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삶 대 삶2
순도 100% 픽션입니다
“겁먹지 말고 일어서라. 뒤에 있는 건 가족이냐?”
“예예예. 차차차찬희아범 동우라고 합니다.”
“...... 특이한 이름이네.”
긴장한 남편을 옆에 있던 해미댁이 꼬집었다.
“아야야.”
“말 더듬지 마유.”
“당신도 더듬었잖아.”
이 부부는 긴장한 건지 대담한 건지 모르겠군.
“정찬을 내 와라. 이쪽이 찬희냐?”
“안녕. 하십. 니까? 예쁘고. 착해서. 찬희. 입니다.”
맹연습의 흔적이 보이는 자기소개다.
그나마 딸이 제일 낫군.
잠시 후 정찬이 들어왔고, 황제와 몇 몇 대신과 해미댁 가족이 함께 앉았다.
“지난 해 광해상회 물건을 가장 많이 산 인물. 축하한다.”
“가가가 감사합니다.”
딸아이만 우와우와 하며 음식을 즐길 뿐 긴장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해미댁이 말을 더듬으며 소리쳤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 자네가 황제보다 돈을 더 벌었어. 당당해도 돼.”
“제가 어찌 광해산업의 주인께......”
“그쪽은 내가 훨씬 벌었지. 내가 말한 건 황제. 놀고먹는 황제보단 너희가 많이 벌었으니 당당히 말해.”
“예... 예. 예.”
“그래. 어떻게 벌었는지 알고 싶은데.”
“예...... 그게......”
해미댁은 아낙네 품앗이로 물건을 유통했다.
광해상회마다 조금씩 물건 값이 다른 걸 이용한 것이다.
해미댁은 아주 조금씩 벌 수 있었지만, 아주 조금이 모이자 여럿 매우 큰 돈이 되었다.
그렇게 뻗어나가던 유통망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게 기관차다.
기관차가 몽골로 전진하니 외부인이 멀리서 관찰하는 것 까지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칸반도에 깔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함흥에서 노선이 연장된 기관차는 한성으로 내려왔고, 한성에서 북쪽과 남쪽으로 쭉쭉 이어졌다.
기관차를 이용한 내륙 수송이 가능해지자 해안가와 내륙의 물건 값이 크게 차이나지 않게 되었다.
해미댁이 구축한 물류망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래서 전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상회와 상회 사이의 거리는 걸어서 하루. 그렇다면 상회에서 가장 먼 이들은 한나절을 걸어가야 상회의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그걸 저희가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소망상회를 만들었습니다. 상회에서 세 시간 거리마다 상회를 만들어 광해상회의 물건을 떼다가 팔면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해미댁은 떨지 않고 말했다.
“광해상회에서 물건을 사다가 소망상회에서 판다는 거지?”
도매점과 소매점의 개념이다.
“예. 저희는 옮겨다 놓는 값만 받고 거의 남는 게 없습니다. 사람들은 면포 하나 항아리 하나 사러 반나절을 걸어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약간 비싸게 사는 걸 택했죠.”
“그래서 광해상회의 물건을 가장 많이 살 수 있었군.”
“예. 죄송합니다. 물건 도둑질해다 팔아서.”
“도둑질은. 사다가 되파는 게 뭔 잘못이라고. 그런데 그런 방식이면 다른 사람도 따라할 수 있지 않나?”
“맞습니다. 저희가 많이 남기지는 못해도 먹고 살 정도는 됐는데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우후죽순처럼 상회를 만드니 몇 번이고 밥을 굶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떡했지?”
광해는 모현성에게 대략적인 보고를 받은 상태다.
지금 질문하는 이유는 뒤에서 듣고 있는 황태자가 듣길 바래서다.
“소망 상회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보니 수공업 공장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비를 막는 도롱이, 짚신, 작은 손그물 등 집안마다 작은 기업을 차려 온갖 물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가족끼리 모여 살려면 가족 기업을 만드는 게 가장 편하니 말입니다. 그러다 망해도 농사를 신청하면 땅을 주니 일단 시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이 모여살기 가장 편한 방법은 가족 단체 이름으로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다 실패하면 땅을 받아 농사지으면 되니 정말 많은 기업이 생겨났다.
그리고 준비 없이 시작한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
“물건을 잔뜩 만들었지만 팔지 못해 망한 기업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주를 신청하면 대개 해외로 이주해야 하는데 쌓아둔 물건을 처분하지 못해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물건을 샀습니다.”
“거저였겠군.”
“공짜는 아니지만, 싸게 사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기차역까지 옮기고 기차에 실어 옮기고 상회마다 분배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팔지 못해 버려지는 물건을 소망상회에서 파니 사람들이 저희 상회만 찾게 되고 결국 경쟁에서 이겼습니다.”
준비 없이 시작한 기업은 망한다.
생각 없이 소망상회를 따라 시작한 상점들 대부분이 저주를 퍼부으며 망했겠지.
“전국에 소망상회를 삼백 개 만들었고, 소망상회보다 먼 거리에 이웃상회를 팔백 개 만들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칸국판 다있소.
이게 벌써 등장했다.
곁에서 고기를 집어먹던 모현성이 입을 열었다.
“이탈은 없어? 물건만 떼올 수 있다면 굳이 소망상회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잖아.”
“예. 이탈도 많았습니다. 저희는 구매직원이 전국을 돌며 버려진 상품이나 팔릴만한 상품을 찾고 떼와야 하는 데 그걸 중간에 가로채서 이득만 남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점주들이 대부분 아낙들입니다. 그래서 모여서 수다 떠는 걸로 해결을......”
“수다?”
“예. 판매나 구매 모두 아낙이 담당하니 서로서로 친해지고 자주 모여서 야유회도 하고 광해상회처럼 가장 많이 판 상점주에게 상을 주고, 판매 기술도 강연하고 이러니 이탈이 줄었습니다.”
“역시나 예측대로군.”
모현성이 광해에게 못생긴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찡긋했다.
이게 전에 말한 다단계 원리인가.
마케팅에 종교를 섞는 그거.
갑질로 유명했던 나먕유업이란 기업에서 물건을 파는 상대는 소비자가 아닌 대리점주였다.
대리점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강제로 밀어 넣고 물건값을 고스란히 받고, 폐기한 피해는 대리점주가 떠안게 만들었다.
소망상회도 하부유통업체인 이웃상회에 물건을 떠넘기는 것으로 돈을 번다.
사실 모든 유통망이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하부 체인에 물건을 팔고 하부 체인이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
이탈을 막기 위해 애사심을 기르고 단체활동을 해 삶의 일부분으로 만든다.
더 양심적이냐 덜 양심적이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긴장이 풀린 해미댁 가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축하해 준 후 정찬을 끝냈다.
그들이 떠난 후 모현성과 산남대군만 남겼다.
떠나간 해미댁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족, 지난 해 납세 순위 10위였다. 쌀 삼만 석을 냈더군.”
“쌀 십만 석을 벌었다는 뜻이야.”
광해와 모현성의 말에 산남대군이 입을 떡 벌렸다.
“허억. 그렇게나 많이 벌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소망상회와 이웃상회가 낸 세금이니 일꾼들이 나눠가지면 그렇게 많이 남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농사보단 훨씬 많이 벌었지.”
“저들 말고도 아낙들이 모여 광해포목에서 면포를 떼다가 옷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업들도 많이 벌지.”
“넌 혹시 저들의 상업활동이 천해 보이냐?”
“아닙니다. 저들 또한 똑같은 백성이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바입니다. 다만 따로 생산하는 게 없이 사다 팔 뿐인데 그렇게 많이 남기는 건 도덕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음. 멀리 있는 광해상회에 가서 물건을 사는 시간을 저들이 줄여준 게지. 그 기회비용을... 이러면 모르겠군. 물건 사러 오가는 시간과 노고를 저들이 약간의 수고를 받고 대신해준 것뿐이다. 배우지 못했으면서 느낌만으로 그걸 해낸 건 굉장한 재능이고.”
광해가 대단하다고 하자 산남대군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상념을 모현성이 깨트렸다.
“너 왕이 되고 싶냐?”
“예.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래...... 그냥 들어봐. 지금 왕 앞에 쓰이는 돈이 연간 금화 오십냥 정도다. 쌀로 치면 이천 석 정도 겠군. 왕의 품위유지를 위한 위사나 궁녀 등을 제외하고 순수히 왕을 위해 쓰이는 돈이다. 사실 인간 하나가 먹고 입는 데 쓰이는 돈이 그래 많이 들지 않거든.”
“예.”
“저 가족이 번 돈이 금 백냥 정도 될 거다. 10년 전 소작농, 노비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공이지. 딱히 사치를 부리진 않는 모양이더만 사치 부리려 한다면 왕보다 훨씬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거다. 반면 왕은 그게 안 돼. 지금에야 광해님의 힘이 쎄서 재정을 마음대로 주무르지만, 형이나 내가 아니라면 신하들이 정해준 금액만큼만 쓸 수 있을 게다.
우유 먹는 걸로도 지랄하던 신하들이 왕이 사치 부리게 놔둘 것 같아? 책무는 더럽게 많고 사치도 마음대로 못 부리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신하들이 가득 찬 곳에서 괴롭힘 당하며 사는 게 평범한 왕이다. 반면 저 가족들은 근사한 생각을 실현한 것 만으로 왕보다 잘 벌고 마음만 먹으면 왕보다 편히 잘 살 수 있게 된다. 대단하지?”
“...... 예.”
산남대군이 집중해서 듣자 모현성은 신이 났다.
“저쪽 서역에 링컨이란 자가 있었어. 동칸 원주민을 열심히 학살하던 인간인데 뜬금없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며 최고의 인권주의자처럼 된 인간이지.”
지껄이길 좋아하는 모현성이 산남대군을 콱 물었다.
산남대군이 집중해서 듣자 링컨을 과거인물로 묘사하며 떠들어댔다.
광해는 자기 아닌 희생양이 생긴 게 즐거워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
“원주민을 학살하던 놈이 왜 갑자기 노예해방을 선언했을까? 그가 정말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이었을까? 모순되지 않아? 왜 그랬지?”
“에......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조선 성리학자가 갖고 있던 노비를 다 해방시켰고, 해방된 노비들이 각자 일을 하며 세금을 내게 되었어. 노비 중 일부는 아까 그 가족처럼 부자가 되었지. 사회가 이렇게 변하면 귀족에게 무조건 안 좋을까?”
“노비라는 재산을 잃었으니 나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냥 뺏은 건 아니야. 역모죄를 지은 놈들은 재산을 몰수했지만, 그 외 대부분은 잃은 재산을 금과 은으로 보상받았어. 엄청나게 생긴 기업들 대부분이 양반들의 재산으로 만들어졌고, 그 중 성공한 자들은 전보다 더 큰 부귀를 누리고 있어.
그리고 관리비용도 줄었을 거야. 귀족들은 노비 관리비용이 없어진 대신 꼭 필요한 사람을 돈 주고 구해서 쓰게 되었는데 이게 더 저렴해. 여러모로 노비제도 폐지가 모두에게 이득이야.
게다가 더 좋은 건 안전이지. 왕 혹은 정치권의 변덕으로 이유 없이 죽을 위험이 적어졌어. 기업만 안정적으로 운영하면 왕만큼 사치를 누릴 수 있는데 책임은 줄어들었고, 줄을 잘못 서서 씨몰살 당할 위험도 줄었지.”
“에...... 귀족주의보다 바뀐 체제가 더 좋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링컨이란 놈도 그걸 알기에 노예를 해방시킨 거고. 링컨이 한 일은 노예의 인권을 사랑해 해방시킨 게 아니라 귀족주의를 자본주의로 바꾼 거야. 물론 이게 귀족에게만 좋은 게 아니지. 나라는 세금이 늘어서 좋고, 노예는 해방되어 자유를 찾으니 좋고...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현재 칸국이 가는 방향이고.”
“그...... 체제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칸국이 걷은 세금 중 절반을 광해산업이 냈어. 광해산업이 번 돈의 삼할을 세금으로 냈으니 나머지 칠할은 형이 갖게 됐지. 형은 황제로서 약간의 돈을 받지만, 그와 상관없이 개인 돈으로 칸국 전체 예산만큼을 매년 쓸 수 있어. 형이 마음먹고 사치부리면 황금 동산을 만들 수도 있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나 책무도 없어. 왕보다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귀족주의가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야.”
“흐름에...... 따르란 뜻입니까?”
“귀족주의는 귀족이 정치하고 정치를 이용해 돈을 벌지. 자본주의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니 누군가 정치를 해야 해. 앞으로는 정치 따로, 돈 벌기 따로의 세상이 펼쳐질 거야. 형이 널 일주일동안 데리고 다닌 건 네가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어. 넌 정치를 할 거냐? 돈을 벌 거냐?”
“에...... 하지만 정치인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정치인이 권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니 부패하게 되는 거고. 하지만 그건 필사적으로 막을 거야. 칸국의 정치인은 정해진 월봉 외에는 벌지 못해.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월봉만을 받는 게 정치인이고, 실패할 수 있지만 성공하면 황제보다 더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게 기업인이야. 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광해가 추임새를 넣었다.
“네가 기업을 선택하면 광해산업 지분 일부를 주마. 그것만으로도 넌 누구보다도 편히 살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을 선택하면 한푼도 주지 않을 거다.”
모현성이 추가로 협박했다.
“상업을 천시하는 성리학자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눈을 뜨라고 말해주고 싶네. 기관차, 철선, 대포, 유리거울, 면포. 사람 삶을 이롭게 한 모든 건 자본에서 나왔어. 정치는 그저 불합리한 일이 없도록 지켜줄 뿐 발전을 거들진 못했지.”
“무엇보다 황제는 자유가 없어. 신하가 정해준 과업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해.”
“반면 기업인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범죄 저지르지 않는 한에서 말이야. 하늘을 나는 장치를 만들고 싶지 않아? 만들 수 있어. 돈과 인간을 갈아 넣으면 30년 안에 만들어져. 그걸 네 손으로 하고 싶지 않아?”
“그...... 기업인이 되겠습니다.”
황제와 왕이 번갈아가며 추임새를 넣자 산남대군이 얼떨결에 선택했다.
광해가 잽싸게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돌아가자.”
미션 석세스.
“집으로 말입니까?”
“그래. 가서 네 어미한테 네 뜻을 전해라. 왕 하기 싫다고.”
이게 목적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12년 10월 1일 최명길이 동칸왕의 자리에 즉위했다.
- 작가의말
영국 국왕의 삶 vs 매년 100억을 쓰는 부자의 삶
어떤 삶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니야! 링컨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거야! 이 미친 작가놈아! 링컨이 인디언을 죽인 건 구라일거야!
라는 시각도 좋습니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게 개인의 삶에 더 낫습니다
어디가서 링컨이 자본주의 어쩌고 해봤자 괜히 음모론에 빠진 정신병자나 이상한 사람처럼 될 거에요
그저 과거를 보는 시각의 다양성을 단순히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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