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원균
순도 100% 픽션입니다
“야.”
-어.
“백관 하나 죽여도 되냐?”
-왜?
왕과 신하의 대화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대화.
“비리.”
-그럼 죽여야지.
“니 자식 같은 새끼들이라며. 니 권위도 실추될 거야.”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무슨 일인데?
광해는 상소의 내용을 전해줬다.
다 전해들은 모현성은 한숨을 쉬었다.
-잘 됐네. 아예 몰락시켜버려.
“그래. 원정은 어떠냐?”
-복건하고 광동 경계까지 왔어. 세 달 안에 정리 끝날 거야. 해적들은 백칠해적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백칠 직속 정크선만 200척까지 늘었어.
“피해는?”
-전투에 의한 사망자 0명. 열병이 몇 번 돌아서 죽은 게 스물 정도. 태풍에 여섯 척이 가라앉으면서 사백 명 정도 죽었어. 바람 불때마다 미리 만에 숨었는데도 가라앉데.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는 전쟁 외적인 요소로부터 나온다.
페니실린이 있다 해서 모든 병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손 쓸 새 없이 죽는 경우도 많다.
“그래. 깝치다 뒈지지 말고, 뒤에 짱 박혀 있어.”
-에휴. 형 때문에 전투 한 번도 못했어. 개떡이놈 때문에 가장 강한 광해함이 뒤에 숨어만 있다고. 원숭환 가르치며 시간 때우기는 하는데 너무 재미없어.
현대에서 왔으면서 이상하게 전쟁을 좋아하는 놈.
패배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몰라서 좋아하는 거겠지.
광해는 투정을 받아줄 생각은 없다.
“됐어. 끊어.”
대답을 듣지 않고 끊었다.
광해가 침전을 나서자 수발을 들 내시와 궁녀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광해는 오른쪽에 예서, 왼쪽에 구름이, 뒤에 박내관을 두고 대전으로 갔다.
창덕궁 대전 앞엔 한성과 인근의 모든 문무백관이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불러온 당사자를 확인했다.
첫번째 상소의 주인은 평범한 농부였다.
군역이 모병제로 바뀌고 둘째아들이 왕의 은혜에 보답하려 자원했는데 두 달 만에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시신은 심장에 조총 한 방, 머리에 두 방을 맞고 죽었는데 관아에서는 자살로 판결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억울하옵니다. 전하. 제 아들은 절대 자살할 아이가 아니옵니다. 반년 전 혼인했고, 새아가는 자식을 뱄습니다. 오직 주상전하에 대한 충성으로 나라방위에 도움을 주며 새로 태어날 자식을 키울 꿈에 부푼 아이였습니다. 헌데 자살이라니요. 억울하옵니다. 전하.”
농부의 울부짖는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아들의 원한을 갚고 싶다 - 220641
아비의 소망.
그런데 아들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와 관련된 소망이 없다.
광해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됐고. 아들 유골은 가져왔겠지?”
“예. 전하.”
농부가 유골함을 꺼내자 승지가 가서 받아왔다.
유골함에 담긴 아들의 흔적엔 죽은 이의 소망이 보였다.
아들 낳고 싶다...
휴가 받았으면...
원수형이 괴롭히지 않았으면...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싶다...
여러 소망이 보이는데 죽인 자에 대한 원한은 없다.
부대 내 괴롭힘이 있었던 것 같지만, 죽였다는 원한은 없다.
이 경우는 딱 한가지다.
자신이 살해당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망한 사건.
쉽고 확실하게 갈 일이 없어졌다.
“평택관아의 관병도 전부 올라왔지?”
“예. 전하.”
박내관이 대답했다.
“원수형을 잡아와라.”
“예. 전하.”
박내관에게 명령한 후 백관을 바라봤다.
“원유창.”
“예. 전하.”
“자살로 판결한 근거가 뭐지?”
“당시 병사는 홀로 있었습니다. 누가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보고 싶어 했는데 군율에 따라 단체생활을 하니 적응을 못해서 그만. 병졸의 적응을 돕지 못한 소신을 벌하여 주옵소서 전하.”
지랄쌉하고 있네.
“그래서 병사가 자기 머리에 총을 쏘고, 머리가 관통당한 상태에서 조총에 화약을 재고 재장전해 머리를 쏘고, 다시 화약을 잰 후 심장을 쏴서 자살했구나. 순서가 바뀌었나. 심장이 터진 상태로 머리에 쐈나.”
말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송구하오나 그것 외에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사옵니다.”
말하는 사이 박내관이 돌아왔다.
“원수형은 두 달 전 간질에 걸려 전역했다합니다.”
“간질이라. 두 달 전이면 자살사건 직후군. 원유창. 너랑 원수형은 어떤 관계냐?”
“송구하오나 원수형은 이 사건과 아무런...”
“어떤 관계냐고?”
“칠촌 숙질이옵니다.”
그러한 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다.
소망이 보이지 않아도 범인 잡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초란. 네가 책임지고 잡아와. 도망갔으면 전국에 방을 돌려서라도 반드시 잡아와. 안보군, 검계 다 써도 돼. 국가의 모든 힘을 써서 잡아오고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이초란에게 맡기면 확실히 해결할 것이다.
“첫 번째 상소는 나중에 다시 공표하마. 두 번째 상소를 보자. 나와서 읽어봐라.”
두 번째 상소를 올린 이는 평택에 사는 몰락한 양반이었다.
가난하고 힘도 없어서 양반의 난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골 훈장.
왜소한 노인은 왕 앞에서 절을 하고는 상소를 읽었다.
“...... 하온데 평택관아에서 원균의 무덤과 사당, 비석을 만들고, 매년 원균장군 제례비용을 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과거 선비들이 나랏돈을 훔쳐 자기 스승의 사당을 짓고, 서원을 지어 벌을 받았는데 그런 일이 버젓이 평택관아에서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과거 선비들이 치른 죗값을 평택관아에서도 똑같이 치르게 하여주시옵소서.”
비분강개한 시골 훈장의 상소.
광해는 원유창의 붉어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찌 생각하나? 원균 가문 출신인 원유창.”
“그... 그것이... 소신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밑에 것들이 제게 잘 보이려고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것 같사옵니다.”
광해는 원유창 뒤에 줄줄이 꿇어 엎드려 있는 아전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소망은 원유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원유창. 백관 교육 때부터 공정한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했지. 소망은 입신양명이었고. 원균의 미친 짓 때문에 출세길이 막혔으니 허균의 제의를 받아들여 백관이 되었지.”
원유창은 스물두 살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팔년간 임용되지 못했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아는 이유.
원유창이 원균의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선조의 총애를 받던 원균.
충무공을 견제한 선조가 원균을 밀어줬고, 두 차례 엄청난 대패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단 세 명뿐인 일등선무공신으로 지정되어 재물을 받았다.
왕의 눈 때문에 누구도 원균을 건들지 못하지만, 대신 원씨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관료들이 무관 명문인 원씨 일가를 홀대했고, 왕은 거기까지 신경써주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원유창은 허균과 교우하다가 백관이 되었다.
과거급제자답게 상위권 점수를 받았지만, 원유창은 사업 하나를 맡는 대신 자신의 고향을 다스리는 백관이 되었다.
그리고 비리를 저질렀다.
“억울했느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원균이 만백성에게 욕을 먹으니 바꾸고 싶었느냐?”
“아니옵니다. 전하.”
원유창은 아니라고 하지만 표정은 맞다 하고 있었다.
“원균은 분명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었는데 왜구에 협력한 앞잡이취급을 받으니 억울하겠지.”
광해의 말에 원유창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반전을 줄 차례
“해전을 모르는 너희는 알지 못하지만, 판옥선은 매우 강한 함선이다. 왜구의 대장함인 안택선보다 튼튼하고 그들의 주력인 세키부네, 관선보다 열배이상 강하다. 단순히 수치화하면 관선이 1일 때, 판옥선은 5다. 관선의 500명이 죽어라 싸워야 판옥선 한척과 대등하다는 뜻이다.”
게임처럼 전투력을 수치화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투의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광해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설득하기 쉽도록 단순히 말했을 뿐이다.
“경상우수사 원균. 말에 타지 못할 정도로 뒤룩뒤룩 살찐 이 돼지는 임란이 발발했을 때 경상우수영의 판옥선 70척을 불태우고 달아났다. 왜적에 대한 두려움을 참고 본래 작계에 따라, 동래로 진격했으면 당장 끝났을 전쟁이 이 돼지 때문에 7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이간질과 모함으로 자리를 찾고 삼수통이 되었지. 그 후 칠천량 전투. 단순히 수치화해도 조선의 전력이 다섯 배였다. 원균이 그냥 싸우라 명했으면 피해는 컸을지언정 어떻게든 이겼을 전투다. 원균이 두려워서 홀로 육지로 도주하거나 혀 깨물고 뒤졌어도 이겼을 전투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원균은 소선 두척의 기습에 전군을 퇴각하라 하며 좁은 만 구석으로 배를 몰아놓고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결국 함대는 뭉쳐놓은 장작더미가 되어 소멸되었다.
선왕 선종이 충무공을 시기해 원균을 띄워줬으나 이는 잘못된 일이다. 원균에게 내려진 선무공신 1등위를 폐하고, 그에 딸려 내려간 전답과 재물을 몰수하라.”
광해의 마지막 말에 도승지가 나와 왕명을 출납했다.
“다음은 너. 원유창. 원릉군(原陵君)기념관을 만들었지. 그건 좋아. 네가 원주원씨대종회장인 건 죄가 아니니까. 원균의 가문에서 재산을 모아 만들었으면 무시했을 거야. 그런데 그걸 왜 국가의 세폐로 만드느냐. 네놈이 높은 자리에 앉은 이유가 조정의 세폐를 함부로 써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느냐? 모현성이 가르친 지식이 그토록 하찮았더냐?”
“아니... 아니옵니다. 그건 그저 밑에 것들이.”
“이 새끼가 끝까지. 구름아 입 막아.”
작은 표범이 비호같이 날아서 원유창을 쓰러트리고 입을 발로 눌렀다.
“원균평전이라는 잡서를 편찬해 뿌렸다 들었다. 원균이 맹장이라는 헛소리를 적은 이 책을 귀한 나라의 세폐로 편찬했으니 이 또한 죄다.
원균의 무덤을 왕릉처럼 만들고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 자금 또한 나라의 세폐로 만들었으니 이 또한 죄다.
원균의 제사에 평택현의 세폐를 줘 종묘보다 화려한 제례를 지내고 있으니 이 또한 죄다. 도승지는 들으라.”
“예. 전하.”
“내가 말한 모든 사항을 조사하여 그간 소요된 국가의 세폐를 정확히 계산하여 몰수하도록 하라.”
“명을 받드옵니다. 전하.”
도승지가 물러나자 광해는 원유창을 바라봤다.
구름이에 깔려 몸부림치던 원유창은 이제 반쯤 포기했는지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름아 이리와라.”
구름이가 옆에 자리하고 원유창이 다시 무릎꿇고 앉자 광해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원균의 친동생인 원연을 띄우지 그랬느냐?”
“저... 전하 저는. 소신은 그저.”
“왜 원균이냐. 원씨 문중에 훌륭한 무관과 장군이 얼마나 많았는데 왜 원균이냐. 묘 또한 문화고 제례 또한 후에 보전할 가치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봐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원균이냔 말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천억배 훌륭하고 동생 원연이 천만배 훌륭한데 왜 굳이 원균에게 세폐를 쓰려 하느냐. 하다못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저 농부조차 가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원균보다 만 배 훌륭하다. 우리 역사 속에 원균보다 훌륭한 선조가 천억명 살다 갔는데 왜 하필 역사 속에서 가장 하찮은 원균에게 나라의 세금을 썼느냔 말이다.”
광해는 속이 답답해져서 말했다.
“그게... 선무공신 1등위에 제수되었기에......”
“너. 내 성격 알지? 자주 봤잖아.”
“송구하옵니다. 전하.”
말하다보니 짜증이 난다.
역사를 몰랐던 광해조차 모현성에게 충무공과 원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부하 장수들, 이운룡, 입부, 권준 등에게 당시의 상황을 듣다보니 원균에 대한 원한이 생겨났다.
그런데 왜 그런 하찮은 인물에게 국가의 세금을 썼단 말인가.
짜증이 난 광해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창덕궁 인정전 앞에 모인 문무백관은 광해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숙였는데 그들 대부분의 표정에서 시원함과 기대감이 엿보였다.
사람 마음 다 똑같은 것이겠지.
“우선 원유창은 사형. 그리고...... 이초란. 연좌제는 어디까지 엮을 수 있나?”
- 작가의말
사족1
이번장을 쓰려고 유료화를 포기했습니다 이 소설은 끝까지 유료화할 수 없는 글입니다
포기하고 대신 시원하게 욕하려고요
사족2
우리는 역사를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모두가 제대로된 역사를 공부한다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역사’를 분간할 수 있을 것이며
원균 따위에게 국가의 세금이 사용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족3
원주원씨 종친회에 반감은 없습니다 당신들이 원균을 물고빨던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다만 원균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국가의 세금을 쓴건 대역죄입니다
원주원씨종친회에서 돈을 모아서 원균에게 버려진 세금을 채우신다면 즉시 이 글을 지우겠습니다
사족4
정치적 좌당 우당과 상관없이 발생한 현상만을 비판한 글입니다
경상당 전라당 관련 댓글이 올라온다면 눈물을 머금고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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