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방문
수많은 언론이 유로파리그 4연속 해트트릭을 다루며 도라익을 인터뷰하기 원했다. 그러나 구단과 도라익 모두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찰리, 굿!"
찰리는 지금까지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런 찰리를 분석한 도라익을 다시 분석한 찰리의 헤딩이 훨씬 위력적으로 변했다.
모르고 할 때는 운이 맞아야 골이 되었지만, 이젠 머리로 명확히 알고 하니 헤딩으로 슈팅을 할지 아니면 패스를 할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덕분에 크로스 상황에 팀의 공격 효율이 몇 배로 상승했다. 거기에 도라익의 헤딩도 전보다 위력적이어서 스토크시티엔 희소식이었다.
"우선 네 리듬을 찾아야 해."
훈련을 쉬는 시간에 도라익은 줄리엔과 우디르한테 자신의 깨달음을 전수했다.
"누구나 자기 리듬이 가장 편해. 그러나 골을 넣기 위해선 과감히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 움직여야 해. 크로스를 올리는 사람 혹은 패스하는 사람의 리듬을 이해하면 공을 받을 때 훨씬 편해."
줄리엔과 우디르도 느끼고 있던 바여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항상 다른 사람의 리듬에 맞춰 움직일 순 없어. 그러니까 중요한 시각에만 다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거지. 그걸 훈련을 통해서 해내는 선수가 주전이 되는 거고."
줄리엔은 주전 선수들을 곁눈질했다. 제임스와 산체스처럼 축구에 적합한 리듬을 타고난 선수들이 너무 부러웠다.
키가 크고 힘도 세서 제공권은 확실하지만, 공을 처리하는 게 너무 미숙하다. 챔피언십에서도 주전을 넘보기 힘들 정도 수준인데 찰리 아담 덕분에 스토크시티에선 1군 선수가 되었다.
"우디르. 넌 빠른 리듬을 타고났어. 그런데 그 리듬에 맞춰 공을 다루지 못해."
도라익과 우디르의 가장 큰 차이다. 속도도 순발력도 도라익이 낫지만, 그렇게 현격한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유연성이나 균형은 우디르가 오히려 낫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기본기를 피나게 단련한 도라익은 공을 잡고도 빠른 리듬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우디르는 그렇지 못했다.
아프리카 출신치고는 성실한 선수지만, 도라익뿐이 아니라 대부분 스토크시티 선수보다도 훈련 시간이 짧다.
"기본기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해. 타고난 재능으로 기본기가 시시하게 느껴지겠지만, 몸이 힘든 상황에도 공을 정확히 다루려고 노력하다 보면 네가 훨씬 강해져 있을 거야."
타고난 자들은 공을 다루는 감이 뛰어나 드리블이든 패스든 남들보다 뛰어나게 해낸다. 그래서 기본기보다 화려한 개인기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 육체가 젊고 건강할 때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20대 후반부터 육체 능력의 저하와 함께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변두리 리그를 전전하거나 은퇴 수순을 밟는다.
"줄리엔. 넌 찰리보다 힘이 세."
집이 가난했던 줄리엔은 중학교 때부터 방학마다 공사장이나 부두에서 일했다. 조숙한 얼굴과 큰 덩치 때문에 보통은 성인이라고 해도 믿었다.
덕분에 힘 하나는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데 넌 자리를 고르는 방법이랑 점프 타이밍을 몰라. 다행히 헤딩은 진짜 잘해서 앞에 말한 두 개만 극복하면 될 것 같아."
"난 패스 타이밍도 어렵던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찰리가 하는 걸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도우가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스토크시티에는 주장을 맡을 만한 선수가 없다. 그래서 감독과 스텝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 민주 투표를 했다.
직접 선출한 주장이니 조금 부족하더라도 선수들이 이해해 줄 것으로 예상했다.
산체스는 팀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찰리도 예전과 달리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도라익은 예상을 뛰어넘어 점점 주장다운 모습을 보였다.
"부족한 부분이 많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열정으로 모두를 감화하고 있습니다."
기름이나 전기가 있어야 자동차가 달린다. 도라익의 열정은 스토크시티라는 전차의 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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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 무슨 일이야?"
줄리엔은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온 도라익을 안으로 들이며 질문했다.
"가정방문 같은 거야."
줄리엔은 아주 성실하지만, 훈련을 연장하는 법이 없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도라익이 나름대로 알아봤고, 그 이유를 알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들 사진이야?"
거실에 걸린 커다란 옆모습 사진.
"응. 미라클이야."
줄리엔은 일찍 결혼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경제적 무능을 이유로 이혼을 당했다. 당시 아내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고정 수익이 없었던 줄리엔은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대신 양육비도 줄 필요가 없었지만, 고된 일을 하면서 번 돈 대부분을 전처에게 줬다.
"얘기 들었어. 내가 도울 만한 일이 없을까?"
"마음만으로 고마워. 근데 의사 선생님도 시간이 약이라고 그랬어. 그래도 내가 없을 때 돌보는 할머니한테는 조금씩 마음을 여는 거 같아."
전처는 아이를 낳고 곧 결혼했다. 그리고 새 남편과 함께 아이를 학대했다. 사랑이 아닌 욕정으로 결합한 두 남녀의 관계는 무고한 아이를 학대하는 거로 유대감을 키워야 할 정도로 얄팍했다.
"이거 내가 구운 과자인데, 내 동생들이 이거 주면 말 진짜 잘 들었어."
아이가 학대받는 사실을 알고 줄리엔은 양육권을 주장했다. 마침 그때 스토크시티와 계약도 했기에 법원은 줄리엔의 편을 들어줬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사람을 두려워했다. 낯선 사람을 보면 바들바들 떨면서 깊은 공포에 허덕였다. 심지어 확실한 자기편인 줄리엔도 부득이한 경우에만 방에 들어오도록 허락했다.
씻기는 것도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아이가 잠든 후에 조심조심해야 했다.
"미라클, 도우 삼촌이 맛있는 과자 가져왔어. 방에 넣어줘도 될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자느라 못 들은 건지 아니면 그냥 대답이 없는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이 방에 CCTV를 설치하려는 청구는 법원에서 기각했다.
"도우. 잠깐 기다려."
줄리엔은 아이 방의 TV를 켰다. 그리고 앱으로 스마트폰 카메라와 TV를 연결했다. 아이 모습을 볼 순 없으니 자기 모습을 보여주려고 어렵게 짜낸 아이디어였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도라익은 줄리엔의 귀에 속삭였다.
"나 방법 있어. 우리 먹방을 하는 거야."
"미라클, 난 도우 삼촌이야."
줄리엔은 사자탈을 썼고 도라익은 곰탈을 썼다.
"지금부터 우린 과자 먹을 거야. 혹시 미라클도 먹고 싶으면 문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
도라익은 과자를 작게 깨문 다음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 쳤다.
"도우, 나도 해?"
줄리엔은 한참 망설이다가 과자를 작게 깨문 후 도라익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 쳤다.
"줄리엔. 우린 과자가 너무 맛있어서 어쩔 바를 모르는 거야. 근데 넌 그냥 약 맞은 바퀴벌레 같아."
주장의 엄격한 요구에 줄리엔은 연기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탓에 여유가 없었던 줄리엔의 부모는 무척이나 무뚝뚝했고, 줄리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 맛있어. 너무 맛있어."
동생이 많은 도라익은 달랐다. 집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간식을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선 리액션이 뛰어나야 했다.
"도우, 이거 진짜 나 돕는 거 맞아?"
아들의 마음이 빨리 치유되어 사람들과 어울리기 바라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온갖 창피한 모습을 보이던 줄리엔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추궁했다.
똑똑.
그때, 미라클의 방문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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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의 2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 전반전 0:0입니다.
- 스토크시티의 수비는 안정적이었고 공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 21일 동안 7경기를 펼치는 강행군으로 다들 지친 것 같습니다.
- 그래도 리그 꼴찌에 현재 5골 26실점을 기록한 상대한테 승점 3점을 꼭 챙겨야 합니다. 리그컵과 유로파리그는 물론 FA컵까지 있거든요.
- 박싱데이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늘도 모릅니다. 지금 최대한 점수를 벌어놔야 합니다.
"우디르. 난 찰리처럼 뛰지 않아."
후반전은 벤치에서 구경이나 해야 하는 우디르는 풀이 죽어 있었다.
"넌 왜 나처럼 뛰려고 해? 해야 하는 역할이 나와 같다고 똑같은 방식으로 뛰어야 하는 게 아니잖아. 내 플레이가 최선인 것도 아니고. 난 그냥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뛰는 거고, 넌 네가 잘하는 방식으로 뛰어야지. 해야 하는 일이 같다고 방법도 똑같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 진짜 멍청한 것 같아."
"사람은 누구나 멍청하게 태어나는 거야.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똑똑해지는 거지. 멍청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안 멍청해지려는 노력을 안 하는 게 문제야."
클루카스는 우디르를 타이르는 도라익을 보며 슬슬 유스 코치 업무에 집중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젠 도라익 자신이 알아서 채워나가야 한다. 이미 어느 정도 틀이 잡혔기에 클루카스의 참견은 오히려 방해될 수 있다.
- 도라익 선수 교체로 출전합니다.
- 손뼉을 치며 뭐라고 외치는데요. 선수들도 주먹을 불끈 쥐고 호응합니다.
전반전의 무득점은 우디르만 탓할 게 아니다. 그간 지친 산체스와 루이스 대신 토미와 쇠렌센이 출전했고 오른쪽 풀백도 페어린던 대신 톰 에드워즈가 출전했다.
우디르가 팀 리듬보다 빠르게 움직인 바람에 찰리 역시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
찰리의 헤딩은 여전히 위력적이지만, 맥자넷의 상대적으로 느린 크로스 때문에 찰리의 그러한 우위를 100% 철저히 발휘할 수 없었다.
- 도라익 선수 위치를 내려 미드필드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받습니다.
- 세 선수 모두 전반전에 따로 놀았거든요. 도라익 선수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 리듬을 하나로 맞추는 겁니다.
- 도라익 선수가 기준점이 된 거네요.
세 미드필더가 비슷한 호흡으로 움직이자 수비진과 찰리 역시 그 호흡을 따랐다. 다소 어수선하던 스토크시티의 패스워크가 정갈하게 정리되었다.
- 도라익 선수 성장이 눈부십니다.
- 빨리 해가 바뀌어 저 선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올해 대표팀이 겪은 수모가 만만치 않아요. 차 감독도 도라익 선수의 징계가 빨리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릴 겁니다.
더비 카운티는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면서 선수를 세 명만 영입했다. 사실 챔피언십에서도 중위권밖에 안 되는 팀인데 운 좋게 6위를 하고 3위와 4위 팀을 페널티킥으로 꺾으며 승급을 이뤄냈다.
웬만한 투자로는 프리미어리그에 남지 못할 걸 알기에 챔피언십에 대비하여 적당히 스쿼드를 보강하고 말았다.
늘 강등권 근처에서 허덕이긴 해도 프리미어리그를 4시즌째 뛰는 팀과 벌써 챔피언십을 생각하고 뛰는 팀의 차이는 금세 드러났다.
- 토미 매클린!
- 훌륭한 패스입니다. 미리 타이머를 맞춘 듯 패스와 런이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토미의 적절한 패스로 도라익과 키퍼의 일대일 대결이 마련되었다.
- 도라익 선수 처음 선보이는 기술입니다.
- 굳이 따지자면 크루이프 턴의 응용 동작으로 보입니다.
- 왼발로 밀고 슛!
공이 키퍼 가랑이를 뚫고 골이 되었다.
- 미안합니다. 저도 속았어요.
- 플립플랩에 이은 오른발 슛이었습니다.
도라익은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감싸서 몸 뒤로 보낸 다음 왼쪽으로 찼다. 그리고 바로 움직여 왼발 아웃사이드로 한 번 더 밀었다.
키퍼는 당연히 도라익이 각을 만들어 슈팅하려는 줄 알고 다리를 쭉 뻗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도라익은 양발을 크게 벌려 어려운 상황에서 플립플랩에 성공해 공을 다시 오른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오른발 발끝으로 공을 빠르게 차서 키퍼 가랑이로 보냈다.
- 허를 찔렀습니다. 키퍼는 당연히 도라익 선수의 왼발 슛을 염두에 뒀겠죠.
- 앞의 빌드업부터 훌륭했습니다. 화면으로 보는 저도 왼발 슛밖에 떠올리지 못했거든요.
- 도라익 선수가 의도적으로 오른발 터치와 슛을 늘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본인은 만족이 안 되나 봅니다.
골을 넣은 도라익은 손가락으로 토미를 가리키며 달렸다. 다른 선수들도 이번 득점의 공로를 토미한테 돌리려는 도라익의 뜻을 알아차리고 토미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 더비 카운티가 오히려 라인을 내립니다.
- 전반전에 공 처리가 미흡한 우디르 선수 상대로 라인을 올려 톡톡히 재미 봤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엔 도라익 선수로 바뀌었단 말이죠.
-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승패가 갈려요. 더비 카운티는 태평하게 전반전처럼 뛰다가 도라익 선수한테 실점한 겁니다.
- 작가의말
구장 건설 - 재정 불안 - 세대교체 지연 - 노장들 한꺼번에 은퇴 - 도라익 주장.
멀쩡한 스토크시티 구장을 새로 짓게 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주장의 탄생에 최대한 개연성을 불어 넣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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