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우에스기 가
순도 100% 픽션입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병사 이천 명을 이끌고 이가성에 집합했다.
지난 에도만 해전에서 전군을 이끌었던 나오에 카네츠구가 우에스기의 가신이었기에 패전의 원흉으로 뽑혀 대우가 매우 안 좋았다.
눈치밥을 먹으며 이가성에 있던 우에스기 군은 오사카 해안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히메지 성과 이가 성에 모인 15만 대군이 오사카 성을 칠 때 구경이나 하라는 뜻이다.
공적을 주기 싫고, 믿을 수도 없다는 반증.
다른 군벌이 오사카성으로 달려갈 때 우에스기군은 해안가로 향했다.
쓸쓸한 해안가.
지난 봄 오사카 해전 때 파괴된 마을은 제대로 복구하지 못해 절반가량이 폐허로 남아 있으며 바다 위엔 흔한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조선군이 집요하게 해안을 돌며 모든 배를 파괴하고 나포한 덕이다.
해안의 정경을 눈에 담다가 새로 지어진 목조건물을 봤다.
광해상회.
만병통치약과 블랑기포 등 각종 조선의 상품을 파는 걸로 유명해진 상점은 문을 닫은 상태다.
가게는 텅텅 비었고, 고용되어 일하던 오사카 주민은 전원 오사카 성 안으로 도망갔다.
문 닫힌 상점 앞엔 사내 하나만 의자에 앉아 쓸쓸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나오에.”
“잘 지내셨습니까? 주군.”
에도만 해전에서 칠만 명을 수장시킨 패장 나오에 카네츠구가 거기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 게냐? 집에 오지 않고.”
“돌아가면 할복해야 했습니다.”
“내가 가신도 못 지켜줄 것 같으냐? 나 우에스기다.”
“그리하면 에도번과 마찰을 피할 수 없었겠죠. 에도번에선 무너진 권위를 올리기 위해 누구라도 걸리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돌아갔으면 본보기로 멸망당했을 겁니다. 제가 숨었기에 에도번의 분노는 오사카를 향했죠.”
“... 그래. 그렇다고 여기 숨는 건 추례하지 않느냐. 전국시대 최고의 군략가가 상점에서 일꾼으로 일하다니.”
“조선의 신문물을 보고 익히기 위함이었죠.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하는 사이 병사들이 상을 들고 왔다.
간단한 음식과 술이 올려져 있다.
둘은 나란히 앉아 한잔하고는 바다를 바라봤다.
“조선은 어떻더냐.”
“무섭습니다. 강합니다. 화포를 팔아제끼는 배포 자체가 화포 따위 팔아도 걱정 없다는 뜻이겠죠. 심지어 산물도 무섭습니다. 조선의 면포 봤습니까? 모든 실의 굵기가 일정합니다. 야마토 최고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천을 짜더라도 그렇게 짤 수 없습니다. 야마토가 조선의 면포보다 좋은 천을 만들게 될 때 그제야 조선과 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재라 소문만 나오에는 다른 군주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면포에서마저 조선의 힘을 느꼈다.
카게카츠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아와지섬 전투에서 5만명이 죽고 2만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만 명은 해협을 건너다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고... 끔찍한 졸전이었고, 포로가 된 병사들의 가슴에도 상처가 생겼겠죠. 그 포로들이 얼마 전 이곳 해변에 해방되었습니다. 해방된 포로가 뭐라 하는 지 아십니까?”
“조선을 죽이자?”
“그렇죠. 영주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죠. 저도 낮은 곳에서 관찰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겁니다. 포로들은 조선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해류에 떠밀려 죽어가는 자신들을 배로 구해줬다 이거죠. 그러면서 죽음으로 몬 자신들의 영주와 에도 번을 욕합디다. 그들은 조선 국왕의 기적도 봤다 합니다. 잘린 팔다리가 새로 나는 걸 목격했다더군요. 그들은 조선의 백성이 되고자 합니다. 조선 백성이 되면 조세도 약간만 내면 되고 국가에서 무료로 살 집과 농사지을 땅을 준다 합니다. 각 영지로 돌아간 포로들이 지금 열심히 소문내고 있을 겁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지 않을 거 아닌가.”
“그렇겠죠.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죠. 2만 명이 흩어졌는데 그들을 어떻게 다 잡아 죽입니까? 소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음......”
우에스기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술을 쭉 들이켰다.
“우에스기 가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카게카츠의 물음에 나오에는 자세를 바로 했다.
“첫째. 도쿠가와 번에 충성합니다. 이 경우 홀로 오사카성을 무너뜨리고 조선의 상륙군을 함정으로 유인해 전멸시킨다면 현상유지는 가능합니다. 둘째 조선에 신종합니다. 타 영주들이 신종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신종해야 합니다. 조선에 절대 충성하고 야마토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면 가문이 더욱 번창할 것입니다.”
“셋째 오사카 번에 충성한다는 없나?”
“없습니다. 오사카 번은 이미 조선과 비밀교섭을 했습니다. 얼마 전 포로가 해방될 때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내리는 것을 봤습니다. 조선이 약탈한 영지만 봐도 친 도요토미 영지는 피하는 게 보이죠. 이제와서 오사카 번에 붙는다 해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럼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낫나?”
“두 번째가 낫습니다.”
“두 번째로 하겠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 태도가 나오에 카네츠쿠의 가슴을 울렸다.
“그러니 이제 돌아오게. 조선에 신종한다면 도쿠가와 눈치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관대한 주군의 말에 나오에의 표정이 휙휙 바뀌었다.
그러다 엎드려 도게자를 했다.
“영광의 군신, 우에스기 겐신 사후 소신이 제안했습니다. 군주께선 말없이 있고, 소신이 겐신의 군략을 흉내 내 다스려 보자고. 우리 둘이 합치면 군신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거라 하였죠.
군주께선 잘해주셨습니다. 120만석 영지로 전국 세 번째로 강한 영주가 되었죠. 세키가하라 패전 후 30만석으로 감봉되었을 때 가신들이 떠나지 않고 남은 것도 군주의 인품 덕이었죠. 군주께선 충분히 군신의 휘광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오나 소신은 실패했습니다. 서군에 서서 도쿠가와를 자극한 일로 감봉되었으니 그 모든 일은 제 탓입니다.”
“자네 탓은 아니지. 도쿠가와 군의 주력을 상대로 승리하지 않았나?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투에서 패한 이시다 미츠나리가 멍청한 거였지.”
“그런 자와 손을 잡은 것도 제 잘못이겠죠. 또한 얼마 전 에도 만 전투에서 이유 없이 이에야스를 자극했습니다. 두 번이나 도발해서 영지에 큰 해를 끼쳤으니 소신이 어찌 돌아가겠습니까?”
“음...... 잘못을 알면 됐네. 자네 없이 내가 어찌 영지를 이끌겠나. 돌아오게.”
“소신은 더 이상 면목이 없습니다. 대신 다른 군사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하루 거리에 사나다 마사유키가 있습니다. 고야 정에 올라 마사유키를 등용하십시오. 고야 산 주위에 마사유키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배치한 에도번의 파수병을 죽인다면 마사유키도 살기위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후 에치고로 최대한 빠르게 후퇴하십시오.”
“그래. 그 후에는?”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가 에도 번과 싸우자 하면 싸울 것이고, 조선에 신종해 합류하자 하면 합류 하십시오. 주군께선 침묵으로 장수들을 다스리면 됩니다.”
계속 침묵을 강요당한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살짝 울컥했다.
나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마지막 충언이다.
형을 제치고 자신을 주군으로 만들어준 친우의 마지막 군략.
따라야지.
“알겠네. 그럼 자네는?”
“저는...... 다른 방식으로 군주를 돕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나오에는 북쪽을 바라봤다.
멀리 오사카 성이 있는 위치에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오르고 있었다.
나오에의 절을 받으며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일어섰다.
즉시 보병과 기병을 나눠 보병대장에게 보급대를 치라 명했고, 기병들은 남쪽으로 향했다.
나오에가 조언하면 여기면 망설이지 않는다.
이것이 전국 3위까지 오른 우에스기의 장점이다.
기병을 이끈 우에스기는 그날 밤 구도산에 도착해 산 주위에 있는 도쿠가와의 첩보병들을 죽였다.
그 후 산에 올라 사나다 마사유키를 만났다.
늙은 현자.
다케다를 도와, 독립 후에는 홀로, 긴 세월 도쿠가와의 목을 노렸던 명군사는 많이 늙어보였다.
그래도 군사로 삼는다.
그게 나오에의 조언이었으니.
“사나다 마사유키. 나의 군사가 되어주게. 첫 번째 대전략 이후로 난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길 거야.”
“난 이미 늙었소. 전장에 나갈 힘이 없소.”
“거부는 불가능해. 이미 적의 첩보를 죽였으니 가만있으면 도쿠가와에게 죽을 거야.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 응하지 않으면 내가 친히 사나다 가솔 전원을 죽일 거고.”
군사가 되지 않으면 일가 전원을 죽이겠다는 협박.
마사유키는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대전략이란 뭐요?”
“구도정에 머물며 소식이 느렸겠지. 도쿠가와의 십오만 군세가 오사카를 공격했네. 오사카는 조선과 반쯤 손을 잡았고. 조선군은 도쿠가와 계열의 영지만 골라 약탈하고 있어. 히로시마, 나고야가 무너졌고, 어쩌면 지금 에도가 공격받고 있을 걸세.”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마사유키의 눈이 커졌다.
“난 즉시 에치고로 돌아가 가산을 정리할 걸세. 그 후 조선군에 신종. 조선군의 선봉이 되어 에도를 차지할 거야. 이 대전략만 유지한다면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네.”
카게카츠의 큰 야망이 마사유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거... 참. 대담한 계획이군요.”
“그렇지. 빨리 선택해. 여기서 전원 몰살당할 거야? 아니면 군사가 되어줄 거야?”
“허허허허. 집안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군요. 노부시게. 가솔을 모으고 이주 준비를 해라.”
“예. 아버지.”
사나다 마사유키의 등 뒤에 곰처럼 서있던 아들이 빠르게 대답하고 사라졌다.
국왕이 떠난 후 입부 이순신은 권준의 함선에 탔다.
조선군의 우군이며 일본 북서쪽 해안을 약탈하는 함대로 수군 포함 2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총 열 번의 약탈을 성공했고, 조선출신 포로와 군량을 모아온 영주 셋과 비밀 동맹을 맺었다.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순조롭게 약탈을 거듭하던 어느 날 돛대 위의 정찰병이 소리쳤다.
“적입니다! 적인데 백기를 두르고 있습니다!”
정찰병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사천여 명의 완전 무장한 군세가 해안가에 있었다.
대충 주워 모은 징집병이 아닌 정식 무사들이다.
소선 하나를 띄워 서신을 받아왔다.
적의 목적은 신종. 무조건 항복해 조선군에 합류하겠다고 한다.
“저 정도 군세가 항복한다고? 이상하군.”
일흔살을 바라보는 권준이 홀홀 웃었다.
옆에서 입부가 고개를 저었다.
“함정일 수도 있소. 왜놈을 믿을 수 없지.”
“홀홀홀. 함정이면 다 죽이지. 전령. 적장에게 홀로 오라 명해라. 대화를 나눠보지.”
권준의 명이 전령에게 전해지고 잠시 후 우에스기 카게카츠 홀로 대장선에 올라왔다.
“요네자와 번의 영주 우에스기 카게카츠다. 조선의 신하가 되어 야마토와 싸우고 싶다.”
“믿을 수 없다. 네놈들은 분명 배신할 것이다.”
통역의 말을 전달받은 카게카츠와 입부의 눈이 마주쳤다.
“믿음을 주기 위해 무엇을 줘야 하나?”
“네 목을 내놔라.”
카게카츠는 한숨을 쉬며 무릎 꿇고 목을 쭉 뺐다.
“잘라라. 대신 가신들을 조선의 신하로 받아라.”
입부는 대답 없이 장군도를 뽑아들고 다가왔다.
저벅. 저벅. 저벅.
‘설마 진짠가. 시험하는 거겠지. 그래도 혹시?’
입부는 높이 칼을 치켜들고 내리쳤다.
“멈추게 입부.”
설마하던 권준이 막았다.
입부의 칼을 카게카츠의 뒷목에 닿아 살짝 벴다.
입부는 진짜 자르려고 했다.
“설마 받아들일 생각이시오?”
“우군의 대장은 날세. 주상의 뜻을 생각하시게. 최대한 희생 없이. 그러기 위해 저런 완전무장한 병력은 큰 도움이 될 걸세.”
“제대로 훈련 안 된 보병 만 명으로 저들을 이길 수 없어. 부대에 섞였다가 기습당하면 전멸이야.”
“됐네. 저 눈은 진짜야. 받아들이겠네.”
“모르겠네. 모르겠어.”
탕.
입부는 장군도를 내팽개치고 선실안으로 들어왔다.
“신종은 받아들이겠네. 그런데 조선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아는가?”
“3년 안에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들었소.”
“좋네. 좋아. 임시 조선인이 된 걸 환영하네.”
권준의 부대가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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