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조정
- 이게 뭡니까? 전반전 27분에 선수 교체가 일어났습니다.
알론소는 리 그레고리를 올리고 산체스를 내렸다. 양쪽 풀백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에서 토미와 함께 도라익과 찰리를 지원할 둘뿐인 공격 자원이다.
- 일단 수비를 강화해 안정을 꾀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
- 그러나 리 그레고리 선수 한 명으로 상황이 바뀔까요?
두 해설의 예상과 달리,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리 그레고리는 출전하자마자 뮌헨의 13번 선수한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 뮌헨이 갈팡질팡하는 느낌입니다.
- 수미를 마크하는 거로 문제가 해결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팀의 리듬을 조절하고 볼 배급을 책임진 수미를 리 그레고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자 뮌헨 전체가 흔들렸다.
적이 약해지는 건 내가 강해지는 것과 같다. 공격다운 공격 한 번 못 해보고 휘둘리기만 하던 스토크시티가 라인을 조금씩 올렸다.
'골 넣을 사람은 나랑 찰리밖에 없어.'
뮌헨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은 맞지만, 그렇다고 키퍼와 수비수들의 개인 기량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스토크시티에서 뮌헨의 장애를 뚫고 완벽한 기회를 잡아 골을 만들 능력이 되는 사람은 도라익과 찰리뿐이다.
뮌헨 역시 도라익과 같은 생각인 듯했다. 공을 잡은 도라익이 아무리 살펴도 찰리한테 이어지는 패스 루트가 보이지 않았다.
공을 잡고 서 있던 도라익이 갑자기 가속했다. 화면으로 봐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뮌헨 미드필더는 그만 도라익을 놓치고 말았다.
그냥 빠른 게 아니라 뛰어난 순발력으로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출발하기에 처음 도라익을 상대하는 선수 대부분은 옷깃도 못 잡고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다.
뮌헨의 수비수가 바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도라익이 한 번 더 가속하자 속절없었다. 다행히 노련한 뮌헨 선수들은 당황하지 않고 두 명이 도라익을 수비하러 다가갔다.
도라익이 계속 돌파하든 아니면 뒤로 꺾든 대응할 수 있도록 뒤에 백업 한 명 둔 것이다.
문제는 스토크시티도 뮌헨과 마찬가지로 11명이 뛰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 처음 제쳐진 미드필더는 자기 수비 위치를 찾아 복귀했지만, 두 번째로 제쳐진 수비수는 아직 복귀하기 전이었다.
그 공간을 도라익과 우디르 다음으로 빠른 토미가 어느새 차지했다.
왼발로 공을 끌어 오른쪽으로 보낸 도라익은 오른발로 공을 부드럽게 밀었다. 뮌헨 수비수는 즉각 몸을 던져 도라익의 패스를 막으려 했고, 앞의 수비수가 실패할 걸 대비하여 뒤의 수비수 역시 슬라이딩 태클로 자신의 몸을 패스 경로에 던졌다.
그때, 도라익의 발목이 살짝 꺾이면서 밀던 공을 뒤로 쭉 끌어왔다. 끌어온 공은 다시 골라인 쪽으로 향했고, 이내 중앙의 개활지를 목표로 부드럽게 굴렀다.
찰리를 마킹하던 센터백이 황급히 달려왔다. 키퍼는 도라익의 왼발을 주시하면서 찰리한테 향하는 패스와 직접 슈팅하는 경우를 염두에 뒀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도라익은 갑자기 멈추면서 골대를 등졌다.
"쉣!"
키퍼는 황급히 앞으로 나오면서 슈팅 각을 좁혔다. 도라익은 왼쪽 어깨로 다가온 센터백의 푸시를 버티면서 오른발로 공을 밟은 채 빠르게 달려오는 토미를 기다렸다.
토미는 도라익이 밟은 공을 향해 달려오며 다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공과 골대가 겨우 8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이어서 키퍼는 미처 공의 궤적을 확인하기 전에 양팔을 최대한 벌리면서 몸을 던졌다.
- 골입니다! 도라익 선수 골입니다.
도라익은 토미가 슈팅하기 전에 공을 끌어와 토미를 헛발질하게 만들었다.
"왼발로 찼어야지."
순수 청년 토미는 자신이 득점하지 못한 것 대신 팀이 한 골 만회한 것만 떠올리며 아주 기뻐했다. 그런 토미에게 도라익이 조언을 건넸다.
"네가 오른발 쓰는 훈련을 꽤 하고 있지만, 아직 슈팅할 정도는 아니야."
도라익은 토미가 왼발로 슈팅하길 바랐다. 그런데 오른발로 슈팅하려고 하자 공을 뒤로 당겼고, 키퍼가 몸을 던진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슈팅을 때려 득점에 성공했다.
"급하게 달리다 보니 그렇게 됐어."
토미의 선택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키퍼를 속인 덕분에 편하게 득점했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도라익 선수가 자신보다 신장이 6센티 더 크고 체중이 19킬로그램이나 더 나가는 센터백을 아주 편하게 등졌다는 겁니다.
- 지난 시즌 오해로 축구 훈련을 줄이면서 근력 운동을 많이 했던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는 거겠죠.
- 억지로 왼발을 더 많이 쓰면서 생긴 스트레스인데, 오해로 축구 훈련을 줄인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틀린 판단으로 자칫 한창 성장해야 할 도라익 선수한테 악재가 될 뻔했는데, 성실한 노력으로 이런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알론소는 도라익의 득점에 기뻐하기보다 뮌헨 감독의 얼굴을 훔쳐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제발, 전반전엔 가만히 있어라.'
사기가 오른 스토크시티는 경기를 자기 리듬으로 운영했다. 리 그레고리가 공격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본인의 전술이 다소 과격한 걸 아는 알론소 감독이 열 명이 뛰는 훈련을 자주 했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맥자넷 선수 크로스!
- 찰리 아담이 헤딩.
- 토미가 슛!
- 도라익 선수 슛!
- 페이크, 슛!
- 골입니다. 골골골!
수비수 몸에 맞아 나온 토미의 슛을 도라익이 잡고 슛 동작을 했다. 고민할 새도 없이 수비수는 물론 키퍼도 몸을 던졌고, 도라익은 한 번 꺾어 슈팅 각도를 만든 다음 아무 방해도 안 받고 득점에 성공했다.
- 전반전 35분, 점수가 2:3이 됩니다.
- 리 그레고리를 올릴 때만 해도 이게 뭔 짓인지 싶었습니다만, 변화가 너무 놀랍네요.
경기 37분. 코너킥 기회에 리엄이 헤딩으로 득점했다. 꿈에서도 상상한 적 없는 득점을 한 리엄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뮌헨 감독이 교체 사인을 냈다.
리 그레고리한테 묶여 꼼짝도 못 하는 13번을 내리고 공격수 한 명 올렸다.
'큰일인데.'
지난 시즌 도라익 역시 전담 마킹을 당한 적 있다. 그때 윌슨은 도라익을 내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도라익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기에 완전한 해결이라고 볼 순 없었다.
뮌헨은 다르다. 13번이 내려간다고 팀 능력치가 확 깎이는 게 아니다. 그리고 전술 소양도 깊은 팀이어서 바뀐 포메이션에 금세 적응하여 경기 초반과 같은 위력을 회복할 것이다.
반면, 스토크시티는 객관적 실력은 물론 전술 이해도 뮌헨과 비교하면 몹시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리 그레고리가 공격은 물론 수비에도 쓸모가 없는 선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리 그레고리를 내리기엔 교체 기회가 이제 2번밖에 없다. 전반전에 교체 기회를 2번이나 소모하면 후반전 내내 뮌헨에 끌려다니며 참패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리. 저기 7번 마킹해."
도라익은 알론소처럼 많은 걸 통찰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 그레고리에게 마킹할 선수가 필요하단 건 알았고, 맥자넷과 위치가 대응하는 뮌헨의 오른쪽 윙을 마킹하라고 주문했다.
'역시 천재.'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알론소는 도라익의 지시를 받은 그레고리가 7번을 마킹하는 걸 보고 머리가 환해졌다.
'리 그레고리 때문에 수비 포맷이 깨지지도 않고, 맥자넷을 해방하여 공격 상황에 더 과감히 올라갈 수 있어.'
도라익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지시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최선의 선택인 것 맞았다. 양 팀은 주거니 받거니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했다.
- 이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초반엔 형편없이 밀렸고, 리 그레고리 선수가 교체로 출전한 다음엔 연속 3골을 만회했습니다.
- 지금은 대등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 이유는 뮌헨이 수미를 빼고 공격수를 넣은 탓입니다.
- 그렇습니다. 수미를 빼고 공격수를 넣은 건 라인을 올려 스토크시티를 압박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리 그레고리 선수가 7번을 마킹하며 뮌헨의 오른쪽 라인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 스토크시티 입장에선 왼쪽을 꽉 틀어막은 셈이죠. 거기에 도라익 선수와 토미 선수가 중앙에 버틴 채 오른쪽에서 오는 공격에 대비하니 초반보단 훨씬 편합니다.
- 공격 루트가 적어지며 변화가 줄었습니다. 뮌헨의 개인 능력이 전반적으로 우위인 건 맞지만, 초반엔 다양한 공격 전술로 스토크시티가 정신을 못 차리게 흔든 덕분이 컸거든요. 그런데 전술적인 우위가 어느 정도 사라지니 초반처럼 압도하지 못합니다.
- 반면 스토크시티는 리 그레고리 선수가 왼쪽에 가면서 맥자넷 선수가 어느 정도 살아났습니다. 공격 가담이 좀 더 적극적이죠.
- 그러고도 전반적으로는 뮌헨이 좀 더 우위인 상황입니다. 양 팀의 객관적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초반에 형편없이 밀리며 3실점이나 한 걸 만회했고, 조금 약세긴 해도 그나마 비등비등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알론소의 찌푸린 이마는 도무지 펴질 생각이 없었다.
'리 그레고리는 반쪽짜리 선수다. 어떻게든 다시 교체로 내려야 한다. 그러나 뮌헨보다 먼저 교체를 진행할 수도 없다.'
약팀의 비애다. 손에 쥔 카드가 상대보다 적기에 늘 상대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응한다.
'차라리 후반전 무득점을 노릴까?'
알론소의 고민은 이마의 주름보다 최소 수백 배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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