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운설과 도천설
2031년 1월 11일.
"자, 드디어 '핫 이슈 오브 더 윅' 시간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벌어진 뜨거운 이슈들에 관해 정리하는 시간인데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이번 주 이슈는 전부 도라익으로 통합니다."
방청객들이 환호했다.
"이 놀라운 선수의 행각에 대해선 생략하겠습니다. 혹시 인터넷 개통 전이고 TV를 며칠 만에 켜는 분이시라면 근처 피시방에 가서 검색창에 도라익을 쳐보시기 바랍니다. 타자하는 수고가 귀찮으시면 그저 인기 검색어에서 아무거나 클릭하셔도 됩니다."
폭소가 터졌다.
"자. 원래는 자장가 때문에 이슈였는데요. 어제 결승 상대인 중국팀 감독의 인터뷰 때문에 새로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장면을 보시죠."
일본도 막지 못한 도라익을 중국팀이 막을 수 있냐는 요지의 질문이었다. 질문자는 아주 당연하게도 일본 기자다.
"고작 후반전이지만, 도라익 선수의 활약은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운이 따라준 부분이 컸고 많은 약점을 노출했습니다. 다음 경기에 도라익 선수가 출전한다면 꼼짝도 못 하게 틀어막을 겁니다."
중국팀 감독 우레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본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실점하는 바람에 도라익 선수를 과대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전술적 오류를 범했고 결국 스코어가 뒤집혔습니다. 우리 중국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치진을 갖췄습니다. 일본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겁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10초도 안 되어 도라익이 골을 넣었다. 일본은 도라익을 경계한 나머지 수비 라인을 내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라인을 올리고 자기 스타일대로 경기를 펼쳤으면 후반전이 어떻게 흘렀을지 미지수다.
화면이 멈추고 MC가 입을 열었다.
"이로써 도운설과 도천설이 대두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도운설이 뭐고 도천설이 뭔지 아시나요?"
"그건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도라익을 인터뷰하다가 덩달아 유명인이 된 리포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도운설은 '도라익 운빨'의 줄임말이고 도천설은 '도라익 천재'의 줄임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고 페널티킥 유도까지 하는 게 운으로 되는 일인가요? 더구나 도라익 선수 때문에 카드를 받아 퇴장한 선수가 둘인데요. 전문가 의견을 듣겠습니다."
화면이 통통한 얼굴의 남자로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김상현의 U-LOVE 축구'의 김상현이에요. 저는 도운설 지지자인데요. 우선 첫 골 장면부터 보시죠."
후반전 시작부터 골 넣기까지의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됐다.
"박창식 선수가 출전했다면 저 위치까지 가는데 수비수들이 아무 반응이 없지 않았겠죠? 3:0으로 앞선 상황에다가 처음 보는 어린 선수여서 일본팀이 방심한 덕분이죠."
"그리고 이 패스를 보시죠. 여기서 공의 궤적이 살짝 바뀌는 게 보이죠? 맞바람 때문에 회전이 죽으면서 경로가 변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공교롭게도 공이 도라익 선수 발밑에 떨어졌죠."
"잠시만요. 도라익 선수가 바람까지 고려하여 낙구 지점을 예측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바인가요?"
리포터가 끼어들어 질문했다.
"그게 도라익 천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 중 하나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계속 바람이 있던 상황도 아니고,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하자마자 바람의 영향까지 정확히 계산했다는 건 억측이에요."
대답을 마친 김상현은 버튼을 눌러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도라익이 슈팅하는 순간에 멈췄다.
"그리고 슈팅 순간을 보시죠. 마지막 순간에 궤도가 살짝 바뀌었죠? 일부러 저렇게 찬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슬라이딩 태클을 펼친 수비수 때문에 마지막 순간 생각을 바꾼 거라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봤을 땐 너무 급히 슈팅하느라 마지막 순간에 발목 힘이 풀린 거예요. 저 짧은 시간에 생각을 바꾸는 것도 힘들고, 바뀐 생각으로 몸을 제어하는 것도 힘들어요."
방청석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젓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골 전 상황을 보시죠."
두 번째는 골 장면이 아니라 코너킥 전 장면이 재생되었다.
"보시면 상대 수비수 몸에 맞은 공이 마지막 순간에 도라익 선수의 발끝을 스치며 스핀이 걸렸죠? VAR이 개입했으면 두 번째 골은 아예 없었어요."
"반론이 있습니다."
축구 평론가 오태범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골은 굳이 저 찬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세트피스 전술의 승리였습니다."
"글쎄요. 두 번째 골이 더 늦은 시점에 터지면 경기 흐름이 급격히 변했을까요? 딱 저 때 두 번째 골이 들어갔기에 세 번째 네 번째 골이 나온 거예요. 그리고 마저 듣고 반론하세요."
김상현이 도끼눈을 뜨고 오태범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첫 퇴장을 보시죠."
오른쪽 풀백이 태클로 퇴장하는 장면이었다.
"도라익 선수는 상대 태클에 당한 게 아니라 발끝에 걸려 넘어졌어요. 조금만 발을 높이 들었다면 피할 수 있었죠. 심판이 제대로 봤으면 할리우드 액션으로 오히려 도라익 선수가 옐로카드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야유가 터졌다. 그러나 김상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세 번째 골로 넘어가죠. 보시면 차 감독 지시로 이혁신 선수와 도라익 선수가 스위칭해요. 이건 도라익 선수가 포워드 역할을 제대로 못 해냈다는 걸 증명하거든요. 차 감독 전술이 그래요. 반격 상황에서 포워드가 하는 일이 많아요. 그걸 도라익 선수가 못 하니까 답답해서 이혁신을 중간으로 보낸 거죠. 사실 세 번째 골은 이혁신이 다 한 거예요."
"그리고 네 번째 골 퇴장 당시 골키퍼는 고의 반칙이 아니에요. 그래서 옐로카드를 받은 거고요. 전반전에 받은 카드 때문에 결국 퇴장당했죠. 페널티킥 얻은 건 잘했고요."
"그래서 운이라는 겁니까?"
"차 감독의 도라익 기용은 도박이었어요. 운이 맞아 역전에 성공했지만, 중국팀을 상대로 또 요행수를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 우린 중국에 강했으니까 정공법으로 가는 게 답이에요. 심리적인 요인도 중요하니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위주로 스쿼드를 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자.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오태범 위원의 논평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축구는 생활이다'의 오태범입니다. 우선 음성 인터뷰를 잠깐 틀어드리겠습니다."
- 도라익이 경기 시작 전에 나한테 그랬다니까. 일본 키퍼가 팔이 짧다고. 땅볼에 약점을 보이기에 자세를 낮추는 게 습관 돼서 뜬 공에 약할 거라고. 일본이 실점이 적은 건 다 수비수들이 잘한 덕분이라고.
음성 파일이 중지된 후 화면에 전반전 벤치 장면이 띄워졌다. 오태범의 동생 오창범이 도라익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는 부분이었다.
"첫 골 보겠습니다."
아웃사이드에 맞아 뜬 공이 포스트와 크로스바의 교차점, 일명 야신존으로 불리는 사각으로 빨려가는 장면이었다. 키퍼는 아무 반응도 못 하고 멍하니 공을 쳐다보기만 했다.
"정확히 도라익 선수 말대로입니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땅볼에 대비하던 일본 키퍼는 가까운 포스트 쪽으로 향하는 높은 슈팅에 반응도 못 했습니다. 진짜 김상현 위원의 말대로 운이 좋았다고 해도, 아무 생각이 없는 선수라면 이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겁니다. 상대가 자세를 낮추길 좋아해 뜬 공에 약하다는 걸 미리 숙지했기에 이런 골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 골로 넘어가며 화면이 삼 분할되었다.
"왼쪽은 후반전 첫 코너킥 상황입니다. 가까운 포스트에 키가 183되는 왼쪽 풀백이 섰죠? 두 번째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 처음으로 172인 오른쪽 풀백이 섰습니다. 이는 키 195의 중앙수비수가 교체되는 바람에 왼쪽 풀백도 헤딩 경합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골이 느리게 재생되었다. 도라익의 헤딩은 정확히 첫 번째 골과 같은 곳을 노렸다.
"보시다시피 공이 느립니다. 가까운 포스트에 선 선수가 키가 컸다면 점프로 수비할 수도 있는 골입니다. 운이 좋은 게 아니고 정확히 노린 겁니다. 처음 두 상황에서 이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플레이는 상대 수비 상황에 맞춰 설계한 것이고 절대 운이나 요행이 아닙니다."
이어서 화면에 도라익의 핫 존이 표시됐다.
"두 선수가 스위칭하기 전에 도라익 선수가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덕분에 일본의 중앙수비수는 위치 감각이 흐려졌습니다. 보시다시피 이혁신 선수를 상대하며 고개를 돌려 골대 위치와 거리를 확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태범은 빨리 감기로 화면을 전진시켰다.
"그리고 도라익 선수의 슈팅을 주목하십시오. 각도를 좁히려고 나오는 키퍼 상대로 땅볼을 굴립니다. 출격하느라 중심이 높은 키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죠? 흥분으로 강슛을 날릴 만도 한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키퍼가 보수적인 성향임을 알고 공을 길게 찼습니다. 여러 데이터와 대조한 결과, 일본 키퍼는 활동 범위가 넓은 키퍼들보다 출격이 무려 0.5초 느렸습니다. 판단이 조금만 빨랐다면 공을 안전하게 처리했을 겁니다."
"오태범 위원은 도라익 선수가 천재라는 건가요?"
"그런 결론은 성급합니다. 도라익 선수에게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저 생각도 없이 슈팅한 게 아니라 하나하나 노리고 한 플레이임이 분명합니다. 운이 좋았다면 노린 플레이가 전부 성공했다는 부분이겠습니다."
그때 전화 연결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가 왔다. MC는 스테이지 중앙으로 이동해 메인 카메라를 차지했다.
"전문가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전문가도 그렇고 네티즌도 그렇고 의견이 갈리네요. 그래서 다음 순서로 도라익 선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표팀 선수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연결음이 채 두 번이 울리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세요.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 대표팀 라이트 풀백 오창범입니다."
오태범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 저 철딱서니에 중증 관종이 무슨 사고를 칠지 벌써 걱정되었다.
"오창범 선수, 앞선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 잘 봤습니다."
수비 능력이 부족한 오창범은 조별 경기에선 주전으로 뛰었지만, 이란과 벌인 8강전부터 벤치에 앉아야 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주신 건 아니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오창범 선수께서 또 그렇게 말씀하시니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도라익 선수는 어떤 선수입니까?"
"축맹이요."
"예?"
"글 모르는 사람은 문맹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라익이는 축구를 몰라요."
"도라익 선수가 축알못이라는 건가요?"
방청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위치 선정, 패스, 이동, 전술 이해 모두 바닥입니다. 뭐, 제가 매일 전술 강의를 해서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으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이러한 약점에도 대표팀에 차출되고 경기에 출전한 건 이유가 있겠죠?"
"천재니깐요. 축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골은 잘 넣어요. 팀 연습 경기에서 넣은 골이 벌써 스무 개가 넘거든요."
- 작가의말
진실이 반드시 이기는 게 아닙니다. 첫 번째 뽀록골의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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