈 기업을 돕거나 무기를 지원해 스스로 물리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똑같던 농민들이 두 계급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사도섬이 농민들에게 무너졌다.
일본 제일의 금광이 있는 사도섬은 섬의 농민들이 봉기하자 배편이 없어서 지원군을 못 보낸 것이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전부 죽었고, 광산에서 보관하던 식량과 금괴들을 농민들이 나눠가졌다.
나오에는 배가 없는 영주들을 대신할 용병을 불렀다.
“나오에 오랜만이군.”
“주군께선 더 헌양해지셨습니다.”
“훗. 넌 출세했군.”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다국적 용병군이란 요상한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전투를 멈추지 않은 우에스기군은 압도적인 힘으로 사도섬의 반란군을 박살냈다.
5만여 되는 섬의 모든 인구를 말살한 것이다.
“다 죽였다. 이러면 되나?”
“예. 소문이 퍼지고 나면 감히 반란을 일으킬 꿈도 못 꿀 것입니다. 아이즈에서 좀 쉬다 가시지요.”
“그래. 에이씨. 또 지령이군. 명으로 간다.”
다국적 용병군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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