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입
7월 13일.
스토크시티가 프랑스 2부 리그에서 3백만 유로로 27세의 공격수 발제르 토뱅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도라익이 스토크시티와 재계약하면서 진흙탕이 된 유럽 이적 시장에서 별 뉴스가 되지 못했다.
"제가 주전을 뛴다구요?"
지난 시즌 2부 리그에서 7골 3도움을 기록했던 평범한 공격수 발제르는 스토크시티에서 찰리가 남긴 9번 유니폼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첫 훈련이 끝난 날 감독이 불러서 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을 뛸 거라고 말하자 진심으로 당황했다.
"발제르, 넌 재능이 있어."
알론소가 확신에 차 말했다.
"그러나 포워드로선 아니야. 넌 새도우 스트라이커의 재능이 있어."
발제르는 키가 180으로 평범하다. 헤딩 기술은 훌륭한데 키 때문에 제공권이 별로여서 쓸모가 없다. 운 좋게 머리에 맞으면 늘 상대 골대에 큰 위협이 되긴 하는데, 발제르는 운이 별로 좋은 편도 아니다.
체중은 80kg으로 건장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는 제치고 프랑스 2부 리그에서도 센터백들과 몸싸움을 벌여 이길 정도는 아니다.
자신이 공을 잡은 상황이라면 수비수를 등지고 버틸 정도는 되지만, 도라익처럼 수비수를 밀어낼 정도의 괴력은 없다.
"네게 부족한 건 딱 하나. 슈팅 정확도야."
발제르는 기가 찼다. 자신은 슈팅 3회당 1골을 넣는 고효율 슈터다. 물론, 23경기를 뛰는 내내 고작 슈팅을 22번밖에 못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발제르의 문제다.
그러나 굳이 재능이 있다고 억지로 춰놓고선 바로 가장 자신 있는 슈팅을 비하하는 알론소가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넌 팀의 포워드였어. 그런데 23경기를 뛰면서 슈팅을 22번 했어. 이유가 뭘까?"
"핑계를 대고 싶지 않지만, 동료들의 지원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핑계야. 네가 슈팅에 자신이 없어서 확실한 기회가 아니면 망설였기 때문이야."
알론소는 바로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 나오는 선수는 바로 도라익, 경기는 도라익의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었다.
"뭔가 느끼는 거 있어?"
"기회만 나면 슈팅하는군요."
"아니야. 다시 봐."
도라익의 십여 차례 슈팅 중 유효 슈팅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슈팅 기회를 만드는 과정에 군더더기가 꽤 많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도우는 슈팅을 공격을 마무리하는 용도로 썼어. 슈팅 말고 더는 할 게 없다고 생각되면 바로 순발력으로 공간을 만들어 슛을 때렸지. 골대와 거리가 얼마나 되고 각이 어떻고 키퍼 위치가 어떤지는 상관 안 하고."
늘 슈팅을 아끼며 좋은 기회만 기다리는 발제르에겐 도라익의 발상이 아주 큰 충격이었다.
"넌 자신이 포워드니까 골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도우는 스토크시티의 11명 중의 한 명으로서 자신이 공격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게 너희 둘의 차이야."
발제르는 골을 넣기 좋은 상황이 아니면 공을 잡고 동료의 지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도라익은 슈팅으로 공격을 마무리했다.
"누가 옳은 겁니까?"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지.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 도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공을 잡고 시간을 끌면 팀의 공수 전환 리듬이 깨질 걸 알고 슈팅한 거야. 넌 어떻게든 골을 만들려는 일념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슈팅 찬스를 만들려고 한 거고."
"그럼 저도 도우처럼 생각하면서 뛰어야 합니까?"
"아니.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아. 그리고 우린 이미 도우가 있어. 넌 발제르처럼 뛰면 돼. 아까 말했듯이 새도우 스트라이커 위치에서."
"한 번도 안 뛰어봤습니다."
"괜찮아. 아직 한 달이나 있어. 그리고 도우랑 다른 선수들이 도움을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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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발제르. 대화 끝났으면 와서 같이 훈련하자."
새 시즌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느라 전술 훈련보다 체력 훈련이 훨씬 많은 단계다. 그런데도 팀 훈련이 끝나고 자발적으로 남아서 훈련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렇다고 또 모든 선수에게 추가 훈련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 선수는 분위기에 휩쓸려 남아서 훈련하려고 해도 체력이 부족하단 이유로 쫓겨났다.
"창붐? 맞지?"
"맞아. 내가 크로스 올릴 테니까 헤딩 좀 해봐."
이미 알론소랑 대화하면서 사고 능력을 태반이나 상실한 발제르는 얼떨결에 골대 앞으로 가서 오창범의 크로스를 기다렸다.
"간다."
오창범이 크로스를 열 개 올린 다음, 왼쪽의 맥자넷으로 바뀌었다.
"누구 크로스가 더 편해?"
오창범과 맥자넷이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아직 선수들과 친분을 쌓지 못한 발제르에겐 둘의 열정이 살짝 부담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그럼."
"맥자넷의 크로스가 내게 맞아. 난 키가 작은 편이어서 뚝 떨어지는 크로스가 좋아."
"역시."
오창범과 맥자넷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이 뭐래? 너보고 새도우 스트라이크로 뛰라고 그러지?"
"어떻게 알았어?"
"도우가 아까 그랬거든. 아무래도 새 시즌엔 자신이 포워드로 뛸 거 같다고. 네가 새도우 스트라이크는 자기보다 훨씬 잘 뛴다고."
발제르는 지난겨울부터 언론의 입에 자주 오른 젊은 천재를 바라봤다. 젊은 천재는 자신보다 형인 우디르를 혼내고 있었다.
멀어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진 않지만, 듣는 우디르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마냥 꾸짖는 건 아닌 듯했다.
"진짜 내가 도우보다 잘 뛰어?"
"자. 넌 새도우 스트라이크로 재능이 있어."
맥자넷이 말했다.
"내 판단이 아니고 알론소가 한 거거든. 사실 내가 낮고 평평한 크로스를 올리려고 계속 노력하는 중인데 말이야. 알론소가 그랬어. 곧 내 크로스를 잘 받는 선수를 한 명 영입한다고."
"네 크로스를 받는 거랑 새도우 스트라이커로 재능이 있는 게 무슨 상관이야?"
"사실 내 크로스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판단하기 꽤 어려워. 왜냐면 높은 크로스인데도 공에 스핀이 걸리거든."
'난 별로 안 어렵던데.'
"그런 크로스를 잘 받는다는 건 판단력이 좋다는 거야. 그리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은 보통 순간 집중력이 좋아."
"그래서?"
"새도우 스트라이커가 하는 일이 뭐야? 포워드의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날카로운 일격을 찌르는 사람이잖아. 포워드의 슈팅이 실패해서 흘러나온 공으로 골을 노린다든가, 포워드의 패스를 받아 슈팅한다든가."
새도우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차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양쪽 윙과 포워드와 미드필드를 연결하고 골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다.
새도우 스트라이커는 최대한 팀의 공격에 참여하지 않고 골 넣을 기회만 노린다.
새도우 스트라이커는 위치 선정이 좋고 슈팅을 잘하는 선수다. 이런 선수 대부분이 포워드로 잘 뛰다가 나이가 들면서 피지컬이 하락한 선수이기에, 새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특별히 유명한 선수가 드물다.
대부분은 그 선수가 윙이나 포워드 또는 공미로 뛰던 전성기 시절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넌 체력도 좋잖아."
"새도우 스트라이커가 체력도 좋아야 해?"
이미 언급했다시피, 보통은 체력이 부족한 나이 든 포워드가 새도우 스트라이커로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공격할 때 숨는다고 수비할 때도 숨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발제르는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전혀 모르겠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고민하지 마. 그냥 우리랑 즐겁게 훈련하다 보면 절로 될 거야. 그리고 아주 특별한 코치 한 분을 소개하지."
특별 코치는 페데리치였다.
"슈팅 자세랑 슈팅 리듬을 봐줄게. 그런데 그건 날 기준으로 해서 판단한 거야. 다른 키퍼한테도 꼭 먹힌다는 보장은 없어."
발제르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팀 훈련에 참여한 첫날 추가 훈련으로 슈팅 2백 개를 날린 후에야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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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지난 시즌 왜 널 선발로 출전시키지 않았는지 알아?"
알론소와 제임스가 독대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야."
알론소는 제임스가 어떤 선수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떤 선수로 키워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토미의 성장이 눈에 보이고 수비도 토미가 훨씬 안정적이기에 자연스럽게 제임스는 후반전에 토미가 지친 상황에 교체로 출전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엔 토미가 너보다 팀에 더 적합했어."
"그럼."
제임스는 격동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맞아. 네가 발제르랑 합이 훨씬 맞아. 발제르도 도우처럼 순간 집중력이 좋은 선수야. 네가 가끔 찌르는 그 훌륭한 패스를 원하는 순간에 할 수 있다면 새 시즌 주전 자리는 절대 문제없어."
"그걸 어떻게 합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제임스는 양손을 맞잡고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도우한테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제임스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기쁘게 떠난 후, 알론소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도우가 떠나면 이 팀도 끝이겠어. 차라리 어디 석유 부자가 이 팀을 인수했으면 좋겠다."
#
센터백들이 모였다.
리엄 린드세이, 티모 레체르트, 마르코 렌테, 샘 보크스, 네이선 콜린스.
타이먼은 이번 시즌도 미드필더 훈련만 했다. 긴장하면 팔이 뻣뻣해지는 약점은 센터백에게 치명적이다.
"스토크티시는 포백이 전통인 팀이다. 아직도 유스 팀들은 포백 전술을 쓰고 있지. 그럼 왜 우리가 스리백으로 전환했는지 알아?"
리엄이 말했다. 남은 선수들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미드필더가 약해서야. 마땅한 윙도 없고. 산체스도 사실 윙보다는 미드필더가 적합하거든. 그래서 스리백으로 전환하고 두 윙백이 윙 역할까지 하는 거야."
"말하려는 게 뭐지?"
"제임스, 토미, 산체스, 루이스. 우린 훌륭한 미드필더가 벌써 넷이야. 거기에 쇠렌센과 타이먼도 상대에 따라 진짜 좋은 활약을 하지. 리 그레고리 역시 수비 하나는 어느 팀에도 어울리는 선수고."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포백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그렇기에 이번 시즌 우리가 잘해야 해. 어쩔 수 없이 스리백을 사용하는 팀이 아니라 스리백이 정말 훌륭한 팀이 되어야 한다고."
센터백 입장에선 포백보다 스리백이 출전 기회가 훨씬 많다. 그렇기에 모든 선수가 리엄의 의견에 동의했다.
"스리백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격 상황에 수미처럼 뛰는 중앙 센터백이야. 그런데 속도가 가장 빠른 레체르트가 수비에 묶여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 그러니 남은 선수들도 패스랑 미드필더의 공을 받으려고 뛰는 데 신경 써야 해."
"마르코. 너 원래 수미 출신이라며. 패스 훈련 좀 더 하면 그때 감을 찾지 않겠어?"
레체르트의 말에 마르코 렌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할게."
"난 이미 글렀어. 그러니 보크스랑 네이선이 좀만 열심히 하면 주전 자리를 차지할 거야.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 마. 줄리엔도 패스가 나쁘지 않거든."
미라클이 많이 나아졌지만, 부모 마음은 또 달랐다. 여전히 걱정되고 여전히 마음에 걸려 줄리엔은 추가 훈련에 아주 가끔만 참가했다. 그래서 오늘 모인 자리에 없었다.
"지난 시즌 7위가 스토크시티의 가장 좋은 성적이야. 도우가 있는 마지막 시즌에 우리 기적 한번 만들어 보자고."
다섯 선수 모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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