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의 깊은 뜻
구단주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돌에서도 기름을 짜낼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돈을 버는 데 진심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구단주가 구두쇠인 건 아니다. 그저 돈을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이다. 도라익에게 가능성을 두고 천만 파운드를 과감히 베팅했던 일을 생각하면 아껴서 돈 버는 그런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스타일은 도라익의 영입을 원하는 구단들과 벌인 협상에서도 나타났다. 상대가 일정을 내기 어렵다면 스토크시티 직원이 직접 날아가서 협상했다.
그리고 손님으로 온 협상단에게 비싼 호텔과 픽업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최고의 대우를 했다.
"에릭. 보고해."
아침에 잠에서 깬 구단주는 우선 찬물로 세수했다. 빡빡 문질러서 잠기가 한 톨도 안 남았다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업무를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5천만 파운드에 선수 3명을 1년 기간 무료 임대, 젊은 선수 2명 이적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마다 천만 파운드, 50경기 출장마다 500만 파운드의 옵션을 달았습니다."
"리그 우승 옵션은?"
"최근 5년에 딱 한 번 아틀레티코에 우승을 뺏겼다는 이유로 해당 옵션은 거부했습니다."
"도우가 바르사나 아틀레티코로 가도 우승할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닌데. 그만큼 재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뮌헨은?"
"그대롭니다. 6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일시불로 지급. 50경기 출전마다 500만 파운드. 챔피언스리그 우승 달성 시 3천만 파운드를 1회 지급."
"뮌헨에 탐나는 선수가 꽤 있는데, 선수를 주는 건 절대 안 된대?"
"팀 전술로 승리를 일구는 팀입니다. 팀 분위기를 해치면서까지 도우를 영입할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경쟁자도 없으니 도우에 그렇게 목을 매지도 않고요."
"도르트문트의 오퍼가 가장 성의 있다고 기사를 내."
"이미 조치했습니다."
도르트문트는 이적료 6천만 파운드에서 4천만 파운드를 일시불. 남은 2천만 파운드는 4년에 걸쳐 분할 부담. 주전급 윙백과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 각 한 명을 스토크시티에 이적시킬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따낼 시 3천만 파운드를 1회 지급, 리그 우승을 따낼 때마다 천만 파운드 지급을 옵션으로 걸었다.
더구나 도르트문트 선수들에겐 스토크시티로 이적하는 게 더 높이 가는 거여서 거부감이 전혀 없다. 레알 마드리드나 뮌헨에서 온 선수보다 팀에 훨씬 잘 녹아들 가능성이 크다.
"도르트문트는 이 정도 대가에도 남는 장사라고 판단한 거겠지?"
"우리보단 경험이 훨씬 풍부하니까요."
구단주 역시 도라익의 잠재력이 끝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잠재력을 어떻게 끄집어낼지 전혀 감이 없다.
그저 욕심쟁이였다면 도라익의 몸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며 손에 계속 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단주는 괜한 모험을 하는 대신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쪽을 선택했다.
"바르사는?"
"바르사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도우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마라도나, 호마리우, 호나우두 등이 뛰었던 팀이다. 그러나 바르사의 부흥을 이끈 건 메시를 포함한 라 마시아 출신 선수들이다.
혈통이 갓 순수해진 바르사의 젊은 선수들은 도라익의 영입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특히 메시의 후계자로 불리는 멕시코의 자타가 도라익의 영입을 공공연히 반대했다.
"영입을 안 하더라도 훼방은 놓겠지?"
도라익의 영입이 어렵다고 바로 철수하진 않는다. 오퍼를 올려 도라익의 몸값을 띄우는 거로 최종 도라익을 영입하는 구단에 최대한 재정적 피해를 줘야 한다.
축구는 그저 공 차는 놀이가 아니다. 바르사 정도 되는 구단이라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른 구단에 해가 되는 일을 기꺼이 한다.
"그럼요.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와 똑같이 하고, 거기에 리그 우승 시 천만 파운드의 옵션을 추가했습니다."
팀의 분위기상 도라익을 영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큰 바르사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 엿을 먹이기 위해 기꺼이 언론 플레이를 하며 도라익 영입에 열을 올리는 척 연기했다.
"프랑스 놈들은?"
보수 성향인 구단주는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안 좋다. 물론, 개인감정 때문에 프랑스 구단과의 협상을 거부할 정도는 아니다.
"9천만 파운드 이적료 지급.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4천만 파운드 일시 지급."
"구미가 당기지 않아."
파리 생제르맹은 현금 방면에서 가장 성의 있는 오퍼를 제출했다. 그러나 9천만 파운드로 도라익을 대체할 공격수를 구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구단주는 뮌헨과 파리 생제르맹의 오퍼를 거절하는 거로 다른 구단에 확실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걸린 옵션은 언제 받을지 모른다. 더구나 스토크시티는 선수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팀이 아니다. 괜찮은 선수를 영입하려면 명문 구단들보다 훨씬 큰 대가를 내야 하는데, 도라익을 파는 기회에 선수 영입까지 해결하려는 게 구단주의 속셈이다.
"아틀레티코는 아직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정식 오퍼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이적 시장이 7월 1일에 열리니 좀 더 살피겠다는 속셈이겠죠."
"그건 아닐 거야. 팀에 포워드가 셋이나 있어. 먼저 그 선수들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느라 참는 거겠지. 도우가 가고 선수가 나가는 게 아니라 선수가 나간 다음 오퍼를 제출하고 도우를 영입할 계획이겠지. 그게 모양새가 훨씬 좋잖아."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일까요?"
"난 아틀레티코로 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어. 재정 상황이 누구보다 낫고, 리그 우승도 근래에 한 번 했고, 연속 2년 챔피언스리그 8강과 4강에 진출했고. 더구나 공격수를 잘 키우는 팀 아닌가. 선수 대우도 마드리드와 바르사 급으로 맞춰줄 수 있고."
"유벤투스는 다른 팀들 오퍼 상황을 대략 들은 후 다신 접촉이 없습니다."
"거기도 쓸 땐 화끈하게 쓰는 팀인데, 시기가 안 맞아 아쉽게 됐군."
"프리미어 구단 중에선 토트넘과 맨시티가 접촉했습니다. 맨시티 역시 정식으로 오퍼를 제출하지 않고 그저 서로 원하는 바를 주고받는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돈은 맨시티가 가장 많이 줄 거 같긴 한데."
"지인을 통해 들은 건데, 맨시티는 5년에 나눠 이적료를 지급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다만, 구단주의 체면이 걸린 문제여서 결정하는 데 신중하다고 합니다."
맨시티 인수 당시, 관객한테서 입장료를 받는 게 체면 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입장료를 없애는 게 프리미어리그 전체와 대적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경기장 앞에 지하철을 개통하고 모든 좌석을 열선 의자로 교체하는 등 팬을 위한 조치를 다수 취했다.
그렇기에 FFP 규정 때문에 할부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거다.
"우린 상관이 없는데 말이야."
맨시티라면 2억 파운드까지 줄지도 모른다.
"토트넘은?"
"그쪽은 오퍼를 제출하지 않고 저희한테 얼마를 원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설마 그 구두쇠가 지갑을 털기로 했는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재정 상황이 가장 좋은 건 토트넘이다. 몇 시즌 별다른 영입이 없었기에 쌓은 돈이 적지 않다.
문제는 선수 대우다. 토트넘의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도라익에게 20만 파운드 이상의 주급을 주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아틀레티코나 도르트문트처럼 더 나은 선수로 키워 준다는 보장도 없어 도라익에게 제시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눈칩니다."
"어느 팀이 도라익을 영입하는지 알아내서 그 팀의 공격수를 털려는 게 아닐까?"
토트넘의 구두쇠 구단주라면 그럴 가능성이 진짜 크다. 도라익의 이적을 협상하는 척하며 분위기를 봐서 다른 구단과 비밀 협상을 하고도 남을 위인이다.
"다른 오퍼는 없겠지?"
"접촉한 팀은 몇 개 더 있는데, 진짜 영입을 원해서가 아니라 '우리만 빠질 수 없지' 이런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럼 나가 봐."
"부인께서 언제 집에 들어오시는지 물어봐 달라고 하셨습니다."
구단주는 첫 이적 협상을 시작한 날부터 벌써 한 달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매일 사무실에서 먹고 씻고 자며 일했다.
"지금 수많은 언론이 내가 언제 집으로 가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겠지. 내가 이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가는 순간, 도우의 이적이 확정됐다는 추측 기사가 난무할 거야. 그럼 진심으로 도우를 영입하려는 구단들이 안달이 나서 패닉 페이를 할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오기 전엔 난 사무실을 한 걸음도 안 나갈 거야."
에릭은 구단주의 먼 친척이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8촌쯤 되는 먼 사이인데, 그래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여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구단주의 비서가 되었다.
피가 조금이나마 섞였다는 이유로 구단주는 에릭 앞에서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에릭은 자신이 구단주를 속속 안다고 자부했는데, 사실 자신이 아는 부분이 빙산의 일각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잠시 후 스카우트 팀과 회의가 있지? 도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다른 데 신경을 못 쓰고 있어. 당분간 선수 영입에 관한 일은 스카우트 팀에 의지해야 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스카우트 팀을 상대할 때 태도를 공손히 해. 사람은 존중받는 느낌을 받아야 더 열심히 일해."
"명심하겠습니다."
에릭은 구단주가 자신을 뽑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구단주의 친척이라는 신분은 비서라는 직책에 후광을 더한다.
그런 존재가 자신을 존중하는 느낌을 받으면 그저 비서가 존중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몰랐던 구단주의 면모를 깨달아서 그런지, 에릭의 머리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도우가 이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재 스토크시티의 선수 영입 계획은 도라익의 이적을 전제로 두고 있다. 구단의 절반 이상 사람이 도라익의 이적과 관련한 일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도라익이 이적하지 않으면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새 시즌 준비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도우한테 줄 수 있는 최고 주급은 찰리와 같은 12만 파운드야. 프로에게 주급은 그저 돈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부분이지. 도우가 물욕이 없다고 쳐도 자존심까지 없는 건 아닐 거야. 그러니까 팀에 남는 상황은 절대 없어."
- 작가의말
- 여보, 나 이미 씻었어. 언제 집에 들어와?
- 나 도우 이적으로 바빠. 당분간 집에 안 들어갈 거야.
- 그 당분간이 한 달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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