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채유진 사건5
순도 100% 픽션입니다
사태를 봉합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김류가 명석하게 흐름을 보고 미래를 유추했지만, 한 가지 실수한 것은 광해가 이걸 매우 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그가 파악한, 귀찮은 걸 싫어하는 광해라면 어차피 나눠주고 서로 싸우라 한 권력이니 싸우게 내버려두리라 생각했다.
광해가 무려 1년 넘게 사건에 붙어 10만 명 이상을 만나 소망을 확인하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모든 관련자를 찾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현대에 살다 온 광해와 모현성이 이 일의 위험성을 미리 알았다는 건 김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범을 타고 달리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하늘을 달리는~
광해님께 소망하세요~
광해는 거의 매주 종교행사에 참여했다.
삼남지방의 모든 도시를 돌며 종교행사를 주관했다.
“대칸 광해가 왔는데 감히 집회에 나오지 않은 자가 있느냐? 못 보던 얼굴인데 갑자기 나타난 자가 있느냐? 최근 이웃집에 온 친척이라던가 마을 근처에 갑자기 나타나 홀로 사는 자가 있느냐? 데려오너라.”
신고가 이어졌고, 종교행사를 통한 범인 색출이 이루어졌다.
밀주를 죽이고 숨어있던 검계를 잡아 밀주가 죽었음이 알려졌고, 이민족을 납치 강간하던 검계가 잡혔다.
전혀 상관없는 범죄자도 일부 잡혔고, 노역형이 싫어 도주했던 양반 노역수도 잡혔다.
변호사가 돈을 주며 이민족을 구타하라 했던 범죄도 잡고 한인을 쏘아죽이고 이민족 범죄로 꾸민 검계도 잡혔다.
종교활동을 통해 사람을 모으고 그 중 특이행동을 하는 자를 관찰해 범죄자를 찾는다.
사건의 발단이었던 나소 엔탄을 납치했던 검계를 잡음으로써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사건은 해결했지만 한반도가 입은 상처는 컸다.
그 상처를 봉합해야 했다.
“나라를 쪼개기는 참 쉽다. 일반화 하면 된다.”
마법진으로 목소리를 키운 광해가 백성들에게 설파했다.
“여진 출신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다. 그럼 너희는 아무 생각 없이 욕을 한다. 여진족은 살인범 들. 가까이 하면 안 돼. 다르게 말해도 된다. 모든 이민족은 살인범들. 가까이 하면 안 돼. 이렇게 욕하면 된다. 달리 나눌 수도 있다. 남자가 죽였으니 모든 남자는 살인범들. 남자가 강간했으면 모든 남자는 잠재적 강간범들. 쪼개기는 참 쉽다. 너희는 너희가 포함되지 않은 집단으로 욕하면 된다. 편하고 쉽고 거기서 만족감을 느낀다.”
조선족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든 조선족을 욕하는 사람.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든 남자를 욕하는 사람.
전라도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든 전라도 사람을 욕하는 사람.
정치인 중 누군가가 죄를 지으면 정치인 전체를 욕하는 사람.
중국에서 잔혹한 범죄가 생기면 중국인 전체를 욕하는 사람.
이들에게 복잡한 계산은 없다.
그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으로 욕하고 거기서 자신은 도덕적이라는, 혹은 피해자라는 만족을 얻을 뿐이다.
조두순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누구나 욕을 한다.
하지만 욕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역시 남자는 쓰레기라고 욕하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
역시 한국인은 쓰레기라고 욕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
역시 사람은 쓰레기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쉽게 일반화하고 욕한다. 하지만 본인이 연루되면 억울하겠지. 이번에 범죄자들이 나약한 여자를 납치 폭행 강간하고 강제로 매춘을 시켰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를 집단 전체로 확대해 증오하지 말아라.”
고유정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모든 여자를 욕한다면.
그 여자와 상관없는 선량한 여자는 억울할 것이다.
고유정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모든 한국인을 욕하면 다른 모든 한국인이 억울할 것이다.
고유정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모든 인류를 욕한다면?
일반화는 아주 쉽지만 매우 나쁘다.
그런데 다들 쉽게 한다.
“모두 나의 백성이고 내겐 모두 똑같다. 칸국 어느 지방에서 태어났건 내겐 모두 똑같다. 나쁜 사람은 욕하되 상관없는 다른 이까지 욕하지 마라.”
코로나 이후 모두가 중국인을 욕한다.
코로나와 상관없는 중국 사람이라도 상관없이 욕한다.
그게 편하고 즐겁고 반사적으로 난 착하다는 근거없는 만족감을 느끼니까.
거기에 누구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을 강화하겠다. 욕도 하지 말고 지역으로 사람을 나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범죄다. 걸리면 아주 뒈질 줄 알아라.”
광해는 매주 종교 활동에서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검계 도주자 명단은?”
“사백명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자가 삼백명 이상입니다.”
돌구가 송구하다며 고개 숙였다.
“장악력이 떨어졌네.”
“죄송합니다. 해외영토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그래도 이러면 돈 주는 의미가 없잖아. 안보군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데.”
검계를 감시하고 관리해야 할 안보군이 제 역할을 못했다.
충성심 하나로 안보군 수장이 된 돌구는 원래 염초꾼이었고, 성실할 뿐 특출한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송구하옵니다. 제게 버거운 철갑옷을 입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겠습니다. 좀 더 현명한 이가 맡아야 합니다.”
“쯧. 그래. 네가 잠도 못자고 고생한 건 안다. 수고했다.”
“죄송합니다. 대칸.”
돌구는 열심히 했지만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돌구는 부장급으로 내려갔고 칸국 전체에 손꼽히는 인재 이항복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능력만 보면 진작에 바꿨어야 했지만 돌구는 원년 가신이고 성실해서 내치기 힘들었다.
몇 주 후 이항복이 찾아왔다.
“사건 정리는 끝났나?”
“예. 변호사 단체와 검계가 손잡고 일을 일으켰습니다. 사라진 검계 조창한과 변호사 김류식이 주요인물입니다.”
소송에 참여한 변호사를 죄다 불러다 조사하니 김류식에게 끈이 이어지고, 전국의 모든 검계를 불러 조사하다보니 조창한의 죄가 나왔다.
종교활동을 통해 숨어 있던 자를 찾았고, 저항하다 죽은 자와 잡힌 자의 소망을 통해 얼개를 잡았다.
조창한과 김류식의 연결도 찾아냈고, 고의로 일으킨 인종혐오범죄까지 발견했다.
“문제는 김류식이란 자가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로 경기지방에서 보부상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 이후 안동에 나타나 양반가를 돌며 변호사의 힘을 역설하며 시험을 장려했고 힘을 모았습니다.”
“권력의 흐름을 읽는 군. 김류식이란 평범한 자가 할 수 없다는 거지?”
“예. 그리고 김류식이 보부상을 할 때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교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항복이 말을 끌며 대칸을 슬쩍 봤다.
“궁금증 유발시키지 말고. 말 끊지 말고. 모현성처럼 장난치지 말고.”
“허허. 김류의 집에 자주 초청받았다 합니다. 보부상이니 물건 팔러 갈 수도 있겠지만, 그 자가 다루는 상품이 짚신인데 김류가 거들떠 볼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주 초청을 받았고, 어느 날 사라졌다는 말은.”
“김류식이 김류다?”
“안동에 나타난 김류식은 얼굴 반쪽이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합니다.”
“그놈이군. 똑똑해.”
“제가 교육했죠.”
“국가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는데?”
“제자는 아닙니다. 글 몇 자 가르쳤을 뿐인데 건방지게 제자인척 하더군요.”
이항복은 언제나 말에 농을 섞었다.
“잡을 수 있겠어?”
“얼굴 반쪽 화상 입은 자를 종교행사에 공고해야 합니다. 만백성이 주의하면 여기저기서 제보가 들어올 테지만 꼭꼭 숨었을 테니 잡기 힘듭니다. 예전 백관이 전국조사 할 때처럼 병사 이십만으로 훑으면 1년 정도 걸릴 겁니다.”
“포기해야겠군.”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확실히 이항복은 명쾌하다.
“그럼 이걸로 사태는 끝났나?”
“최초의 범죄자는 잡았고, 인종차별을 조장한 차별주의자도 잡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일단락되었습니다...만 봉합했을 뿐입니다. 피부 아래 다친 상처는 여전합니다. 또 김류와 장우영, 조창한이 어디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겠죠.”
“...... 해결책은 있나?”
“간단합니다. 틈을 보이지 않으면 됩니다.”
이항복이 빙그레 웃었다.
“틈?”
“조선은 칸 제국이 되었고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완벽하게 발전하면 됩니다. 김류가 제아무리 나라를 뒤집으려 해도 대칸의 진심이 만백성에 전해지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입니다.”
“정론이군.”
“우직한 큰길로 가소서. 대칸이시어.”
“그래.”
비관적인 모현성과 달리 이항복은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검계는?”
“흡수하기로 했습니다. 안보군 국내 조직에 검계를 합치고, 매춘도 관리합니다.”
“매춘을?”
“서칸 국왕과 논의한 결과 탈세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니 차라리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매춘을 합법화 하겠다고? 조선팔도 씹선비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 아니야?”
“예전부터 매춘은 양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자 노비를 관아에서 키우며 방문하는 양반들이 돌려 먹었죠. 이제 먹고 살만한 평민들도 여자를 찾게 되니 차라리 공개적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반발이야 있겠지만, 이대로 음지에 두는 것보단 부작용이 적을 겁니다.”
“...... 알았어.”
이항복과 헤어진 후 모현성이 있는 창덕궁으로 들어갔다.
“매춘을 합법화 하겠다고?”
“어. 이왕 이슈된 거 이 기회에 제도권으로 올리려고.”
“그거 범죄잖아.”
“에이. 형. 우리가 만들 골조는 울타리잖아. 강한 울타리 안에서의 평화로운 경쟁과 기회의 평등. 매춘이 여기에 부합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함께 현대 기억을 공유한다는 건 편히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되겠냐?”
“일단 매춘을 사업으로 보면 주먹을 끼고 사업할 수밖에 없어. 주먹이 붙어있지 않으면 손님들 중 변태나 구타 범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먹튀 따위가 계속 나타나거든. 그걸 안보군에 소속된 검계 양아치가 하게 될 거고. 대신 이놈들에게 월급은 없지. 매춘 수익을 나눠 갖는 걸 법으로 인정하는 거야.”
“그보다 여성인권은?”
“매춘을 막는 게 오히려 인권침해 아니야? 강제매춘은 범죄지만,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하는 걸 막고 욕하고 차별하는 게 범죄지. 솔직히 돈 벌기 위해 코끼리 똥구멍에 손 집어넣는 일이나, 말 오줌 받는 일, 사람들 똥 묻힌 면봉을 현미경으로 검사하는 일. 누가 하고 싶어서 하겠어? 먹고 살기 위해 싫어도 하는 거지.
대부분 직업이 하기 싫은데 죽지 못해 억지로 하는 거잖아. 스스로 나서서 하는 일은 범죄가 아니라면 막아선 안 돼. 여기에 경쟁이 붙으면서 자연스레 시장 가격이 형성될 테고.”
“음...... 여성단체가 없으니 반발은 적겠지만......”
“매춘을 막는 여성단체야말로 웃긴 거지. 남자가 원해서 돈을 지불하겠다는 거잖아. 여자는 자기만의 장점을 활용해 돈을 버는 거고. 이걸 지들이 무슨 권리로 막고 지랄해? 한남자하고만 섹스 해야 한다거나 순결을 강조하는 단체야말로 여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여자의 당당한 권리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인권탄압조직이지.”
“넌......”
모현성은 그냥 세상 모든 게 싫은 거 같다.
“어? 뭐?”
“아니야. 니 나라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 이젠 니가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형 나라야. 완벽한 나라 만들어서 줄게.”
- 작가의말
민주주의를 처음 다룬 파트라서 힘을 꽉 줬는데...
너무 늘어져서 편집편집...
채유진과 지르한의 슬픈 사랑과 게다족의 슬픈 반격 등 주제에 살짝 벗어난 건 다 지웠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테러당하거나 짤리기 전에 완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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