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아담
제임스의 골로 분위기가 살아났다. 의욕만 앞섰다가 2골 먹고 과하게 신중했던 분위기가 사라지며 스트크시티 선수들이 평소 기량을 되찾았다.
토트넘 윙이 크로스를 올리자 센터백은 헤딩으로 공을 높이 띄웠다. 천천히 떨어지는 공은 키퍼인 버틀랜드 차지였다.
공을 잡은 버틀랜드는 상대 공격수의 방해를 뿌리치고 강한 킥으로 찰리 아담을 찾았다. 낙구 지점을 정확히 판단한 찰리 아담은 상대 센터백과 벌인 몸싸움에 승리하고 공 소유권을 따냈다.
가슴으로 트래핑한 공을 잡아두고 있던 찰리는 빠르게 달려오는 도라익에게 편한 패스를 했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드리블 대신 바로 산체스한테 찔렀다.
산체스는 터치라인을 타고 전진하다가 상대 풀백이 복귀하여 수비하자 바로 제임스한테 패스했다. 제임스는 슈팅할 것처럼 페이크를 준 뒤 찰리 아담에게 넘겼다.
찰리 아담은 받은 공을 바로 백패스로 제임스한테 돌려줬다. 그러나 원투 패스를 예측한 수미가 어느새 제임스한테 달라붙었다.
제임스는 지체하지 않고 도라익한테 패스했다.
급가속으로 자신을 마킹하는 센터백을 떨쳐낸 도라익은 공을 잡고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마킹하던 센터백이 급하게 달려오기를 기다려 공을 상대 가랑이 사이로 굴렸다. 어느새 페널티 박스로 침투한 샘 앨런이 공을 잡고 오른발로 슈팅했다.
샘 앨런은 왼발 선수로 오른발은 킥력만 괜찮을 뿐 정확도가 형편없다. 그러나 하늘이 굽어살폈는지 아주 깔끔하게 먼 포스트를 때리며 골이 되었다.
- 도라익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멀티 도움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 그간 채팅창에서 도라익 선수는 거품이라며 절 괴롭힌 분들, 당장 사과하세요.
스토크시티가 리그 4연패를 한 탓에 그간 채팅창이 평화롭지 않았다. 다행히 아스널을 제압하고 리그컵 우승을 거머쥔 덕분에 조금씩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 이러다 또 징계받겠습니다.
- 16세 어린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5경기 3골 3도움 했습니다. 게다가 억울하게 골 하나 취소당했고요. 팀의 리그컵 우승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죠? 그런데도 거품 운운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심됩니다.
- 그럼 저도 과감하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고는 강 해설이 치는데 왜 저까지 징계하고 벌금 물리는 겁니까? 제가 맞장구라도 친 적 있습니까? 늘 말리기만 했죠.
채팅창에 '박만호 미안해','박 해설 사과할게'와 같은 문구가 줄을 지어 올라왔다.
스토스시티의 연패로 하락했던 시청률이 리그컵 우승을 계기로 반등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반전 26분에 도라익이 2도움을 달성하자 그래프가 쭉쭉 치고 올라갔다.
점수가 2:2 되자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완전히 페이스를 찾았다. 도라익과 제임스가 중앙에서 토트넘의 패스를 방해하고 산체스와 앨런이 측면 수비를 단단히 했다.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도라익과 제임스가 부지런히 달린 공이기도 하지만, 찰리 아담이 최전방에 굳건하게 버텨준 덕분이 컸다.
도라익보다 공을 더 확실히 소유하고 패스도 나쁘지 않은 찰리 아담 덕분에 스토크시티의 반격은 위협적이다. 찰리 아담이 공을 잡고 한 번 뒤로 패스하는 바람에 반격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대신 거의 모든 반격을 슈팅까지 이끌어갈 수 있다.
도라익이 포워드로 있었다면 위협은 더 커지지만, 반격 중 절반 정도가 시작도 전에 끝난다.
경기의 다섯 번째 골은 39분에 출현했다. 개인기로 돌파한 샘 앨런이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고, 찰리 아담이 헤딩에 성공했다.
찰리 아담의 헤딩은 골대로 향하지 않고 반대편 포스트 쪽으로 갔다. 그리고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급작스럽게 나타난 도라익이 가슴으로 공을 쳐서 골대 안으로 들여보냈다.
- 리그 중상위권 팀인 토트넘 상대로 1골 2도움을 달성했습니다. 아스널과 벌인 리그컵 결승에서도 도라익 선수가 골 기회를 만들었고, 위협적인 슈팅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 여전히 완벽한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첫 데뷔전인 1월 9일과 비교하면 노련미가 철철 넘치죠.
- 토트넘 팬들이 플래카드를 거둡니다. 승리를 자신하고 왔는데 선제골 2개나 넣은 상황에 역전당하니 기분이 안 좋겠죠?
- 이대로는 스토크시티의 승리가 확실합니다. 윌슨 감독이 들고나온 새 전술의 파훼법을 토트넘 감독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찰리 아담과 도라익과 제임스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전술이고, 샘 앨런과 산체스 중 하나만 없어도 위력이 반 토막 나는 전술이다.
위치 선정이 기막힌 샘 클루카스가 아니면 수비가 어려운 전술이고, 수비 지휘가 훌륭하고 속공도 잘 발동하는 버틀랜드 덕분에 효과가 배가 되는 전술이다.
- 리그는 마라톤입니다. 38라운드를 생각하며 자기 페이스대로 달려야 하죠. 괜히 스토크시티 전술에 맞춰 변화하다간 토트넘의 페이스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아스널의 무패 우승이 귀한 이유죠. 어떤 팀 상대로도 지지 않는 포메이션과 전술이라는 건 참으로 대단합니다.
토트넘 감독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지만, 토트넘 선수들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다. 스토크시티가 반격하려 할 때마다 두 센터백이 함께 찰리 아담을 수비하며 제공권을 격렬하게 다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 아담은 정확한 헤딩으로 같은 편 선수한테 안정적으로 패스했다.
- 보기만 해도 아프군요. 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 부상이라면 스토크시티에도 도라익 선수한테도 희소식이 아닙니다.
두 센터백과 몸싸움을 벌이던 찰리 아담이 넘어졌다. 넘어진 세 선수한테 다가가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주심이 의료진을 불렀다.
- 교체 신호입니다. 양 팀 모두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네요.
- 스토크시티는 당연히 찰리 아담 선수고, 토트넘은 5번 센터백을 교체해야 합니다.
찰리 아담은 허리 근육을 다쳤고, 토트넘 선수는 찰리 아담에게 깔리면서 허벅지 근육이 눌렸다. 둘 다 심한 부상은 아니지만, 경기를 뛸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전반전 43분. 캠벨이 찰리 대신 출전했고 토트넘도 부상으로 센터백을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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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입니다."
구단주는 윌슨 감독 앞에 서류첩을 내밀었다.
29라운드 경기에서 3:4로 패배한 스토크시티는 리그 20위, 즉 꼴찌가 되었다.
찰리 아담이 부상으로 교체되며 포워드 자리로 간 도라익은 그다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술을 익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훈련이나 실전이나 찰리 아담이 포워드로 뛰었기에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리그 17위와는 10점이나 차이가 나서 고작 9경기 남은 상황에 잔류에 성공할지 의문이다.
"무슨 뜻입니까?"
"재계약을 통해 스텝과 선수단의 동요를 막고 팬들도 안심시키려는 겁니다. 연봉은 원래와 같고 2년 반이던 계약을 3년 반으로 했습니다. 강등 시 연봉 삭감을 40%에서 20%로 줄였고요."
"찰리 아담의 부상으로 잔류가 어렵습니다."
감독의 말에 구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챔피언십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린 다음 시즌 유로파 리그에 출전합니다. 강등하더라도 6천만 파운드의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그제야 윌슨도 리그컵 우승이 단순히 우승컵 하나와 30만 파운드의 상금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우승의 흥분과 60만 파운드의 기부로 여론이 몰리는 바람에 윌슨 감독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조별 경기 상금과 중계권으로 최소 2천만 유로의 수익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내후년에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기 위해 스쿼드도 보강할 거고요. 저는 미스터 윌슨이 우리 팀에 가장 어울리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단주 입장에선 윌슨만큼 능력이 되면서도 투정이 적은 감독을 구하기 힘들다. 윌슨과 비슷한 수준의 감독을 데려오면 선수 보강부터 시작하여 시즌 내내 마찰을 빚었을 것이다. 윌슨의 전임 감독도 그러한 이유로 사임했다.
약속했던 박창식의 영입에 실패했어도 불평보단 대안부터 찾았고, 결국엔 구단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라익을 영입하는 거로 시즌을 마무리하려던 윌슨이다.
이 정도로 다루기 쉬운 능력 되는 감독을 또 구하려면 평소에 착한 일을 얼마나 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구단주의 속셈까지 모르는 윌슨은 3개월 조금 넘은 기간 들은 소문들이 악의적이고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팀에 반드시 남겨야 할 선수들이 있습니다. 선수 영입이야 변수가 많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건 감독한테 결정권을 줬으면 합니다."
"감독과 구단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감독 혼자서 결정하는 것보다 상의해서 결론을 얻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구단이 독단으로 감독의 의사에 반해 선수 이적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쓰죠."
3월 5일. 침체한 스토크시티 팬 커뮤니티에 한 줄기 활력이 주입되었다.
"스토크시티의 구단주는 윌슨 감독과 맺은 계약을 1년 연장했고 다음 시즌 6천만 파운드의 투자를 약속했다. 동시에 이번 시즌 잔류를 100% 확신하며 다음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를 뛰는 스토크시티를 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최경호는 노트에 필기하며 연신 감탄했다. 구단주의 사업 수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경지다.
"이래서 나 같은 사람이 자꾸 실패하지. 돈이 많은데 똑똑하기까지 한 사람이 이리도 많으니."
- 작가의말
주인공에게 시련을!
그러나 고구마를 극혐하는 최근 분위기를 생각해 주인공 말고 가장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는 캐릭터에게 부상을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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