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에도만대첩
순도 100% 픽션입니다
유구국 광해산업 지부 총독이 된 서양갑은 이상한 선언을 했다.
“서양 상단을 만나고 싶다. 서양 상선을 데려온다면 쌀 열석을 상으로 주겠다. 선착순 열 명에게만 주겠다.”
우치나는 안남과 루손과 활발한 교역을 해 왔다.
서양갑의 선언을 들은 우치나 상선은 곳곳을 항해하다가 마주치는 서양 상선들을 열심히 초대했다.
때마침 나하에 들렀던 루이스 페르난도는 유구민에게 대환영을 받으며 조선의 상회로 안내받았다.
서양갑은 통역을 대동하고 나와 약을 팔았다.
“만나게 된 선물로 알약 백 알을 주겠소.”
“약이라...... 무슨 효과가 있소?”
“매독을 치료할 수 있소. 초기라면 한 알, 말기라면 열 알. 그 정도면 완치되오.”
매독 치료제라는 말에 포르투갈 상인 루이스 페르난도가 벌떡 일어났다.
“거짓말! 믿을 수 없소. 그건 누구도 치료할 수 없소.”
“그래서 선물로 준 것이오. 일단 한번 먹여보시오. 완벽히 치료될 테니.”
“허어. 알겠소. 효과가 있다면 다시 오겠소.”
“참고로 선물은 지금뿐이오. 앞으로 제 값을 내고 사야 하오.”
“가격은 어떻게 되오?”
“한 알 당 쌀 한 석. 다른 건 전혀 받을 생각 없소. 쌀 한 석 하고만 거래하겠소.”
서양갑의 말에 루이스 페르난도는 도자기를 슬쩍 열어봤다. 하얀 알약이 100개 들어 있었다.
“이 조그만 게 쌀 백석이란 말이오? 너무 비싸오.”
“허허허. 만약 내 말이 사실이라 쳐 보시오. 귀국에서 그게 얼마에 팔릴지 계산이 안 되오? 최소 백배 남는 장사요.”
“흐음.”
루이스 페르난도는 팔짱을 끼고 고민을 했다.
신대륙이 넘겨준 저주인 매독은 귀족병이다.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기에 귀족이 걸릴 확률이 더 높다.
일단 걸리면 신분 고하를 무시하고 같은 확률로 공평하게 죽는다.
만약 공작이나 왕이 매독에 걸렸는데 이 알약으로 치료가 된다면?
“믿기 힘들다면 노예나 평민부터 치료해보시오. 그 후 믿음이 생겼을 때 귀족을 치료하면 되겠지. 참고로 열두 달이 지나면 그 약은 효능을 잃소. 그러니 빨리 쓰는 게 좋을 게요.”
서양갑의 말에 루이스 페르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것은 무료로 선물 받은 것이다. 실제 효과가 있다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별 손해는 없다.
어차피 우치나로 오는 길에 선물 받은 것이니까.
“그 약은 매독에만 좋은 게 아니오. 이상과 같은 병에 효과가 좋소.”
서양갑은 그러면서 병명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통역은 다양한 병명과 효과를 힘들게 설명했다.
“말라리아, 흑사병, 천연두, 이질, 티푸스, 파상풍, 식중독, 폐렴, 감기 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고, 적의 무기에 베인 피부가 썩거나 고름이 줄줄 나올 때도 완화하고, 쇠붙이에 긁히거나 상처에서 피가 날 때 무조건 하나씩 먹어주는 게 좋고...... 허 참. 그냥 만병통치약이구만.”
“맞소. 반쯤 만병통치약이오. 불러주지 않은 병에도 약간의 효과가 있을 게요.”
“믿을 수 없소. 그 모든 병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오. 아까도 믿기 힘들었는데 이쯤 되니 더 못 믿겠군.”
루이스 페르난도는 시간만 버렸다는 표정이 되었다.
“거 사람 참. 속고만 살았나. 일단 한번 잡숴봐. 더 달라고 매달릴 테니.”
기적의 신약.
페니실린을 서양에 소개한다.
“알겠소. 무료니까 일단 한번 써 보겠소. 헌데 이 약의 이름은 무엇이오?”
루이스의 질문에 서양갑이 헛기침을 했다.
“‘광해님의 은혜’ 라오.”
서양갑은 조금 창피했다.
“쾅핸니메 우네?”
“아니다. 해석해서 전해라. 말 그대로 광해님께서 내리신 은혜란 뜻이다. 인간을 돕고자 신이 광해님을 통해 내려주신 약이란 뜻이다. 광해님께 소망하는 게 강할수록 약효는 좋아진다.”
원 플러스 원 행사처럼 약도 팔고 종교도 판다.
“허허. 귀국의 국왕에게 그런 능력이 있군요. 허허허허.”
루이스 페르난도는 더 못 믿게 됐다.
“손해 볼 거 없으니까 일단 한번 잡숴보라니까 그러네. 아 그리고 약이 하나 더 있소. 이 물약은 큰 바다의 저주를 치료하오.”
서양갑은 도자기병을 하나 더 꺼냈다.
“뭐 뭣? 정말이오? 정말 큰 바다의 저주를?”
“그렇소. 잇몸에 피가 날 때 뚜껑에 한잔씩 마시면 치료되오. 이것도 선물로 줄 테니 써 보고 효과가 있다면 다시 오시오. 가격은 같소.”
“허허. 이건 바로 써보겠소.”
큰 바다의 저주.
괴혈병이다.
현재로부터 170년 후인 1780년대 영국의 해군은 총 1600명이 죽었는데 이중 60명만 전투로 죽었다.
나머지의 대부분은 괴혈병으로 죽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인류는 처음으로 이 질병을 접했다.
몇 달씩 항해를 하면서 보존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로인해 비타민c를 전혀 섭취하지 못해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간 것이다.
당시 유럽과 신대륙을 오가는 것은 언제 큰 바다의 저주에 걸려 죽을 지 모를 공포를 안고 항해해야 했다.
치료법은 매우 간단하다.
비타민c를 먹어주면 된다.
비타민c는 거의 모든 과일과 야채, 고기에 들어있기에 평소엔 괴혈병에 걸릴 일이 전혀 없다.
만약 서양인이 생선을 회로 먹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면 괴혈병으로 단 한명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치료법이 간단한 만큼 약을 만드는 방법은 페니실린보다 간단하다.
사과 등 과일을 갈아 면포로 꼭 짠다. 거기에 물을 탄다.
대충 만든 과일주스다.
일꾼들이 잔뜩 만들어두면 광해가 보존마법과 무색무취무미 마법을 건다.
효과를 봐도 원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마력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푸른곰팡이 배양에 들어가는 마력의 천분의 일밖에 들지 않는다.
1795년 영국 해군이 ‘라임’즙을 공급하면서 괴혈병이 잡히니 그때까지 꾸준히 팔아먹을 귀한 약이다.
아니 이 약 덕분에 영국 해군이 라이미로 불리게 될 일이 없어질 테니 더 오래 팔아먹을 수 있겠지.
앞으로 장거리 항해를 하는 모든 배는 이 약을 반드시 구비해야 할 것이다.
“효과만 좋다면야 꼭 다시 오겠소. 그런데 이 약의 이름은 무엇이오?”
“흠흠. ‘광해님의 두번째 은혜.’ 라오. 큼큼.”
서양갑은 많이 부끄러웠다.
루이스 페르난도는 약에 대한 신뢰를 조금 더 잃었다.
“전군 전진하라.”
“전진!”
둥둥둥둥둥.
약속된 깃발이 오르고 고수가 북을 친다.
선봉 권준이 판옥선 100척을 이끌고 전진했다.
중군 이운룡에겐 판옥선 200척이 있었고, 이완이 이끄는 후군에 나머지를 배치했다.
에도만은 굉장히 넓다.
대충 제주도의 절반 크기다.
이운룡의 부대는 돛을 펴고 매우 느리게 전진했다.
중군과 후군도 간격을 유지하고 느긋하게 전진했다.
만의 북쪽 해안가 곳곳엔 소규모 병력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상륙하면 저들이 조선군을 둘러쌀 것이다.
반면 남쪽 해안은 개발이 되지 않아 갈대밭만 무성히 있었다.
만의 가장 깊숙한 곳 에도강 하구 근처에 적선 수천여척이 있었다.
관선 이상 대형 선박만 이백 여척에 안택선도 열 척 이상 보였다.
최대한 육지에 붙은 적선의 뒤엔 육상병력이 도열해 있었는데, 화포가 수백 개 보였다.
수군의 부족함을 깨닫고, 육상 병력과 연합한 것이다.
저 정도 화력이면 조선군의 화력과 비슷하다.
“그러니 공격하지 않는다.”
“예?”
곽재우가 정선명령을 하자 개떡이가 놀라 물었다.
“병법의 가장 기초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기습, 매복, 포위, 이런 전략 모두 무리한 전투다. 압도적인 화력을 지닌 쪽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하오나.”
개떡이는 뒤에 있는 광해의 눈치를 봤다.
“왜 내가 지루해 할까봐?”
“아니 그게 아니옵고. 거시기 그 주상께서 친정을 하시는데 왠지 당당하게 싸워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랄.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당당하게 싸우는 것만큼 멍청한 새끼가 어딨냐? 송양지인이냐?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자기 목숨 아니라고 함부로 돌격시키는 새끼는 다 죽여 버려야 해.”
광해에게 욕을 먹은 개떡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입부 이순신도 고개를 숙였다.
굳이 입부를 추궁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일은 일어났고, 되돌릴 수 없다.
그에게 좌군을 맡긴 건 광해와 모현성이 결정했다.
입부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순 없다.
“닻을 내리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전술은 완전히 맡겼으니까.”
“감사합니다.”
곽재우는 에도만 남쪽에 판옥선으로 사각 진형을 짜고 닻을 내려 정선했다.
이렇게 하면 어느 방향으로 적이 쳐들어오든 바로 포격을 가할 수 있다.
화포 수천 문을 보유한 성채가 완성된 것이다.
멀리 일본군이 보이는 곳에 정선한 조선군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형 정찰선만 열심히 돌릴 뿐 단 한 번의 포격도 없었다.
일본군 진형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지원군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 함대에 추가 지원이 필요하겠소?”
“육상병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소만.”
“협상을 위해 무력시위 하는 거 아닙니까? 저들은 에도를 함락할 수 없소.”
“맞소. 어차피 저 병력이 모두 상륙해도 우리 병력은 십만이 넘소. 차라리 바다를 내주고 육지에서 결판을 냅시다.”
“저 정도면 조선 수군 전체일 겁니다. 저들이 우리 군세에 옴싹달싹 못하니 반도를 치는 게 어떨까 싶소만. 본토를 공격받으면 저들은 퇴각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저런 의견이 많았지만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셋째아들이자 현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가만히 바라봤다.
히데타다는 침묵 속에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조선군이 정선한지 나흘째에 비가 내렸다.
토독. 토독.
밤부터 구름이 달을 가리더니 새벽녘에 한 방울씩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떨어진 순간 보초병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곽재우를 깨웠다.
“장군님. 비가 옵니다.”
“알았다. 전군 기상시켜라.”
“옛.”
“전군. 기상.”
“닻을 올려라. 돛을 펼쳐라!”
“전투를 준비하라.”
나흘간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만 한 병사들이 빠릿빠릿 움직였다.
두시 경 깨어난 함선이 부랴부랴 움직여 일자진을 펼쳤다.
삼백척의 판옥선이 일자진을 형성했고, 대장선을 비롯한 50척과 중형선 100척이 후방에 남았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 깃발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미리 악속한 대로 움직일 뿐이다.
코앞만 겨우 보이는 어둠속에서 각 함선은 망루에 작은 불을 켜고 희미한 불빛을 따라 이동하며 줄을 맞췄다.
잠에서 깨어난 지 반 시진. 함대가 도열을 마쳤다.
둥.
단 한 번의 북소리.
그와 함께 남풍이 불어왔다.
신의 바람.
함대는 신풍을 타고 북상하기 시작했다.
구름 끼고 비 오는 밤에 급작스레 전투준비를 시작했으니 적이 잠에 빠져 있으면 좋으련만, 일본군은 당나라 군대가 아니다.
밤에도 꾸준히 떠도는 정찰선이 조선군의 움직임을 간파했고, 거의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했다.
“움직입니다. 조선군이 진을 풀었습니다.”
“병사들을 전부 깨워라.”
“일자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방어준비를 해라.”
“북상합니다. 적군 북상.”
한 다경마다 소식이 전해졌다.
잠에서 깨어난 지휘부는 부랴부랴 병사들을 깨우며 방어태세를 갖췄다.
“빌어먹을. 비 오는 새벽에 뭐하는 짓거리야.”
“그러게 이렇게 비가 오면 화약도 못 쓰......”
“헉! 큰일 났다.”
일본군 참모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조선군의 화포실은 지하층에 있다.
즉, 비에 화약이 젖지 않는다.
일본군 화포는 육지에 있다. 당연히 지붕이 없다.
일본군 함선의 주 무기는 조총이다.
조선군에 비해 현저히 약하지만, 그나마 조총이 가장 믿음직한 무기다.
조총병은 갑판에서 싸운다. 당연히 지붕이 없다.
화약이 젖지 않게 장약하기도 힘들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것도 문제다.
“후퇴해야 해! 후퇴!”
“어디로? 이곳은 에도만 구석이라고!”
“도망칠 곳은 없어. 지붕을 구해. 포목이든 멍석이든 뭐든 좋으니 화약을 보호하라.”
육군과 연합하기 위해 스스로 구석에 뭉쳤다.
판옥선에 비해 유일한 장점인 뛰어난 기동력을 스스로 버렸다.
적은 일본군 진형을 보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비가 오고 몇 시간이 지났으면 미리 깨닫고 대비를 했을 텐데.
한밤중에 비가 내리자마자 움직이다니.
전투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패배했다.
전군의 지휘를 맡은 나오에 카네츠구는 정보를 종합한 후 빠르게 서신을 적었다.
그리곤 자신의 친우이자 주군인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불렀다.
“이 서신을 쇼군께 드리시오.”
“내가?”
“주군이 직접 드려야 하오. 최대한 빨리 전해야 하는데, 이 시간에 깨워서 전달하면 그 자는 어떻게든 흠이 잡힐 것이오. 이런 일로 가신 하나를 잃고 싶지 않소. 당장 가시오.”
“어. 알겠네.”
“빨리. 시간이 없소.”
“으. 알았대도.”
군사의 재촉에 서둘러 나온 카게카츠는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저 놈. 좀 건방지네. 적이 강해서 불안한가.”
어둠속에 부산히 움직이는 병력 사이를 지난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곽재우 개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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