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아이스크림
순도 100% 픽션입니다
창덕궁 수라간 옆 음식창고.
고양이들의 쉼터.
광해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웠다.
냐옹. 냥.
새끼고양이들이 다가와 툭툭 치며 논다.
새끼고양이는 언제나 옳다.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배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린다.
이것이 평화이며 휴식이다.
“소유키. 옆에 누워라.”
“예. 광핸님.”
소유키가 부리나케 누워 광해의 배에 머리를 올린다.
이 점도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이다.
무례하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광해가 원하는 행동을 한다.
배 위에 있던 새끼고양이들이 갑자기 난입한 소유키의 머리카락을 갖고 놀았다.
고양이를 만지다가 기특한 소유키의 볼살을 만지다가 문득 식욕이 돌았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휴양의 완성은 아이스크림.
소유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스크림?”
“그래. 모현성. 아이스크림 만들어라.”
맴맴맴맴.
8월의 무더위는 나무 그늘 아래까지 후끈하게 감싸고돈다.
그늘에 누웠음에도 더위가 느껴진다.
이럴 땐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완벽해진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형이 만들어 먹어.”
바로 옆에 앉아 서신을 쓰고 있는 모현성.
거의 모든 사업은 모현성의 서신으로 진행된다.
조선의 양반은 거진 정리되었고, 검계의 범죄자들도 거의 잡혔다.
광해소망교는 전국에 뿌리내려 매일 광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소망으로만 마력이 십만 가까이 들어온다.
백관과 안보군이 지방을 장악했고, 새로 뽑은 장병들이 수호군의 지휘를 받으며 군권을 장악했다.
그래도 여전히 바쁜 모현성.
당연한 건가.
호수위에 백조가 한가히 떠있으려면 밑에서 열심히 물장구치는 발이 필요하지.
난 백조의 머리. 모현성은 백조의 발.
“왕명이다. 아이스크림을 먹자.”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한다.
황제는 참는 자리가 아니다.
“에휴. 아직 냉각 장치 만들 기술력은 없는데. 형이 냉각 마법진 그려서 장치 만들어야 해. 괜찮겠어?”
“어. 만들지 뭐. 원리나 말해줘 봐.”
모현성이 원리를 말하면 광해가 만든다.
강철을 녹여 마법진을 그린 냉각통과 그 내부에서 크림을 만들고 얼릴 회전통을 만든다.
물론 모든 것은 마법으로 만들었다.
모현성은 광해가 만드는 물건을 보며 박내관을 불렀다.
“박상전님. 타락색에서 소젖 좀 가져다주시지요. 그리고 수라간의 인원 몇명 좀 불러주시고.”
“그러죠.”
기계를 완성한 광해가 물었다.
“소젖? 조선에 우유가 있어?”
“응. 왕만 먹는 아주 귀한 음식 취급 받아. 타락색이라고 따로 관리하는 관청까지 있지.”
“우유가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난 한 번도 못 먹었지?”
“생우유를 왕한테 바쳤다가 왕이 설사라도 하면 모가지가 날아갈 걸. 갓 짠 우유라도 엄청난 세균이 들어있고, 유당불내증이라도 있으면 큰일이지. 요리에 섞어서 먹었을 거야.”
둘이 이야기 하는 사이 수라간 나인이 와서 준비물을 듣고 갔다.
계란 노른자, 콩기름, 물 약간, 벌꿀, 꿀보다 비싼 설탕 등등.
이어 우유까지 도착하자 모두 기계에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냉각통이 냉각하고 회전통이 속의 내용물을 맹렬히 섞었다.
위이이잉.
불멍하듯 모두가 기계를 보고 있다.
광해와 모현성은 기대감으로, 다른 이들은 호기심으로.
“된 거 같다.”
모현성이 손잡이를 잡아 내리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접시에 적당히 담아 광해부터 준 후, 박내관, 소유키 등 모두에게 한 접시씩 돌렸다.
시중을 들기 위해 뒤에 있던 내시와 궁녀, 수라간 나인들까지 모두 한 접시씩 받았다.
“우와.”
“와.”
궁녀들의 입에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왕 앞에서 저도 모르게 자기감정을 내보이는 건 진정 감동했다는 거겠지.
그리고 광해와 모현성은 추억에 젖었다.
“고향에 온 거 같다.”
“위치는 여기가 고향 맞긴 한데...... 놋네니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러게......”
달달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동안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면서 달달함에 젖었다.
“여기 온 거 후회 안하냐?”
“글쎄.”
“현대였다면 몸은 편했을 텐데.”
“그러게.”
“돌아가고 싶으면 말해. 2년 정도 기 모으면 너 하나는 보내줄 수 있겠다.”
“헐. 이 사람 보게. 현대 지식 다 안겨줬더니 내용만 빨아먹고 버리려고? 완전 중국 기업이 반도체 기술 빼먹는 식이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 크큭. 됐다. 남아서 고생해라.”
“어. 여기가 천배 나아. 불편하고 비데도 없고 벌레도 많고 할일도 많지만 지금이 천배 나아.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야.”
“그래. 다행이네.”
또 대화가 멈췄다.
맴맴맴맴.
요란한 매미소리를 한참 듣다가 모현성이 말했다.
“맞다. 형. 한동안 한성에 같이 다닐 건데 목걸이 예서 주자.”
“목걸이?”
모현성이 목걸이를 꺼냈다.
쇠줄에 마정석을 교체해 부착할 수 있는 통신용 목걸이.
“이거. 무산에서 하는 일도 많고, 챙길 일도 많아서. 예서랑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챙기고 싶어. 예서가 서신으로 묻는 게 수백 가진데 한번 왔다 갔다 하려면 한 달이나 걸리니 원. 얼마 전에는 마정석 충전 요청이 늦어져서 무산이 일주일동안 멈췄어.”
“음. 너는 권속이라 이동식으로 만들 수 있는데 예서는 그게 안 돼. 고정식 마법진만 쓸 수 있어. 마력 소모도 많고.”
“에... 그래도 무산에는 있어야 해. 거기가 조선의 중심이야.”
“그런 거면 하나 만들지 뭐. 요즘은 마력도 팍팍 들어와서 별 부담 안 되고. 아예 지금 갈까?”
“지금?”
“어. 여름휴가 삼아 가자. 이초란의 판결을 돕는 거 말고는 중요한 일정도 없고. 보름정도 무산에서 놀면서 시원한 두만강에서 수박이나 먹자.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8월에 갔었군.”
“어. 알았어. 그럼 준비할게.”
모현성이 박내관에게 자리 비웠을 때 필요한 일들을 말하는 사이 광해는 마법진을 그렸다.
“광핸님. 어디 가시나이까?”
“어.”
“저... 저도 갈 수 있나요까?”
“음... 안 돼. 집 봐. 조선어 공부 열심히 하고.”
“예. 집보께요.”
소유키가 시무룩해져서 쭈구려앉아 새끼 고양이를 끌어 앉았다.
빈 접시에 달라붙어 아이스크림 찌꺼기를 핥아먹던 고양이는 화를 내며 주먹질을 한다.
그래도 안 되지.
애인 만나러 가는데 다른 여자를 데려간다?
광해가 여러 여자 만나는데 주저함은 없지만, 최소한의 매너는 있다.
30분 정도 그려서 마법진을 완성했다.
옆을 보니 모현성은 준비를 끝냈는지 배낭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던 광해는 잠시 기다리라 한 후 접시 하나를 챙겼다.
기계 손잡이를 당겨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접시에 채운다.
“오올. 로맨틱한데.”
“그렇지. 예서랑 둘만 먹을 거다. 넌 빠져.”
“흥. 쳇. 나도 여자 사귀든가 해야지.”
모현성이 삐지든가 말든가 광해는 아이스크림의 탑을 높이 만들고 게이트를 작동했다.
“휴가 간다. 뒤를 부탁한다 박상전.”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광해와 모현성은 게이트를 통과했다.
“시원하네.”
“확실히 달라.”
8월의 무더위도 무산에선 훈훈한 정도다.
무산 1구역에 있는 왕의 별장을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6개월 새 또 한층 발전한 무산.
이제는 세계최고의 도시라 해도 되지 않을까.
완벽한 계획도시에 증기기관 펌프가 상하수도를 돌리고, 넓은 공원과 편의시설까지.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달리는 인간들.
“무슨 일이냐?”
지나가는 병사 하나를 세우고 물었다.
“헛. 광해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그것이. 그... 숙원 이씨께서 납치당하셨습니다.”
일순간 숙원 이씨가 누군지 알아듣지 못했다.
“뭔 개소리야! 예서가? 누구에게?!”
광해는 아이스크림을 내팽개쳤다.
흙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은 금세 녹아 개미들에게 기쁨과 죽음을 주었다.
함흥에 도착한 이영덕과 양반들은 백성들 틈에 끼어들었다.
이영덕을 비롯한 몇몇은 수염을 불태워 다친 백성으로 분장했고, 양반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백성들 틈에 섞여 지내다가 무산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엄청난 물자가 무산으로 흘러가고, 고품질 면포와 자기 등이 무산에서 내려온다.
왕의 비밀이 무산에 있다.
특히 균일하고 완벽한 광해면포와 기적의 약, 광해님의 은혜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양반들은 상의 끝에 곧장 명나라로 향하는 대신 무산에 가서 비밀을 캐내기로 했다.
군사를 끌고 와 폭군을 토벌할 명분과 상국에 바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스스로 상국의 신하라 여기는 성리학자다운 생각이었다.
소망교 교인으로 이어진 통제수단.
서로가 서로를 믿기에 잘 굴러가지만,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이 부족했다.
명령서를 위조해 무산에 도착한 이영덕은 신세계를 봤다.
거대한 광산과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공장단지.
그리고 넓고 아름다운 공원과 크고 깔끔한 돌집 촌.
수많은 물자가 공장단지로 들어가고 면포와 쇠기둥 등 각종 생산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쯤 되면 광해의 능력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곳.
저곳에 광해의 비밀이 있다.
무산 주위를 돌며 환경정리를 하며 정보를 캤다.
이영덕 외에도 다른 경로로 잡혀와 봉사하는 노역자들도 많았다.
그들과 나무심기나 도로정비를 하며 물었지만, 구역마다 정보가 통제되는 것을 알아냈을 뿐이다.
겨우겨우 3구역까지 들어갔지만, 그 이상은 접근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2구역부터는 허가된 이가 아니면 잠시도 들어갈 수 없다.
3구역을 돌며 정보를 캐고 있을 때 자신을 알아보는 이를 만났다.
“누구라고?”
“고성이가 사암공파 가주 이괄이오. 당신 한성에서 봤는데. 남자가 강간당할 거라 주장하던 그. 여긴 어쩐 일이오? 노역수의 복장이 아닌데.”
양반의 난으로 가주인 아버지가 끌려갔으니 이제 이괄이 가주다.
이영덕은 심장이 철렁했지만, 상대가 적대하지 않자 변명을 꺼냈다.
“귀의했소. 신께서 받아줬고, 이렇게 어른신들을 모시고 일을 하고 있소.”
이영덕을 알아보는 양반들에게 똑같이 반복했던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괄은 별 의심하지 않았다.
“공은 여기서 무엇하시오.”
“숙원 마마의 호위요.”
“숙원 마마?”
“주상의 후궁이신 숙원 이씨가 이곳을 총괄하고 있소. 그분을 호위하고 있소.”
심심했던 이괄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이괄은 원래 친화력이 높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값진 정보를 얻어낸 이영덕은 양반들과 상의해 계획을 짰다.
도주로를 확인하고, 말을 미리 준비하고.
이리저리 순찰 다니는 기마대의 경로도 확인하고.
그러다 초원기사단 몇 명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그들 대부분은 양반가 자제들이다.
양반가 차남이나 서자가 주로 갑사로 일했고, 개중엔 한 다리 건너 아는 얼굴도 꽤 있었다.
서자라고 모두 부모에게 천대받는건 아니다.
오히려 재산을 받아 갑사로 먹고 산 이들이다.
이예서는 늘상 해가 진 후 퇴청한다.
공장단지의 모든 것을 확인 한 후 노동자들이 전부 퇴근한 후 나온다.
어둠이 내려온 저녁에 1구역을 통과하고 2구역 문지기의 확인을 받고 3구역으로 나왔다.
자신의 집으로 이동하는 짧은 길에서 사내들이 덮쳤다.
“꺄읍.”
예서의 입을 막은 이영덕은 곧장 말에 태워 3구역을 벗어났다.
3구역까지는 단순노동을 하는 노역수가 많았고,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도왔다.
3구역을 건너 말을 탄 채 두만강을 건넌 일행은 그대로 북쪽으로 내달렸다.
중간에 미리 포섭한 순찰대와 합류해 규모를 키웠고, 그들을 앞세워 감시를 통과했다.
백여 명까지 불어난 무리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달렸다.
목적지는 당연히 북경이다.
“늦은 밤 호위장인 이괄공이 숙원 마마께서 퇴청하지 않았다고 알려왔고, 저희는 문을 통과했음을 알렸습니다. 그때부터 수색이 시작되었는데 북쪽으로 정체불명의 기마 30기가 달려간 것도 알아냈습니다. 초원기사단 모든 인원이 북쪽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게 언제지?”
“이틀 전입니다.”
문지기의 보고를 받으며 광해는 땅바닥을 관찰했다.
문에서 예서의 거처까지 반복해서 살펴 하나의 공통된 발자취를 확인한다.
이게 예서의 자취다.
다시 2구역 문으로 돌아와 예서의 자취만 찾아낸다.
여러 개 있다.
평온하게 걷는 모습.
차분히 예서의 여러 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하나가 급박스런 움직임을 보인다.
큰 나무가 여럿 심어져 있고, 민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
“여기서 예서가 납치되었군.”
저항하던 예서의 자취는 나무 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어지러운 말 발자국을 만난다.
“이곳에서 말에 실렸어. 준마 네 기를 준비하라.”
추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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