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공만 차는 놀이가 아니다
- 아쉽네요. 하프 타임에 스토크시티에서 교체가 있었습니다.
- 전반전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도라익 선수가 우디르 선수로 교체됩니다.
18일의 3라운드 경기는 스토크시티의 유로파리그 때문에 일정이 미뤄졌다. 그리고 4라운드 경기는 이틀 당겨 23일에 진행한다.
전반전에 이미 3:0으로 앞선 상황에 윌슨 감독은 도라익한테 휴식을 주기로 했다.
맨시티와 리버풀 전에서 수비를 한답시고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도라익이 조금 특별한 선수는 맞지만, 윌슨 감독은 우디르에게 경기 경험도 쌓아줄 겸 도라익의 체력도 관리해주기로 했다.
"도우. 사과할게."
톰 미켈이 커다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도라익한테 말을 걸었다.
"뭐를?"
도라익 역시 입을 가리고 말했다.
"너랑 찰리가 주장 자격이 없다고 떠들고 다녔던 거 말이야. 너희 둘이 부족하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너만큼 적임자도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
도라익은 톰 미켈이 진심인지 꾸민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톰 미켈이 주전 자리를 페데리치한테 뺏긴 건 공공연히 팀의 단합을 해치는 행동을 한 탓이다. 지금 주전을 되찾으려고 억지로 사과한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진심이야.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불평하기보단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한다는 걸 이제 알았어."
"혹시 클루카스?"
"맞아. 리버풀 경기 이후 날 찾아와서 많은 얘기를 들려줬어.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리고 많은 선수가 더 나아져야 팀이 강해진다는 걸 알았고 그 과정을 단축하려면 모두가 힘과 마음을 합쳐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
찰리 아담이 소심해서 거리를 두는 성향이라면 톰 미켈은 너무 고고한 게 흠이었다. 주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도라익이나 찰리 아담, 나이나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촐랑이는 제임스, 귀가 너무 얇아서 면도날로 써도 되는 게 아닌지 의심되는 우디르, 20세의 나이에도 생각이 단순한 토미 매클린.
이 모두가 미켈에겐 스트레스였다. 엄격하고 규칙적인 분데스리가와 달리 자유로운 프리미어리그의 분위기도 적응되지 않았다.
독일에서도 훈련 후에 가끔 맥주 몇 잔 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영국처럼 펍이나 클럽을 자주 드나들진 않는다.
생각보다 방만한 분위기에 실망했고 일부 선수들만 따로 훈련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즌 내내 컨디션을 지키려면 팀의 일정에 맞춰 엄격히 움직여야 한다. 후보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훈련하는 건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주전인 페어린던과 맥자넷에 확고한 주전인 도라익과 제임스까지 껴서 그러는 건 꼴불견이었다.
18팀이어서 일정이 여유로운 독일과 달리 프리미어리그는 20팀이나 되고 악명이 자자한 박싱데이도 있다. 훨씬 프로다운 팀을 기대하며 이적했는데 시설도 낙후하고 여러 면에서 분데스리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이 컸고 불만도 계속 자랐다.
"행동으로 표현해."
도라익이 대답했다.
"네가 거리를 두던 선수들과 친한 모습을 보여. 그게 경기장이든 훈련장이든, 아니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든. 네가 팀의 일원이 될 준비가 끝났다는 걸 보여주면 감독님이 마음을 바꿀 거야."
"알았어. 그리고 도와줘. 네가 주장이잖아."
도라익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켈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미켈이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깨닫고, 진심이든 가식이든 그렇게 하려는 게 중요하다.
축구는 공만 차는 놀이가 아니다. 90분이라는 시간에 승부를 갈라야 하고, 이 분야 최고 레벨들과 경쟁하는 이곳은 대부분 사람의 인생보다 치열하다.
그 치열함을 이겨내고 여유 있게 승자가 되려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전력을 다해 도울게."
후반전은 5:0으로 끝났다. 난전 상황에 어부지리로 꼴 하나 넣은 우디르와 찰리 아담의 페널티킥 양보로 첫 공식경기 득점을 올린 토미 매클린이 눈물을 쏟았다.
휘슬이 울리자 누구보다 먼저 뛰쳐나간 톰 미켈이 눈물을 흘리는 우디르와 토미를 토닥여주고 페더리치와 손뼉을 마주치며 승리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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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스카이 스타디움에서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경기가 펼쳐졌다. 원정팀은 작년에 마지막 경기를 2:1로 승리하며 강등을 겨우 면한 위건이었다.
- 경기가 어렵습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코너킥으로 기습 골을 성공한 위건이 골대 앞에 버스를 세우고 수비에만 전념합니다.
코너킥 수비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대인 방어로 선수 능력이 전반적으로 우위일 때 흔히 쓴다. 다른 하나는 지역 방어로, 각 선수가 지역 하나씩 맡아서 수비하고 상대의 제공권이나 득점력이 좋은 선수 한두 명만 마크하는 방식이다.
스토크시티는 후자를 사용했다. 세 센터백과 찰리 아담이 실점하기 쉬운 지역들을 지키고 남은 선수들은 덜 위협적인 지역을 수비하는 방식이 신인이 많은 스토크시티에 적합했다.
- 두 선수가 상대 무브에 속아 자리를 비웠습니다. 거기에 페데리치 선수가 또 실수했죠.
페데리치는 빠른 반사신경 덕분에 상대 강슛을 막아냈다. 그러나 주먹을 제대로 쥐지 못해 공이 멀리 가지 않았고, 공을 가장 먼저 차지한 위건 선수가 발끝으로 건드려 골대로 밀어 넣었다.
- 페데리치 선수는 반응이 빠르고 슈퍼 세이브를 잘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기본기가 부족하고 가끔 집중력을 잃는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죠.
- 톰 미켈 선수는 출격하기 좋아하고 수비수들과 패스를 주고받는 걸 좋아하는 활동 범위가 큰 선수입니다. 그리고 페데리치 선수와 달리 롱킥으로 공격도 발동할 수 있죠. 윌슨 감독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톰 미켈 선수한테 기회 한 번이라도 줘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0:1로 점수가 뒤처진 채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완벽한 조합이 안 나와.'
윌슨 감독의 고민과 시름이 깊어졌다.
윌슨 감독이 원래 구상한 포메이션은 스리백에 두 윙백, 미드필더 셋, 새도우 스트라이커 하나에 포워드 하나이다.
그런데 도라익이 너무 수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미드필더처럼 뛰다가 리버풀 경기를 계기로 급반전하여 공격적인 모습만 보였다.
경험 부족으로 전술을 머리로만 이해한 도라익이기에 딱히 나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산체스와 제임스 그리고 루이스 세 미드필더가 이러한 팀의 허리 역할을 완벽히 해내지 못하는 건 큰 문제다.
구성만 보면 수비적인 루이스와 공격적인 제임스 그리고 둘의 평균치인 산체스의 조합은 아주 훌륭한 듯하다.
그러나 제임스가 너무 제멋대로고 루이스가 아직 샘 클루카스만큼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을 이어주는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해 여러모로 삐걱거렸다.
"가서 쇠렌센을 불러."
15분의 하프 타임에 벤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몸을 푼다. 감독이 특별히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조금 늦게 나가고, 달리 할 얘기가 없을 땐 바로 나간다.
나간 선수를 불러들이는 건 감독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뜻이다.
"후반전에 루이스 대신 쇠렌센을 투입한다."
자신의 결정을 선포한 윌슨 감독은 루이스와 눈을 맞췄다.
"루이스가 실수하거나 자기 역할을 못 해낸 건 아니다. 단, 세 명의 연결이 단단하지 못한 흠이 있다. 향후 훈련에서 이 부분을 고민하고 해결하기 바란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 스토크시티 뭔가 끈끈해진 느낌입니다.
- 새로 영입한 루이스 대신 출전한 쇠렌센 선수가 엄청난 활동량을 보입니다.
- 공을 만질 기회는 별로 없지만, 공을 상대 팀이 소유하든 자기 팀이 컨트롤하든 늘 쉬지 않고 뜁니다.
미드필드 어느 위치에서도 앞가림은 하지만, 앞가림밖에 못 하는 쇠렌센. 그러나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팀의 공격진과 수비진 그리고 미드필더진의 느슨한 연결을 끈끈하게 바꿔줬다.
"루이스. 네가 할 일이 저거야."
샘 클루카스가 말했다. 비록 은퇴를 선언하고 유스 코치가 되었지만, 당분간은 1군에 합류하여 어린 주장과 애송이 선수들을 돕기로 했다.
"제임스는 가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패스를 잘 가로채. 마치 상대 머리에 들어간 사람처럼. 그런데 그건 정말 가끔이야. 보통은 패스를 가로채려다가 수비 위치를 잃고 상대한테 틈을 주지. 쇠렌센은 지금 그걸 아주 잘 메꾸고 있어. 너와 달리 공을 뺏진 못하지만, 대신 상대 공격을 저지하여 수비 진형을 수습할 시간을 벌지."
루이스는 속으로 크게 반성했다. 공 차단이 제임스보다 적은 게 마음에 걸려 감독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제임스의 실책을 무마해야 하는 루이스가 제임스처럼 경망한 모습을 보여주며 수비를 불안하게 했다.
"샘, 조언 고마워."
- 제임스가 찌릅니다. 도라익 선수가 질풍같이 달려갑니다.
- 패스, 패스했습니다.
도라익은 현재 모든 팀이 경계하는 골 게터다. 부족한 부분도 여실히 보여주긴 했지만, 13경기에 21개 공격 포인트를 올린 건 팩트다.
특히 지난 시즌 마지막 3경기에 보여준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쇼크 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도라익이 제임스의 패스를 잡았을 때 수비수든 키퍼든 슈팅에 대비하자는 마음이 훨씬 컸다. 슈팅에 대비하여 수비 태세를 펼치니 자연스럽게 패스에 대한 방비가 소홀했고, 도라익은 반대편을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공을 찔렀다.
찰리 아담이 껑충껑충 달려 도라익이 준 공을 가볍게 골대로 밀어 넣었다.
- 작가의말
클루카스 덕분에 팀이 점점 자리를 잡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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