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
"귀여워."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당황한 구단주는 마시던 물이 코에 들어가 캑캑거렸다. 어느새 다가온 부인이 구단주의 등을 다정스럽게 두드렸다.
"당신이랑 2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지 몰랐어."
"여보, 그날은 술에 취해서."
"맞아. 술에 취해서 진짜가 나온 거야. 당신 그날 진짜 귀여웠어."
'도우는 왜 아시아인일까.'
45억 인구의 아시아다. 스토크시티라는 팀을 좋아하는 팬은 아직도 맨유나 리버풀은 물론 토트넘에도 못 미치지만, 도라익의 팬은 진짜 많다.
보수적인 통계로도 10억은 넘은 아시아 지역 사람이 스토크시티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봤다.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세계 인구의 1/7 정도가 구단주의 섹시 댄스를 실시간으로 감상했다는 뜻이다.
"당신 왜 부끄러워하는 거야? 난 당신이 즐거운 거 같아서 기쁜데."
"내가 즐거워 보였어?"
"응. 방학을 맞이한 아이 같았어."
구단주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했다. 출중한 계산 능력은 수학이 아닌 수많은 분야에서 구단주의 정확한 판단에 도움을 줬다.
거기에 도취한 구단주는 모든 걸 계산으로 해결하려 했다. 타고난 재능 덕분에 베팅해야 할 시기를 놓치지 않고 쭉 성공하며 살았다.
'내가 스토크시티를 산 게 첫 충동적인 결정이었지.'
학창 시절에 라이벌로 여겼던 친구가 3부리그 팀을 2부리그로 올려 700% 수익률을 올렸다. 스포츠는 변수가 많다고 관심을 전혀 안 주던 구단주에겐 충격이었다.
마침 2부리그에 있던 스토크시티가 매물로 나왔고, 구단주는 짧은 고민 끝에 지분을 100% 사들였다.
지분을 모두 사들인 건 자신의 노력으로 창출한 가치를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한 자신감에 어울리게 처음 손댄 구단 운영에도 재능을 보이며 스토크시티의 실력을 차근차근 끌어올렸다.
그러나 스토크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 승급한 후 이윤율을 너무 따지며 투자를 아끼다 보니 위기를 자초했다.
2부리그로 떨어질 각오로 구단을 운영하던 중 우연히 도라익을 영입했고, 단 한 경기를 보고 추가로 투자해 도박한 게 먹혀서 구단 가치가 빠르게 상승했다.
도라익의 이적을 이용해 팀을 프리미어리그 중위권으로 발돋움시킬 계획을 짰고, 성공하면 스토크시티를 팔아 700%는 아니어도 400%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수익률은 친구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수익 금액은 단위 자체가 다르다.
그러던 중에 도라익이 교통사고를 당하며 구단주의 꿈이 파멸했다. 꿈을 잃은 구단주는 무기력해졌다.
그때 팔아도 200%는 넘은 수익률이지만, 구단주는 성에 안 찼다.
"내가 진짜 즐거워 보였어?"
구단주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응. 예전엔 비싼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같았다면, 그날은 고무 오리 장난감을 들고 즐겁게 노는 아이처럼 즐거워 보였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구단주는 부인에게 길게 키스한 후, 가슴을 쭉 펴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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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크시티 2600만 파운드로 디에고 로드리게스 영입.]
[21살의 아르헨티나 천재 디에고 로드리게스 스토크시티로 이적 결정.]
[현명한 계약인가 아니면 섣부른 도박인가?]
이적 시장이 열리려면 40일 정도 남았다. 그러나 구단주의 독촉 아래 스토크시티는 선수 영입에 돌입했다.
21살밖에 안 되지만, 지난여름 남미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 오른쪽 풀백 주전을 맡았던 선수다. 드리블과 돌파를 즐겨 하고 크로스보다는 슈팅을 선호하는 선수여서 빅리그에 적합한지는 물음표가 남았지만, 실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도우가 진짜 보물이야."
수많은 구단이 도핑 파문으로 정신이 없다. 덕분에 경쟁자가 없어서 협상이 순조로웠다.
더구나 디에고의 에이전트가 도핑 파문으로 많은 선수가 자격 정지를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일시적인 선수 품귀 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탓에 주급 협상도 구단주의 뜻대로 흘렀다.
"다른 팀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끝장을 봐야지."
[아이토르 브라보, 스토크시티로 이적 확정.]
[칠레의 오른쪽 날개, 영국에 상륙하다.]
[아이토르 브라보, 피지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스토크시티는 1200만 파운드에 키 165cm의 아이토르 브라보를 영입했다. 몸싸움이 거의 안 되는데 몸값이 딱히 싸지도 않아 다들 영입을 망설이던 선수다.
나이는 25세로, 남미 선수 치곤 유럽 상륙이 한참 늦은 케이스다.
오른쪽 풀백과 윙을 한 명씩 영입한 구단주는 공격수 영입에 나섰다.
"안돼. 저 정도 실력으론 어림없어."
줄리엔은 포워드보다 센터백이 훨씬 어울리는 선수가 됐고, 우디르는 득점이 저조하다. 발제르는 득점만 보면 괜찮은 편이지만, 공격보다는 수비에 소모하는 체력이 훨씬 많다.
지금의 스토크시티는 공격수 같은 공격수 한 명이 필요하다. 실력도 도라익의 공백을 완전히는 아니어도 그럴듯하게 메꿀 정도는 돼야 한다.
"이 선수는 어떻습니까?"
지지난 시즌까지 라리가에서 활약한 브라질 선수다. 지난 시즌 부상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 브라질에 돌아갔고, 회복한 후 상파울루에 임대되어 브라질 리그를 뛰었다.
"레켈? 그때 우리 이적 요청을 거절한 그 선수 아니야?"
"맞습니다. 우리 요청을 거절하고 라리가로 이적했던 그 선숩니다."
"괜찮을까?"
모든 선수가 도라익이 아니다. 비록 도라익처럼 큰 부상은 아니라지만, 도라익처럼 더 훌륭한 피지컬로 돌아오는 선수는 진짜 드물다.
"분석 데이터인데, 피지컬은 물론 기술 면에서도 오히려 부상 전보다 나아졌습니다."
"심리적인 문제는?"
"오히려 예전보다 몸싸움을 즐긴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스토크시티는 레알 소시에다드에 레켈의 이적과 관련해 오퍼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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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스토크시티는 환송회를 열었다.
타이먼과 오창범이 리즈 유나이티드와 계약했다. 이적은 4월에 이미 결정 났고 계약 체결은 하루 전에 끝냈다.
타이먼은 출전 기회가 드문 상황에 지쳐 이적을 결심했고, 오창범은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기 위해 경기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리즈로 이적을 결심했다.
리즈는 풀백 활용도가 높은 팀이어서 오창범이 활약할 기회가 많고, 그렇기에 측면 수비를 잘 돕는 타이먼도 활약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형, 내가 앨런한테 잘 얘기할 테니까 많이 도와줄 거야."
환송회는 아주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역사적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지 채 열흘도 안 되고, 타이먼과 오창범이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다.
"훈련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피지컬 하락이 순식간에 오네. 한 시즌만 더 뛰었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는데."
오창범도 마음의 준비를 일찍 시작했기에 특별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코어 단련을 안 해서 그래. 병목 현상이랑 같은 거야."
코어 근육은 여러 근육을 연결하여 힘을 하나로 합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무리 자주 쓰는 근육을 잘 단련해도 코어가 못 버텨 연결 작용을 제대로 못 하면 쓸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줄어드는 거다.
오창범은 주 근육만 단련했기에 나이가 들면서 힘이 약해졌다.
"너 딴 데 가서 이런 소리 하지 마. 맞아 죽을지도 몰라."
타고나지 못한 오창범으로선 프리미어리그에서 버티기 위해 주 근육을 단련할 수밖에 없었다.
더 젊을 때 코어를 단련하지 않은 건 오창범의 잘못이 맞지만, 오창범이라고 자신이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할 줄을 꿈에서나 생각했겠는가.
"그땐 무조건 잘하는 선수만 뛸 수 있는 게 프리미어리그인 줄 알았지. 팀 색깔과 선수 특징에 따라 나 같은 선수도 프리미어리그를 뛸 줄은 누가 알았겠어."
오창범은 100경기를 못 채운 게 아쉽기도 했지만, 몇 시즌이나 버틴 자신이 꽤 자랑스러웠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지도자의 길을 염두에 두라고. 형처럼 부족함을 절실히 느껴본 선수가 오히려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어."
오창범은 칭찬을 받았는데 까인 것 같고, 까였는데 인정받은 것 같은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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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켈의 영입을 포기한다."
구단주가 결단을 내렸다.
디에고와 아이토르는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모든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삽입된 계약서에 사인했다.
7월 1일에 건강 테스트와 도핑 테스트를 통과해야 비로소 정식으로 스토크시티의 선수가 된다.
레켈은 치료 과정에 사용한 약 때문에 도핑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을 삭제하길 원했다.
"여름 영입은 끝이다."
이제 6월 초인데 구단주는 선수 영입을 중단했다. 기세 좋게 시작했던 것과 달리, 고작 2명을 영입하는 거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쉬어도 되는 게 아니야. 약속대로 모든 선수와 주급 협상을 해서 재계약한다. 그리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공격수를 비롯해 몇 개 위치를 보강할 예정이니 젊은 선수 위주로 리스트를 작성해."
페데리치가 잘하고 있지만, 가끔 어이없는 실점을 해서 팀의 사기를 떨구기도 한다. 도라익 덕분에 이번 시즌은 잘 버텼지만, 도라익이 없으면 어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오른쪽 풀백 자리는 안정적인 라미스와 새로 영입한 디에고가 있다. 그러나 라미스가 나이가 많기에 한 명 영입해야 한다.
왼쪽 풀백은 괜찮다. 맥자넷은 플레이가 안정적이고 실력도 좋은 편이다. 스미스는 잘만 크면 대표팀 주전급으로 성장할 수 있기에 기대가 된다.
센터백 역시 걱정이 없다. 줄리엔이 정면 수비가 부족하긴 하지만, 루이스와 스테판의 도움으로 큰 실수는 없었다. 게다가 공격 시 제공권을 보장해주고 공격도 이해하기에 쓸모가 많다.
스테판이야 왜 처음에 거부했는지 자책할 정도로 잘하고 있고, 네이선과 콜린스 모두 싹수가 보인다.
네이선은 약점이 없는 완전한 센터백으로 성장할 것 같고, 콜린스는 활동 범위가 넓은 센터백이 될 것 같다.
미드필더 역시 훌륭하다. 루이스는 개인 능력이 출중한 선수는 아니지만, 스토크시티에 가장 필요한 선수다. 스토크시티라는 팀을 하나로 연결하는 능력은 루이스가 당연히 일인자다.
겨울에 영입한 안데르는 한때 바르사와 연결됐을 만큼 실력이 확실하다. 이적한 지 반년이 되는데도 팀에 잘 녹아들지 못해 약간 걱정이긴 하지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팀에 애착이 깊어진 거 같아 개선 여지가 보인다.
토미는 구단주가 절대 팔지 않고 은퇴까지 데리고 있으려는 선수다. 도라익처럼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라 태생 자체가 스토크시티고 성장 역시 스토크시티와 함께했다.
제임스는 서른이 넘으며 피지컬이 하락했지만, 경험이 늘어 예전보다 경기력은 오히려 향상했다.
산체스는 딱히 뛰어나진 않지만, 부지런하고 안정적인 선수다. 맥자넷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계산 가능한 선수여서 나쁘지 않다.
새로 영입한 다비드는 수비가 부족하지만, 돌파에 적극적이고 슈팅 또한 괜찮아서 팀의 공격 다양성에 큰 기여를 했다.
'우디르가 문제네.'
우디르는 정체성이 모호하다. 공격수라고 하기엔 득점이 저조하다. 윙이라고 하기엔 크로스가 평범하다. 미드필더로 뛸 땐 수비 능력이 부족하다.
'테일러가 왼쪽 윙으로 키워보겠다고 하니 반년 지켜봐야지.'
정 아니다 싶으면 겨울에 왼쪽 윙도 한 명 영입할 예정이다.
발제르는 의외의 소득이다. 영입 당시 우디르와 도라익의 후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매 시즌 10골 정도 넣으며 안정적인 득점력을 자랑했다.
절반 이상 팀의 득점왕이 한 시즌에 채 10골도 못 넣는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행운의 영입이었다.
'정통 공격수가 필요한데.'
도라익의 실력 덕분에 스토크시티는 다양한 전술로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1년 뒤에 도라익이 이적하면 더는 그럴 수 없다.
스토크시티는 팀 색깔을 정하고 팀 포맷과 전술도 정해 이후 쭉 견지해야 한다. 정통 공격수의 영입이 절실한 이유다.
'도라익 같은 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어.'
그때 구단주의 눈에 스카우트들이 모여 수군덕거리는 게 띄었다.
"뭐지?"
"도우가 SNS에 영상 올렸습니다."
가족들과 그리스로 휴가를 간 도라익이 올린 영상이었다. 영상 주인공은 도라익의 동생 도라유였다.
"잘하면 제2의 도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상은 도라유가 4호 공을 다루는 모습이었다. 프로들이 다루는 5호 공은 아니지만, 어린아이에겐 큰 공이었다.
그런데 공 다루는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모래 위여서 공이 불규칙하게 구르고 튀는 데도 드리블이 유려했다.
"당장 미스터 최를 불러. 작은 도우랑 계약해야겠어."
도라익을 판 1년 뒤를 고민하던 구단주는 내친김에 10년 뒤도 바라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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