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이괄의 선택
순도 100% 픽션입니다
북칸의 왕이 된다.
이괄은 단꿈에 젖었다.
이가상단을 만들 때부터 함께했던 투자자를 모아 대칸의 약속을 말하고 북칸의 드넓은 영토를 알려줬다.
투자자들 모두 행복한 꿈에 젖어 아껴뒀던 쌈지돈까지 꺼냈다.
한성의 자원개발청에서 백관이 직접 나와 설계까지 해 주었다.
창춘에서 북쪽으로 철로를 깐다.
1000큰보를 북상하면 금광을 만나니 금을 캐면 그때부터 이득이 생긴다.
새로 편입된 몽골 서쪽과 동쪽에서도 철로를 북쪽으로 이어나간다.
일단 세 군데에서 북쪽으로 1000큰 보를 전진하면 각자 광산을 만나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모현성의 당부가 있으니 무산 철광을 비롯한 광해 기업들에서 해줄 수 있는 편의를 전부 봐 주기로 했다.
국가 전략 물자인 강철을 비롯해 철로를 뚫을 화약 지원과 철교건설 전문가, 토목 전문가 등을 파견해 준다.
듣고 계산할수록 장밋빛 미래만 보인다.
“어? 얼머러거?”
가격을 듣기 전까지.
“최소 일꾼 3000명 고용하고 세개의 철로 제작을 시작하면 매년 오천 신금이 든다 했소. 차라리 하나의 철로만 우선 뚫는 게......”
그건 안 된다.
개척을 마쳐야 왕이 된다.
초입부 1000큰보를 진입하는데 최소 5년으로 잡고, 하나씩 진행한다면 죽기 전까지 왕이 될 수 없다.
어떻게든 세 개를 동시에 작업해야 왕이 될 수 있다.
30g 은 한 뭉치인 은화. 그 여섯 배 가치인 금화. 그 백배 가치인 신금.
신의 금속 텅스텐으로 만든 신금 하나는 보통 사람이 평생 일해도 구하지 못한다.
그런 신금 5000냥을 매년 소모한단다.
쌀로 따지면 120만석이다.
아무것도 버는 것 없이 5년을 투입만 한다면......
쌀 600만석.
이괄은 욕심을 버리고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포기하고 원래 갉아먹던 솔잎을 먹었어야 했다.
“합시다! 시작! 출발! 일단 시작하고 하면서 돈을 구해보겠소.”
이가상단의 모든 재산이 투입되었다.
당연히 3개월이 되기도 전에 바닥났다.
준비만 하다가 거지가 된 것이다.
부를 누리던 고성이가와 관련 있는 양반들이 쌈짓돈을 꺼냈다.
드디어 철로를 깔기 시작했다.
시작 5개월 만에 자금이 바닥났다.
직접 철로를 깔지 않는 이괄은 한성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투자자들을 만났다.
“내가! 어! 광해님의 등을 지키고! 그 공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어! 북칸 개척단을 맡아 최명길 동칸왕처럼 훗날 북칸왕이 되고! 어! 이번 개척이 끝나면! 어! 그러니 돈 좀......”
아무르강 인근 금광의 지분 1할을 준다, 탄광의 지분 3할을 준다, 검은기름 광산을 주겠다, 산림 벌채권을 주겠다, 등 북칸의 자원을 약속하며 투자자를 모았다.
그리하여 1년 2개월을 끌었다.
총 1년 9개월이 지났다.
첫 번째 목표인 아무르강 금광까지 120큰보 전진했다.
남은 거리는 880큰보.
속도가 나지 않는다.
창춘보다도 추운 날씨가 발목을 잡는다.
9개월 이상 얼어있는 땅은 일꾼을 둔하게 만든다.
불을 쬐며 일을 시켜도 얼어있는 땅 자체가 문제다.
봄이 되어 땅이 녹으면 늪으로 변한다.
얼음위에 깐 철로가 늪에 잠기고 이지러진다.
겨울에 땅을 다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땅의 성질 때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 깔 때 생고생을 했지만 이괄은 몰랐다.
이대로라면 10년이 지나도 성공하지 못한다.
“포기합시다.”
“광해님의 은혜를 바랍시다.”
“대칸께 어려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읍시다.”
“애초에 이건 나라에서 해야 할 사업이었던 것 같소. 우리 같은 사업가 천명이 모여도 나라의 자금보다 적지 않소?”
투자자들이 몰려와 사업을 포기하고 본전이라도 찾자 말한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지만 이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북칸의 왕이 되고픈 욕망이 너무 컸다.
“기다려보시오. 자금을 가져올 테니 좀 더 진행해 봅시다.”
굳은 얼굴로 한성을 떠난 이괄이 어디선가 자금을 가져왔다.
계속 가져왔다.
북칸 개발 사업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이택훈은 고성이가 출신으로 광해가 즉위할 무렵 안주목사로 있었다.
홍여순의 난과 양반의 난이 벌어질 때 평안도군이 주둔하는 안주는 광해의 시선을 집중해서 받았고, 덕분에 난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양반이 쓸려나가고 관직을 채워야 했을 때 이택훈은 자연스레 광해의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 했다.
30대 나이에 평양 부윤이 되고 얼마 후 평안도 지사가 되더니 마흔이 되기 전에 몽골권역의 지사가 되었다.
리-면-군-도 의 상위 개념인 권.
국가가 커지면서 도를 여러 개 묶어 권역이라 불렀는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묶어 삼남권역 이라 부르는 방식이다.
몽골권역은 땅은 넓지만 인구는 단 100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삼남권의 사분지 일 수준이다.
그래서 칸국에서 가장 넓은 권역으로 묶였다.
몽골권역 지사 이택훈.
그가 성공하는 데는 육촌지간인 이괄의 도움이 컸다.
광해의 호위무장이었다가 광해에게 굉장한 신임(?)을 받아 특별수송업무(?)를 담당하는 이괄이 뒤를 봐줬고, 광해의 성품이나 칸국의 나아가는 방향등을 배운 덕에 헛짓거리하지 않고 순조로이 출세했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상황.
“돈이라니? 없소.”
“아니 그래도 챙겨 놓은 것 있을 거 아니우?”
나이는 이택훈이 더 많지만, 이괄은 고성이가 종갓집 장남으로 무려 13살에 현감으로 꽂힌 종주다.
상호존칭하는 사이.
“챙기지 말라 해서 일부로 챙기지 않았소. 욕심내지 말라고 따로 용돈까지 줘놓고 왜 이러시오?”
“아. 그랬지. 참. 하아. 이걸 포기해야 하나? 북칸왕...... 드디어 고성이가 사암공파가 왕가를 열게 되었는데......”
마지막 승부수로 찾아왔는데...
이괄은 못내 아쉬운 탄식을 흘렸다.
왕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인가봐.
이괄은 가끔 눈물을 흘린다. 이런 자신이 싫다......
좌절감에 정신이 이상해진 이괄을 보다가 이택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칸왕이 되면...... 나 살려줄 수 있소?”
“응? 그게 무슨?”
“왕이 된다면 사소한 범죄는 덮을 수 있냔 말이오?”
“범죄?”
“일단 돈을 구해보겠소. 다만 들킨다면 나는 죽겠지. 감춰줄 수 있소?”
“감추는 거야...... 북칸의 영역은 현재 서칸 영역의 열배요. 도주자 김류조차 못 잡고 있는데 그 넓은 북칸에 종형 하나쯤 못 숨기겠소?”
“그렇다면...... 해 봅시다. 내가 돈을 구해보겠소. 그 돈으로 개척을 완성하시오. 후에 들키더라도 내가 투자한 돈만 문제될 것이오. 연좌제가 사라졌으니 종주는 왕이 될 테고 내가 부정하게 투입한 돈은 제국에 몰수되겠지. 북칸의 지분 일부가 제국에 가겠지만 당신은 북칸왕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오.”
“오오. 그런 방법이.”
“대신 살려주시오. 혹여 날 보호할 수 없다면 집안의 모든 재산을 빼앗길 내 가족을 보살펴 주시오.”
“알겠네. 알겠어. 종형의 가족이면 다들 우리 집안사람 아닌가. 내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아니 양자로 받겠네.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감?”
“광해님께선 소망을 읽는다지 않소?”
“맞지. 내 수없이 봤지. 사람의 속마음을 확실히 읽으시지.”
“그럼 알려하지 마오. 아예 나를 생각하지 마시오. 그래야 종주도 연관되지 않을 테니...... 그저 알 수 없는 투자자의 자금을 받아 집행한다 생각하시오.”
“알겠네. 내 믿겠네. 내가 북칸왕이 된 후 모든 빚을 갚겠네.”
이괄과 이택훈이 막장의 길로 걸어갔다.
제국 입장에서 몽골은 중요한 땅이 아니다.
서쪽으로 나아갈 길목이기에 철로를 깔았지만, 세금이 걷히지도 않고 돈만 나가는 땅이다.
몽골 원주민 대다수가 이주를 택해 대관령과 제주도, 구름표범섬, 동칸 등지로 떠났고, 빈자리를 채울 사람은 얼마 오지 않았다.
굉장히 넓은 땅이지만 현재로선 철로만 관리하고 소규모 목장과 양털관련 모직 산업만 조성중인 땅이다.
그랬기에 백관과 광해산업 관계 기업도 얼마 없었다.
이택훈은 거의 자치에 가까운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택훈은 돈을 벌 생각으로 몽골에 진출한 소규모 기업들을 만났다.
“서부철광 개발권을 맡기겠네. 50년간 독점지위를 주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거기 철광석이 있습니까?”
“있다. 서칸왕께서 만드신 자원지도에 적혀 있다.”
광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포착이다.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망한다.
달리 말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땅을 파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운영해 제국에 보답하겠습니다.”
“광해산업에서 광산 넘겨주는 방식을 아느냐? 수익의 삼할을 받고 개발권을 준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대가지. 이 정도 넘겨줘도 광산업자는 이득이다. 너도 알지?”
“압니다. 당연하고말고요.”
“그렇다면 그 금액을 넘겨라.”
“예.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내겠습니다.”
광해산업에서 하는 그대로를 답습하니 광산업자도 수긍했다.
“그런데 당장 몽골권역에 세폐가 부족하다. 향후 50년간 받을 금액을 미리 받겠다. 5년에 걸쳐 신금 천냥을 바치면 개발권을 주겠다.”
“예? 하오나 그 금액은 광해산업에 내야 하는데......”
“허가받았다. 몽골권역을 개발시키는데 쓰라더군. 그러니 내게 바쳐라. 혹여 매장량이 부족하다면 훗날 몽골권역에서 세폐로 지원하겠노라.”
이택훈은 범죄를 저질렀다.
광산업자는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계산해보니 50년간 내는 것보다 일시불로 신금을 바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몽골권역에 표시된 주요광산의 권리를 모두 팔아 북칸 개척비용으로 투척했다.
이택훈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석탄 보급이다.
석탄이 없으면 몽골에서 살 수 없다.
나무를 적절히 구워 타는 성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날려버린 것이 숯이다.
석탄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 묻혀 타는 성분만 남은 돌이다.
즉, 석탄이 엄청나게 대단한 게 아니며 숯에 큰 차이가 없다.
석탄이 잘 탄다는 건 예전부터 알려졌지만 수송의 문제로 인해 보급되지 못했다.
두만강 하류 아오지에서 석탄을 캐내 한 달 간 짊어지고 집에 돌아와 태우느니 집 근처의 나무를 태우는 게 천배 이득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관차를 통한 수송의 편의는 드디어 석탄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무를 베어 숯으로 만들어 태우느니 석탄을 캐서 기차에 실어 수송하는 게 산림보호와 가격 면에서 유리하다.
몽골이 살기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긴 겨울 때문이다.
몽골엔 숲이 없다.
먼 옛날엔 있었을지 몰라도 인류가 번성하면서 전부 태워먹었다.
긴 겨울동안 영하 50도를 터치하는 몽골에 태울 게 없다.
짧은 여름동안 건초를 최대한 준비하지만, 그건 가축용 먹이다.
그걸 태우면 잠깐 동안 따뜻하겠지만, 결국엔 다 굶어죽는다.
두꺼운 벽이 있는 집도 없다.
계속 이주해야 하기에 겨울에도 짐승가죽으로 만든 이동식 천막에 산다.
몽골 사람들은 바람이 솔솔 새는 천막집에서 불 없이 긴 겨울을 이 악물고 버텨야 했다.
요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이 필요하면 말똥을 얇게 펴 말린 말똥땔감을 이용해야 했다.
그랬기에 석탄의 보급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본래 살던 이들이야 어찌어찌 버틸 수 있겠지만, 새로 이주한 칸국민이나 얼마 전 들어온 선비족에게 석탄은 생존의 필수품이다.
곽재우의 원정군에도 석탄이 꾸준히 보급되었고, 몽골에 남은 이들, 새로 이주한 이들에게도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100년간 독점 보급권을 주마. 대신 권리를 일시불로 사라.”
이택훈은 석탄 보급권까지 팔았다.
돈 되는 모든 것을 팔았다.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
걸리면 죽는다.
그전에 최대한 팔아서 북칸 개척이 끝나야 한다.
그런데 팔아도 팔아도 부족하다.
돈 나올 곳이 없다.
이택훈이 돈을 벌기 위해 고민할 때 누군가 방문했다.
“허허. 그렇게 하면 들키오. 좀 더 좋은 방식이 있는데.”
“누구냐?”
방문자가 삿갓을 벗었다.
방문자의 얼굴은 화상으로 얽어있었다.
“김류라고 하오.”
“너... 네 이놈. 이곳이 어디라고!”
“도우러 왔소. 돈이 필요한 거 아니오?”
“차라리 널 죽이겠다. 네놈을 잡아 바치면 현상금을 받는다.”
“귀관의 부정부패에 대한 증거를 모아뒀소. 광해 산업에 가야 할 돈을 당신이 이괄에게 보냈더군. 내가 잡히면 당신도 죽소. 어떻게 하실 거요?”
“끄응...”
“손을 잡으시겠소? 그러하다면 지금보다 열배의 수익을 벌게 해 주겠소.”
고민하던 이택훈은 김류의 손을 잡았다.
사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 작가의말
탄광 개발해 조선 제일 갑부가 되는 소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수송비용 생각하면 동네 나뭇짐보다 천배 비싸질텐데...
영하 50도에 이동식천막에서 불도 못때며 살았으니 악에 바쳐 세계를 정복할 수밖에요
몽골군이 강했던건 환경덕이 가장 컸죠... 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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