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부재
1라운드에 2:0으로 승리한 스토크시티는 리그 3위에 안착했다. 이제 겨우 1경기만 뛰어서 별 의미가 없지만, 스토크시티 팬들은 아주 행복해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 리버풀로 원정을 간 스토크시티는 0:4의 큰 점수로 대패했다. 게다가 경기 과정도 엉망이었다.
줄리엔 대신 리엄이 출전하고 오창범도 수비가 탄탄한 라미스로 바뀌었다. 제임스 역시 토미가 대체했고 라미스와 맥자넷은 첫 경기와 달리 풀백처럼 위치를 내렸다.
스토크시티가 첫 라운드보다 수비적으로 훨씬 탄탄해졌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첫 경기에서 토트넘에 1:2로 패배한 리버풀이 그 화를 스토크시티에 고스란히 쏟았다.
경기가 늦게 끝난 바람에 스토크시티는 리버풀에서 하룻밤 묵고 돌아가기로 했다. 도라익은 일찍 자려 했지만, 도무지 잠이 안 와서 알론소의 방으로 찾아갔다.
"제가 포워드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거죠?"
도라익은 몸싸움이 뛰어나다. 자기보다 키도 크고 체중도 더 나가는 센터백들과 싸워도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찰리나 줄리엔처럼 덩치가 큰 선수가 아니어서 몸싸움을 이기고도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다.
골대 앞이라면 몸싸움을 이긴 다음 집중해서 공을 한 번만 처리하면 되지만, 반격 시 찰리의 역할을 해내려면 꾸준히 버텨야 한다.
그래서 공을 잘 따도 패스 처리가 좋지 않아 팀의 반격 퀄리티가 확 떨어졌다.
"도우. 모든 스포츠는 확률 싸움이야. 변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감독으로선 변수를 무시하고 전술을 짤 수밖에 없어."
알론소는 어떻게 말해야 도라익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덜 줄지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찰리가 앞에서 버틸 땐 반격이 슛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80% 이상이었어. 리버풀 경기에선 30%도 안 됐고."
반격은 진지전보다 골 넣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반격 기회가 절반 이하 줄어드니 골 넣을 기회 역시 많이 줄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알론소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심리학을 제대로 배운 덕분에 알론소는 도라익이 왜 스토크시티에 남았는지와 왜 이렇게 조급해하는지 꽤 정확히 알았다.
"도우. 모든 어려운 일을 네가 해야 하는 건 아니야."
도라익은 장점이 많은 선수고 아직은 장점을 갈고 닦을 나이다. 괜히 단점을 보완한답시고 파워를 키우고 패스 정확도에 신경 쓰면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돼버린다.
"반격 기회를 꼭 살려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백 패스로 공을 안전하게 넘기고 진지전으로 천천히 밀고 올라가도 되잖아. 찰리가 없지만, 우리보다 헤딩 잘하는 팀이 여전히 많지 않아."
리버풀 역시 헤딩이 부족한 팀 중 하나다. 물론, 헤딩이 조금 부족해도 킥이 정확한 덕분에 세트피스로 골은 잘 넣는다.
"찰리 방식을 따르지 않고 나와 팀에 맞는 옷을 찾아야 하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스토크시티는 스토크시티이고 대표팀은 대표팀이다. 스토크시티에서 대표팀에 맞는 옷을 찾는 건 틀린 생각이다.
이를 깨달은 도라익은 머리가 시원해졌다. 훈련하고 경기를 뛰면서도 늘 대표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젠 리그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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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수한 거죠?"
원정에서 버밍엄과 0:0으로 비긴 후 도라익은 또 알론소를 찾아갔다. 알론소는 도라익이 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찻잔 두 개를 놓고 기다렸다.
"반격 기회에 공을 한 번만 뺏기고 모두 우리 걸로 지켰어. 도우는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아주 좋은 일이야."
"그런데 못 이겼잖아요."
"말했다시피 축구 경기는 참여 인원이 많아서 변수도 많아."
"제가 뭔가 실수한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알론소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 빠른 성장은 오히려 독이다. 머리로 깨달은 걸 몸에 새겨야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너무 안정적으로 갔어. 반격 기회에 백 패스만 하니까 버밍엄 선수들 체력이 넉넉하게 남잖아."
반격 기회에 공격수의 체력 소모도 심하지만, 공 잡은 선수도 막아야 하고 수비 공백도 메꿔야 하고 공을 안 잡은 공격수도 지켜봐야 하는 수비수들만큼 힘들진 않다.
수비하는 입장에선 육체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 그 스트레스를 못 이겨 집중력을 놔 버리는 순간 팀은 실점한다.
육체적으론 한국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평균치만 보면 더 훌륭한 중국팀이 중요한 경기마다 엉망인 모습을 보이는 건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걸 판단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도라익이 푸념하듯이 말했다.
"그걸 굳이 네가 판단할 필요가 있을까? 네가 수신호로 발제르를 돕듯이, 너보다 여유가 있는 발제르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감사합니다."
도라익은 알론소가 준 차를 마시지도 않고 바로 일어났다. 어서 발제르를 찾아가 반격 시 어떻게 할지 정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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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라운드에 선덜랜드에 1:0으로 승리한 스토크시티는 리그 7위로 갔다. 마음에 혼란이 남은 도라익은 경기 중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차 감독은 도라익을 배려해 9월 A매치 데이에 오창범만 대표팀에 불렀다.
"김상현 평론께선 스토크시티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스토크시티의 전력으로 7위도 과분하다. 스토크시티가 형편없는 팀인 건 아니지만, 경쟁 적수들의 쟁쟁함을 생각하면 문제점 운운할 상황이 절대 아니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스토크시티 하면 도라익 선수를 떠올리는 게 당연해요. 일부 수준 미달의 전문가들도 스토크시티 얘기만 나오면 도라익을 언급하죠."
오태범은 김상현의 도발이 가득 담긴 눈빛을 못 본 척 피했다.
"그러나 지난 몇 시즌 동안, 스토크시티의 중심은 찰리 선수였어요. 지난 시즌부터 도라익 선수가 공격 상황에서 많은 역할을 분담했지만, 여전히 찰리 선수가 팀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이었어요."
김상현은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과 결부해 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지금 리그 1위는 4전 4승에 10골 2실점을 한 첼시예요. 2위는 바로 이번 시즌 찰리를 영입한 토트넘이죠. 4전 4승에 11골 4실점이에요."
찰리는 현재 1골밖에 못 넣었다. 그러나 이미 토트넘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가 되었다. 심지어 아스널 유스 출신에 가족 모두 아스널 팬이라는 점도 호의적으로 작용했다.
"고작 4경기여서 의미가 크진 않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한 데이터예요."
찰리를 보낸 스토크시티는 반격 기회를 살린 횟수가 지난 시즌의 20%에도 못 미쳤다. 3번째 경기에서 도라익이 안정을 추구하여 백 패스를 많이 하면서 반격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반면, 찰리를 얻은 토트넘은 반격 기회가 슛으로 이어지는 횟수가 지난 시즌의 2.5배가 되었다.
그냥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토트넘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골을 1.5배 정도 넣을 수 있다. 2.5배가 아닌 것은 반격 기회가 아닌 진지전이나 세트피스로 넣은 골엔 2.5배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스토크시티의 좋은 성적이 도라익 선수 덕분이라고 하는데, 찰리가 이적하고 나니 이젠 누구 덕분인지 명확할 거예요."
"그렇다고 리그 7위가 부진인 건 아니잖아요. 유일한 패배도 원정에서 리버풀에 한 거구요."
참다못해 오태범이 끼어들었다.
"네, 그래요. 그런데 지난 시즌이랑 지지난 시즌이랑 초반에 부진하던 토트넘이 찰리를 얻어 4연승으로 리그 2위를 했어요. 게다가 첫 경기에 리버풀을 이겼죠. 찰리 덕분에요."
확실히 객관적 강팀인 토트넘이 찰리의 능력을 훨씬 많이 끌어냈다. 스토크시티는 선수들의 객관적 능력치가 부족한 것도 있고, 도라익이 기초가 부실하여 모든 상황에 최고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순발력과 뛰어난 드리블 및 슈팅 능력 덕분에 아주 틀린 판단만 내리지 않으면 웬만한 선수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기에 김상현처럼 트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 아니면 도라익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오태범 평론은 어떤 의견인지요?"
커플은 뜯어야 맛이고 싸움은 붙여야 맛이다. 방송국 놈들은 김상현의 기세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 오태범한테 마이크를 돌렸다.
"확실히 찰리의 부재가 스토크시티에 큰 타격입니다."
김상현이 살짝 놀란 얼굴로 오태범을 바라봤다. 만약 실외였으면 해가 동쪽으로 지는지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찰리 선수는 스토크시티의 전력에 아주 큰 지분을 갖는 선수입니다. 김상현 평론이 보여준 데이터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팀의 공격에 아주 공헌이 큰 선수입니다. 거기에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큰 위협이 되고, 상대가 수비 라인을 높여 도라익을 비롯한 다른 선수에게 침투할 공간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김상현의 머리 위에 뜬 물음표가 점점 커졌다.
"게다가 수비 상황에도 하는 역할이 작지 않습니다. 세트피스 수비는 물론이고, 진지전을 수비할 땐 오른쪽에 자리를 잡죠.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공을 잡으면 굳이 확인하지 않고 찰리가 있는 쪽으로 공을 보냅니다. 그쪽에 보내면 찰리 선수가 공을 차지해 반격을 획책할 거란 믿음이 있죠. 이런 믿음은 작은 실수가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는 빠른 리듬의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주 큽니다."
오태범은 청산유수로 말을 이었다.
"찰리 선수가 오른쪽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도라익 선수 그리고 토미 선수의 반격 루트가 편해집니다. 어쨌든 수비수 한 명은 찰리를 수비해야 하니깐요. 찰리 선수를 수비하려면 반드시 신체가 건장하고 헤딩도 되는 센터백이어야 하니 중앙 혹은 왼쪽으로 치우친 도라익 선수나 토미 선수가 상대적으로 편하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선수가 빠졌는데 현재 스토크시티는 2승 1무 1패입니다. 1패도 리버풀 홈이죠. 그럼 토트넘을 리그 2위로 이끈 저 대단한 찰리가 남긴 커다란 공백을 메꾼 선수가 누굴까요?"
그제야 오태범에게 놀아났음을 깨달은 김상현이 이를 빠득 갈았다.
"프랑스 2부 리그에서 온 발제르 선수? 아니면 지난 시즌 평범하던 다른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갑자기 각성해서?"
오태범이 득의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바로 도라익 선수입니다. 찰리의 존재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도라익 선수의 진가가 슬슬 발휘된 거죠. 찰리를 얻은 토트넘은 확실히 강해졌지만, 찰리를 보낸 스토크시티는 별 타격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게 도라익 선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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