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해피엔딩
순도 100% 픽션입니다
유럽인의 유태인 혐오는 로마제국이 가톨릭을 받아들인 때부터 이어져온 유서 깊은 전통이다.
딱히 나치가 정신병이 있어서 유태인을 학살한 게 아니라 모든 유럽인이 유태인은 마녀고 스파이고 악마라는 인식을 기저에 갖고 있었다.
광해는 그런 유태인의 구원자를 자처했다.
“모두 모았나?”
“예.”
“전부 유태인인가?”
“예.”
5만여 유태인 군대를 조직했다.
숨어 다니고 쫓겨 다니던 유태인이 숨겨뒀던 재산과 인맥을 총동원해 무기를 구했다.
모든 여력을 쥐어짜서 만든 유태인 부대는 지브롤터에서 칸국의 2000톤급 함대와 오스만의 수송선에 나눠 탔다.
무려 5만 명을 수송하다보니 병사들이 켜켜이 쌓였고 배를 모는 해군의 열배나 탑승했다.
선상반란을 우려해 광해가 참여해야 했다.
“아. 귀찮게. 황제가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위험하잖아. 나도 같이 가주니까 참아.”
“네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짐 주제에.”
“아잉.”
모현성의 강요 아닌 강요에 의해 참여하게 된 광해가 툴툴댔다.
황제의 화려한 거처에서 술 마시며 예서와 노는 사이 입부 이순신이 지휘하는 함대는 대서양 연안을 따라 올라가 네덜란드 해안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 서쪽 해안엔 안내를 맡은 이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좁은 배에 실려 있던 병사들이 팔다리를 억지로 펴며 상륙했다.
5만의 유태인 병력.
그들은 꽃가루 세례를 받으며 암스테르담으로 들어갔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암스테르담.
집집마다 튤립을 키울 정도로 부유하며, 빵집하녀마저도 영국 국채를 살 정도로 경제관념에 눈을 떴고, 유럽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 청어 잡이의 중심지이자, 유럽 최고의 증권거래소와 조선소가 모여 있는 곳.
스페인과 50여년에 걸쳐 독립전쟁을 이어온 네덜란드는 지휘관이 사라진 페르난디트 2세의 붉은 군대를 상대로 무려 2년간 버텨냈다.
열 배가 넘는 적의 인해전술에 고전하고 남부지역 브뤼셀 등을 빼앗겼지만, 덴하그와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북부는 굳건하게 버텨내는 실정이다.
끝내 점령하지 못한 페르난디트는 모현성의 지시를 받아 인구 소거를 명했다.
네덜란드의 점령지 인구를 징발해 지브롤터 수송 순례에 강제 동원한 것이다.
이러면 버텨내도 문제다.
버티고 나중에 땅을 되찾아도 그 땅의 인구가 사라졌으니 다스릴 수 없다.
네덜란드의 통령 마우리츠 판 나사우는 네덜란드의 인구가 사라지기 전에 잃은 땅을 되찾아야 했다.
그때 손을 뻗은 게 암스테르담의 유태인 상인들이다.
동인도상회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그들은 유태인 용병부대의 존재를 알렸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사우는 즉각 고용했다.
그 결과 암스테르담에 무혈 입성한 유태인 부대.
“환영하오.”
콰콰쾅.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통령 마우리츠 판 나사우의 가슴에 광해이포 산탄을 먹이고 내통하던 유태인들과 힘을 합쳐 군부를 장악했다.
곧장 페르난디트의 붉은 군대가 입성했고, 두 군부는 네덜란드를 장악했다.
칸국 관료가 입성해 지켜보는 가운데 유태인과 페르난디트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네덜란드 17주는 영원히 유태인의 땅이다.
-성경에 적힌 하나님의 백성은 유럽인이며 성경의 하나님과 유대교의 하나님은 동일하지 않다.
-모든 유태인의 국적은 네덜란드 국적으로 바뀐다.
-네덜란드의 유태인은 타국에 들어갈 수 없고, 모든 유럽인은 유태인의 땅 네덜란드에 진입해선 안 된다.
매우 간단하고 추상적인 협정이다.
광해가 예서와 함께 네덜란드 곳곳을 관광하는 동안 모현성은 끝까지 긴장한 채 협정을 지켜봤다.
“됐어. 눈치 채지 못했어.”
“뭐가? 왜 그렇게 쫄아 있는데?”
“지들 마음대로 협정을 바꿀까봐 그랬지.”
“저기에 무슨 함정이 있냐?”
“후후훗. 한번 찾아봐.”
“싫어 귀찮아. 지브롤터로 돌아가자.”
“아이참. 봐봐. 유태인을 네덜란드에 가뒀잖아. 종교적 협정은 눈가리개고, 유태인이 네덜란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게 중요해.”
“...... 유태인이 무섭냐?”
“유태인은 무섭지. 아. 이건 우생학 같은 쓰레기관점이 아니야.”
“...... 우생학?”
“에에엑? 그걸 몰라?”
쿵.
진짜 기분 나쁘게 웃던 모현성은 제대로 한대 맞았다.
졸고 있던 예서와 구름이가 고개를 들 정도로.
“아우...... 에..... 이게 그거야. 나치 학살 이론. 우월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가 있다. 우생학의 시작은 무려 유럽 사상의 뿌리, 플라톤이지. 우월한 자는 자식을 많이 나아야 하고, 열등한 자는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 이런 새끼가 유럽철학의 중심으로 추앙받으니 유럽 놈들이 그렇게 학살을 해댔지. 밑도 끝도 없는 백인우월주의의 핵심이 되었고.”
“그걸 나치가 이어받고, 니가 이어받은 거네.”
“나치만 이어받은 게 아니야. 미국인이 사랑하는 루스벨트도 앵글로색슨만이 우월하다 말했고, 부랑자나 범죄자를 강제로 거세했지. 나치에게서 도망친 유태인을 유럽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고. 미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장애인과 불치병환자, 거지와 유태인 등을 학살했고. 나치가 학살하던 그 시대 모든 유럽나라가 똑같이 학살해왔어. 솔직히 민간인 2000만 명을 학살하는 명령을 밑의 부하들이 거부하면 끝이잖아. 모든 유럽인의 인식 전반에 열등한 민족을 학살에 대한 긍정이 깔려 있었으니 그런 만행이 실행될 수 있었지. 오히려 나치의 만행이 알려진 후에야 우생학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한짓을 숨기기 시작했어. 너무 끔찍했으니까.”
“그걸 니가 다시 꺼내고?”
아까 모현성의 표정이 워낙 재수 없었기에 광해는 계속 틱틱 댔다.
“아니래두. 나는 다른 관점이야. 유태인의 유전자가 우월한 게 아니라 유럽의 박해가 유태인을 키운 거야. 동인도회사와 증권거래소를 만들 정도의 경제개념, 각지에 흩어진 유태인끼리 서로 돕는 끈끈한 민족성이 무서운 거야. 그런 유태인을 네덜란드란 땅에 모으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거지. 2000년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떠돌던 유태인이 자신들의 땅을 획득했어. 대신 타국의 국적을 잃었으니 여기에만 살아야지. 이럼 어떻게 될까?”
“잘 살겠지.”
“지금에야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다지만, 이건 무역덕분이야. 유태인이 보기엔 자신들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될 땅처럼 보이겠지만, 무역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천천히 가라앉게 될 거야.
우생학은 구라고, 민족의 우월은 없어. 유태인은 특별하지 않아. 그들끼리 모여 평범하게 살다보면, 농민은 농민의 삶을 살고 정치인은 지들끼리 구라대결을 하며 살겠지. 이 모든 건 유태인을 평범하게 만들기 위한 나의 계략이야. 우후훗.”
“...... 그래도 유태인이 좀 특별하지 않냐? 그 뭐냐 일루미나티같은 음모론까지 나온 걸 생각하면. 최고 부자도 거의 다 유태인이고.”
“형. 그거 일반화야. 채유진 사건 때 조선을 쪼갠, 개인을 단체로 지칭하는 일반화. 일배충 같은 놈들이 관심 받으려고 개소리 지껄이는 음모론.”
“그래도 다 부자잖아.”
“일배충이나 세익스피어 같은 쓰레기가 굳이 부자 유태인을 특정하니까 많아 보이는 거지.
하지만 모든 유태인이 부자일까? 세익스피어의 소설만 보면 ‘어떤 부자가 유태인이래~ 역시 유태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상인이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부자인 유태인이 많을까? 아니면 가난한 유태인이 많을까? 애초에 유태인은 귀족이 될 수 없고, 영주가 될 수 없었어. 기껏해야 중간 관리자야. 그런 유태인의 권력이 강할까? 아니면 유럽인의 권력이 강할까? 부자 유태인과 가난한 유럽인을 비교하니 유태인이 잘사는 것처럼 보일 뿐이야. 현대에도 모든 기업의 회장을 나열해보면 유태인 비율이 딱히 높지 않을걸?”
“가끔 드러나는 부자 유태인을 전체로 일반화 한다는 거야? 하지만 내가 우연히 본 게 있는데, 미국 유태인이 미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부자라던데.”
“어. 그건 맞을 걸. 하지만 그건 유태인이 우월해서 그런 게 아니라 히틀러 때문이야.”
“졸라 뜬금없네. 별게 다 히틀러 때문이다.”
“히틀러가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등장해서 유태인을 학살한 게 아니야. 나치당에 입당해 연설하고 선동하면서 장기간 정치질을 해서 정권을 잡았어. 히틀러는 집요하게 아리아인은 위대한데 유태인 때문에 1차 대전에 졌다고 선동했지. 그런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어. 독일의 유태인은 어땠겠어?”
“...... 도망.”
“맞아. 아인슈타인 등 수많은 유태인이 타국으로 도주했지. 그런데 말이야. 유태인 중에도 가난한 이가 있고, 부유한 이가 있어. 아인슈타인처럼 부자면 바다건너 미국까지 도망갈 수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이는 어떻겠어?”
“...... 죽나?”
“실제로 독일지역의 유태인 사망자 비율은 높지 않아. 반 이상이 재산을 챙겨서 도주했거든. 가난한 이만 남아있다 죽었고. 한편 폴란드의 유태인은 거의 전멸했지. 독일이 갑자기 기습 점령해 모든 유태인을 붙잡고 재산을 몰수했거든. 그 무서운 아우슈비츠도 폴란드에 있었고. 폴란드가 함락 당하자 주변국의 눈치 빠른 유태인부터 도주했는데 이 역시 재산 순이지. 프랑스의 부자 유태인은 도망갔고, 가난한 이는 죽고. 동유럽도 마찬가지고.”
“즉...... 부자들이 도망치는데 유리했고, 가난한 이는 대부분 죽어서 현대 유태인에 부자 비율이 많다는 거네.”
“그렇지. 유태인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고, 음모론에서처럼 일사불란하지도 않아. 각자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 뿐이야.”
“참... 역사는 좆같다. 가난해서 꼼짝도 못하고 죽다니.”
“진짜 역사는 그렇지. 그래서 안 가르치잖아. 자유평등박애나 가르치지. 그렇게 바다를 건넌 유태인은 돈을 모아 뒷돈이 필요한 임시계약직 의원들에게 이스라엘을 샀고, 그 근처 4천만 크루드인은 똑같이 싸웠지만 독립하지 못했고.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는 유태인을 보면 유태인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는 증거가 되지. 힘이 약해 박해받았고, 힘이 생기자 박해하는... 그런 똑같은 인류인 거지.”
“그래. 유태인은 특별하지 않고, 유럽인의 박해가 특별하게 만들었으니 그 특별함을 없애주겠다는 거지?”
“맞아. 땅을 주고 거기 고정시키면, 세상을 떠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서로간의 대화로 빠른 정보습득을 하는 장점이 사라지지. 그들은 보통 민족이 되어 네덜란드에서 풍차 돌리고 튤립 키우며 평범하게 싸우고 평범하고 빵 굽겠지.”
“그래. 잘했네.”
생각해보면 이게 가장 깔끔한 것 같다.
“그럼 이제 영국인가?”
“어? 왜?”
“네덜란드 무너뜨린 것처럼 영국도 깨야지.”
모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영국... 죽었어......”
“뭐?”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군에 광해이포와 화약을 지원했고 해상 포격도 해줬더니 끝났어. 영국이 나중에나 쎄지 아직은 좆밥이야. 인구 500만 이하인데다 정규군 4만 이하에 대부분 해군이라 예전에 끝났지. 지금은 삼국에서 잉글랜드 쪼개먹고 있어. 삼국 모두 가톨릭인지라 페르난디트 예하로 들어갔고 붉은 바람이 덮고 있어. 나도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은 몰랐지만......”
“......”
자꾸 상식이 파괴된다.
“돌아가자. 그래도 형이 나설 일 하나 줄었네. 솔직히 나도 저렇게 금방 끝날 줄 몰랐지만. 크크큭”
지브롤터에 가서 댐이나 만들어야겠다.
네덜란드를 점령함으로써 서유럽 전체가 신성로마제국이 되었다.
진정한 신의 메시아가 된 페르난디트는 모든 귀족과 기사의 위에 섰고, 그가 임명한 성직자만이 제2 계층을 형성했다.
네덜란드와의 협정은 서유럽 전체에 퍼졌고, 각지에 숨어살던 유태인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유태인은 네덜란드로 가고, 네덜란드의 유럽인은 신성로마제국으로 간다.
같은 식으로 오스만 제국도 유태인의 이주를 도왔다.
종교가 달라 차별받던 유대교 신자들이 네덜란드로 모여들었다.
서로 영토가 분리되면서 학대하고 학대받는 역사가 끝난다.
영국 죽고, 유태인의 잠재력도 죽었다.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다.
- 작가의말
영국을 좋아하는 분들이 무서워서... 영국은 일부러 스킵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해가지지않는 제국이지만, 17세기초 영국은 야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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