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팀
22라운드에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무승부를 냈다.
도라익은 벤치에서 시작했고, 교체로 출전한 후 슬럼프가 여전한 모습을 보였다. 집중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아무리 집중력이 좋은 도라익이어도 간단한 터치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스널 역시 무승부를 낸 덕분에 여전히 동점이지만, 맨시티가 1점 차이로 바싹 따라붙었다.
23라운드에서 토미의 2골과 우디르의 1골로 스토크시티는 전반전에 미들즈브러를 3:0으로 앞섰다. 덕분에 후반 65분에 출전한 도라익은 편한 마음으로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 1위 됐어."
참 다행스럽게도 스토크시티와 도라익만 힘든 게 아니었다.
경쟁 상대인 아스널은 런던 더비에서 첼시에 지고 말았고, 맨시티는 웨스트햄에 비겼다. 그새 야금야금 승리를 챙긴 토트넘이 스토크시티와는 5점 차이, 아스널과 맨시티와 2점 차이로 추격해왔다.
그리고 24라운드.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리버풀을 맞이해 2:0으로 승리했다.
새로 영입한 다비드가 경기 초반에 한 골 넣고, 발제르가 경기 83분에 쐐기 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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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는 짧은 휴식기를 맞이했다. 10일 기간에 한 경기만 뛰면 된다.
스토크시티는 휴식기 중반에 경기가 있었다. 빨리 경기를 치르고 쉬거나 푹 쉬고 경기를 치를 수 없어 조금 아쉽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경기 리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일정이기도 하다.
"도우, 많이 나아졌는데?"
한 달 내내 지속했던 도라익의 슬럼프가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마음의 문제였어."
육체는 도라익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의학이나 스포츠학을 전공한 적이 없기에 자기 몸이 어떤지 당연히 모른다.
뼈도 잘 아물고 신경도 잘 회복되고 근육도 염증 없이 건강하다고 검사 때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마음 한구석엔 의구심이 남았다.
예전에도 이맘때면 좀 힘들었던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전조도 없이 슬럼프가 왔고, 자신감 결여로 슬럼프가 심해졌다.
토트넘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으면서 팀을 승리로 이끈 덕분에 나아져야 하는 게 맞지만, 도라익은 자신이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준 덕분에 골을 쉽게 넣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도라익이 슬럼프를 겪는 5경기에서 스토크시티는 4승 1무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자신의 슬럼프로 팀에 큰 피해가 가지 않은 것 때문에 도라익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시간이 약이 되어 슬럼프가 절로 사라졌다.
"나처럼 생각 없이 살면 슬럼프도 없을 텐데."
제임스가 말했다.
"그런데 나처럼 살면 넌 훌륭한 선수가 못 될 거야. 네가 힘이나 스피드를 타고나긴 했지만, 공 다루는 감각은 나보다 못하거든."
유연성이나 균형 능력은 우디르보다 못하다. 몸의 단단함은 줄리엔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헤딩도 줄리엔과 스테판은 물론, 네이선도 도라익보다 잘한다.
물론, 도라익은 점프력 덕분에 남들이 못 건드리는 높은 공도 따낼 수 있다. 문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웬만해선 그런 크로스가 안 나온다는 거다.
누구도 도라익의 점프력에 맞춰 대부분 선수가 못 건드리는 높은 크로스를 올리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
"부족하니까 노력하는 거야."
우디르나 제임스처럼 어려서부터 드리블과 슈팅이 원하는 대로 됐으면 도라익도 게으르게 살았을지 모른다.
"이젠 부족한 거 없겠지?"
제임스의 질문에 도라익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나아져야 할 부분이 많아."
제임스가 잠깐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도우. 넌 이미 한계에 달했어."
심장이 덜컥했다. 마음으로 반발이 생겼지만, 머리는 제임스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여겼다.
"육체적으로 넌 한계야. 공 다루는 감각이나 헤딩 기술도 한계야. 그러니까 자신이 보유한 재능을 어떻게 더 유용하게 써먹을지 고민해."
불편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넌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더 나아지려 하고 있어. 경기 중에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것보단 치열하게 고민하며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하지. 덕분에 많은 선수가 너처럼 하면서 더 나은 선수가 됐어. 토미랑 우디르가 그렇잖아."
도라익의 고개가 끄덕거렸다.
"어쩌면 나이 때문인지도 몰라. 토미랑 우디르는 자신이 더는 나아지기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경기를 잘 뛰는 지혜를 고민했어. 넌 아직도 어리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호승심이 강해선지 여전히 더 나은 선수가 되려고 해. 문제는 복귀하고 네 피지컬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거지."
"제임스, 고마워."
"고맙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가끔은 진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해."
제임스 덕분에 도라익의 마음이 시원해졌다.
도라익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달했다.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조금 더 나아질까 말까 한 상황이다.
그러나 사고의 기억 때문에 도라익은 육체 단련이 집착했고, 아무리 단련해도 변화가 없는 몸 때문에 의사도 모르는 사고 후유증이 남은 게 아닌지 의구심이 생겼다.
남들보다 배는 노력하는 도라익이기에 육체의 성장과 기술의 한계가 일찍 도래했다. 사고가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경기를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쪽으로 주의력을 돌렸을 텐데, 불의의 사고로 그 진행이 느려졌다.
복귀 후 육체적인 면이나 개인 능력은 나아졌지만, 예전에 가끔 보여준 경기 자체를 운영하는 모습은 드물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뛰는 기간 그러한 재능이 여전함을 증명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선 예전과 다르게 뛰었다.
'공격수로선 나아졌지만, 선수로선 오히려 퇴보한 셈이야.'
왜 여름에 팀들이 자신을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의사의 소견서는 도라익의 육신이 멀쩡하다는 것밖에 증명하지 못한다. 심리적인 후유증이 있는지는 의사는 물론 심리학 전문가인 토마슨도 100% 장담하지 못한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도라익은 오창범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제임스에게 속으로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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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1위와 2위의 경기입니다.
- 스토크시티가 3점 앞섰지만, 골 득실은 맨시티가 3개 앞섭니다. 스토크시티가 2골 이상으로 지면 맨시티가 1위 되고, 스토크시티가 1골로 지면 여전히 스토크시티가 1위입니다.
- 비기면 더 좋고, 이기면 잔치죠.
- 최근 토트넘이 3연승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와 3위 자리를 뺏었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고 바로 시작하는 경기에서 왓포드를 상대하는데요. 아무래도 4연승 가능성이 큽니다.
- 부디 승리하여 스토크시티가 격차를 벌렸으면 합니다.
도라익은 여전히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토미는 저렇게 뛰는구나.'
새삼스럽게 다른 선수들 플레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른 선수한테 맞춰준 적이 별로 없어.'
당연한 일이다. 잘하는 선수 기준에 맞춰야 팀이 더 강하다. 괜히 실력이 낮은 선수에 맞춰 움직이면 팀 전체가 약해진다.
'공 잡은 선수 리듬만 맞출 게 아니라 그 선수 패스를 이해하면 훨씬 쉽게 받을 수 있어.'
도라익이라고 전혀 그러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패스 때에만 그러고 평소에는 자신 위주로 생각했다.
슬럼프를 겪으며 마음고생을 하고, 제임스의 적절한 조언에 머리가 트이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도라익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왔다.
'머리로만 팀의 일원이 된다고 했어.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진짜로 팀에 녹아들진 못했어.'
산체스는 모험을 싫어한다. 돌파보다는 패스로 안전하게 공을 지키는 걸 선호한다.
그러나 자신의 돌파로 득점 기회가 생긴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시도한다. 무조건 안정을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다.
오창범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 수비수를 괴롭힌다. 예전엔 그저 팀의 전술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수비할 때 상대가 예상도 못 한 짓을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이해하기에, 공격 상황에 자신도 똑같이 갚아주려 했다.
우디르도 발제르도 오롯이 경기에 집중하여 각자 명확한 생각으로 움직였다.
'나만 경기 뛰면서 딴생각 한 건가?'
딴생각을 해도 중요한 순간순간엔 더없이 집중했다. 도라익은 자책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라도 잘하면 되지. 다 지난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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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익 선수 출전합니다.
- 부디 오늘 경기에서 슬럼프를 이겨내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스토크시티는 전반전에 1골 먹었지만, 이대로 끝나도 여전히 1위다. 동점이어도 1위와 2위가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다른지 아는 맨시티 선수들은 후반전에도 라인을 잔뜩 올려 스토크시티를 압박했다.
"패스 평소처럼 해. 내가 맞춰서 뛸게."
도라익의 말에 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 도라익 선수가 발제를 선수를 교체했는데요. 강 해설은 어떻게 봅니까?
- 스피드 빠른 우디르를 둬서 상대 라인을 물리겠다는 뜻 같은데, 맨시티는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도라익 하나로 맨시티에 제대로 된 위협을 못 줄까 봐 우디르를 경기장에 둔 거다.
도라익은 행동으로 테일러의 걱정이 기우임을 증명했다.
- 바디 체크!
도라익은 자신보다 키가 10센티나 크고 몸무게도 20kg은 더 나가는 센터백과 충돌하고도 균형을 지켰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빠른 속도로 토미가 찌른 공을 향해 달렸다.
공을 향해 달리던 도라익과 센터백이 충돌하는 걸 보고 과감히 출격했던 맨시티 키퍼가 황급히 뒷걸음쳤다.
맨시티 키퍼 입장에선 아쉽게도, 도라익이 훨씬 빨랐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앞으로 공을 툭 치고 또 한 번 가속했다. 공을 터치하기 위해 최고속으로 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뒷걸음질하던 키퍼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가속한 도라익에게 속수무책이었다. 키퍼를 지나친 도라익은 빈 골대로 공을 가볍게 밀어 넣었다.
"으악!"
골을 넣은 도라익은 유니폼을 벗어 한 손으로 휘두르며 원정 팬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스토크시티의 선전에 더불어 규모가 2천 명으로 는 원정 팬들이 도우를 연호하며 발을 굴렀다.
"도우, 다음엔 유니폼 안 벗을 수 있지?"
세리머니를 끝내고 토미가 속삭였다.
"그럼. 나 그 정도 이성은 남았어."
경기 78분.
해트트릭한 도라익이 유니폼을 벗어 휘두르다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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