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전과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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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후군은 삼만 명이다.
군량을 관리하는 치중과 목책을 담당하는 공병, 화포를 관리하는 포병이 대부분이지만 포병과 수레를 이용해 강에 방어선을 폈기에 쉽게 뚫기 힘들었다.
누르하치의 기병 팔천이 강을 건넜고, 뒤이어 사만여 보병이 초원기사단의 사냥을 피해 강을 건넜다.
단한번의 전투로 십만 명이 죽었다.
양호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후퇴해 달려온 병사들은 무기를 거의 잃었고, 정신상태도 도저히 싸울 분위기가 아니다.
지금부턴 살아 돌아가는 게 일이다.
처형당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한명이라도 더 살려서 퇴각해야 한다.
“후퇴한다. 포병은 끝까지 포격하고, 용호장군이 시간을 끈다.”
또 개먹이가 되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며 입술을 씹었다.
적 기마 이만은 단궁을 하나씩 들고 잔병사냥을 하고 있고, 적 보병은 한 줄로 퍼져 부상병들을 확인사살 하며 전진하고 있다.
강을 건너오려면 한식경 남았다.
‘명을 배신하고 후퇴해 둘 다 적으로 삼거나, 조선의 왕을 죽여 추격을 막거나.’
입술을 씹으며 적진을 둘러봤다.
흙먼지가 이리저리 휘날리다가 한순간 붉은 옷이 보였다.
전장에서도 곤룡포를 고집하는 사내.
광해가 자신을 향해 기다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타아앙.
소리가 들리는 순간 누르하치의 얼굴이 터졌다.
“젠장.”
광해는 저격총을 내리며 짜증을 냈다.
“왜? 실패야?”
“아니. 저놈 소망. 이백오십만을 가져가 버리네.”
명나라를 무너뜨린다 - 2620912
전보다 강해진 소망.
여지껏 봐왔던 가장 강렬한 소망을 가진 사내가 죽었다.
“마력은? 바닥났어?”
“음. 백만 정도 남았다.”
“칠백만 넘게 있었잖아. 엄청 줄었네.”
“...... 보편적으로 원한보다 소망이 크단 말이겠지. 나도 전쟁이 싫고.”
“...... 어쩔 수 없었어. 한번은 싸워야 했으니까. 이제 분열만 남았어.”
“알아. 뭐 한동안은 전투 없겠지.”
둘이 대화하는 동안 만주족 진영에선 큰 혼란이 일었다.
만주족을 거의 홀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던 누르하치가 죽었다.
그의 아들과 장수들은 시신을 수습하고 말머리를 돌렸다.
“뭐해? 어디 가냐? 막아야지! 군령을 따라라!”
“시끄럽다. 무시하고 돌아간다.”
만주족 팔천기가 북쪽 산길로 달려 사라졌다.
기병의 엄호를 잃고 외로이 남은 포병과 공병 육천 명.
적의 혼란을 본 정충신은 즉시 도강했다.
“공격해라. 적을 죽여라.”
이만 기병이 적을 스친다.
결코 맞부딪치지 않는다.
적의 곁을 지나며 활을 대충 쏴 갈기고 지나간다.
그거면 된다.
수많은 화살 중 한대만 맞추면 되니.
말 위에서 3년간 생활하며 활만 지겹게 쏜 궁기병이 적을 순식간에 분쇄했다.
북경과 한반도 사이에 위치한 요령성.
요령성 정 중앙에 요하라는 강이 흐르는데 요하를 중심으로 서쪽을 요서지방, 동쪽을 요동지방이라 부른다.
한족이 요령성을 차지한 기간도 거의 없지만, 차지했을 때도 극히 일부만 다스렸다.
요하 중하류에 있는 넓은 평원과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좁은 평야만 다스렸고, 그 외 지역은 언제나 야인의 땅이었다.
요하 동쪽인 요동반도는 해안가에만 평원이 있고, 내부는 강원도만큼이나 험준한 산맥이 늘어져 있다.
즉, 명나라 패잔병이 후퇴할 길은 해안가 평지길 밖에 없었다.
양호는 수습한 병력 7만을 이끌고 서쪽으로 걸어갔다.
총 병력수는 조선군보다 많다.
하지만 이들 중 무기가 있는 병사는 이만 명 뿐이다.
조총과 화약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병사는 둘째치더라도 비교적 안전하게 언덕을 향해 쏘던 궁병조차 활은 있지만 화살은 없는, 미치고 팔짝 뛸 상황에 놓였다.
단 하루 만에 전투가 끝나고 퇴각하다 잠든 부대.
다음날 새벽 진군을 준비할 때 적습을 받았다.
슈슈슝.
투두두두.
“아아아악!”
궁기병 오천이 부대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활을 쏘고 돌아간다.
“됐다. 적의 무장은 별거 없다. 돌입하지 못한다. 무시하라.”
부상자를 한쪽에 모아 적이 자비롭길 기원하고 부대는 이동을 시작했다.
잠시 후.
투두두두.
오천의 기마가 활을 쏘고 지나간다.
아아악
“무시해라. 무시해라.”
투두두두.
멈추지 않는다.
부대가 교대로 나타나 활을 쏘고 사라진다.
사거리는 고작 50보.
적도 그 이상 접근하지 않기에 대다수 화살이 발 앞에 떨어질 뿐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다.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이동속도도 줄어든다.
“이래선 안 되오. 진로를 막아야 하오. 내게 창병을 맡기면 적을 몰살시키겠소.”
임진왜란에도 참전한 유정이 자청해서 적을 막기로 했다.
창병이 구성되고 얼마 후.
다시 오천기가 나타났다.
명군 후미부터 활을 쏘며 우측으로 도는데 삼천기의 창병이 튀어나와 진로를 막았다.
다 죽이진 못해도 진격은 막을 수 있을 터.
그 사이 오천기의 창병이 기병의 후방으로 돌진했다.
발만 멈추면.
붙기만 하면.
선두에 달리던 정충신은 화살 하나를 재서 우측으로 날렸다.
삐이익.
효시가 피리소리를 내며 우측으로 날아갔다.
효시의 장점은 소리의 꼬리로 방향이 보인다는 것.
모든 기병이 고개를 들고는 효시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오천기가 동시에 움직였다고 믿기 힘든 일사불란한 마술이었다.
닭 쫒던 개가 된 창병은 기마를 쫒을 엄두를 못 냈고, 포위를 이탈한 정춘신의 부대는 느린 창병을 덮쳤다.
슈슈슝.
돌면서 쏜다.
뭉친 창병이 한 방향으로 돌진한다.
그 방향으로 따라가며 쏜다.
창병이 방향을 바꾼다.
똑같이 방향을 바꾸며 쏜다.
고작 50보.
힘껏 달리면 한 호흡에 도착할 거리.
“제발 싸워줘. 제발.”
창병은 그 거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슈슈슝.
슈슈슝.
어쩌다 기마 한두 마리씩 창병에 둘러싸여 꼬치가 되지만, 대다수 기마는 송사리떼마냥 창그물을 피해 외각을 돌았다.
슈슈슉.
“흩어지지 마라. 추격해라. 커억.”
홀로 말을 타고 추격하던 유정이 먼저 활에 맞았다.
창병 8000명은 사냥당하다가 와해돼 사방으로 흩어진다.
정충신의 기병이 창병을 하나하나 사냥할 동안 새로운 오천기가 나타나 양호의 부대를 쫒는다.
너른 평야에서는 적의 주위를 돌며 활을 쏜다.
좁은 길에서는 적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활을 쏜다.
지치면 후퇴해 쉬고 새로운 부대가 활을 쏜다.
적보다 두 배 빠르다는 것은 하루의 절반을 쉴 수 있다는 것.
한 시간 싸우고 한 시간 쉬며 느긋하게 추격했다.
퇴각 둘째 날 양호는 만칠천명의 병사를 잃었다.
“괜찮다. 내일 오후엔 둥강성에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엔 천조의 수군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 버텨라.”
밤사이 병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연설을 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 버티며 지원군을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밤사이 야습은 없었다.
다음날 동이 트기 전 병사들을 깨워 진군을 시작했다.
무기가 있는 병사들을 후미에 세우고 오만삼천명이 서남쪽으로 걸었다.
“적이다!”
또 지겹게 활을 쏘겠구나.
궁기병을 대비해 부대 가장자리엔 방패병을 배치했다.
방패가 모자라면 급조한 나무토막이나 솥뚜껑이라도 들었다.
적 궁기병은 갑주가 없어서 부대 내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가장자리에서 방패만 들면 피해는 거의 없다.
안심하고 있는데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보병 삼만 명이 나타났다.
전날 궁기병이 발을 늦추는 동안 전장 정리를 한 보병이 따라붙은 것이다.
“적이 무리해서 추격해왔다. 지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다. 숫자도 얼마 안 된다. 우린 그저 성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적이 공격해오면 그때 싸우면 된다. 우선은 성에 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걸어가며 마지막 주먹밥을 먹고 나니 멀리 성이 보인다.
압록강 하구 해안가 언덕에 세워진 작은 성이다.
그래도 지금은 더없이 안락하고 안전한 집처럼 보였다.
지쳐가던 병사들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천보, 구백보, 팔백보.
슬슬 성 주위의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선 병사들이 점처럼 작게 보였다.
구구구궁.
조용한 울림이 심장을 두드린다.
콰콰콰콰!
뒤이어 장엄한 폭음이 고막을 찢는다.
아아아악.
지옥이 펼쳐졌다.
뒤이어 해안가에 거대한 함선들이 나타났다.
두두둥.
콰아앙.
성채보다 거대한 함선. 그 주위에 새까맣게 늘어선 함선.
둥강섬에 있어야 할 명군 수군과 보급부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성을 차지한다. 돌격하라. 성에 들어가야 쉴 수 있다!”
양호는 후퇴하는 대신 돌격을 선택했다.
실제로 포격에 의한 사망자는 많지 않다.
압록강 하구에서 수송대를 격멸한 기승진의 포병부대는 위화도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둥강성을 점령했다.
포병부대와 함께 한 건 우에스기군 사천명.
무기도 없는 명군이 그저 살기 위해 달려들었다.
“몇명 없다. 이놈들을 죽이고 적의 화포를 빼앗으면 된다.”
열배 넘는 숫자가 자신감을 준다.
후방의 조선병은 아직 저 멀리에 있다.
정면에 적의 얼굴이 보이고 표정까지 생생해진다.
소리치는 게 들리고 숨소리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가느다란 선이 보인다.
“쇠가시선?”
“맙소사. 여기도.”
“이건... 이건 너무해.”
도열한 우에스기군 바로 앞에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모포라도 하나씩 들고 있다면 덮어 넘겠지만, 모포를 들고 돌격하는 멍청이는 없다.
슉. 슉.
철조망 너머에서 적이 긴창으로 찌른다.
병사들은 아예 철조망에 붙지를 못했다.
“악몽이다. 이건.”
“도망쳐. 도망쳐야해.”
콰콰쾅.
사방에서 들리는 포성. 위화도를 떠올리게 하는 철조망. 북쪽에서 진군해오는 대병력.
“도망쳐!”
정신력이 바닥난 부대가 무너졌다.
애초에 무기도 없이 돌격하는 걸로 그들의 애국심은 끝나버렸다.
적이 없는 서쪽으로 우르르 탈주병이 생겼다.
양호는
“잡을 수 없군.”
수습을 포기했다.
양호는 이여백과 마림 등 살아남은 몇몇 장수들과 말을 달려 도망쳤다.
“조선의 무서움은 말씀드리고 죽어야 하니까.”
도망치는 게 아니다.
보고 드리러 가는 것이다.
장수들이 빠져나간 뒤를 병사들이 따른다.
이제는 통제고 식량이고 없는 무작정 달리기다.
맨몸으로 달리는 명군은 각종 무기를 들고 움직이는 조선군보다 빠르다.
조선군은 굳이 추격하는 않고 갇혀있거나 부상당해 쓰러진 병사들을 정리했다.
그 대신 나타난 것은 초원기사단.
“죽여라. 다신 조선 땅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라.”
슈슈슉.
화살비가 내린다.
광해는 이틀 후 저녁 무렵 둥강성에 도착했다.
보병 사냥을 끝낸 정충신을 위시한 장수들이 전원 모여 있었다.
“다들 수고했다.”
“주상 전하의 은덕이옵니다.”
맞지. 군대에 이렇게 신경 써주고 투자하는 왕이 어딨어.
다른 왕들은 지 먹을 거 챙기느라 군인 월급도 안 주는데.
“당연한 말은 됐고. 보자.”
광해는 커다란 지도를 꺼냈다.
요령성과 길림성 전체가 그려진 지도였다.
“우선 요동반도에서 한족을 쫒아낸다. 곽재우.”
“예.”
“해안선을 따라 진군하면서 모든 민간인을 요서로 보내라. 미리 경고하고 도주하게 해. 딱히 추격은 하지 말되 남아서 저항하면 모두 죽여. 산 쪽을 먼저 전진시켜서 산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예. 전하.”
“이수일, 장만. 자네들이 일선에서 잘해줘야 해.”
“맡겨주십시오. 주상 전하.”
“기승진하고 우에스기도 이쪽에 붙고. 1차 목표는 다렌. 2차목표는 요양이야. 이중로는 식량과 화약보급에 신경 쓰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충신은...... 잠깐.”
광해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허준?”
무산에 있는 허준이 통신을 넣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 알겠다. 금방 가마.”
광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장군들이 궁금해도 감히 말을 못하고 광해의 입만 보고 있었다.
광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지린에서 기마 만오천 기가 아국을 침입했다. 목표는 무산일 듯 하고 아마도 반나절 안에 도착할거라 한다.”
새로운 전투가 시작 되었다.
- 작가의말
몽골기병은 졸라짱울트라 쎄니까 300보 밖에 조준궁시해서 다 죽이는 그런 소설들...
통쾌하긴한데 그게 상식이 되면 아니되요
50보 사정거리도 한계입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 준 전투가 끝났네요
아 힘들어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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