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부족했다
- 김명표 선수 포트트릭 달성합니다.
- 압도라는 단어가 부끄러워 숨을 지경이죠. 후반 60분에 점수는 벌써 7:0입니다.
태국 선수들은 키가 작으나 속도가 빠르고 끈질기다. 공을 다툴 때 부상 위험이 큰 동작도 마다하지 않는 독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다들 기피하는 팀이다.
다행히 일본이나 카타르 같은 강팀에 꽤 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북한이나 이란 그리고 한국엔 확연한 약세를 보인다.
- 차 감독이 교체를 진행합니다. 1골 1도움을 기록한 도라익 선수, 3도움을 기록한 고명준 선수, 1골 1도움을 기록한 오창범 선수를 동시에 내립니다.
태국팀이 벌이는 경기에선 부상이 자주 일어난다. 그게 상대 팀일 수도 있고 태국팀일 수도 있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만 보이면 몸을 던지는 태국 선수들의 과격한 플레이 스타일 덕분이다.
그러나 경기에서 졌다고 일부러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은 드물다.
특히 지금처럼 점수 차이가 현격할 땐 투지가 사라져 과격한 동작을 자제하기에 오히려 부상 위험이 적다.
차 감독이 도라익 등을 교체한 건 10월에 상대할 사우디와 이라크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지 않으려는 속셈 때문이었다.
"라익아. 저녁 같이 먹을까?"
축구화를 벗고 편한 실내화로 갈아 신은 고명준이 말했다. 오창범과 함께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던 도라익은 고명준의 식사 요청에 바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선배님이 사는 거죠?"
"뭐 어쩌겠어. 너희보다 덜 벌지만, 그래도 선배인 내가 사야지."
스토크시티와 재계약한 도라익은 이젠 주급 3만2천 파운드 받는다. 그리고 주급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광고료를 받기도 했다.
"선배님, 전 똠얌꿍 좋아합니다."
눈치를 보던 오창범이 슬쩍 끼어들었다. 취침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도라익이기에 거절하면 어떻게 분위기를 수습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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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식사 자리엔 김춘호도 나왔다.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어서 넷은 대화보다 식사에 집중했다.
"라익아. 이번 월드컵이 우리 둘에겐 마지막이다."
식사를 끝낸 넷은 차를 마시며 대화했다.
"원래는 월드컵 나가는 게 목표였는데, 네가 있어서 좀 더 욕심이 생겼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라익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조금 남았던 어색함이 물 만난 소금처럼 사르르 사라졌다.
"그래서 말인데. 나랑 춘호 모두 팀에서 주장인 건 알지?"
"네."
"너도 스토크시티 주장이니까 어느 정도 알 거야. 주장은 축구 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은걸. 우린 네가 대표팀에서도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도라익이 눈만 꿈벅이며 대답을 안 했다.
"선배님. 얘는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들어요. 또라이긴 한데 심성은 착하니까 그냥 툭 까서 말하세요."
오창범이 눈치 빠르게 끼어들어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막았다.
"라익이는 축구부 생활 안 했지?"
그제야 고명준도 자기 실수를 깨달았다.
"주장은 팀을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야. 그러니까 자기 것만 잘하는 선수여선 안 된다는 말이지. 그 대단한 호나우두가 우승컵을 고작 몇 개 들어 올렸는지 생각해 봐. 메시도 말년에 안 좋은 소리 많이 들었는데, 그게 다 팀의 중심을 잡아주던 주장들이 은퇴해서야."
호나우두처럼 앞장서서 팀의 멱살을 끌고 가는 선수가 있다. 그러나 본인의 화려한 프로 경력과 달리 우승컵은 많이 들어 올리지 못했다.
맨유의 로이 킨처럼 보기엔 화려하지 않은 선수가 있다. 그러나 로이 킨은 맨유의 수많은 별을 하나로 뭉치는 거로 주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지단이나 즐라탄처럼 굳이 뭘 안 해도 팀을 하나로 묶는 카리스마를 갖춘 선수도 있다. 그러나 잘 되는 팀을 보면 항상 훌륭한 주장이 훈련장과 축구장 밖에서도 노심초사 고생한다.
"선수들과 사적으로 친해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도라익은 대부분 선수와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는 정도다. 오히려 스페인에서 인연이 있었던 야구 하는 형들과 훨씬 친분이 깊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나랑 춘호는 실력이 부족해서 사적인 친분을 다지는 거로 팀을 단합했다. 그러나 넌 굳이 안 그래도 된다. 친해지면 쉽게 못 할 말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해야 할 말을 못 할 때도 있거든."
"우리도 선배가 돼서 너한테 많은 걸 바라는 건 염치 없는 짓인 거 같다."
김춘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네가 반드시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우린 못 하는 일이거든."
도라익은 진중한 얼굴로 김춘호와 눈을 맞췄다.
"월드컵 16강을 언급해 줘. 네가 말하면 팀 분위기가 잡힐 거야. 월드컵 16강이라는 목표가 확실히 서면 팀이 달라지고 선수들이 달라질 거야."
"그거면 됩니까?"
"그래. 이 말을 감독님이 하면 오히려 선수들한테 부담이 될 수 있어. 나나 명준 선배가 하면 그저 구호 외치는 느낌이겠지. 그러나 네가 하면 줄다리기할 때 맨 마지막에 강호동이 선 것처럼 든든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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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도라익이 덜컥 수락했다. 신이 난 기자는 넥타이를 매는 것도 잊고 다소 이상한 차림으로 공항까지 한달음에 갔다.
"제가 뭐 인터뷰 다 거절하는 줄 알겠습니다."
도라익이 축구에만 전념하도록 최경호는 대부분 인터뷰를 본인 선에서 끊어버렸다. 자신 정도면 인터뷰가 끊이지 않아야 정상임을 모르는 도라익은 기자의 말을 가벼운 농으로 받아쳤다.
듣는 사람은 전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럼 바로 인터뷰 시작해도 될까요?"
간만의 기회에 기자는 아예 뽕을 뽑을 작정을 했다. 15세 어린 나이에 독일로 갔던 일, 십수 개 팀에서 입단 테스트받았던 일, 스토크시티와 계약에 성사한 일, 페널티킥 분쟁, 기부, 미라클에 관한 이야기, 유로파리그 5경기 연속 해트트릭 이후 6번째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일, 왼발을 억지로 사용했던 일, 뮌헨과 대결에서 느낀 점, 대표팀에서 뛰면서 느낀 점 등등.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기자는 감탄했다.
'보통 또라이가 아니야.'
"특히 대표팀에 한 번 올 때마다 새로운 걸 배웁니다."
"그런가요? 그럼 이번엔 어떤 걸 배웠나요?"
"제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구나 느꼈습니다."
"참 겸손하기도. 마지막으로 도라익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에게 전할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눈앞의 경기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과감히 더 멀리 보겠습니다. 저는 다가오는 이집트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반드시 이룰 것을 팬분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리고 스토크시티에서도 더 노력하여 리그에서 높은 순위를 이루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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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익의 인터뷰는 3편으로 나뉘어 나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노오력'이라는 노력을 희화화한 구조어와 달리 '도력'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도력'은 도라익과 노력의 합성어로, 높은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걸 뜻했다.
그리고 스토크시티에 도착한 도라익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내겐 두 개 목표가 있다."
선수들을 소집한 도라익이 연설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선수들이 휘파람과 박수로 호응했다.
"난 이 두 우승을 스토크시티에서 이루고 싶다."
뜻밖의 말에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는 걸 모를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다."
다행히 도라익의 유머로 분위기가 바로 풀렸다.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겠지. 리그 7위와 챔피언스리그 조 2위 혹은 3위는 어때?"
리그 6위면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티켓이 확정이고, 7위는 FA컵 우승팀에 따라 갈린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중하위권인 스토크시티로선 7위도 높게 잡은 편이다.
챔피언스리그 조 2위는 토너먼트 진출이고, 3위는 유로파리그 토너먼트에 참가하게 된다. 비록 상대가 바르셀로나와 인터 밀란 그리고 도르트문트로 하나같이 쟁쟁하지만, 꼴찌는 정말 싫었다.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다.
리그에서 높은 순위에 랭크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멀리 가는 건 누구라도 속으로 잡을 만한 목표다.
사적인 자리에서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갔으면 좋겠다고 대화한 적도 있고, 감독이나 코치가 토너먼트 진출을 구호로 외친 적도 있다.
그러나 팀의 주장인 도라익이 직접 선수들을 모은 자리에서 진지하게 얘기하니 느낌이 달랐다.
리그컵 우승과 유로파리그 우승. 꿈과 같은 두 시즌을 보내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게 돼서 약간 붕 떴던 팀 분위기가 비로소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찰리. 사교적으로 변한 건 좋은데, 축구장에서 상대 선수한테까지 사교적일 필욘 없잖아?"
도라익의 지적에 찰리가 이를 악물었다. 아스널에 버려진 게 한이 되어 늘 이를 악물고 축구를 했었는데, 지난 시즌부터 조금 물렁물렁해진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루이스. 너 나보다 형이잖아. 성질 좀 고치면 안 될까?"
가끔은 상대와 분쟁을 일으켜 팀의 투지를 태워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저 본인 성질을 못 이겨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상대와 싸움을 벌였다.
"미안. 고칠게."
"미켈. 수비수들과 대화 많이 나눠."
미켈은 성격이 고고한 게 흠이다.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타고난 게 어디로 안 간다.
"명심하고 더 노력할게."
"맥자넷. 네가 최고야. 네가 페어린던보다 훨씬 나아. 그러니까 네 식대로 플레이해."
맥자넷은 페어린던처럼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리려 했다. 그러나 잘되지 않아 오히려 찰리와 도라익에게 혼란을 줬다.
"고마워."
도라익은 선수들에게 바라는 바를 말했다. 아직 출전 기회를 못 얻은 선수들에겐 더 열심히 훈련해서 주전들의 똥줄을 타게 만들라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나."
도라익은 눈을 감고 잠깐 고민했다.
"난 노력이 부족한 거 같아. 더 열심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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