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2031년 5월 7일.
한국의 모 토론 프로그램.
"자, 이번 주제는 페널티킥 키커 쟁탈전입니다."
발로텔리와 네이마르 등 페널티킥으로 구설에 올랐던 선수들 장면이 먼저 방영되고 가장 마지막에 도라익과 찰리의 언쟁 장면이 재생됐다.
키커 자리를 뺏으려 했던 선수들 모두 당시 안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축구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편집이 꽤 악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도라익 선수가 찰리 선수의 페널티킥을 자신이 차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게 옳은 일 혹은 잘한 일인지에 관해 여러 전문가 의견을 듣겠습니다. 자유토론 형식으로 원하는 분이 발언하시면 되겠습니다."
"유럽 축구의 김상현이에요."
김상현이 먼저 치고 나왔다.
"도라익 선수는 대한민국 선수죠. 심정적으론 누구나 도라익 선수를 응원할 거예요. 그래서 이 일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주관적인 걸 다 버리고 객관적 사실만 봐야 해요."
김상현이 리모컨을 눌러 화면을 바꿨다.
"팩트만 짚겠어요. 우선, 이 페널티킥을 유도한 건 찰리 아담 선수예요. 다음, 팀이 정한 페널티킥 1순위 키커가 찰리 선수죠. 마지막, 찰리 선수 페널티킥 성공률은 100% 예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진행자가 끼어들었다.
"우린 팩트를 원하는 게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전문가 의견이 필요합니다."
김상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제 의견이 궁금하신 거 같은데요. 제 의견은 도라익 선수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는 거예요. 10골 욕심이 나는 건 이해하지만, 팀을 위해 참았어야죠. 찰리 선수는 영국 국가대표 주전을 경쟁하는 선수기에 한 골이 매우 소중해요. 내년에 유로 2032 대회가 열리니깐요. 그리고 팀에서 위상도 높고요. 외국은 선후배 관계가 중요치 않다는 거 다 거짓말인데요. 이건 분명히 도라익 선수가 실수한 거예요."
"그래도 마지막에 양보한 건 잘한 일이죠?"
진행자가 김상현을 몰아붙였다. 막장드라마는 욕먹을수록 시청률이 높다. 이 프로그램도 시청률이 잘 나오려면 김상현이 활약해야 한다.
"어딜 봐서 양보예요? 다른 선수가 개입해서 끌고 간 거지."
예상대로 김상현이 강하게 반발했다.
"다른 분 발언해주시죠."
진행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출연자들의 발언을 요구했다.
"축구는 생활이다. 오태범입니다."
자기 앞의 리모컨을 든 오태범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볼튼 선수들이 항의하고 VAR이 판독하는 과정입니다. 뒤에 워밍업하는 선수가 몰래 키퍼한테 뭘 건네는 거 보이죠?"
"저게 뭔가요?"
"페널티킥 직전에 키퍼한테 전달해야 할 정보가 뭘까요?"
"화이팅?"
진행자의 재치에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각 선수의 킥 습관과 성공률 그리고 최근에 어떻게 찼는지 등 정보가 적힌 쪽지입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김상현의 트집에 오태범은 버튼을 눌러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키퍼가 버린 쪽지를 볼 보이가 주워 스토크시티 팬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오태범의 기세가 올랐다.
"다음입니다. 도라익 선수와 찰리 선수의 대화 장면이죠. 대화 내용은 밑에 자막으로 달았습니다."
한글과 영어 자막이 동시에 나타났다.
"자. 도라익 선수는 벤치에서 키퍼한테 쪽지를 전달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가 없는 자신이 키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찰리 선수는 자신이 지금껏 100% 성공률이고 자신이 만든 페널티킥이고 자신이 1순위 키커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상현 평론의 의견과 일치하네요."
방청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
"현재 논란은 이겁니다. 도라익이 자기가 10골 먼저 넣겠다고 팀의 위계질서를 어기면서까지 페널티킥을 뺏으려 했다. 요즘 잘나가서 그런지 눈에 뵈는 게 없다."
오태범이 이를 갈았다.
"도라익 선수는 사심이 아니라 페널티킥이 실패할까 봐 나선 겁니다. 아무 데이터도 없는 키커가 나오면 키퍼는 당황할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다른 선수가 찼다가 실패하면 팀 사기가 엉망이 될 겁니다. 당시 점수는 2:1이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스토크시티의 입장에선 저 페널티킥이 아주 절실했습니다. 도라익 선수는 그 무거운 짐을 자신이 메겠다고 나선 겁니다."
"잠시만요. 저 자막이 정확하다고 자신하는 건가요?"
김상현이 딴지를 걸었다.
"물론입니다. 도라익 선수한테 대화 내용을 들었고 독순술 전문가를 통해 검토까지 했습니다. 영상을 느리게 재생할 테니 여러분도 자막을 읽으며 두 선수의 입 모양과 일치하는지 확인해 보세요."
출연자들은 물론 방청객들도 자막을 읽으며 입 모양을 검증했다.
"오태범 평론의 발언 이후 김상현 평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진행자가 김상현의 발언을 종용했다.
"아니요. 도라익 선수가 바보도 아니고 찰리한테 가서 '내가 이 팀 에이스니까 내가 찰 거야' 이러겠어요? 당연히 듣기엔 적절한 이유를 대겠죠. 아까 팩트만 보지 말고 팩트에 기반한 의견을 말하라고 하셨죠?"
김상현도 바보는 아니다. 자신한테서 자극적인 발언을 끌어내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국 놈들의 얕은수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놈들 장단에 맞춰야 한다.
"다들 몇 달 전을 기억할 거예요. 만 16살 생일을 앞둔 소년이 갑자기 대표팀으로 발탁되고 심지어 교체로 출전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어요. 다들 왜 저렇게 전도유망한 선수가 소속팀이 없는지 궁금했죠."
사람들은 김상현에게 집중했다.
"오창범 선수의 입을 통해 진실이 밝혀졌죠. 출전 보장을 계약서 옵션으로 삽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죠. 작년이면 프로 계약 나이도 안 되는 어린 선수가 1군 주전 자리를 보장해달라고 하니 어떤 구단이 선뜻 계약했을까요?"
"그걸 언급하는 이유는 뭡니까?"
진행자가 적절하게 끼어들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에이전트가 출전 보장을 고집했다고 하는데요. 에이전트는 선수 대변인이죠. 선수 의사에 반한 결정이었다면 진즉에 에이전트를 교체했을 거예요. 즉, 출전 보장은 도라익 선수의 생각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도라익 선수가 야심이 크다고 판단하시는 건가요?"
"바로 그거예요. 하반기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는 도라익이 분명해요. 그렇지만 찰리 아담이 있는 경기와 없는 경기의 온도 차이를 생각해 보세요. 골은 도라익이 넣었지만, 재주를 부린 건 찰리죠."
"찰리의 공헌이 크다고 해도 도라익 선수의 지분이 적은 건 아니죠. 찰리가 없는 상황에 3연승, 그것도 원정에서 아스널을 1:0으로 꺾었습니다."
오태범의 지적에 김상현은 아차 싶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고 열변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세 경기 모두 불안했죠. 특히 아스널 경기는 포메이션까지 바꿔가며 극단적 수비 전술을 기용했고요. 찰리 선수가 다시 돌아온 후 팀이 매우 안정적이었어요. 토트넘과 벌인 경기도 찰리 선수가 부상으로 교체되기 전엔 모두 스토크시티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래서 궁금합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요."
진행자가 둘의 논쟁에 휘발유를 뿌렸다.
"도라익 선수는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먼저 10골을 넣고 싶은 욕심에 페널티킥을 차려고 했어요. 팀에 공격수가 둘인데 둘 다 9골이죠. 그런 상황에 먼저 10골을 넣는 선수의 위상이 높아질 게 뻔해요. 더구나 38라운드는 원정에서 리그 1위 맨유와 상대해요. 첼시보다 고작 2점 앞선 맨유가 실점을 허용할까요? 그러니 그 페널티킥이 마지막 득점 기회나 다름없었던 거예요."
2시간에 걸친 녹화는 대체로 김상현의 우위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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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은 김상현은 폭소를 터뜨리느라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토론 내내 썩어 있던 오태범의 얼굴을 떠올리니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마당발 동생 덕분에 귀한 정보를 쉽게 얻어 늘 김상현을 누르던 오태범에게 이번에 제대로 갚아줬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 전화 받았어요.
- 날세.
- 아, 대표님. 무슨 일로 직접 전화 주셨어요?
- 오늘 녹화 분위기 좋았다며?
- 그럼요. 편집도 기가 막힐 거예요.
- 잘했어. 계속 그렇게만 해.
김상현은 잠깐 주저하다 질문했다.
-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유를 알면 제가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서요.
- 이대로는 다음 협회장이 누가 될 것 같지?
- 제가 그쪽으론 무지해서 모르겠네요.
- 이대로 흐르면 다음 축협 협회장은 차 감독이 앉을 거야. 그땐 어떻게 될 거 같아?
차 감독이 협회장이 된다고 생각하자 김상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 설마요?
- 설마는 무슨. 도라익이 활약할수록 차 감독 인기가 올라가는 거 몰라? 아무도 모르던 도라익을 아시안컵에 발탁한 게 차 감독이잖아. 선수 출신이 협회장 되면 어떻겠어? 다루기 편하고 말 통하는 사람으로 물갈이할 게 뻔하잖아.
그간 축협이 시키는 대로 논평을 쓰면서 받은 돈이 적지 않다. 게다가 축협이 밀어준 덕분에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치며 집도 사고 차도 바꿨다.
그러나 차 감독이 협회장이 되면 선수 출신들로 물갈이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김상현한테 떨어지던 떡고물이 사라질 게 뻔하다.
- 대표님,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갑자기 도라익이 철천지원수로 느껴졌다.
- 작가의말
저는 얼굴이 원빈을 닮았고 모발이 풍성하며 눈길만 줘도 여자들이 픽픽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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