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콩
도라익의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긍정적인 부분은 도라익의 플레이 역시 오창범처럼 안정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도라익이 복잡한 고민을 통해 내린 결론이 뭔지 몰라 장단을 못 맞추던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조금 단순하게 변한 도라익과 걸음을 같이 했다.
부정적이라면, 예전엔 지거나 비길 경기를 도라익이 가끔 멱살을 잡고 비기거나 이기는 경기로 바꾼 적 있었는데, 현재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즉, 예전엔 팀과 다른 선수의 컨디션과 무관하게 도라익 혼자서도 경기를 뒤집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팀과 다른 선수들 컨디션이 경기 승패를 좌우한다.
긍정적인 부분을 더 들자면, 도라익이 자신의 롤을 명확히 한 덕분에 다른 선수들 롤도 명확해졌다. 롤이 명확해지니 훈련도 더 목적성이 강해졌고 경기 중에서도 나은 모습을 보이며 팀 전체가 강해졌다.
이 역시 부정적인 부분이 있으니, 도라익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뛴 덕분에 드러나지 않았던 팀의 단점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나 도라익은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고수했다. 덕분에 공을 잡으면 늘 도라익부터 찾던 토미가 슈팅을 늘렸고, 패스를 맥자넷이나 산체스 또는 오창범에게 하기도 했다.
제임스와 산체스 역시 반격 기회에 무조건 앞으로 찌르던 습관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선 자기들끼리 패스를 주고받으며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단이 어려운 변화도 생겼다. 도라익은 예전엔 반칙을 자주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수비수들 복귀가 늦어지면 반칙으로 흐름을 끊었다. 상대가 스토크시티보다 빠른 리듬으로 경기를 운영할 때면 일부러 반칙하고 반칙을 지시해서 경기 리듬을 뺏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옐로카드 5장을 적립해 리그 36라운드 경기에 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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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엄 선수, 안타깝습니다.
비록 도라익은 출전하지 않지만, 오창범이 있어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전반전 20분에 리엄이 레드카드를 받으며 시청률 그래프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35라운드까지 진행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첼시가 77점으로 1위, 맨유가 76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번 시즌에야 세대교체를 시작한 맨유지만, 중요한 경기마다 노장들이 마지막 빛과 열을 발산해 승리를 따내며 가장 합리적인 스쿼드를 갖춘 첼시의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맨유는 먼저 진행한 36라운드 경기에서 리그 4위인 토트넘을 3:1로 이기고 1경기 더 뛴 상황에 리그 1위로 등극했다.
게다가 골 득실 역시 맨유가 첼시를 앞섰다. 37라운드에 원정에서 리버풀을 상대해야 하는 첼시로선 오늘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리그 우승을 놓치는 셈이 된다.
그래선지 마이콩이 경기 전부터 SNS로 광역 도발을 시전했고, 전반전 20분에 덫에 걸린 리엄이 옐로카드 누적으로 쫓겨났다.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EQ 낮은 사람.'
도라익은 리엄과 갈등을 일으키며 함께 옐로카드를 받고도 즐겁게 웃는 마이콩을 보며 토마슨 박사의 평가를 떠올렸다.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인 척 연기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면 바로 본성이 드러나는 알기 쉬운 유형이라고 했지.'
도라익에겐 마이콩이 희대의 악당처럼 느껴졌으나, 토마슨 박사는 아주 많은 사람이 속한 흔한 부류라고 평가했다.
'다행이다. 내 주변엔 저런 사람이 없어서.'
대신 도라익 주변엔 또라이가 한가득했다.
리엄의 퇴장으로 스토크시티는 포백으로 전환했다. 속도 빠른 우디르가 있고 수비 잘하는 발제르가 있어 리엄이 없어도 수비 체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첼시 선수들 역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여서 심리적 부담이 심한지 평소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 마이콩이 한 건 더 했다. 마이콩의 반칙으로 쓰러진 우디르가 누운 채로 마이콩에게 발길질하고 레드카드로 퇴장했다.
유일한 반격 포인트까지 사라지자 첼시는 모든 역량을 공격에 집중했고, 전반전에 2골, 후반전에 5골을 먹은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멘탈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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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찰리는 4월에 3년 동안 만나던 스페인 여자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일정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도라익과 루이스를 비롯해 개인 친분이 두터운 선수들이 돈을 모아 선물을 전달했고, 그 보답으로 찰리가 밥 한 끼 사기로 했다.
그런데 기다리는 찰리 대신 보기 싫은 마이콩을 먼저 만났다.
"그냥 못 본 척 지나가지 그랬어."
평소 사람 좋던 산체스가 가시 돋친 말을 뱉었다.
"왜 이래. 우리 다 프로잖아.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은 경기장에 두고 나와야지."
"38라운드에 우리가 맨유랑 경기해서가 아니고? 왜? 일부러 맨유에 질까 봐 걱정되나 보네?"
맨유보다 1점 많은 첼시는 마지막 2경기를 모두 이기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37라운드에 원정에서 리버풀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리버풀은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팀이지만, 수비수와 키퍼의 실책으로 야금야금 실점하며 어느새 7위까지 추락했다.
그럼에도 홈에서 경기하는 리버풀은 늘 무섭다.
"괜히 나 때문에 식사 분위기 망치면 안 되니까 이만 갈게. 기회 되면 한 번 밥 같이 먹지."
마이콩은 끝까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퇴장했다.
"이중인격자 아닐까?"
"나처럼 정신병이 있는 거 같아."
제임스가 말했다.
"넌 정신병 아니고 심리 장애라고 했잖아."
"그게 그거 아니야?"
"정신병은 뇌에 문제가 생긴 거고, 심리 장애는 사고방식이 평범하지 않은 거야. 하나는 치료해야 하는 거고, 하나는 유도해야 하는 거야. 많이 달라."
도라익의 말에 선수들 이목이 쏠렸다.
"난 둘 다 아니야. 진짜, 맹세해."
"내가 보기엔 넌 둘 다인 거 같아."
"내가 보기에도 그래. 도우가 평범하다면 전 세계 사람 모두 정신병이야."
집중포화에서 도라익을 구한 건 신부와 함께 등장한 찰리였다. 도라익 등은 신혼부부에게 축복의 말부터 건넸다.
"쌍둥이래."
찰리가 기쁜 얼굴로 임신 소식을 발표했다. 굳이 4월에 결혼식을 올린 건 신부가 이쁜 결혼사진을 찍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난 월드컵 이후에 결혼식 올리기로 했는데, 혹시 5개월이면 배가 많이 나와?"
"잘 모르겠어. 우린 쌍둥이여서 좀 일찍 나왔을 거야."
"애기 출산하고 사진 찍으면 되잖아요."
신부가 말했다.
"저는 원래부터 살이 있는 편이어서 출산하면 많이 뚱뚱해질 거예요. 도우의 신부는 모델이어서 애기 낳아도 괜찮을 거 같아요. 살도 금방 뺄 거고."
식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도우, 나 아까 마이콩 봤어."
신부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찰리가 귓속말처럼 낮게 말했다.
"기자들이랑 밥 먹더라고."
"우리한테 와서 인사하고 갔어."
"38라운드에 스토크가 맨유랑 붙잖아. 그것 때문이 아닌지 몰라."
"그거랑 기자들이랑 밥 먹는 게 무슨 상관이야?"
찰리가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나 토트넘 이적하려고 에이전시 회사 바꿨어. 거기서 들은 얘긴데, 마이콩이 친분 있는 기자들한테 자주 기사 부탁한다고 그러더라."
"어떤 기사 부탁하는데?"
"내 추측인데, 아마 네가 맨유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나올 거야. 이미 협상이 끝났고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는 식으로."
도라익은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찰리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내가 아니라 맨유를 흔드는 거네?"
"그렇지. 네가 당사자이니 가짜 뉴스에 흔들릴 리 없잖아. 물론, 화가 나서 맨유 상대로 활약하면 더 좋은 일이고. 그러나 맨유 선수들은 아니잖아. 구단이 아니라고 해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입장이잖아."
도라익을 영입하면 누군가는 벤치로 가고 누군가는 팀을 떠나야 한다.
도라익이야 아직도 부족한 최경호 덕분에 귀를 닫고 살지만, 웬만한 에이전시라면 이러한 소문을 절대 놓치지 않을 거고, 선수한테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최경호처럼 선수가 축구에만 집중하는 걸 1순위로 놓는 에이전트는 전 세계를 뒤져도 열 명 찾기 힘들 것이다.
"어떤 의미론 참 대단해."
"너도 곧 이런 세상에 들어올 거야."
찰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월드컵 이후 명문 구단으로 이적하면 도라익 역시 불가피하게 이런 일을 알게 된다. 찰리 역시 토트넘에 이적한 후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스토크시티에 있을 땐 전혀 몰랐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세상엔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어. 어떤 일이든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거든. 그걸 네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하는지에 따라 좋은 면이 부각될지 나쁜 면이 확대될지 결정된대."
도라익의 말에 찰리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한 말이야?"
"토마슨 박사. 그러니까 새로운 환경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찰리 넌 훌륭한 사람이니까 나쁜 일을 겪어도 좋은 쪽으로 작용할 거야."
"고마워. 그리고 혹시나 말인데, 토트넘 올 생각 없어? 지금 4위이고 남은 2경기 다 져도 4위일 거야. 5위가 다음 라운드에 맨시티랑 붙거든."
도라익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도르트문트를 염두에 뒀다. 둘 다 선수를 잘 키우는 구단으로 소문이 자자하고, 스토크시티에 제시한 조건도 훌륭하다.
도르트문트는 도라익이 떠난 공백이 최대한 안 느껴지게 이적료에 선수를 얹어 줄 생각이고, 아틀레티코 역시 높은 이적료에 공격수 한 명쯤 줄 생각이 있다.
그런데 찰리의 말을 듣고 보니 토트넘 역시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손발이 맞는 찰리가 있고, 토트넘의 공격력 역시 리그에서 5위 정도 된다. 이번 시즌 수비 역시 일취월장하여 20개 팀 중에서 아스널과 함께 공동 5위다.
"월드컵 끝나고 고민할 일이야. 당장은 남은 2라운드랑 월드컵에 집중해야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도라익 일행이 스토크시티로 돌아가는 사이, 몇 개 신문과 다수의 인터넷 매체에서 도라익이 맨유로 이적하며 선수와 협상을 마쳤다는 뉴스가 떴다.
- 작가의말
2등을 극혐하는 마이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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