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경기
- 골. 도라익 선수 골입니다.
- 아직 10라운드 남은 상황에 도라익 선수가 13골 10도움을 기록하며 더블-더블을 달성합니다.
28라운드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달성한 도라익은 도움도 두 자릿수가 됐다. 계약대로 스토크시티는 도라익에게 10도움과 10골 10도움을 달성한 보너스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오는 여름에 도라익을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단주는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맨시티 경기까지만 해도 도라익은 24라운드 8골 6도움이라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어진 4경기에서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경기 승패의 향방을 결정하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려면 아직 4개월 가까이 남은 상황인데도 최경호를 찾는 구단이 줄을 지었다. 덕분에 최경호는 실연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아픔을 완전히 극복하고 최근 웃음꽃이 다시 피는 중이다.
- 도라익 선수와 오창범 선수는 곧 한국으로 돌아와 홈에서 카타르와 대결한 후 원정에서 이란과 대결합니다.
- 제발 이번엔 이란 원정 경기를 마친 다음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바로 보내줬으면 좋겠습니다.
- 저도 동감입니다. 괜한 보여주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로가 더 쌓이는 건 결코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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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뭐야!"
"아, 짜증 나."
"도라익 내놔. 도라익 내놓으라고."
오창범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향한 질타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위대한 네티즌은 오창범이 올린 사진으로 도라익의 비행 노선을 유추한 다음, 정확한 시각에 맞춰 공항에 나왔다.
공항 측이 예견하고 보안 요원을 대량 투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귀빈용 통로로 몰래 빠져나가기로 했는데, 관심이 고팠던 오창범 선생은 기어코 공항 측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 장면이 그 결과다. 범이 없는 여우의 비참한 말로가 뭔지 오창범은 가슴 저리게 깨달았다.
"저 돌아갈게요. 라익이처럼 비밀 통로로 나갈게요."
"오창범 선수. 비밀 통로 아니고 귀빈용 통로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이미 입국한 상태기에 규정상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요?"
"면세점이 왜 면세점인지 생각해 보세요."
비록 원했던 종류와 완전히 다르지만, 오창범은 당분간 안 고플 정도로 관심을 듬뿍 받으며 애처롭게 공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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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범 선수 컨디션이 좋습니다.
- 돌파!
- 크로스 올립니다.
- 도라익 골!
카타르 선수 두 명을 연이어 돌파한 후 크로스를 올려 도라익의 득점을 도운 오창범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카메라를 향해 포효했다.
- 박창식 선수의 첫 골도 오창범 선수의 공이 큽니다.
- 오늘 돌파로 카타르의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덕분에 왼쪽 윙으로 출전한 이혁신 선수 역시 부담이 줄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죠.
- 그러나 수훈은 역시 도라익 선수입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팀의 중심을 딱 잡아 주니까 공격도 수비도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카타르 선수들은 체력이 약점이다. 그렇기에 전반전부터 드러눕기를 좋아한다. 비록 절반 이상이 귀화 선수긴 하지만, 귀화 조건을 맞추려고 카타르에서 일정 기간 살았기에 마찬가지로 잘 눕는다.
한국 3월의 아직 시원한 날씨라고 해서 그게 달라질 일이 없는데, 오창범이 경기 시작부터 날뛰며 골 2개를 만드는 바람에 누울 생각이 깨끗이 달아났다.
- 골입니다!
- 오창범 선수 드디어 득점에 성공하네요. 잘 감아 찬 프리킥을 키퍼는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사흘 전 공항에서 팬들에게 빈축을 잔뜩 샀던 오창범이다. 그러나 홈에서 카타르를 상대하는 경기에서 모든 득점에 관여하며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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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은 가장 두려운 상대인 이란과 경기 하러 테헤란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제부턴가 이란은 한국팀이 가장 이기기 어려운 아시아 팀으로 부상했다.
비록 가장 근래에 박창식의 골로 1:0 승리를 이뤘으나, 김춘호의 선방이 아니었으면 한국팀의 우승과 도라익의 출현은 아예 없었다.
"이란 애들 거칠기로 유명해. 그리고 축협도 이란 편이니까 심판이 우리한테 불리할 거야."
"아니. 축협이 왜 이란 편이야?"
도라익이 깜짝 놀라며 질문했다.
"축협이 한국에만 있어? 아시아 축협 말하는 거야."
축협이 아니라 축구 연맹이지만, 선수들은 축협이 입에 붙었다.
이란과 경기한 적 있는 선수와 서아시아에서 뛰며 이란 리그의 팀과 경기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도라익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최대한 알려주려고 애썼다.
16강 언급 및 삭발 사태 이후로 대표팀의 분위기는 훨씬 끈끈해졌다. 그래서 예전에는 없었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어이, 도 감독. 감독님이 부르셔."
도라익은 차 감독의 호출에 기쁜 얼굴로 쪼르르 달려갔다. 순수한 아이와 같은 그 모습에 도라익과 대화하던 선수들이 하나 같이 폭소했다.
"감독님, 부르셨어요?"
"응.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이란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세 명 있다. 두 명은 벤치여서 도라익은 교전 경험이 없지만, 한 명은 최근 리그에서 만났다.
그리고 도라익과 약간 마찰도 있었다.
"하다디랑 잠깐 말다툼이 있었던데, 이유가 뭐야?"
하다디는 웨스트햄에서 뛰는 이란 공격수다. 지난 시즌은 절반 이상 경기를 선발로 출전했으나 이번 시즌은 벤치에 앉는 일이 많았다.
"왜 이적 안 했냐고 물어서, 팀이 어려워서 그랬다니까 절 병신이라고 욕했어요."
"그래서?"
"이걸 이해 못 하는 네가 진짜 병신이라고 했죠."
하다디는 원래 분데스리가를 뛰다가 지난 시즌 웨스트햄에 이적했다. 이적 당시 훈련을 거부하고 팀 동료와 감독을 헐뜯는 등 좋지 못한 모습으로 구설에 꽤 올랐었다.
웨스트햄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내고 이적하길 잘했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어느 언론에서 너랑 비교하며 하다디를 욕했나 보구나."
"아, 그렇겠네요."
"다른 선수들도 얘기해 줬겠지만, 여긴 이란 홈이고 심판도 이란 편일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하다디가 시비를 걸어도 무시해. 할 수 있지?"
"그럼요. 제가 애도 아니고."
차 감독은 코밑에 거뭇한 기운이 생기기 시작한 도라익을 보며 껄껄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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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심판의 판정이 조금 이란 쪽으로 기운 것도 있지만, 이란 팀의 실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현재 이란은 4승 1패 16점으로 조 2위다. 한국은 4승 1무 17점으로 조 1위고. 이란의 유일한 패는 원정에서 중국팀에 0:2로 진 경기인데, 돈 받고 져준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엉망인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중국에 패한 경기만 빼면 어마어마한 모습을 보였다. 비록 한국팀보다 못하지만, 4경기에 13골을 넣고 겨우 1실점만 했다.
"형, 여기."
도라익의 외침에 고명준은 지체 없이 패스했다. 예전과 달리 굳이 머리를 들고 확인하는 수고가 없이 머리를 숙인 채 공 차는 데만 집중했다.
도라익이 매우 부러워하는 스킬로, 고명준은 머릿속에 축구장을 그리고 현재 상황에 맞춰 모든 선수의 위치를 예측한다.
가끔 틀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엔 공을 잡기 전에 미리 주변 상황을 살펴 근거를 마련하기에 맞는 경우가 훨씬 많다.
비록 경기를 뛰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되는 재주는 아니지만, 도라익에겐 너무 멋있게 보였다.
고명준의 정확한 패스를 받은 도라익은 이란 수비수를 등진 채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도라익이 왼쪽으로 돌지 오른쪽으로 돌지 헷갈린 이란 선수는 자신의 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망설였고, 그 짧은 틈을 타 도라익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도라익은 발끝으로 공을 당기며 뒤로 물러났다. 이란 선수가 반사적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란 선수의 중심이 움직이자 도라익은 바로 공을 앞으로 찼다. 그리고 팔을 벌리고 막으려는 이란 선수를 힘으로 밀고 지나갔다.
이란팀은 도라익의 단독 돌파에 충분한 대비를 했다. 도라익은 자신이 찬 공을 다시 확실히 소유하자마자 또 한 명의 선수를 상대해야 했다.
도라익이 오른발로 공을 부드럽게 밀었다. 중앙으로 패스하려는 것 같은 모습에 이란 선수는 왼발을 쭉 뻗어 방해하려 했다.
그러나 도라익의 패스는 페이크였다. 도라익이 패스하려던 곳엔 아예 한국 선수가 없었다.
도라익은 발목을 꺾어 중앙으로 밀던 공을 자기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바로 왼쪽으로 밀며 달렸다.
중심을 오른발에 두고 왼발을 뻗던 이란 선수는 도라익의 돌파에 아무런 방해도 하지 못했다.
선수 두 명을 연속 돌파한 도라익의 앞에 개활지까지는 아니어도 꽤 넓은 공간이 생겼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터치가 섬세한 도라익에겐 충분히 뛰놀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었다.
도라익은 바로 사선으로 드리블하며 중앙으로 갔다. 그에 맞춰 박창식이 먼 포스트 쪽에서 가까운 포스트 쪽으로 오프사이드를 조심하며 가로 쭉 달렸다.
도라익의 패스는 정확히 박창식을 찾았다.
박창식이 오른발로 공을 멈추면 몸을 돌리며 슈팅하기 딱 좋은 위치와 상황이 연출되었다. 박창식과 가장 가까운 이란 수비수는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졌다. 가까운 포스트와 먼 포스트는 물론, 빠르고 높은 슛으로 키퍼 머리 위를 노려도 되는 정말 슈팅하기 좋은 위치와 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창식의 선택은 키퍼와 수비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박창식은 오른발로 공을 멈추는 대신, 바로 뒤로 패스했다.
박창식이 굴린 공과 급가속으로 달린 도라익의 발이 만났다. 십 년 만에 보는 반가운 친구에게 달려가듯이 빠르게 마중 나갔던 오른발이, 가까이에서 보니 아니었다는 듯이 공과 짧게 만나고 바로 떨어졌다.
강한 힘과 정확한 임팩트 순간을 경험한 공은 로켓처럼 이란의 골대로 날아갔다. 백 패스를 확인하자마자 먼 포스트로 이동하던 이란 키퍼는 가까운 포스트를 노리는 높은 공에 속수무책이었다.
골을 넣은 도라익은 선수들과 간단히 세리머니를 한 다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섬인 영국은 해발이 높지 않다. 해발이 1000m가 넘은 테헤란의 경기장은 도라익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고산지대인 셈이다.
- 작가의말
오창범 : 나도 축구 잘해!
팬 : 얼굴도 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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