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위화도 대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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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대가 공격받은 건 금방 전해졌다.
혹시 모를 조선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강변 곳곳에 소규모 정찰대가 뿌려졌기에 하구에서 포격이 시작되자마자 파발마가 곧장 달렸다.
한 시진 만에 30큰보를 달려 조선군의 공격을 알렸고, 양호는 즉시 기마대를 출격시켰다.
요동군 좌장군 누르하치의 기마 일만 기.
부대는 두 시진 만에 하구에 도착했지만 이미 수송선 백오십 척을 빼앗긴 뒤였다.
강을 건너 공격할 엄두는 못 내고 헤엄쳐 건너온 보병들을 수습하는 사이 유정이 이끄는 보병 삼만 명이 왔다.
“상황은?”
“오십 척 수장. 백오십 척은 빼앗겼고, 수송선 백 척만 살았습니다. 연락을 받은 수송대가 다시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길. 대체 어디서 공격해왔기에.”
압록강 남안에는 판옥선과 조선의 수송선, 끌려간 아국의 수송선 수백 척이 보인다.
저 멀리 앞바다에는 소름끼칠 정도로 거대한 함선 네 척이 둥둥 떠 있다.
언덕 너머에서 포격이 이루어졌을 텐데 격전을 펼친 후인데도 강 건너 남쪽에 포대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니 정찰병의 시야를 피했겠지.
“서쪽 이십 리에 짐을 내려서 육상으로 수송한다. 보병을 더 불러와야겠군.”
수송선 백 척이나마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그들마저 수장되었다면 십팔만 대군은 식량 부족으로 후퇴해야 했다.
십팔만 대군을 동원했다가 전투한번 해보지 못하고 후퇴한다면 전원 목이 잘리겠지.
하루 만에 보급품을 끌고 왔고, 양호는 북경에 추가 보급을 요청하는 한편 장수들을 모았다.
“식량이 보름치밖에 없습니다. 천진과 요양에서 추가보급이 곧장 와야만 버틸 수 있습니다.”
“적 수군을 뚫고 오기 힘들게요. 모든 포대를 하구로 옮겨 적 수군을 견제해야 보급을 받을 수 있소.”
“화약이 부족합니다. 화약 수송선을 너무 많이 빼앗겼소. 사만 조총 병이 열 발씩 쏘면 끝날 겁니다.”
“문제는 장마요. 빠르면 달포 이내에 비가 올 것이며 그리되면 두 달 이상 강을 건널 수 없소.”
“그렇다면 빠르게 전진해야겠는가?”
양호의 질문에 총병들이 고민에 빠졌다.
“수송선이 공격받은 건 매우 정교한 전략이었습니다. 적의 준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적의 전력이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군을 공격한 포병 전력만 생각해 봐도 대체 몇 문의 포가 준비되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신중론과.
“십팔만이오. 십팔만. 조선은 절대 이정도 병력을 뽑아낼 수 없소.”
“맞습니다. 적이 준비하지 못하게 서둘러 병력을 모으지 않았습니까? 불과 두 달 만에 전쟁이 결정되고 병사를 모았습니다. 적의 준비는 미비할 것입니다.”
“성벽도 없고, 목책도 없소. 건너가기만 하면 승리할 것이오.”
“꾀 많은 여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 않습니까? 때론 망설임이 독이 됩니다.”
진격론이 격렬히 맞붙었다.
양호는 맹장과 지장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후퇴하기도 애매하고 전진하기도 애매하다.
가장 큰 변수는 장마.
큰 비가 내리고 나면 걸어서 건널 수 없게 된다.
적 수군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배로 건너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만약 비에 갇혀 두 달 넘게 진지만 지키고 있다면?
새 황제의 인내심이 그렇게 길까?
처형당하지 않을까?
공격해야 하지만 불안하다.
성벽과 목책을 쌓지 않은 강 너머가 죽음의 함정처럼 보였다.
지금 돌진하면 목숨 뿐 아니라 역사에 기리 남는 졸장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무얼 망설이시오?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하오. 수송대를 포격한 적의 화포가 지금 이리 오고 있을 것이오.”
“수백문의 화포가 공격했다 하오. 그 화포가 이곳에 배치되면 아군의 피해가 급증할 것이오.”
화포의 존재도 문제다.
양호는 공격해선 안 된다는 본능이 강하게 들었지만, 이성은 서서히 공격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갈팡질팡하는 양호가 결정하기 쉽도록 조선군이 움직였다.
광해의 전술은 과격하고 단순하고 파괴적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계로 가서 기술과 힘을 얻어 돌격하다보니 사람이 단순해졌다.
모현성의 전술은 화려한 허세로 가득한 만화전술이다.
무산에서 만주족을 상대로 한 화공이나 구름표범섬에서 해적을 상대로 굳이 광해함 혼자 돌격시켰을 때처럼 목숨 건 전장에서조차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어 있다.
대신 불필요한 비용이 많이 추가된다는 단점이 있다.
개떡이는 신이다.
급박한 순간 정말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낸다.
전술계의 라이오넬 메시다.
반면 곽재우는...
“적의 보급을 막게 된다면 적은 강행돌파 혹은 퇴각을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돌격하겠지.”
광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서로 눈싸움만 하다가 후퇴해서 내 목이 잘리는 작전.
무작정 돌격해 적 일 만을 죽이고 아군 삼만이 죽지만 내 목은 부지하는 작전.
지휘관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백이면 백 후자를 선택한다.
“그럴 것이옵니다. 허나 적이 망설이다가 시일이 지나면 이른 장마가 올 수도 있습니다. 위화도가 진창이 되거나 물에 잠기면 준비한 함정이 전부 무용지물이 됩니다.”
“즉 망설임을 없애주자?”
“예. 또한 화력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곽재우가 작전계획서를 내밀며 설명했다.
적의 성급한 진격을 유도한다.
적의 화력을 한곳에 집중시켜 다른 곳의 안전을 꾀한다.
이십만 명 이상 싸우게 될 전장을 의도대로 끌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미리 함정을 파고 준비한 곳에 적을 끌어 들인다.
문제는...
“그래서 왕을 미끼로 쓰는 거야?”
광해를 미끼로 쓰는 무엄한 작전.
“주상 전하의 능력이라면 천 명을 피해 없이 보호해 줄 수 있다 들었습니다. 주상께서 보호해 주신다면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옵니다.”
곽재우의 병법은 최소피해의 승리다.
후퇴해야 할 땐 미련 없이 후퇴하고, 비등한 적에겐 혼란을 주기 위해 수십 명의 병사에게 홍의를 입혀 교란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의병장이었던 곽재우의 이런 병법은 머리에 충성스런 돌격만 가득 찬 무관들에게 번번히 묵살되었고, 보다 못한 곽재우는 의병대를 관에 맡기고 물러났다.
곽재우의 성품은 이번 전술에도 드러났다.
“감히 왕을 미끼로 쓰려 하다니.”
“부담되신다면 소장이 그 역할을 맞겠습니다. 이게 가장 피해가 적은 전술이옵니다.”
이러면 할 말 없잖아.
“훌륭하다. 왕의 능력까지 최대한 뽑아내려 하다니. 이야말로 진정한 장수이며 대장군의 심장이다. 시행하라.”
“예. 광해님.”
주상 전하라 부르던 곽재우가 광해님이라 호칭했다.
홍의장군의 입가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4년 6월 12일.
포격이 멈춘 의주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등에 짐을 지고 머리에 짐을 인 천여명이 허벅지 깊이의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올라섰다.
“여자 아냐?”
“아녀자가 왜?”
“우선 알려!”
흰 저고리에 흰 치마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들이 강을 건넜다.
정찰병의 보고에 장수들이 모여들었다.
혹여 봇짐장수인가 하고 지켜봤더니 여자들은 위화도 남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야트마한 바위산인데 남쪽과 동, 서쪽은 십장 높이의 낭떠러지가 있고, 북쪽으로 야트막한 경사로가 형성되어 있다.
여자들은 언덕에 오르더니 여기저기 뭉쳐 봇짐을 풀었다.
봇짐에서 나온 것은 주먹밥과 음료, 아마도 막걸리인 듯 했다.
“뭐... 하는 짓이지?”
양호가 멍청하게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총병들 누구도 조선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했다.
“앗. 추가병력입니다. 제대로 된 병력입니다.
전신 갑주를 입은 병사 백여 명이 걸어서 도강을 했다.
병사들 또한 위화도 남쪽에 붙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병사들은 아녀자들과 만나 여자들이 마련한 밥을 함께 먹었다.
그 중에 화려한 관복을 입은 관료가 다섯 정도 있었다.
양호는 적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해 고개를 흔들다가 누르하치를 보았다.
입을 딱 벌린 누르하치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이보게 용호장군. 뭐 아는 게 있는감?”
“어... 음... 저기 붉은 장포를 입은 자가 조선의 국왕입니다. 잘 보면 용무늬가 보일 것입니다.”
“헉. 정말?”
양호가 눈에 힘을 줘 봤지만, 그의 눈엔 용포의 용이 보이지 않았다.
“확실합니다. 교역 때문에 한성에 갔다가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조선의 국왕입니다.”
초원의 눈을 가진 누르하치의 확언에 주위의 장수들도 한마디씩 했다.
“머리에 쓴 건 익선관처럼 보이는 군요.”
“조선의 국왕은 모르겠지만, 용무늬는 확실히 보입니다.”
눈이 맑은 장수들의 말이 이어졌다.
“왜? 왜 조선의 국왕이 저기에.”
양호의 중얼거림을 유정이 막았다.
“그건 모르겠고, 기회라는 건 알겠소이다. 바로 총공격을 해서 조선왕을 사로잡으면 전쟁이 끝나오.”
이래도 망설일거냐 라는 눈초리에 양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함정일 것이다. 분명 생각이 있을 테다.”
심정은 분명 그러한데 눈에 보이는 함정은 없다.
숲도 없고 갈대도 낮아 지형이 뻔히 보이는데 어디에 함정이 있단 말인가.
복병도, 수군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총공격뿐이오. 이 순간을 놓치면 아군은 식량부족으로 후퇴하게 될 것이오.”
두송의 말에 양호는 퍼득 정신을 차렸다.
함정이 있어봤자 몇 만이나 숨었겠는가.
한 번씩 내린 가랑비로 화공도 불가능하다.
“전군 공격하시오. 두송이 중앙, 유정이 좌익, 이여백이 우익을 맡으시오. 용호장군은 위화도 서쪽을 건너 도주하는 조선국왕을 사로잡으시오. 전군 출격하시오.”
긴장상태로 대기하던 명군에 명령이 떨어졌다.
삼로군은 각 오만, 십오만 병력을 이끌고, 일제히 압록강을 건넜다.
명군이 움직이자 언덕위의 조선군도 움직였다.
여자들은 도망가는 대신 언덕 끝으로 올라갔다.
조선군 백명과 아녀자 천명이 삼면이 낭떠러지인 언덕 끄트머리에 모였다.
선두에서 달리던 두송은 조선의 국왕이 탈출할까봐 유심히 지켜봤으나 조선의 왕은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짠가?’
애신각라가 확언했지만, 그마저도 거짓 같다.
그래도 이미 전투가 벌어졌다.
진짜든 가짜든 저놈을 잡고, 강을 건너 조선군을 휩쓸면 된다.
“죽여라! 조선의 국왕을 죽”
펑.
두송의 머리가 터졌다.
광해는 언덕에 올라와보니 곽재우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덕 전체가 함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북쪽에선 보이지 않는 죽음의 함정.
언덕에 도착한 광해는 내심 감탄했다.
“철저히도 준비했구나.”
함정이 끊이지 않는다.
옆에서 모현성이 엣헴 했다.
“이런 지형을 찾으라고 했지. 곽재우가 찾아냈고, 예전부터 조용히 준비해왔어.”
“니가 날 미끼로 쓰자 했구나.”
“에이. 그건 아니고. 무기 스펙 설명하고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황을 소개했지. 곽재우는 동의했고.”
“쯧. 그래서 여성부대를 만든 거냐? 이것도 곽재우의 뜻?”
“어? 이건 적이 방심하도록. 에헷. 역사에도 남을 거야. 역사상 최초로 여성부대가 15만 대군을 물리치다. 이렇게 말이지.”
“결국 이건 니 허세네.”
“아니. 이게 뭐! 총 장전하고 쏘기만 하는 건 여자도 할 수 있어. 아니 꼼꼼한 성격의 여자가 더 잘할 수 있어!”
“이거 또 그 남녀혐오놀이냐?”
“다르지. 이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거야. 어차피 총 맞으면 남자나 여자나 평등히 죽어. 그런데 무조건 남자만 싸워야 하는 건 아니지. 참호파는 작업처럼 힘쓰는 건 남자가 하되 방아쇠 당기는 건 여자도 할 수 있어. 여자든 남자든 좀 더 잘 쏘는 사람이 나가서 싸우는 것뿐이야. 이야말로 여성인권운동가들이 좋아할 장면일걸? 잔다르크가 추앙받는 것처럼 말이야.”
“에휴. 곽재우의 말도 있으니 믿어봐야지.”
광해는 아낙들이 건네주는 주먹밥을 먹으며 모현성과 대화했다.
잠시 함정을 둘러보자 예상대로 명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무려 십오만 병력이 일제히 돌격했다.
- 작가의말
저는 여성인권신장을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여자도 방아쇠 당기고 싸우고 이기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인권운동가들이여~ 여성의 능력을 보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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