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훈련
A매치 브레이크로 리그가 세 번째 휴식기를 맞이했다. 스토크시티는 특별히 선수들한테 3일의 휴식을 줬다.
곧 시즌 중반이어서 육체를 회복할 시간을 주기도 하고, 유로파리그까지 겹치며 쌓인 정신적인 피로도 풀라는 뜻이다.
찰리를 비롯해 대표팀에 불려간 몇몇 선수를 빼면 다들 가족과 휴가를 가거나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라익아. 이럴 땐 좀 쉬어."
"난 이게 쉬는 거야."
주장이 되며 어깨가 무거워진 도라익은 휴식도 봉사 활동도 거절하고 순간 집중력을 높이는 훈련을 했다. 무려 19999파운드의 거금을 주고 산 3D 기계로 게임을 하는 중이다.
노말 혹은 이지 난이도를 선택하면 게임이지만, 도라익처럼 헬 난이도를 선택하면 노동이고 훈련이다.
최경호 역시 처음엔 재밌게 게임으로 즐겼지만, 헬 난이도를 한 번 경험한 이후 기계 근처에 얼씬도 안 했다.
"근데 형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떻게 게임 하다가 멀미를 해?"
13라운드까지 가면서 신기록을 세운 도라익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했다.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게임은 아닌데 10분 정도만 하면 몸이 땀으로 절었다.
"멀미 얘기하지 말라니까."
그날 기억을 떠올리자 최경호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손으로 배를 쓸며 느린 호흡으로 안정을 회복한 최경호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근데 진짜 효과는 있는 거야?"
"훈련이나 경기할 때 써먹어 봐야지."
"그런데 그게 순식간에 계산이 돼?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라익은 공을 차는 선수의 자세와 발 휘두르는 속도 등을 보고 상대 리듬에 동화하는 거로 패스를 더 편하게 받고 잘 처리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뇌의 능력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상대 리듬을 보고 미리 판단해서 움직이는 방식은 갓 깨달았을 때 꽤 잘 먹혔다. 그러나 몇 번 틀리고 나니 더 많은 경우를 염두에 두며 머리가 복잡해졌고, 머리가 복잡해지자 판단이 쉽지 않았다. 자꾸 판단이 느리니 서둘렀고, 서두르니 훨씬 자주 틀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고 처음엔 경기 하이라이트들을 보며 감각을 키우려 했지만, 영상으로 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3D로 실제와 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기계가 있다는 걸 알고 구매하여 훈련을 시작했다.
"형이 제작한 앨범 다 망했잖아."
도라익이 최경호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가수는 실패할 거고 이 앨범도 망할 거야.' 이런 생각으로 제작을 시작했어?"
"내가 너야?"
"그러니까 형은 성공할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잖아. 결과는 실패인 거고. 그럼 형의 귀가 문제일까?"
최경호는 자신이 듣는 귀가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형은 뇌가 문제야. 귀는 정상인데, 귀가 전하는 소리를 듣고 잘못 판단한 뇌가 멍청한 거지."
"너 지금 날 멍청하다고 은근히 까는 거야?"
"아니. 대놓고 까는 건데?"
말문이 막힌 최경호는 콧방귀를 뀌는 거로 불만을 표현했다.
"그런데 형은 경험이 생겼잖아. 이런 가수는 안 먹히는구나. 이런 목소리는 아니구나. 이런 창법은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최경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계속 앨범을 제작하면 경험이 계속 쌓이겠지? 운이 더럽게 없지 않으면 작게 크게 성공도 할 거고. 그렇게 실패와 성공 경험이 계속 쌓이면 형도 훌륭한 제작자가 될 수 있어. 그 과정에 필요한 돈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겠지만."
"정확한 공식은 없지만, 경험이 쌓이면 가능하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난 그걸 기다릴 시간이 없어. 난 이미 프로이고 팀의 주전이며 주장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이 훈련을 하는 거야. 한 번 경험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몇 배는 되는 경험치를 얻으려는 거지."
"너 이런 건 누가 알려주는 거야?"
"지식인에 유용한 정보가 많아. 잘 모르겠는 건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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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가 입원했다고? 당장 팀닥터를 병원에 보내."
미국에서 온 가족과 런던 여행을 즐기던 윌슨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깜짝 놀랐다.
"미안한데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선수가 갑자기 쓰러져서 입원했다고 해."
부인과 아이들을 호텔까지 태워준 윌슨은 최경호를 만나러 런던에 올 때보다 더 빠르게 운전하여 스토크시티로 돌아갔다.
윌슨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구단주를 비롯해 열 명에 가까운 임원들이 와 있었고 소식을 들은 팬들도 수십 명이나 병원 앞에 모여서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음. 회의실로 가죠."
사람이 하도 많아서 회의실로 장소를 옮겼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 10시 11분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한 사람은 도우의 에이전트인 미스터 최였습니다. 도우가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데 흔들어 깨워도 되는지 문의했고, 저희는 당장 구급차를 보냈습니다."
의사는 손에 든 종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구급대원 도착 당시 도우의 체온은 38.9도였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이송된 후 다시 측정했을 땐 39.7도까지 올라갔죠. 액상 해열제를 구복시킨 후 얼음으로 체온을 낮췄습니다. 도우의 체온이 38도 이하로 내려간 후 뇌를 정밀검사했습니다."
"뇌는 왜요?"
"도우가 1월에 뇌진탕으로 실려 온 적 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당연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뇌부터 검사해야죠."
의사는 도라익의 뇌 사진 두 장을 벽에 크게 투영했다.
"왼쪽은 1월에 찍은 뇌 사진이고 오른쪽은 오늘 찍은 사진입니다. 형태의 변화는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윌슨이 안도의 숨을 터뜨렸다. 심장 때문에 병원을 자주 방문했고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환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님을 알았다.
"이건 보다 정밀하게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우린 작은 점 하나 발견했습니다."
"종양 뭐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이건 다른 부위보다 높은 온도 때문에 특별하게 보이는 부위입니다."
"이제부터 주관적인 의견이라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의사로서 객관적인 소견을 말하라고 하면, 도라익 선수는 건강하고 몸도 뇌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구단주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도라익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구단주도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했다.
뉴캐슬과 벌인 데뷔전에서 도라익이 3골 1도움을 달성하자 구단주는 과감히 도박하기로 했다. 도라익을 믿고 천만 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하고 톰 인스를 이적시키자는 감독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덕분에 리그컵 우승도 했고 강등이 확실하던 팀이 기적처럼 잔류에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영입한 지 1년도 안 되는 도라익의 유니폼 수익이 지난 10년 동안 전체 판매 수익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 점은 약물 선수들한테서 자주 보이는 점입니다."
겨우 마음을 진정했던 구단주가 벌떡 일어나다가 다리 힘이 풀려 의자에 쓰러졌다.
"도우가 약물을 했다는 말이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의사가 재빨리 소명한 덕분에 윌슨도 부여잡았던 심장에서 손을 뗐다.
"약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에 작용하는 약물, 근육에만 작용하는 약물, 신경에 작용하는 약물, 뇌에 작용하는 약물."
"뇌에 작용하는 약물은 부작용이 적지만 의존성이 상대적으로 강합니다. 신경에 작용하는 약물을 소량 섞어서 복용하는 거로 판단과 반응 속도를 높여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경기 내내 지속하죠."
"그러나 도우는 약물이 아닙니다. 신경 반응 전부 정상이고 혈액 검사도 깨끗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가설을 세웠습니다."
모두 숨소리마저 죽이고 의사의 발언에 집중했다.
"지난 1월 도우는 경기 도중 기절하여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2시간 뒤에 깼고 바로 지각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정도 걸려 첫 반칙을 당해 바닥과 충돌한 것까지 기억해 냈고요."
"저는 기절한 2시간 동안 도우가 축구 생각만 하면서 뇌의 깊은 곳이 깨어났다고 추측합니다."
"충격으로 특별한 능력을 각성했다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드물지 않으니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40년 축구 팬으로서 맨유와 벌인 경기에서 제임스의 패스를 받아 넣은 도라익의 두 골 모두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라익 선수의 뇌가 그간 축구에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면 설명 가능합니다."
"확실히 발전 속도가 경이롭긴 했습니다."
윌슨이 한마디 거들었다.
"짧은 기간에 새로운 정보를 다수 접한 아기는 지혜 열을 앓습니다.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 어마어마한 열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도라익 선수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축구 생각만 해서 뇌의 특정 부분이 강한 자극을 지속하여 받았고, 특수한 상황에 맞물려 기절하게 된 겁니다."
"계속 축구하는 게 위험하다면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습니까?"
도라익의 건강이 최우선인 최경호로선 당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입장이 다른 구단주나 임원들 귀엔 청천벽력이었다.
"축구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대신 평소에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거로 뇌의 특정 부위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안 받게 조심해야 합니다.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검사를 받으시고요. 뇌는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는 부위가 아니기에 자주 검사하는 거로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브리핑이 끝나고 구단주는 다급히 최경호에게 다가갔다.
"미스터 최. 집에 신형 벤틀리 한 대 있는데 이제부터 자네가 써. 그리고 나나 구단에 섭섭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말해. 내가 도우와 미스터 최 일이라면 늘 최우선으로 처리할 거야."
- 작가의말
임원 : 구단주님. 최경호가 일부러 잔꾀를 부린 거 같은데 굳이 벤틀리를 줄 필요 있었을까요? 도우의 앞날이 얼마나 창창한데 설마 진짜 축구 그만둘까요?
구단주 : 넌 최경호를 너무 고평가하고 있어. 그 또라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한 타입이야.
진실한 마음 덕분에 벤틀리 한 대 뜯어낸 최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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