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삼년상 나빠요
순도 100% 픽션입니다
결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과 소년의 대화를 흐뭇하게 듣던 호위병들이 식겁해서 임경업을 덮쳤다.
여섯 명의 위사에게 사지가 포박된 임경업.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그러니까 춘미가 저기 있는 궁녀라고?”
“예. 소신이 비록 광해님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춘미가 다른 남자 품에 안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합니다. 춘미를 구하겠습니다.”
“관심 없다. 춘미 니가 데려가라. 아. 춘미가 원한다면 말이지.”
광해의 말에 임경업이 화색이 되었다가 급 우울해졌다.
“아 또 왜? 너도 허균 같은 상황이냐?”
곁에서 웃으며 구경하던 허균이 화들짝 놀라 ‘저는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했지만 묵살되었다.
“제 열다섯 생일에 맞춰 집안에서 혼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하늘같은 은혜를 저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약할 수 없습니다.”
고작 십만 마력을 위해 끼어들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공으로 마력 얻나 했는데 역시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더라.
“에휴. 경업이 니가 그렇지 뭐. 니 마음가는대로 행동해.”
“제 마음은 그녀를 잡는 것입니다. 허나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절대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왼손에 봉인한 채 눈물로 나날을 지새우고 있었으나 며칠 전 주상께서 삼년상을 폐지하겠다 하시니 거기서 삼년상과 유교의 창대한 역사를 돌아본 바 소인은 역시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사옵니다.”
얘는 도대체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부모가 혼처를 잡았으니 거스를 수 없지만, 마음은 여전히 춘미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두 여자를 들이거나 바람피우면 죽여도 무죄라 했으니 저는 분명 부인에게 칼 맞아 죽을 것입니다. 제 마음은 오직 춘미로 가득 차 있기에 부모님이 정해준 부인에겐 한이 쌓일 것입니다.”
중2병의 문제가 이거다.
상상의 거리가 너무 확장된다.
“그래서 춘미와의 손자는 몇 명?”
“열세명입니다.”
이것 봐.
“걸림돌인 왕의 허락은 받았고, 부모가 문제네. 그런데 부모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나? 부모가 정하는 혼처는 결국 집안 재산 보고, 조상보고 정하는 거지 여자를 보고 정하는 게 아니잖아.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의 마음 없이 정한 혼처를 어째서 따르는 거냐?”
“당사자의...... 마음?”
“그래. 네 부모가 혼처를 정할 때 너와 그쪽 여자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고 재산만 보고 정했잖아. 그게 옳다 여겨지느냐?”
“허나 부모님께서 정한 바를 어찌 거부하오리까. 세상에 그런 불효가 어디 있습니까?”
“그게 왜 불효지? 자식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말로 효 아니냐. 네가 춘미와 결혼해 잘 사는 것과 누군지 모를 여자와 결혼해 괴롭게 사는 것, 어떤 게 효냐?”
“춘미입니다!”
“그래! 네가 당당하고 멋지게 살면 그게 효다. 병신 같은 유교는 효의 개념을 종속과 절대 권력으로 해석해서 세상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유교를 죽이는 거 아니냐? 왕과 가장 가까운 네가 병신 같은 유교 교리를 따를 테냐?”
“아닙니다! 소신이야말로 광해소망교의 가장 열렬한 신도입니다.”
“그래. 남자답게 춘미에게 고백하고 혼약해. 내가 허하마.”
십만 마력 개꿀.
“알겠습니다. 춘미야.”
임경업은 왕의 침실에서 서서 듣고 있던 춘미에게 달려갔다.
얼굴이 새빨갛게 된 춘미가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싫어요. 전 광해님의 여자가 될 거에요.”
왜 자길 괴롭히냐는 얼굴로 춘미가 도망갔다.
춘미, 야망 있는 여자였네.
“...... 술상을 내 와라. 경업아 한잔 하자. 너 우냐?”
“...... 한... 잔 주십. 사내대장부는 이 흐헝. 정도로 울지 흐흐흥. 않습니다. 허어엉.”
어째서인지 허균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위로해줬다.
그 둘을 뒤에서 한심하게 지켜보는 심지원.
“너무 예뻐요.”
예서는 멀리 광해농업이 보이자 무심코 말했다.
“그래. 색칠해놓은 것 같군.”
멀리 보이는 농지가 색깔 타일을 설치한 것처럼 알록달록 물들어 있었다.
오산에 위치한 광해농업이 배정받은 토지는 천결. 1000 헥타르다.
봄부터 조성한 농지는 구획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고 각자 환경을 통제해 농작물을 심는다.
조선 팔도의 볍씨를 가져다 심었고, 밭, 논, 비료 뿌린 밭, 비료 뿌린 논 등 환경을 달리해 수확량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대적인 유전자 조작은 불가능하지만, 각 지방 쌀을 섞다보면 우성종자를 발견할 수도 있고, 자체적으로 수확량이 많은 종자를 얻을 수도 있다.
십년 정도 꾸준히 하다보면 우성 종자 하나쯤은 나오지 않겠어?
벼 밭끼리 거리를 띠워 그사이에 토마토, 고추,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오이, 양파, 수박, 참외, 딸기, 배추, 무, 밀, 보리, 콩, 조, 피 등 모든 식량자원을 심었다.
이 또한 환경을 조금씩 다르게 통제해 우성종자를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성, 열성 종자가 섞이지 않도록 종류별로 떨어뜨려 심었기에 농지는 온갖 작물이 구획별로 뒤섞여 있다.
식물마다 성장속도가 다르고, 수확시기도 다르기에 멀리서 본 농지는 캠퍼스에 칠한 것처럼 알록달록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광해농업을 책임지는 백관이 셋, 병사가 백 명, 전국 각지에서 고용한 농사 경험이 많은 농부가 천명, 노역수 오천명이 소속되어 있다.
단순히 농사짓는 게 아니라, 풍족한 농업을 위해 연구하고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해 종자개량을 해 나가는 곳이기에 자잘하게 할 일도 많고 기록할 것도 많다.
이랑과 고랑, 각종 농기구 개발, 비료의 양 조절, 방충, 제초 방법 등등 복잡하고 다양한 모든 일을 연구해야 한다.
광해농업과 광해축산은 수익을 바라는 기업이 아닌 연구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엄청난 자금을 최소 10년 이상 수익도 없이 계속 투입해야 하지만, 길게 보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주상 전하를 뵙습니다.”
“진짜 그만둘 거냐?”
마중 나온 윤선도에게 사직서를 꺼내 보이며 물었다.
윤선도는 즉시 무릎 꿇고 엎드렸다.
“예. 전하. 자식 된 도리로써 어머님의 삼년상을 거를 수 없사옵니다.”
“삼년상이라...... 그거 꼭 해야 하나?”
“당연합니다. 공자께서 논어에 말씀하신 것을 어찌 제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를 봉양하지 아니한 죄인이 국가에 봉양할 수 있겠습니까? 근본은 잃을 수 없습니다.”
거품 무는 윤선도를 빤히 바라봤다.
저거 진심이다.
세뇌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삼년상은 그 자식들이 모두 치르는 거냐?”
“아닙니다. 장자가 치르고 다른 이들은 장자를 도와줍니다.”
“현실적 타협은 있군. 그럼 장자가 치르면 다른 자식들도 삼년상 치른 거랑 똑같겠네.”
“그렇습니다.”
“장자가 안 치르면 둘째나 셋째가 대신 치러도 되나?”
“둘째가 봉양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첫째는 천하의 후레자식이 되죠. 게다가 소신은 양자로 들어갔기에 외동입니다. 제가 해야 합니다.”
윤선도.
양어머니 삼년상을 치르다 친어머니 삼년상을 연달아 치러 무려 4년 연속 삼년상을 치렀다.
이런 인물이니 삼년상으로 촉발된 예송논쟁이 적당히 무마되어갈 때 핵폭탄을 투하했겠지.
광해는 윤선도를 바라보다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유교가 만들어질 당시, 국가란 개념이 희박했고 신분제의 개념도 희미했지. 왕이란 사람을 죽일 힘이 있는 강자였을 뿐이고 죽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하던 세상이었다. 그런 사회를 정리하기 위해 다양한 사상가가 등장했고 공자가 등장했다. 공자는 꽤나 똑똑하고 유능한 인간이었지. 효와 충을 엮어 왕에 대한 충성을 정당화 하고 대신 2인자의 부귀영화를 얻었으니까.”
이원익이 성리학의 실패를 선언했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커다란 고마움을 느낀다. 이건 유교가 교육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정서지. 물론 자식 때려죽이는 부모나 부모 때려죽이는 자식도 있지만, 그건 원래 그런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고 유교가 교육한다 해서 바뀌는 건 아니다. 공자 놈이 똑똑한 건 효에 빗대 충을 설명한 것이다. 보편적 감성으로 왕에게 충성하라 말했으니. 존재하지 않던 충에 대한 개념을 아주 쉽게 설명했기에 유교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광해는 윤선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말 많은 윤선도는 왕의 기세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중국의 유학자와 조선의 유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네놈들이 오랑캐라 업신여기는 여진, 선비, 말갈, 돌궐 등등은 효심이 없을까?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이가 전혀 없을까? 너희 쓰레기 유학자들은 착각하고 있다. 효심은 공자가 심어준 게 아니라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네놈들 멋대로 제단하고 이용해 먹는다. 왕 바로 아래에서 2인자의 자리를 지키며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보편적 효심을 마음대로 변형시키고 있다.”
인사하러 나온 윤선도와 백관들, 중간관료들은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굳었다.
광해의 짜증은 그들의 눈에 불같은 분노로 보였다.
“이런 저런 억지 예법을 만들다가 삼년상을 생각했겠지. 부모가 죽었으니 자식이 죄를 지었고, 그러니 무덤 곁에서 운다. 삼년간 태양을 봐선 안 되고, 무담가에 움막을 지어 거기서만 살아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직접 밥을 지어 울면서 부모에게 바치고, 육식을 금하고. 거 참. 이 무슨 미친 짓이냐? 서로 내가 더 효자라고 뽐내다가 별 개 같은 미친 짓을 만들어냈다.”
삼년상은 그러니까...... 돼지고기와 비슷한 거다.
과거 돼지고기에서 주로 나오는 기생충은 77도에 모두 죽는다.
소고기에서 주로 나오던 기생충은 65도에 다 죽는다.
그래서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익혀서 먹어야 했다.
이걸 짧게 설명하다보니 소고기는 살짝, 돼지고기는 바싹 익히라고 알려졌다.
그 결과 기생충 걱정이 거의 없어진 현대에 와서도 소고기는 맛 성분인 지방이 녹지도 않은 피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맛있다며 먹고, 돼지고기는 과자처럼 바싹 마른 탄 거를 먹어야 맛있다고 한다.
잘못된 지식이 혓바닥까지 세뇌시킨 것이다.
오바다.
뭐든 적당히 좀 해야지.
삼년상은 바싹 탄 삼겹살 같은 거다.
못 먹을 건 아니지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거다.
“삼년상? 지랄하네. 그럼 가난한 농부는 삼년상을 못 치르니 불효자냐?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백성들은 삼년상이 불가능하니 효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겠군. 백성들의 피를 빨아 재산을 산처럼 쌓은 성리학자만 해낼 수 있는 삼년상이 효도라고?
유교는 썩고 썩었다. 나라의 봉록이 적으니 그것만으로 재산을 쌓을 수 없고, 삼년상을 치르다간 다 굶어죽을 것이다. 즉, 삼년상을 치른 부유한 성리학자는 모두 백성의 고혈을 빨아 모은 쓰레기들이다.
삼년상의 가장 큰 오점은 벽을 만드는 것이다. 삼년상을 치를 수 없는 가난한 이는 불효자니 정계에 참여할 수 없다. 즉, 피를 빨아 재산을 불린 탐관오리만이 향후 정계에 진출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중인의 과거 시험을 막고, 백성의 과거 시험을 막고, 서자, 서얼을 막고, 가난한 양반까지 막는 벽. 오직 부유한 탐관오리끼리만 양반사회를 형성한 것. 이것이 삼년상의 죄다.”
광해를 수행해온 예서와 허균 등까지 숨소리도 못 내고 굳어버렸다.
“묻겠다. 삼년상을 치르기 위해 낙향하겠느냐?”
“저... 저는......”
윤선도가 더듬더듬 입을 뗐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광해는 윤선도를 응시하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굳이 윤선도가 아니어도 된다.
모현성에게 배운 백관 여럿이 광해 농업, 축산에 모여 있다.
그들이 책임져도 된다.
허균이 매우 똑똑하다고 추천했기에 복잡한 일을 맡길 생각일 뿐 꼭 윤선도여야 하는 건 아니다.
과거 관습에 얽매어 있다면 굳이 쓸 필요 없다.
실수를 하거나 일처리가 늦어지더라도 유학자에게 맡기느니 신지식을 습득중인 백관이 낫다.
윤선도가 삼년상을 고집하면 죽여 버려야지.
마음을 정리했는지 윤선도가 고개를 들었다.
“주상전하. 잠시 해남에 다녀와도 되겠나이까? 양모의 무덤에 절을 하고 곧장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네놈이 맡은 일이 하찮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한성에선 그리 여겼으나 와보니 매우 방대하고 중대한 사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몸이 죽더라도 기필코 완수하겠나이다.”
“그래. 광해 축산에 배정된 배를 타고 가서 제를 올리고 복귀하라. 그 정도 편의는 알아서 챙겨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허균. 지방에 포고를 돌려 삼년상을 금하고 금하는 이유를 선언하라.”
“예. 전하.”
이원익의 선언으로 유교는 조정에서 힘을 잃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백성의 관습 속에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해는 무덤에 들어간 유교를 끄집어내 부관참시했다.
- 작가의말
바싹 탄 삼겹살을 맛있다 하는 이에겐 딸도 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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