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
"김상현 평론께선 각 팀의 재정 상황 때문이 아니라 도라익 선수가 하락세여서 명문 구단들이 영입하지 않을 거라는 건가요?"
뮌헨, 도르트문트,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도 도라익을 영입하지 않을 거라고 우기다 보니 김상현은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데뷔 시즌에 경이로운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많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플레이 스타일 분석이 끝나면 다신 그 모습을 못 보이죠. 도라익 선수는 대표팀 아시안컵 준결승으로 데뷔했고, 2031년 한해에 38골 30도움이라는 데이터를 기록했어요."
"그때도 김상현 평론은 늘 도라익 선수가 거품이고 운이라고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죠."
김상현을 깔 기회가 생기자 놓치지 않고 오태범이 끼어들었다.
"그런 걸 혜안이라고 해요. 제 말대로 2032년 도라익 선수가 기록한 골과 도움이 반으로 줄었죠?"
녹화 방송이라 방송국 놈들의 구미에 따라 편집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김상현은 오태범의 태클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럼 올해는요? 아직 반도 안 갔는데 도라익 선수가 기록한 골과 도움이 벌써 지난 1년 수준이죠?"
"남은 반년에 도라익 선수가 얼마나 잘할지는 아직 미지수거든요. 양발을 쓰는 스타일도 분석이 끝났을 테니 다음 시즌에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 거예요."
"지금이 좋은 모습인 건 인정하는 거네요? 그런데 왜 며칠 전에 기고한 칼럼에선 안 좋은 얘기만 잔뜩 했습니까?"
"용비어천가는 오태범 평론이나 실컷 부르세요. 저는 약이 되는 쓴소리 많이 할게요."
"약은 무슨. 글에 약이나 치지 마세요."
"자. 두 분 일단 진정하시고. 도르트문트 얘기를 마저 하시죠."
"알겠습니다. 김상현 평론은 도르트문트가 셀링 클럽이기에 도라익처럼 비싼 선수를 영입할 리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태범은 감정을 수습하고 녹화에 집중했다.
"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도르트문트가 도라익을 영입하려는 건, 훨씬 비싼 선수로 키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확인된 건 아니지만, 겨울에 도라익 선수한테 들어온 오퍼 중에 옵션까지 합쳐 1억3천만 파운드짜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팀의 사정과 본인의 상승세에 영향을 끼칠까 봐 이적을 포기했죠. 그런데 도라익 선수의 몸값이 더 큰 상승 공간이 있다는 건가요?"
"제 말이 그거예요. 10년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더 높은 이적료가 나오기 어려워요."
김상현이 진행자의 말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사실 녹화 내내 김상현은 오태범보다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근거를 훨씬 많이 제시했다. 반론할 여지가 없는 근거는 아니지만, 준비 자체는 김상현이 오태범보다 훨씬 철저했다.
그런데도 계속 진 기분이었다. 비록 베끼는 거로 시작했지만,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김상현이라고 축구 보는 눈이 안 떠질 리 없다.
자신의 주장이 억지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도르트문트가 홀란드를 영입해서 얼마나 비싸게 팔아먹었는지 다들 잊었습니까?"
오태범이 여유롭게 응수했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저는 도라익 선수한테 가장 적합한 팀은 아틀레티코와 도르트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팀을 집중해 연구했습니다."
아틀레티코는 재정 상태가 좋고 공격수를 잘 키우는 팀이다. 그리고 선수 키우는 일엔 도르트문트 역시 둘째라면 서럽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도르트문트는 스토크시티를 상대할 때 도라익 선수를 정말 완벽하게 묶어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도르트문트가 도라익 선수를 정말 철저하게 분석했다는 뜻이거든요."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전반적으로 김상현이 우위를 잡았기에 진행자는 오태범의 기를 좀 살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우연이겠지만, 2년 뒤면 현재 도라익 영입설에 휘말린 명문 구단의 주전 공격수들이 계약 만료거나 1년만 남는 상황이 옵니다. 이번 여름에 재계약을 안 한다는 전제로 말이죠."
2년 뒤면 이적 전쟁이 터질 거란 얘기다.
"도르트문트는 도라익 선수를 영입한 후 2년 뒤에 팔 생각일 겁니다. 장담컨대, 올 시즌 후반기 모습을 유지만 해도 보수적으로 2억 파운드 예측합니다. 협상에 따라 과감하게 3억까지 봅니다."
"3억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오태범의 발언에 진행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이적료 3억은 어렵죠. 대신 도르트문트는 자신이 필요한 선수를 마음대로 고르고, 옵션을 잔뜩 걸겠죠."
"도라익 선수 영입에 성공한다면, 단 한 시즌에 팀 리빌딩도 끝내고 재정 상황도 타격을 안 받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도라익 영입에 성공하면 도르트문트는 향후 10년 살림을 장만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간절할 거라고 감히 판단합니다."
'제길. 도르트문트로 가면 큰일이다.'
도르트문트만큼 선수 관리를 잘하는 구단이 드물다. 진짜 도라익이 도르트문트로 간다면 건강하게 2년을 뛸 거고, 2년 뒤에 기록적인 이적료로 명문 구단에 팔릴 것이다.
그러면 도라익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까기 힘들다. 세계 최고 몸값의 선수라는 후광을 얻는 순간, 웬만한 일론 작은 흠도 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준비하면 뭐 해. 강한 거 한방이면 끝인데.'
필살기를 써버린 오태범은 후련한 얼굴로 김상현의 두꺼비 얼굴을 여유롭게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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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이라크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도라익은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6월 10일과 13일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상대하는 경기 때문에 영국으로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혼자 훈련했다.
도라익이 팀 훈련을 빠지자 이적설에 힘이 붙었다. 마치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는 소문 때문에 축구에 무관심한 사람들까지 매일 뉴스를 찾아볼 정도였다.
"라익아, 음식은 입맛에 맞아?"
"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훈련했더니 피로가 안 느껴지고 몸도 가볍네요. 감사합니다."
5월 말에 시즌이 끝나고 8월에 새 시즌이 시작한다. 그러나 7월부터 새 시즌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실질적으로 쉬는 기간은 6월 한 달이다.
그러나 도라익은 대표팀 경기 때문에 일정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몸 상태에 따라 훈련 스케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훈련을 꼭 해야 한다.
그런 도라익을 위해 차 감독은 컨디션 유지에 유용한 훈련 스케줄을 알려줬다.
"네가 참 고생이 많다."
6월의 경기는 컨디션이나 체력 문제로 동아시아 3국에서 뛰는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할 예정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뛰는 선수를 주축으로 하고, 거기에 도라익을 추가하는 게 차 감독의 계획이다.
그런데 단둘이 마주 앉아 식사하다 보니, 아직 안 가신 애티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제가 좋아하는 일인데요."
"그래. 참 기특하구나. 그런데 어느 팀으로 갈진 결정했고? 누구한테도 말 안 하고 혼자 알고 있을 테니 마음에 둔 구단이 어딘지 말해 봐."
"아직 몰라요. 6월 경기 끝나고 영국에 가서 고민할 생각이에요."
차 감독은 한참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조언 좀 해도 될까?"
"그럼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이적할 때 주급 외에도 고려할 게 많아. 날씨야 영국에서 2시즌 반 뛰었으니 어딜 가도 괜찮을 것 같고, 언어야 나이가 어리니까 빨리 배울 거야. 그리고 웬만하면 영어가 다 되니까 걱정거리도 아니고."
서론이 조금 길었다.
"네가 30살에 가까운 나이라면 난 너더러 레알이나 바르사 같은 전설적인 구단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넌 이제 18살이잖아. 아직 갈 길이 길어. 그래서 네 개인적인 발전 그리고 대표팀 상황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어떻게요?"
"대표팀은 보다시피 아시아에서도 최강을 장담하기 어려워. 명준이랑 춘호 덕분에 팀이 잘 굴러가고, 너랑 혁신이 그리고 창범이가 있어 앞날도 어둡진 않아. 그러나 미드필더라든가 윙이라든가 센터백이라든가. 아시아에서도 절대적 강함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풀백도 원래는 약점이었는데, 오창범의 수비 기술이 급성장하며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이런데 월드컵에 가면 오죽하겠어. 그리고 난 네 잠재력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가 강팀보다는 도르트문트나 아틀레티코 같은 팀으로 가길 바란다. 둘 다 리그 우승을 노릴 만한 실력을 보유했고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진출도 자주 이뤄내고. 거기에 뮌헨이랑 바르사 그리고 레알 같은 강한 상대와 겨룰 기회도 있고."
"선수 양성으로 유명한 팀들이네요?"
"그렇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넌 시작을 프리미어리그로 해서 기초가 탄탄하진 않아. 그런데 바로 레알이나 바르사 같은 강팀으로 가버리면 남은 잠재력을 다 발굴하기 어려울 거야. 그렇다고 약팀에 가서 기초부터 다지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아틀레티코나 도르트문트면 대우가 섭섭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당장 정점으로 향하기보단 단단한 발판 하나 딛는 게 나아. 조금 느릴진 몰라도 더 높이 갈 수 있을 거야."
"제가 상대적 약팀에서 강팀을 상대하는 법을 배우면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네요?"
"월드컵이 끝나면 난 감독 그만두고 협회에 가서 후배 양성에 힘쓸 생각이다. 네가 아무리 잘해도 몇몇 선수가 컨디션이 나쁘면 약팀과 비기기도 하잖아. 최소 모든 위치의 선수가 기본은 해야 너처럼 뛰어난 선수가 자기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거야. 그렇기에 이번 월드컵 성적이 정말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적폐 세력이 협회를 꽉 잡고 있거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 못 거두면 협회에서 내 목소리 내기 힘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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